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는 씨과일이다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사진=한국자치학회 제공
전상직 한국자치학회 회장. 사진=한국자치학회 제공

조선후기의 사설시조는 병자호란과 임진왜란, 세도정치를 겪으면서 백성들이 느낀 세태를 비판·풍자·해학·직설로 표현한 것이다. 영·정조 이후 점진적으로 계몽을 거치는 백성들의 안목에 비친 부조리를 사설시조로 새겨보기로 하자.

1

[원문]

두터비 파리를 물고 두험 우희 치다라 안자

건넛山  라보니 白松鶻이  잇거  가슴이 금즉하여 풀덕  여 내 다가 두험 아래 쟛바지거고 모쳐라  랜 낼싀만졍 에헐질 번하괘라

[풀이]

두꺼비가 파리를 물고 두엄 위에 뛰어 올라가 앉아 건너편 산을 바라보니 흰 송골매가 떠있기에 가슴이 섬뜩해 펄쩍 뛰어 내닫다가 두엄 아래 자빠졌구나

그러고는 하는 말이 마침 날랜 나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다쳐서 멍들 뻔 했구나

[함의]

탐관오리의 생존 형식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이다. 백성을 향해서는 허장성세(虛張聲勢)를 하고 무리들끼리 자화자찬(自畵自讚)을 한다.

중(中)은 오욕칠정이 발하기 이전의 경지에서 성립한다. 중간조직은 역사적·구조적·인간적으로 결코 비굴 그리고 위선을 피하기 쉽지 않았다.

2-1

[원문]

개야미불개야미 등부러진불개야미

압발에疔腫나고뒷발에죵귀난불개야미廣陵삼재너머드러가람의허리를르무러추혀들고北海를건너닷말이이셔이다
님아님아온놈이온말을 하여도님이짐쟉하쇼셔

[풀이]

개미, 불개미, 허리가 부러진 불개미. 

앞발에 피부병이 나고 뒷발에 종기가 난 불개미가 광릉 샘 고개를 넘어 들어가서 호랑이의 허리를 가로 물어 추켜들고 북해를 건너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백 사람이 백 가지 말을 한다 해도 님께서 짐작해 주십시오.

[함의]

삼인언이성호(三人言而成虎).

세 사람이 연이어 똑같은 말을 하면 진실이 아니더라도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된다고 한다. 도시의 가운데에 있고 사람이 많이 오가는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는 없다.

주민자치 현장에서는 진실한 한마디에 모두 동의하지만 현장 밖에는 말재간꾼들의 말만이 난무하게 된다. 주민들이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해야 주민자치가 된다.

2-2

[원문]

大川바다한가온대中針細針지거다 열나믄沙工놈이긋므된사엇대를긋긋치두러메여一時에소릐치고귀여내닷말이이셔이다 님아님아온놈이온말을여도님이짐쟉소셔

[풀이]

대천바다 한가운데 중침 세침 빠지거다. 여남은 사공놈이 끝 무딘 상앗대를 끝끝이 둘러메어 일시에 소리치고 귀 꿰어 냈단 말이 있소이다. 님아 님아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님이 짐작하소서

[함의]

학생운동이 진보정치와 시민운동으로 분화되었다. 관변단체를 넘어서자는 시민운동에는 박수와 기대를 보냈다. 그런데 지금은 또 다른 관변단체가 되어가고 있다. 패거리로 길목을 지키고 있으며 배타성으로 걸림돌이 되었다. 아무리 모양 좋고 색깔 고와도 걸림돌은 걸림돌일 뿐이다.

[원문]

개를여라믄이나기릐되요개 치얄믜오랴. 뮈온님오며 릴홰홰치며 락리 락반겨서내고 고온님오며 뒷발을버동버동므르락나으락캉캉즈져서도라가게다. 쉰밥이그릇그릇난들너머길줄이이시랴

[풀이]

개를 열 마리나 길러도 이 개같이 얄미우랴. 미운 임 오면 꼬리를 홱홱 치며 뛰락 내리락 뛰락 반기며 맞이하고 고운 임 오면 뒷발을 바둥바둥 물러서락 나아가락 컹컹 짖어 돌아가게 한다. 쉰밥이 그릇그릇 남아있어도 너 먹일 리 있으랴

[함의]

쉰밥조차도 안 먹이겠다는 것은 개가 미운 것이 아니라 님이 그리운 것이다. 주민자치에서 허언이 창궐(猖獗)하는 것은 진실을 모르는 자들만의 합창 때문이다. 허언 너머에서 비로소 주민자치와 만날 수 있다.

신영복은 석과불식(碩果不食)을 자주 말했다. 씨 과실은 절대로 먹지 않아야 하고 절대로 먹히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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