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지역 사회적 가치 추진 주체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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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지역 사회적 가치 추진 주체는 공동체
  • 전대욱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김혜인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 강사
  • 승인 2020.03.13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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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사회적 가치는 공급자의 사회 서비스 지속가능 토대
영국에서 주민자치 조직은 축소된 공공 서비스를 대신 공급

 

그 어느 시대보다 과학기술과 의료기술이 발달한 오늘날도 마치 중세의 페스트 시대처럼 ‘코로나19’로 명명된 역병에 시달린다. 자본과 과학기술 시스템이 우리를 더 안전하게 하지만, 이면에서는 그 위험도 커져간다. 역병은 국지적으로 발생했지만, 초연결된 우리의 사회 경제 시스템 내에서 새로운 병원체의 진화와 전염은 기술진보보다 더 빨리 전역적으로 확장된다.

콘트롤 타워인 국가는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있지만, 각자도생의 사회 속에서 개인과 단체는 사회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이익을 내세우는 가운데, 행정적 의사결정은 더 어려워지고, 혐오와 공포는 확산된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 사회는 무한경쟁의 모토 하에서 유발된 불안정 고용과 삶의 안정성 붕괴의 일상화에 대한 공동체적 대응능력을 급격하게 상실해 가고 있다. 마침내 우리는 또 어떤 선각자들이 주창한 ‘사회적 가치’라는 새로운 개념을 주입 당한다.

민주주의의 보루 한국 의회의 반추

필자는 이 개념이 다소 논쟁적이라고 본다. 특히 ▶주민자치의 개념조차 학자들 간에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상황에서 ▶정책적으로는 권한과 실행 가능성을 두고 아직 실험단계에 있는 이 상황에서 ▶사익추구에 밀려 공공성과 공익성을 지키기 위한 공동체적 대응도 못하는 이 상황에서 너무 이상적인 스토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가들은 이번 전염병의 위기나 사회적 가치를 발휘해야 하는 현재의 사회 문제들에 있어서 진정성 있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지, 아니면 여전히 그들 이익단체와 결탁됐을 것 같은 의혹 하에서 이런 위기상황이 스스로에게 기회가 돼서 정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론 플레이나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럴수록 민주주의의 보루인 의회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의회 밖의 다양한 이익단체와 결탁해 ▶일반 대중들은 이해하기도 어려운 정책 의사결정을 내리면서 ▶장외혼란만 가중시키면서 ▶직접민주주의라는 미명 하에 우리를 울리히 벡이 말한 ‘하위정치(Subpolitiken)’의 아름다운 실현체인 주민자치의 실험무대로 몰면서 ▶자신들도 못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유럽의 공공성 위기와 사회에 대한 성찰

현대 사회에서 우리도 그렇지만, 유럽도 매한가지의 상황이다. 찬란했던 민주주의는 전문화로 무장한 사적 이익이 난립하는 현대 사회에서 공공성과 공익성을 상실하면서 클라우스 오페(Claus Offe)가 말했던 것과 같이 의회에 대한 대중의 ‘신뢰의 철회(Vertrauensentzug)’에 직면한다. 세계화된 경제는 국가를 초월한 거대기업을 탄생시켰고,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과 자본투자를 무기로 공공성과 공익성에 대한 마지막 보루인 정부의 규제와 정책을 무력화시킨다. 게다가 미국과 신흥경제권에 경쟁력을 상실하고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여파를 겪으면서 고질적인 재정위기를 맞이했던 유럽은 취약 계층의 보호 등으로 대별되는 ‘공공성’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의 실패’에 직면한다.

양극화와 사회 공간의 쇠락, 이는 유럽에서 공공성의 위기 담론과 함께 성찰적 근대성과 비판적 공공성의 복원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낳았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시장이라는 전통적 섹터 외에 시민사회로 대별되는 제3섹터의 대안적 공공서비스와 사회부조, 그리고 기후위기에 대한 유럽의 리더십 확보 등은 1990년대 사회적 경제의 출현 이후 마내 2000년대 ‘사회적 가치’라는 개념을 태동시켰다. 유럽이라 하더라도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독일과 대륙권, 그리고 그들의 영향을 받은 남미에서 조금씩 상이한 배경과 주체에 따른 경로로 사회적 경제와 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와 정책 실험이 진행됐다.

유럽에서 역시 현대의 경제 패러다임 하에서 ‘사회’라는 개념은 유행에 뒤떨어진 주제였다. 로버트 퍼트넘(Robert David Putnam)은 예컨대 ‘혼밥’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회적 파멸을 논했고,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은 신경제가 직업과 정체성을 흔들면서 사회적 쇠퇴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여기서 ‘공동체’는 현 시대의 사회적 쇠락에 대비해서 마치 과거에는 개인과 타인의 조화가 잘 이뤄진 사회가 있었다는 식의 향수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했다.

이기적인 합리성만을 추구하고 있고, 개인주의가 만연하며,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으로 드러나고 있는 양극화와 공공성의 왜곡이라는 현실에 직면해서, 그 반작용으로 소환되고 있는 사회는 무엇인지. 사회와 공동체는 아름다운 추억처럼 생각될 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던 답답한 공간이기도 했었고, 여성에게는 가부장적 억압의 공간이기도 했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사회란 개념은 불가능하고,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구성원의 정체성이 협상되고 조정돼야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 모호한 사회라는 개념에서 ‘가치’를 추출한다는 것은 이성적·합리적 기준에서 잔차(residual)로 남겨진 것들 중 우리삶을 지지해 줄 수 있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이자 설득의 기반을 마련하자는 의미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 가치 추구

아마도 문재인 정부 들어서 사회적 가치 추구를 정책에 반영하고자 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회적 가치 논의가 현대 경제체계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하면서 기존 ‘경제적 가치’에 상응하는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시작됐다는 점은 중요하다. 즉 사회적 가치는 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나 수긍하고 합의하냐에 의해 평가될 수 있을 뿐이며, 시장에서 경제적가치 평가가 수요자-공급자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은 아니다. 비록 많은 전문가들이 정책적인 수요에 의해 아직까지도 절대적인 측정도구를 만들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대중적 합의는 요원하다.

다만, 중요한 사실은 상대적으로 사회적 가치 측정을 필요로 하는 활동들이 경제적 활동과 연계된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 먼저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는 공공성·공익성에 대한 정부 활동을 대체하는 사회적 활동들을 의미하므로, 결국 사회적 가치는 ‘정부 지출의 절감분’이라는 경제적 가치로 환원 가능하며, 사회적 가치는 경제적 가치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로 측정하는 시도는 쉽게 받아들여졌다.

유럽의 제3섹터와 사회적 가치

유럽에서의 이런 사회적 가치의 경제적 가치로의 환산 노력은 사회적 경제 주체들에게 먼저 적용됐다. 다만 사회적 경제에 포함되는 주체들이 각 국가들의 특수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점인데, 예컨대 독일에서 사회적 경제는 통일 이후 공공 서비스를 보완하는 제3섹터(단체, 재단 및 비영리법인 등)와 동일시되며, 제3섹터는 사회적 기업과 동일하게 간주된다.

바우어(Bauer)는 2001년 ‘사회적 직무(Dienst)’와 이를 공급하는 조직으로서의 ‘사회적 서비스(Dienstleistung)’를 구분했고, 2006년 트르케쉬트즈(Trukeschitz)는 사회적 서비스를 취약 계층의 사회적·경제적 ‘형편’을 개선시키는 것으로서 정의하면서 공적 자금을 얼마나 투입할 때, 이런 개선이 가능한지를 봤다.

셀베르크(Schellberg)는 사회적 가치를 사회법규에 의한 사회적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회적 시장(Sozialmarkt)’에서 민간 및 공공부문의 개별 공급자들의 행위를 중심으로 정의했다.

이처럼 사회적 가치는 정부의 교부금이나 공적기금 등 공공재원을 사용하는 경우, 복지 등 정책목표를 얼마나 달성하고 있는가의 지표에 의해 측정됐고, 개별공급자들의 사회 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해 도입·발전해 왔다.

한편,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제3섹터는 정부섹터와 시장섹터의 대안섹터로 보며, 사회적 경제와 거의 동의어로서 이용된다. 레빗(Levitt)은 미국에서 민간의 비영리 부문을 최초로 제3섹터라고 칭했는데, 그 후 유럽에서는 시장(영리부문)과 정부(공공부문)의 중간자적 입장에서 사회적 개념에 더 가까운 활동 영역으로서 정착됐다.

1990년대 영국 노동당의 ‘제3의 길’과, 2000년대 보수당의 ‘빅 소사이어티’는 사회적 가치와 지역 공동체 가치를 강조하면서 비영리와 사회적 경제, 지역 공동체 등 제3섹터의 활성화를 정책적으로 천명한다. 원래 ‘비영리 부문’은 1980년대 전후 미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했지만, 역사적으로 이 개념은 19세기 영국과 영연방 국가들에서 활성화된 자선단체나 박애주의 재단 등을 포괄하는 ‘자선부문’과 ‘자원봉사 부문’ 등으로부터 출발했다.

특히 영미권에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차원에서 거부나 대기업의 오너들을 중심으로 기부문화가 발달했고, 1990년대 이후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강조되면서 기업사회 투자에 대한 사회적 창출가치의 측정을 통해 ‘사회적 투자수익률(SROI : Social ROI)’의 측정을 통해 사회적 가치 창출 활동의 지속가능성을 제고시키는 노력을 병행해 왔다.

유럽의 연대경제와 지역 공동체 가치

사회적 가치와 관련해 유럽지역에서 또 하나 주목할 개념은 ‘연대경제(Solidarity Economy)’다. 이 개념은 20세기 말 프랑스와 스페인,일부 남미국가에서 널리 쓰이며, 제3섹터 성장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제3섹터는 영리적 시장 영역에서는 충분히 공급되기 어렵지만, 개인과 사회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사회가치재(merit goods)’를 제공하는 시장으로서, 원래는 정부지출에 의해서 이런 재화나 서비스가 공급돼야 하므로 그만큼 국가는 제3섹터의 가치재 생산과 분배에 대해 책임을 부담하는 원칙을 갖는다. 통상 시장 영역에서 공급이 부족한 사회가치재는 가격이 높은 수준이지만, 정부 지원에 의한 제3섹터의 사회가치재는 무상 혹은 보다낮은 가격으로 공급돼야 한다.

전통적인 사회적 경제 부문은 시장경제와 결합한 사회적 가치 활동을 의미하지만, 연대경제는 시장경제와의 결합 외에도 상호주의에 입각한 무상거래 등과 같은 비시장경제 영역도 포함한다. 즉 연대경제는 시장경제(상품 및 서비스의 판매), 비시장경제(정부 지출 및 공공자금 지원) 및 무자본경제(자원봉사, 조합 내 상호주의 등)를 혼합하는 형태다. 연대경제는 생산자 및 소비자협동조합이나 직원협동조합 등 자조적인 경제 공동체를 통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시장과 국가와 제3섹터로의 연대경제가 양립하는 접근방식을 취한다.

이런 유럽의 제3섹터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가치 활동에 있어서 지역공동체는 당연히 지역 사회의 사회적 가치 제고를 위한 중요한 추진 주체로 인식된다. 특히 사회적 경제 기업들의 대부분은 지역 사회 내의 사회 서비스 혹은 사회가치재에 대한 수요를 기반으로 한 지역 공동체 기반의 ‘마을기업’으로 볼 수 있다.

영국에서는 2012년 ‘사회적 가치법(Social Value Act)’과 ‘지역주의법(Localism Act)’ 등의 법제를 도입하며, 이런 마을기업 등 지역 공동체조직들이 생산하는 사회적 가치 제고와 관련된 재화 및 서비스에 대한 공공구매 및 공공서비스 공급·운영 위탁 확대는 물론, 국·공유재산 및‘지역공동체 가치자산(CVAs : Community Value Assets)’에 대한 지역공동체 접근·사용권, 소유권 강화 등의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주민자치조직과 마을기업 등의 사회적 가치 창출 활동을 촉진시켜왔다.

여기서 지역 공동체 가치자산(지역 공동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산)이란 시장가치와 다른 공동체적 가치를 의미하며, 이는 중요한 지역사회의 사회적 가치로 볼 수 있다(아직까지 우리나라 기준의 사회적 치에는 이런 지역 공동체 가치가 반영돼 있지 않은 점은 유감스럽다).

런던의 사회적 가치 창출 정책

주민자치 활동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이상적인 경우, 지방재정이 어렵고 인구가 감소돼 지역 사회에 필요한 공공 서비스가 축소되는 영국에서 주민자치 조직이 축소된 공공 서비스를 대신 공급하는 모델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 런던의 ‘광역 책임조달 정책(GreaterLondon Authority Responsible Procurement Policy)’을 들 수 있다. 런던광역시(GLA) 산하기관에게 책임조달은 삶의 질 개선과 가격대비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조달을 의미한다.

런던광역시청은 런던광역시 산하기관과 협력해 지속가능한 고용기회와 노동환경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이는 계약기회를 런던 관내 다양한 사업체와 자원 조직과 공동체 조직에게 개방하고, 공급자와 함께 조달 절차 개선을 촉진하며, 런던을 거주와 노동을 위한 보다 나은 환경이되도록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증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런던광역시청은 매년 110억 파운드(환률 1600원/파운드 적용 시17.6조)에 달하는 공공조달예산을 지출하고 있다. 런던광역시청은 계약금액이 십만 파운드(동 환률 적용시 1.6억원) 이상인 모든 계약은 물론, 그 이하라 할지라도 사회적 가치의 구현 기회가 존재한다고 판단되는 경우, 지역 내 제3섹터를 우선 주체로 재화, 노무, 서비스 조달을 통해 사회적 가치 창출결과를 확보하고 있다. 또 지역 공동체(앵커조직으로서 주민자치 조직 중심) 및 시장관계자 등의 거버넌스를 통해 사회적 가치에 초점을 두는 조달 요건을 합의해 사회적 가치 구매조를 통해 마련했다.

이런 제도적 참여 과정을 통해 사회적 가치 제고 활동에 있어서 수요자이자 공급자인 지역 공동체가 지역 사회 내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시키는 중요한 주체로서의 역할을한다는 점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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