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❾ 스위스 게마인데총회 시사점

안권욱 고신대 교수(지방분권전국회의 공동정책연구위원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박 철 기자
안권욱 고신대 교수(지방분권전국회의 공동정책연구위원장)이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박 철 기자

2019년 12월 3일 열린 국제심포지엄 ‘분과세션2’에서 안권욱 교수가 발제한 ‘직접민주주의 스위스 사례 : 게마인데총회’ 연구는 2015년 12월 13일부터 22일까지 투르가우 주의 게마인데 시르나흐, 취리히 주의 게마인데 레겐스베르그 현지 게마인데총회 방문 및 관찰과 면담을 통해 수집된 자료를 분석한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안권욱 교수는 지방자치 제도는 직접민주주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바탕 위에 대의민주주의가 연하게 결합된 형태로 설계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기자는 주민과의 소통과 포용의 정치행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안권욱 교수의 바람대로, 한국 사회가 자율소통포용을 기본방향으로 한 정치행정 시스템이 개혁되길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스위스 게마인데총회(Gemeindeversammlung)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은 스위스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들 중 하나라는 점이고, 게마인데총회는 정치행정 시스템 관점에서 스위스를 오늘날 세계 최고의 살기 좋은 나라로만든 제도적 자산들 중 으뜸으로 손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미러클(miracle)에 가까운 스위스 국가 발전의 원천이 정치행정 시스템 관점에서 접근하면 게마인데총회가 아닐까 한다. 이는 게마인데총회가 자율과 책임, 그리고 경쟁의 지방분권적 연방정치행정체제의 기반 위에서 스위스 경제사회 발전을 위해 필요한 소통과 포용의 기제(mechanism)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정치제도의 자산이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소통 차원에서 게마인데총회는 개개인의 정치적 요구 및 의사와 에너지를 이끌어내 발산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포용 차원에서 게마인데총회는 각 개인의 상이한 견해와 의사를 존중해 이견의 차이를 좁히고, 결국 다른 사람 의사를 수용함으로써 공동체 전체 이익및 발전을 위해 하나가 되는 ‘지지 에너지’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즉 게마인데총회를 통해 각 개인의 에너지가 한편으로는 발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발산된 에너지가 게마인데총회를 통해 하나로 집합돼 스위스 경제사회 발전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의결기구로서의 게마인데총회

게마인데총회가 개개인의 정치 요구 및 의사와 에너지를 이끌어내고 발산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은 게마인데총회 제도의 본래 기능인 의결기구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게마인데총회는 대의제 의결기구가 아니라, 선거권이 있는 모든 주민들로 구성된 의결기구다. 그러므로 주민들은 게마인데 권한에 속하는 지방세의 징수세율, 예산, 주요 정책 사업들을 게마인데총회를 통해 직접 결정한다. 특히 지방세 징수세율의 결정, 회계연도 예산 승인 및 결정권에 기초한 게마인데총회의 재정정책 결정기능은 게마인데 재정의 투명성 확보는 물론, 각종 정책 사업들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게마인데 채무를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게마인데총회가 더욱 빛나 보이는 점은 게마인데총회의 징수세율결정권을 활용해, 주민들이 직접 타지역 게마인데와 조세 경쟁하고, 징수세율의 적정수준 인하를 수단으로 기업 유치 등 지역 경제산업 정책을 주민들이 직접 결정향유한다는 것에 있다. 이런 게마인데총회의 직접민주주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민 개개인은 그들 각자의 정치 요구 및 의사와 공동체를 위한 에너지를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여론 형성·포용·정치행정·공동체 교육 기능

게마인데총회는 단지 게마인데 의결기능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의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 강력한 여론 형성 역할을 하고 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조세와 주요 정책 사안들은 국민의 직접참정 즉, 국민투표로 결정된다. 이들 사안을 결정하는 국민투표과정에 게마인데총회가 중요한 여론 형성기능을 한다. 이런 여론 형성기능에서 게마인데총회는 연방정부와 주정부 차원의 정치행정을 좌우하는 스위스 정치행정의 근간이 되고 있다.

나아가 게마인데총회의 주요한 기능들 중 하나는 포용의 정치행정 및 공동체 교육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 게마인데총회는 주민이 그들의 정치행정 시스템을 직접적 경험을 통해 배우는 스위스 민주정치행정의 체험적 교육기관이요,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는 실천적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즉 게마인데총회는 주민 각 개인이 지역 공동체 살림살이에 직접 참여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정치행정의 메커니즘과 공동체 가치를 경험적 자극을 통해 배우고, 더불어 살아가는 포용의 지혜를 각 개인이 창조하는 교육 제도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게마인데총회의 포용의 교육기능이 스위스라는 나라가 지역 공동체 중심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문화 형성을 가능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표] 게마인데총회의 분류기준과 그 유형.
[표] 게마인데총회의 분류기준과 그 유형.

게마인데총회 유형

게마인데총회는 규모가 작은 게마인데의 의결기구로서 의회(Gemeindeparlament)를 대신하고 있다. 현재 게마인데총회는 스위스 농촌지역 전체 게마인데의 약 90%에 걸쳐 설치돼 있다. 그리고 도시 지역 중 인구 규모 2만명 이하의 대부분의 게마인데에 게마인데총회가 설치·운영되고 있다.

게마인데총회의 유형은 우선 게마인데의 종류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게마인데 종류는 먼저 보통지방자치단체와 특별지방자치단체두 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보통지방자치단체는 자치구역(GemeindeGebiet)과 주민(Einwohner)을 근간으로 한 게마인데로서 정치적 게마인데(Politische Gemeinde)를 의미한다. 정치적 게마인데는 종합 자치·행정기능을 수행하는 정치·행정 단위다. 정치적 게마인데 외에 구역이나 주민을 근간으로 한 게마인데가 있는 데, 그것이 다름 아닌 교회게마인데(Kirchgemeinde)다.

특별지방자치단체는 특정 업무(Aufageben) 및 기능(Funktionen) 수행을 목적으로 설치된 게마인데로서 예를 들어 학교게마인데(Schulgemeinde), 삼림게마인데(Waldgemeinde)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게마인데 유형에 따라서 게마인데총회는 정치적 게마인데총회, 교회게마인데총회, 학교게마인데총회, 삼림게마인데총회 등이 있다.

게마인데총회는 또한 총회 구성원을 기준으로, 그 유형을 분류할 수 있다. 총회구성원을 기준으로 한, 게마인데총회는 주민게마인데총회(Einwohnergemeindeversammlung)와 시민게마인데총회(Bürgergemeindeversammlung) 두 유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주민게마인데총회는 스위스의 시민권을 갖고 있고, 당해 게마인데에 주민으로 등록된 투표권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게마인데총회다. 시민게마인데총회는 스위스 시민권자(Schweizer Bürgerrecht)로서 당해 게마인데에 고향연고권(Heimatrecht)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는 게마인데총회다.

그러므로 시민게마인데총회 구성원 자격은 주민게마인데총회와 달리, 당해 게마인데의 주민이어야 하는 것을 필수적 요건으로 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 시민게마인데총회는 오늘날 게마인데 정치행정에 있어 그 의미가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게마인데총회라고 하면, 주민게마인데총회를 의미한다. 동시에 주민게마인데총회는 자치·행정의 실재에 있어 정치적 게마인데총회와 구분하지 않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유사한 개념으로 활용되고 있다.

■게마인데총회 시사점

게마인데총회의 시사점은 포용적 정치 시스템은 직접민주주의와 결합해야 한다는 점이다. 본 연구는 스위스 직접민주주의 제도의 한 형태인 게마인데총회가 경제·사회 발전에 어떤 의미를 갖는 지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게마인데총회의 제도와 그 운용사례를 분석했다. 게마인데총회제도와 운용사례분석의 의의 및 시사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권한 범위 광범위

첫째, 게마인데총회의 권한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점에 있다. 즉 게마인데총회 의사결정 범위는 자치단체 수준의 의사결정뿐만 아니라, 자치단체 수준을 넘어서는 국가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준의 의사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우선 자치단체 수준의 의사결정 범위다. 게마인데 시르나흐와 레겐스베르그 사례에서 게마인데총회에서 주민들은 일정 예산금액 내에서 일회적 정책 사업뿐만 아니라, 연속적 정책 사업의 승인 등 자치단체 사업을 결정함은 물론, 자치단체 공유재산 관리에 관한 사항을 직접 결정한다. 또 주민들은 게마인데총회에서 매 회계연도 예산과 결산의 승인, 지방세 징수세율의 결정 등 자치재정 및 지방세와 관련한 사항을 직접 결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게마인데총회에서 주민들은 직접 자치단체 조례의 제정·개정·폐지할 권한을 가진다. 그러므로 게마인데총회에서 주민들은 자치입법, 자치재정, 자치행정 및 공유재산 관리 등 매우 광범한 범위에서 의사결정권한을 향유하고 있다.

다음은 자치단체 수준을 넘어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의사결정 범위다. 이는 다름 아니라, 게마인데 시르나흐의 게마인데총회에서 주민들은 이민자의 주민자격취득 승인에 대한 권한을 행사한다. 게마인데총회에서 이민자가 주민자격을 취득하면, 스위스의 경우, 스위스 연방헌법 제37조 제1항에 따라 스위스 국적인 스위스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므로 게마인데총회는 자치단체 수준을 넘어 스위스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을 하기도 한다.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해 운영

둘째, 게마인데총회의 운영방식이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즉 게마인데총회에서 주민들은 자치단체의 살림살이 및 지역 공동체 발전과 관련한 사항을 직접 결정한다.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한 게마인데총회는 일차적으로 주민과 자치단체, 그리고 주민과 주민 간의 직접적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서 주민과 자치단체 간 소통에서는 자치단체가 개별 각 주민의정치적 요구 및 의사를 포용할 수 있다.

또 주민과 주민 간의 소통에서는 정치적 이견의 차이를 좁히고, 다른 사람의 합리적 의사를 존중·수용해 합의적 의사결정을 하는 숙의민주주의 방식의 포용적 정치행정을 기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한 정치행정적 소통은 빗나간 대의민주주의에서 흔히 발생하는 전문적 정치기관 및 단체 스스로의 이해 및 이익 극대화 행태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소모적 정치적 비용과 정치에 대한 불신을 방어함으로써 자치단체 및 국가 경영상의 효율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경제·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

셋째, 게마인데총회가 경제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게마인데총회가 직접민주주의에 기초한 소통과 포용의 정치행정 행위에서 비롯된 긍정적 결과 및 성과다. 즉 직접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체제 하에서 정치집단 간의 지나친 정치공학적 줄다리기로 인해 발생하는 재정 정책적, 정치 정서적 각종 폐해 및 폐단을 상당 부분 차단함으로써, 국민 및 주민의 정치적 지지 에너지를 경제사회 발전에 모두 투입할 수 있게 한다. 오늘날 스위스가 세계 최고의 살기 좋은 나라가 된 것은 게마인데총회와 같이 직접민주주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바탕 위에 대의민주주의가 결합된 소통과 포용의 정치행정 제도의 결과로 이해된다.

자율성 기반에서 책임과 경쟁 정치

넷째, 자치단체인 게마인데와 수직적 정부 간 관계 차원의 스위스 정치행정체계의 특성이다. 게마인데총회가 자치단체 의결기구로서 광범한 범위의 의사결정권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지방분권적 연방정치행정체제에 기초하고 있다. 스위스는 수직적 정부 간 관계 차원에서 접근하면, 26개 주의 연합체적 연방체제로서 경쟁적 연방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스위스 경쟁적 연방주의는 각 정치행정 단위의 자율과 책임, 그리고 상호 간의 경쟁을 정치행정 행위의 원칙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책임과 경쟁은 각 정치행정 단위의 자율성 기반 위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수직적 정부 간 관계 측면에서 자율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세원 배분의 관점에서 각 정치행정 단위의 자율성을 살펴보면, 회계연도 2012년을 기준으로 연방정부약 33%, 주정부 약 42%, 게마인데약 25%로 주정부의 세원규모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게마인데 세원규모가 가장 작지만 연방정부와 비교하면 그렇게 작은 비중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 재정자율성의 기반 위에서 스위스의 각 정치행정 단위들은 책임과 경쟁 정치를 하고 있다.

소통과 포용의 정치행정

다섯째, 스위스 게마인데총회를 통해 관찰한 스위스의 정치행정 시스템은 자율과 책임, 그리고 경쟁의 지방분권적 연방정치행정체제의 기반 위에 소통과 포용의 정치행정이 이뤄지는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또 소통과 포용의 정치행정이 스위스 경제·사회 발전과 혁신의 원동력이 되고 있음은 물론, 스위스 국가경쟁력의 최고 자원이다.

■맺음말

지방자치는 직접민주제 바탕 위에 대의민주제 결합 형태로 설계돼야 포용적 정치 시스템은 정치행정의 기능적 규모를 작게 하는 지방 분권 개헌을 요구한다. 최근 우리나라 중앙 정치권에서는 지난 제18대, 제19대 국회에서 헌법 개정 논의가 국회의원 연구단체를 중심으로 약 8년간 지속됐고, 지방 정치권에서는 각 지방자치단체장 및 지방의원들을 중심으로 지방분권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또 학계에서도 지방자치 발전 및 지방분권화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

중앙정치권의 헌법 개정 논의나 지방자치단체 및 학계의 지방자치 및 지방분권 논의는 모두 정치·행정 시스템 개혁에 대한 논의다. 이런 정치·행정 시스템에 대한 제도 개혁 및 새로운 제도 디자인을 함에 있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역의 자율성과 자치권을 강화한 지방분권적 정부 간 관계 체제의 바탕 위에 국민 및 주민과의 소통과 포용의 정치행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히 지방자치 제도는 직접민주주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바탕 위에 대의민주주의가 연하게 결합된 형태로 설계돼야 할 것이다.

자율·소통·포용을 기본방향으로 정치·행정 시스템 개혁은 필수

이런 직접민주주의 강화를 기본방향으로 한 제도설계는 자치단체 규모의 재조정은 물론, 주민의 참여방식에서도 전자매체를 활용한 다양한 방식들이 개발돼야 할 것이며, 주민 직접결정을 위해 필요한 많은 것들이 우리 실정에 알맞게 새로이 개선되고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러므로 지방자치 제도에서 직접민주주의 강화는 수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제도 개혁과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스위스와 같은 혁신과 경쟁력 있는 살기 좋은 나라로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인류사회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진일보하거나 후퇴하는 행보를 교차·반복하는 경험을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시간의 경과와 함께 진화·발전해 왔다. 그 진화·발전 과정에 동시에 수반돼 심화돼 온 것들 중 하나가 경쟁이다. 지금까지 인류역사에서 현재의 시점이 가장 경쟁이 심하다고 하겠지만,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향후 미래는 지금보다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우리 한국 사회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율과 소통, 그리고 포용을 기본방향으로 한 정치·행정 시스템의 개혁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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