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화된 위기’의 시대, 새로운 보호망 짓기의 방법으로서 주민자치의 가능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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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화된 위기’의 시대, 새로운 보호망 짓기의 방법으로서 주민자치의 가능성에 대한 철학적 성찰
  •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 승인 2020.09.03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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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방자치학회 하계학술대회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세션
발제문 요약

2020년 ‘지구적 시장’에 멈춤 버튼을 누르며 찾아온 ‘코로나19’는 세계를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팬데믹으로 인해 지구적 시장에서 ‘보호 없는 삶’을 살아오던 수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생계 그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동시에 빠져들면서, 신자유주의적 질서 아래 무시되던 집단적 보호의 재구축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감염병에 대한 대처를 ‘중앙정부’혹은 ‘국가’의 일로 여기고 있던 상황에서 코로나19 이전에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던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발견하게 됐다.

예상치 못한 ‘팬데믹’을 다루는 상황에서 지방자치 단체들이 구성원들에 대한 적극적 보호 의지를 드러내며‘지구적 차원에서 발생한 문제를 다루어내는 지역적 능력’을 보인 것이다. 팬데믹 상황에서 드러난, 국가보다 더 작은 단위에서 이뤄지는 이런 지역적 해결능력은 ‘주민자치’에 새로운 가능성을 불어넣고 있다. ‘주민자치’의 실천적 능력의 발견이 정치적으로, 철학적(규범적)으로 더 중요한 까닭은 지구적 시장이 만들어낸 여러 정치적,도덕적 병리학적 현상들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주기 때문이다.

‘지구적 시장’의 도래와
‘위기의 일상화’ 속 포스트민주주의

코로나 팬데믹은 ‘비용의 최소화’라는 유연한 경계를 강조하는 시장 논리에 따라 맞추어진 국가의료체계가 어떻게 무너지는지 세계 곳곳에서 여실히 드러냈다. 그 시장 논리에 충실했던 국가일수록 국가의 보호 기능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 국가의 보호가 쇠퇴하거나 약한 곳에선 개인이 오롯이 보호의 의무를 짊어져야 한다. 국가는 이를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윤리를 전파하는 일에 앞장선다.

이런 ‘자기 삶의 책임윤리’가 만드는 삶의 방식 속에 개인들은 파편화된 채 ‘집단적으로’ ‘외로워지는’ 경험을 마주하게 된다. 2018년 1월 영국에서 외로움을 담당하는 장관이 임명된 사례는 ‘외로움’이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병리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포스트민주주의 사회가 기존의 민주주의와 다른 점은 권력의 중심이 다수 유권자로부터 특권을 추구하는 소규모 정치엘리트와 부유한 집단에게 옮겨갔다는 사실에 있다. 근대의 민주주의가 권력을 소수의 왕과 영주들로부터 평범한 사람들에게 옮겨놓았다면, 포스트민주주의에선 오히려 역행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세계는 포퓰리즘의 열기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에 실제로 이로운가?’ 아쉽게도 당대의 포퓰리즘은 스페인의 포데모스 정도의 사례를 제외한다면 이 모든 질문앞에 무력함을 드러내고 있다. 또, 미국과 브라질, 영국,이탈리아에서 잡히고 있는 확진자와 사망자의 거대한 규모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포퓰리스트 정부들은 팬데믹 상황에서 자국민들을 보호하는데 무능함을 드러내고 있다. 보호 없는 삶에 지친 이들에게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보호’하겠다는 정치적 구호를 앞세워 집권하거나 권력에 진입한 정치가와 정당들이 가장 보호가 필요한 순간에 무능함을 드러낸 것이다.

위기 시대의 ‘보호’와 주민자치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은 정치적으로 ‘위기 상황에 처한 구성원들의 보호’와 관련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민주적 국가에서 포퓰리스트 정부의 무능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이다. 둘째, 반면 정부 내에서 포퓰리즘의 영향이 적었던 민주국가일수록 대체로 더 나은 대응능력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역시 팬데믹에 노출된 이후 상대적으로 잘 대처한 국가로 여겨진다. 한국의 K-방역 모델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모범 사례로 인정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독일 등을 비롯해 많은 국가에서 초기부터 도입 할 정도로 그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코로나 확산 초기 대구·경북 지역에서 마주한 어려움을 극복하며 국가가위기 대응능력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현상이 있다. 바로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보여준 효율적 대응능력’이었다. 여러 수준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코로나 상황앞에서 중앙정부와의 협력 속에서 자신들의 대응능력을 경쟁적으로 보이고 있다.

지구적 경제가 멈추어서며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오히려 서울과 경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구성원들에 대한 보호와 정책적 측면에서 중앙정부보다 훨씬 더 적극적 대응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런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은 중앙정부가 ‘전국민’에게 재난소득을 지급하는 성과로 이어지는데 크게 기여했다. 더하여 ‘전국민고용보험’ 대 ‘기본소득’이라는 복지정책 대결로 이어지는 성과를 낳았다.

이처럼 지방자치단체가 중앙정부를 향해 위기에 빠진 구성원들에 대한 보다 촘촘한 보호망을 요구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보다 더 촘촘한 보호망을 제공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주민자치, 국가의 보호 없는 시대
새 안전망 구축의 방법”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위기 상황시 구성원들의 보호에 있어 정치단위가 작아질 때 보다 효율적일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구성원의 보호’는 구호가 아니라 정치공동체 내에서 촘촘한 정치력과 행정력이 갖추어질 때 가능한 것임도 알려주었다. 이런 교훈은, 지금 민주주의에 필요한 것은 트럼프나 보우소나루 등과 같이 배제와 혐오를 동원해 평범한 사람들의 이익을 강조하는 정치지도자의 포퓰리스적 구호가 아닌, 제도적 틀을 활용해 촘촘하게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보호망을 짓는 능력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런 제도적 능력이 작은 정치, 행정단위로 내려가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주민자치는 국가의 보호 없는 시대에 새로운 안전망을 구축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작은 단위에서 주민자치는 보호 없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좀 더 쉽사리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구성원들 간에 좀 더 깊은 연대를 만들어내는 데 유리한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적 영역을 개방하는 것이, 위기의 시대에 대처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일 수 있음을 주민자치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벤자민 바버(Benjamin Barber)의 ‘강한 민주주의’(Strong Democracy)는 모든 시민들이 생활의 방식으로서 공적 참여와 문제해결력 있는 공동체의 생성을 강조하는 ‘강한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강한 민주주의는 국가적 차원의 시민권뿐 아니라 지방자치 수준의 시민권을 동시에 강조한다. 더하여 문제해결을 위한 공공토론의 실질적 확대, 시민들의 법률 제안권, 선출직 대표자들과의 정기적 토론회 등 집담(talk) 중심의 민주주의를 제시한다. 이 ‘집담’ 형식의 민주주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공적 영역에 진입해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기회를 줄 것이다. ‘집담’ 민주주의는 주민자치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주민자치는 평범한 사람들이 실질적 보호망을 스스로 지을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이면서도 그 규범성을 보장할 수 있는 민주적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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