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리브 더 킹: 목포영웅’ ‘이장과 군수’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좋은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전제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좋은 리더를 판단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벌써 여론은 여러 갈래로 갈린다. 세대 간 갈등, 빈부의 차이 등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관점들이 각기 다른 목록의 지도자상을 작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도, 어떤 특수한 환경과 남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도, 좋은 지도자에게 공통적으로 바라는 요건이 하나 있다면 지위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고 지역 사회만을 위해 열심히 일할 준비가 된 사람일 것이다. 사실 공직에 있는 이들에게 이것은 가장 기본적 자세지만, 우리는 경험상 이 부분을 충족시키는 지도자가 흔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낡은 정치적 관습을 타파할 젊은 일꾼을 원하는 것 같지만 새로운 인물 모색에 게으른 것도 사실이다.

현실이 이상과 멀다 보니 지도자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은 주로 각계각층에서 서민이나 약자를 대변하는 영웅적 존재로서의 지도자를 앞세우거나 반대로 비리, 범죄 등과 연루된 사람들이 몰락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리더십이나 정치에 대한 철학을 좀 더 깊게 보여주는 작품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다층적 이데올로기를 내포하는 대중문화의 특성상, 가볍게 보고 넘기기에 아쉬운 작품들도 더러 있다.

‘좋은 사람 되기’의
사회적 확산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

‘범죄도시’(2017)를 연출한 강윤성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롱 리브 더 킹’(2019)은 목포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국회의원 선거전을 보여준다. 다른 정치 드라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선거에 출마하게 되는 주인공 ‘장세출’(김래원)이 조직의 보스였다는 점이다. 주먹을 썼던 그의 과거는 정치인의 길에 들어서기에 치명적 오점이다.

그도 특별히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출은 재개발 반대 시위 현장에 용역으로 나갔다가 주민들을 돕고 있는 인권 변호사 ‘강소현’(원진아)을 보게 되고, 작은 체구와 달리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소현의 강단에 반해 그녀가 원하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도 특별히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출은 재개발 반대 시위 현장에 용역으로 나갔다가 주민들을 돕고 있는 인권 변호사 ‘강소현’(원진아)을 보게 되고, 작은 체구와 달리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소현의 강단에 반해 그녀가 원하는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러나 건달로만 살아왔던 세출은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조차 잘 몰라 고민하는데, 우연히 젊은 시절 조직에 있다가 서민들의 멘토로 거듭난 ‘황보윤’(최무성)을 알게 되고, 그를 롤 모델 삼아 과거를 청산하기로 한다. 황보윤의 식당 일을 돕고, 외로운 어르신의 집을 고쳐주면서 세출은 점차 소현 일행의 신뢰를 얻기 시작한다. 그리고 버스 추락사고에서 버스 기사를 구한 영웅으로 부각되면서 조폭에게 습격을 당한 황보윤을 대신해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게 된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정치드라마의 서사에 코미디, 액션, 로맨스까지 가미된 복합 장르의 성격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추는데도 불구하고 영화는 무겁지 않게 진행되는데 세출을 모함하는 악당들, ‘최만수’(최귀화)와 ‘조광춘’(진선규) 일행이 상당 부분 희화화되어 있고, 세출의 최종 승리를 암시하듯 영화의 톤 앤 매너도 전반적으로 밝기 때문이다.

전직 조폭이 국회의원이 되는 스토리가 현실적이기 보다 판타지로 받아들여진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그동안 시민들을 속이면서 권력을 남용해왔던 기성 정치인들보다는 과오를 청산하고 정의를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한 인물이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전혀 허황되지만은 않다.

사실, 좋아하는 여자 때문에 다른 인생을 살기로 결심하는 세출은 멜로드라마의 순정파 캐릭터로는 적합할지 모르나 정치드라마에서는 생소한 인물이다. 하지만 세출이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시작한 작은 일들이 사회적으로 확산 되는 과정이야말로 ‘롱 리브 더 킹’에서 제시하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미해 보일지 몰라도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강한 의지와 추진력을 가진 한두 사람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롱 리브 더 킹’에서 세출의 극적인 인생사 외에 주목해야 할 것은 그에게 동기를 부여한 사람들이다. 억울한 서민들의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소현, 소외 계층 복지에 힘쓰며 주민들의 신망을 얻어온 황보윤은 세출에게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청사진을 보여준다. 이들은 공직에 있지는 않지만 지역 주민들에게 이미 훌륭한 리더로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세출을 앞세워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정직하고 이타적으로 사는 것은 결국 나만 손해 보고 사는 것이라는 절망감이 가득한 사회에 이러한 영화의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훌륭한 리더란?
‘이장과 군수’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리더의 조건

2007년에 개봉한 ‘이장과 군수’(감독 장규성)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해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애초에 정치드라마라는 색을 배제한 채 배우 차승원과 유해진이 친구로 출연한 코미디로 홍보되었다.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도 못했고, 비평적으로 잘 만든 작품이라고 하기도 어렵지만 두 사람의 관계와 지역사회를 둘러싼 이슈들에 관해서는 짚어볼 여지가 있다.

충청도 산골 마을에서 함께 자란 ‘조춘삼’(차승원)과 ‘노대규’(유해진)는 초등학교에서 반장과 부반장을 도맡아 하던 친구들이다. 춘삼의 그늘에 가려 늘 부반장만 하는 것이 싫었던 대규는 춘삼에게 훔친 과자를 갖다 주며 반장선거에서 사퇴할 것을 부탁한다. 소년들 사이의 은밀한 거래가 어른들의 악행을 본뜨고 있다는 씁쓸함은 남지만, 이 사건은 춘삼이 대규의 제안을 무시하고, 대규가 도둑질한 벌을 대신 받는 것으로 훈훈하게 일단락된다.

20년 후, 여전히 이 마을에서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부양하며 살고 있는 농사꾼 춘삼은 젊다는 이유로 의지와 관계없이 이장이 된다. 마을 일은 관심 밖이고 마을 어르신들과 화투나 치던 춘삼은 어느 날 대규가 군수로 당선되자 묘한 경쟁심과 질투에 사로잡힌다. 처음에는 마을의 급한 공사를 부탁하는 등 친해지려고도 해 보지만 대규가 귀찮아하는 듯하자 춘삼은 열등감과 분노를 느끼며 그가 추진하는 일에 반대하고 나선다.

‘이장과 군수’의 특별한 설정은 만년 부반장이었던 대규가 성숙해져 낡은 정치의 폐해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노선을 가려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연스레 권력과 결탁해 이득을 취해온 지역 인사들, ‘백사장’(변희봉) 일당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오래 전 반장선거에서 “한 번 반장은 영원한 반장!”을 외쳤던 춘삼 또한 출발점은 다르지만 그들과 같은 방향에 선다. 춘삼은 방폐장 건립 반대 시위를 주도하고 대규는 시위 폭력 진압 및 뇌물 수수 혐의까지 받으며 계속 고립된다.

춘삼이 이끄는 시위대와 무장한 의경의 대립 장면은 영화의 전반적 분위기와 이질적이다. 규모가 꽤 큰 신들인데다 화염병, 물대포도 등장하고 있으며, 다큐멘터리나 뉴스의 한 장면처럼 연출되어 공포심까지 불러일으킨다. 여기서 ‘이장과 군수’를 단순한 코미디 영화 이상으로 만들고자 한 감독의 의중이 느껴진다. 연출적으로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지도자들의 사적인 갈등이 어떻게 악용될 수 있는지, 그것이 한 사람은 물론이고 지역사회와 주민들에게 미칠 수 있는 여파에 대해서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춘삼도 종국에는 세출과 마찬가지로 대규를 통해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어떤 편에 서야 할지 깨닫게 된다. 그러나 춘삼과 대규의 연대에도 불구하고 방폐장 건립 관련 선거에서 패배하는 결말은 ‘롱 리브 더 킹’의 그것보다 부정적이다.

선거 직후, 백사장 일행은 대규에게 이렇게 말한다. “젊은 사람이 괜히 고생만 했구먼” “엄마 젖 좀 더 먹고 와야겠어”. 어릴 적 대통령이 되어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대규를 춘삼이 비웃으며 “내 밑에서 부반장이나 하는 놈이”라고 말하는 에필로그와 관계가 있을까. 물론 소년들의 사이의 농담으로 넘겨버릴 수도 있는 대사지만,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해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애초에 짓밟아버리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폭넓게 깔려 있는 것은 아닐까.

선거철도 아닌데 좋은 지도자상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요즘, 철지난 영화들 속의 리더들을 다시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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