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민자치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해볼 수 있는 발표와 토론의 장이 펼쳐졌다. 지난 8월 13~14일 서울시 중구 알로프트서울명동호텔에서 열린 ‘2020 한국지방자치학회 하계학술대회’ 한국주민자치중앙회 기획세션에서는 정치학·철학·사회학·법학·행정학 등 다양한 분야 학자들과 전문가, 현장활동가, 지역주민들이 모여 한국 주민자치의 나아갈 길을 모색했다 .본지 기획특집에서는 이 세션의 발제와 토론내용들을 심층 소개하며 프롤로그에서 개괄적 내용을 짚어본다.

“코로나19는 전세계가 원치 않았던 버거운, 전혀 새로운 사태이며 다양한 층위를 보이고 있고 우리에게 지방자치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관찰하게 해준계기가 됐다. 촘촘한 행정력으로 코로나를 잘 극복했으나 이 촘촘함의 문제점을 지금부터 해결해야 할 과제도 생겼다.(중략) 국가적 차원의 문제는 시군구가 잘 하지만 그것을 지역사회가 잘 소화하고 개인들이 바람직하게 소화하고 견디게 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숙제다. 앞으로 읍면동 생산성에 주목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직접민주제를, 사회적으로는 전주민연대를,그리고 교육적으로는 전인적 교육을 할 수 있는 아주좋은 단위임에도 아직까지 관료의 행정처분에만 맡겨져 있다. 읍면동의 정치·사회·교육적 의미를 바람직하게 살려낼 소명이 있다.”(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대표회장)

“중앙과 지방정부가 혼연일체가 돼 위기극복을 위해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고 해냈고 이걸 보면서 그동안 우리가 지방자치에서 미리 훈련돼 있어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K방역이 세계적 찬사를 받고 있고 K팝, K드라마 등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이 그동안 많이 있어 왔다. 이번엔 K방역이었고 이제 남은 건 K폴리틱스다. 매크로 권력에서 마이크로 권력으로 넘어가야 하는 만큼,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 국민들의 헌신적 모습을 보면서 권력 전환이 이뤄져야 하고 우리 정치도 변화해야 한다.”(최병대 수원시정연구원장)

‘2020 한국지방자치학회 하계학술대회’의 주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지방자치 혁신’이었다. 이 중 한국주민자치중앙회 기획세션은 대 주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한국의 현 주민자치를 정치·행정·철학·사회학 등 다각적 학문적 시각으로 분석하는 총 6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의 주민자치회 분석 △주민자치의 정치학적 고찰과 함의 △주민자치의 철학적 고찰과 함의 △일본VS한국 주민자치비교 고찰 △영국 자치조직의 특징과 시사점 △주민자치의 사회학적 고찰과 함의를 주제로 발제와 토론이 이뤄졌다.

먼저 전상직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대표회장은 1섹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의 주민자치회 분석’ 발제에서 행정안전부가 7월 국회에 제출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안(이하 ‘개정법률안’)’이 주민자치의 근본취지를 훼손하고 있어, 입법·인사·재정권을 갖춘 진정한 의미의 주민자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전면 재설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민자치의 이론적·학술적 원리와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개정법률안’의 문제점을 짚은 전상직 회장은 “이번 개정안의 주민자치회는 한마디로 시행을 해도 주민자치가 발전하기는커녕 후퇴하고 말 것이다. 주민자치회가 자치할 수 있는 조건은 갖춰주지 아니하고 통제할 수 있는 조항을 주로 나열했다. 고쳐서 쓸 수도 없다. 폐기가 마땅하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필요조건인 주민자치를 새로이 기획하자”고 강조했다.

2섹션 ‘주민자치의 정치학적 고찰과 함의’에서는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이 ‘1871년 파리코뮌, 미국의 타운미팅과 제퍼슨의 기초공화국안 사례’를 통해 시사점을 던졌다.

채진원 연구위원은 “법제도화와 주민참여 역량간의 함수관계를 보여주는 주민자치의 실패와 성공사례의 경험과 실천을 정치학적으로 접근하여 시사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며 이 같은 해외 사례에서 ‘연방주의에 대한 관심’ ‘가교형 사회자본 형성-보통법체계로의 개선’ ‘생활개혁운동’ ‘마을 자라기 콘셉트로의 전환’을 제시했다.

‘주민자치의 철학적 함의와 고찰’을 주제로 한 3섹션에서는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가 ‘일상화된 위기의 시대, 새로운 보호망 짓기의 방법으로서 주민자치의 가능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발제했다. 김만권 교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감염병에 대한 대처를 ‘중앙정부’ 혹은 ‘국가’의 일로 여기고 있던 상황에서, 코로나19 이전에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지방자치 단체’의 역할을 발견하게 됐다”라며 “예상치 못한 ‘팬데믹’을 다루는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지구적 차원에서 발생한 문제를 다루어내는 지역적 능력’을 보였고, 작은 단위 지자체의 해결능력이 ‘주민자치’에 새로운 가능성을 불어넣고 있다”고 진단했다.

4, 5섹션 일본과 영국의 주민자치제도에 대한 발제도 한국 주민자치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먼저 김필두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VS한국 주민자치의 비교 고찰’을 통해 “한국이 초기에 일본 공민관제도를 벤치마킹해 주민자치센터를 설계했으나 점차 한국 실정에 맞게 노력하고 있고 일본도 다양한 환경변화에 따라 상당부분 초기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형득 강원대 교수의 ‘영국의 다층적 자치구조와 패리쉬의 특징과 시사점’ 발제는 영국의 패리쉬 제도를 통해 주민자치 제도화의 필요성을 부각했다. 영국지방의회의 기원으로 지역 주민의 직접 참여에 기초한 패리쉬 의회는 2007년 유권자 1000명 이상 패리쉬에 설치가 의무화됐다. 패리쉬는 공동체를 대표하고 지역 수요에 부응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며 공동체 삶의 질을 높이는 권한과 역할을 수행한다. 홍형득 교수는 패리쉬 사례를 통해 “주민자치조직에 권한 부여 및 자치단체와의 탄탄한 협력체계 구축이 주민자치 활성화의 기초가 되며, 제도적 장치를 통해 주민자치 조직을 지방자치의 명확한 주체로 인정함으로써 주민의 자발적-적극적 참여를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6섹션의 주제는 ‘주민자치의 사회학적 고찰과 함의’다. 김지영 서울시립대 교수는 발제를 통해주민자치 조건에 대한 사회학적 문제제기로서 △자치가 이루어지는 공간 영역 △자치를 실현해 나가는 관계 △자치가 필요한 문제 영역 등을 제시했다. 김지영교수는 “주민자치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의 생애주기에 맞는 요구들을 발굴 해결해 나가야 한다”라며 “주민자치 조직이 조직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고, 문제 영역을 잘 찾고 문제 해결의 성과를 꾸준히 축적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더퍼블릭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