부산시 금정구 주민자치회 조례 토론회를 보면서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본지 발행인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본지 발행인

살살해 주십시오

주민자치회 토론은 어렵다. 국가가 조직적으로 반대하고, 정치적인 시민운동가들이 배척하고, 행정학자들이 왜곡해 주민자치법 입법 토론회는 성사도 어렵지만 성공적인 진행은 더 어렵다.

“회장님, 주민자치 표준조례 반대 말씀 살살해 주십시오” 부산시 금정구 정미영 구청장은 ‘금정구 주민자치회 조례 토론회’ 전에 간곡하게 부탁했다. 공무원들은 필자가 강하게 비판하는 발표를 한다고 필시 보고했을 것이고, 보고 받은 구청장이 부탁해 왔다.

토론에는 찬반이 양념

“토론회는 좋은 조례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의견을 듣는 자리입니다. 필요한 분석을 해드리겠습니다. 금정구 토론회는 행안부 조례를 홍보하는 자리가 아닙니다”라고 필자가 단호하게 말하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머쓱해 하는 구청장에게 “주민자치는 마치 번데기가 나방으로 되는 과정과 같습니다”라며 곤충학자 찰스 코우만의 경험을 소개했다.

번데기가 고치의 작은 구멍을 빠져 나오는 과정은 매우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 과정에서 몸통에 탄력이 생기고 날개가 날 수 있도록 튼튼해져야 나방이 되고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게 된다. 찰스 코우만이 쉽게 빠져 나올 수 있도록 고치에 구멍을 뚫어주자 번데기가 쉽게 고치를 빠져 나왔다. 그러나 몸통은 쭈그러져 있고 날개는 찌그러져 있어 날아오르지 못했다.

“고치를 빠져나오는 인고의 과정은 나방이 되기 위한 필요 조건입니다. 주민자치도 힘들고 오래 걸리는 과정을 거쳐야 자치력이 생깁니다. 구청장께서 개입하지 마시고 상당한 인내를 갖고 주민에게 맡겨두세요.”

필자가 금정구청장에게 거침없이 훈계조로 말하자 배석한 사람들은 거북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자치회 조례는 구청장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민의 자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정치적 하수인 자처한 변절

박경현 금정구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장의 인사말로 토론회는 시작됐다. 정미영 금정구청장과 김재윤 금정구의회 의장의 축사, 그리고 김용민 부산광역시주민자치회 대표회장의 축사가 있은 후에 토론회는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토론회 첫 번째 발제자인 송문식 마을 이사장은 행안부의 표준조례에 대해 구체적인 조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당위성만 주장했다.

송문식 이사장의 발제를 들으면서 문재인 정부 집권에 이욕적으로 편숭하는 주민자치중간지원 조직의 간계와 오만을 강하게 느꼈다. 시민운동의 순수성이 권력과 밀착한 현장에서 매우 심각하게 타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면서 필자는 강하게 분노를 느꼈다.

당연한 말을 하는 것이 더 어렵다

사실을 짚어서 적확하게 밝히는 것이 두 번째 발제자인 필자의 몫이며, 판단은 금정구 주민자치위원들의 몫이었다. “행안부 표준조례는 주민자치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막자는 것이다”를 매우 강하게 지적하면서 발제를 이어갔다.

“첫째, 주민자치는 주민이 하는 것이지 관료가 하는 것이 아니다. 금정구 공무원이 하자는 대로 하면 망한다. 둘째, 주민자치는 주민이 하는 것이지 의회가 하는 것이 아니다. 의원들이 하자는 대로 해도 망한다. 셋째, 주민자치는 지역의 유지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잘난 소수가 하면 그것도 독재다. 주민들이 함께하도록 제도화 해야 한다.”

폭탄선언 같지만 원리에 입각한 합리적인 주장에 정미영 구청장도 김재윤 의장도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민은 아직도 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필자가 애써 준비해 간 300여부의 발표 자료를 구청장도 의장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박원철 금정구 자치행정팀장이 내용이 너무 강하다고 한국자치학회 사무총장에게 배포하지 못하도록 강력하게 막았다고 한다. 금정구의 수준이 발제자의 발표 자료를 배포하지 못하도록 막을 정도인가 묻고 싶다. 촛불로서 집권한 문재인 정부에서 여당인 민주당, 그것도 민선 구청장이 재직하고 있는 금정구에서 공무원이 토론회의 발표 자료를 사전에 검열하고 배포를 금지하는 것이 옳은지 묻고 싶다. 공무원이 공식적인 발표 자료를 막는 것이 혼자서 가능하겠는가? 소상하게 밝혀서 공개적으로 밝혀주길 바란다.

알아야 면장 한다

“주민자치회는 NGO 비국가 조직입니다. 국가가 주민자치회를 관리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문재인 정부는 주민자치회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주민자치회는 NPO 비영리 조직입니다. 영리를목적으로 하는 단체의 개입도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중간지원조직은 모두 친 단체장의 NPO로서 주민자치를 지배해 생계수단으로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합니다.”

“주민자치회는 NIO 비사적 조직입니다. 정치집단조직이나 소수 집단에 의해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민주제로 운영돼야 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관료들의 전횡과 정치인들의 오만을 충분히 경험한 주민자치위원들은 필자의 발제를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중간 지원조직이 문제입니다. 주민자치를 지원한답시고 민주당의 하부 조직과 다름없는 시민단체에 민간 위탁하는데, 말로는 위탁이지만 실제로는 주민자치회를 장악하려는 것입니다.”

“시민단체에 위탁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시·군·구에 이미 있는 주민자치협의회를 무력화시키면서 시민단체에 위탁하는 것은 분명하게 정치적인 꼼수입니다.”

“따라서 민간 위탁하는 예산은 금정구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에 지원하면 됩니다. 동 주민자치지원관도 필요 없습니다. 주민자치회에 지원하면 됩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은 있다

다른 구청장은 축사만 하고 자리를 뜨는데, 정미영 구청장은 청중석에서 열심히 메모하면서 진지하게 끝까지 발제를 들어줘서 매우 고맙다. 대한민국 주민자치 백년지대계가 금정구에서 이뤄지도록 적극 돕고 싶어졌다.

선무당의 칼

토론자인 최두진 부산대 교수와 손지현 신라대 교수는 기존의 주민자치회 연구논문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행정학적인 일반론을 되풀이 하거나, 주민자치와는 빗나간 주제로 토론을 했다. 금정구 주민자치회 조례를 위해서 바람직한 제안을 낼 수 없다면 학자적인 양심으로는 분명히 사양해야만 했다.

참가했다면 발제자는 물론 청중에게 의미 있도록 성실해야 했다. 금정구 자치행정팀에서 지정했다고 한다. 주민자치에서는 선무당일 수밖에 없는 공무원이 칼을 쥐고 춤을 춰서 주민자치를 풍부하게 할 수있는 기회를 앗아 버렸다. 토론회의 공동주최자로서 한국자치학회는 표준조례를 이미 실시한 현장을 경험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서울시의 주민자치협의회장을 추천했으나 금정구에서 거부했다고 한다.

지정토론을 한 최영근 금정구 주민자치위원장협의회 감사와 김진근 부산광역시주민자치회 공동회장의 토론은 서투르지만 주민자치 현실을 반영해서 토론했다. 주민자치를 실제로 실천해야 하는 주인공으로서 염려도 배어 있었다.

청중석에서 질문이 있었다. ‘읍·면·동장은 주민자치가 아니라 행정에 봉사하는 것을 요구한다’ ‘공무원들이 주민자치의 전권을 거머쥐고 있어서 주민자치를 할 수 없다’는 등의 일반적인 하소연이 대부분이었다. 또 ‘주민자치회 위원을 추첨으로 하면 뜨내기 철새들이 주소를 옮겨가면서 하려고 한다’ ‘일정 거주기간으로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는 토론이 있었다.

주민자치 실천의 길

발제자로서 지정토론에 답하고 청중토론에 답하는것은 짧고도 명확해야 한다. “주민자치에서 위원장님은 동장과 맞짱 떠서 이기셔야 합니다. 실력을 쌓아주십시오. 돕겠습니다”며 “또 주민자치에서 협의회장님은 정미영 구청정과 맞짱 떠서 이기셔야 합니다. 충분한 실력을 쌓아주십시오”라고 말하자 동의의 박수가 크게 터져 나왔다.

정미영 구청장은 “문제는 충분히 지적해 줬습니다. 대안까지 주십시오”라고 진심을 담아서 요청해왔다. 토론회 시작 전에는 경계했는데, 후에는 대안까지 요청했다. 요청을 받는 순간 ‘문제 제기는 했으니 문제를 푸는 것으로 도와주자’고 마음먹었다.

“구청장님, 대안에 대해서 심층토론을 마련하면 도와주시겠습니까? 공짜는 안 됩니다. 관심을 갖고 요청하면 됩니다.”

주민자치회법이 필요하다

주민자치 모르는 선무당 공무원들이 휘두르는 칼에 아직도 한국의 주민자치는 신음하고 있다. 선무당의 칼을 주민들이 쥐는 날까지 주민자치 전도사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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