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으로 연결은 쉬워졌지만 역량은 약해진 시대의 연대는?
“사이버공간서 시작해 물리적(오프라인) 의례로 토대 다지자”

 

장면1.   지난 8월 한국지방자치학회 하계학술대회 한국주민자치중앙회 기획세션이 열린 서울명동 모 호텔 컨퍼런스룸. 코로나19 2차 확산의 계기가 된 8.15 집회 직전, 덜 삼엄(?)한 시기이긴 했어도 대형 행사나 집회는 물론이고 정기 학술대회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참석자 전원이 철저히 마스크를 쓰고 행사에 임했다. 세션을 주관한 중앙회는 코로나19 상황에서 또 주민자치 조직 특성상 전국적으로 분포돼 있는 지역적 여건상 직접 참석이 어려운 이들에게 현장에 있지 않아도 실시간으로 발제와 토론을 볼 수 있도록 처음으로 유튜브 라이브를 통해 학술대회 진행을 생중계했다.

 

장면2.   지난 9월 17일 오전 11시 30분 경상남도 창원 소재 도의회 대회의실. 경남 주민자치여성회의 창립식이 열리는 가운데 실내 대형스크린에는 행사 현장의 모습이 아닌, 각기 다른 배경 속 20여 명 여성들의 얼굴이 보인다.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줌, ZOOM)을 통해 경남 지역과 전국에서 접속한 여성회의 임원들의 모습이었던 것. 이날 경남 주민자치여성회의 창립식은 코로나19 확산 및 장기화로 인해 줌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달리는 차 안에서 앱을 클릭해 접속한 경우, 두세 명이 한 프레임이 잡힌 경우, 오디오 설정 오류로 끝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경우 등 다양한 사례가 등장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주민자치 현장에서 나타난 변화다. 지난 2월 코로나19가 시작된 이후 분기점은 ‘8.15 광화문 집회’였다. 3~5월 봄을 지나 여름에 접어들고 7~8월 확진자수가 크게 줄어들며 차츰 대면 모임이 조심스럽게 늘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부문과 마찬가지로 주민자치 역시 올 상반기 내내 여름까지도 ‘올해 이렇게이렇게 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다 막혔다’는 얘기가 정말 많이 나왔다. 인터뷰 등으로 만난 주민자치회 회장단, 임원, 지역 주민자치위원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코로나 때문에’였다. 실제 ‘8.15 광화문 집회’ 이후 강도 높은 2.5단계 방역지침이 적용되면서 ‘10명 이상 모임 금지’ 조치가 내려져 ‘손발’이 묶였고 지역문화-체육센터-도서관 등의 공공시설도 싹 다 문을 닫았다. 정례적으로 열리던 지역 축제 등 행사도 전부 취소된 상황에 주민자치(위원)회의 활동 역시 정상적으로 진행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코로나19 때문에...’ 지역 행사·공간운영 ‘올스톱’

“주민자치박람회 기획 다 하고 예산까지 준비했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추진이 중단되고 전면 취소됐다. 6년간 해 와서 올해 박람회를 잘 성사시키고 멋지게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권관희 충남 주민자치회 상임회장)

“지난 6월 창립된 이후 7월에 임원회의와 워크숍을 개최하면서 분위기가 굉장히 고무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8.15 집회’ 이후 모일 수 없게 되면서 그 좋은 분위기와 열기를 계속 이어가지 못해 무척 안쉬웠다.”(이섬숙 서울시 주민자치여성회의 상임회장)

“임원회의부터 진행하고 지자체장 등과 만나 주민자치 활성화에 대해 협조를 요청하는 등 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딱 막아버렸다.”(김채숙 전북 주민자치여성회의 상임회장)

코로나19로 인해 예정된 행사나 사업에 차질이 생기고 계획이 틀어지거나 아예 취소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사상초유의 사태인 만큼 코로나19 발발 초기엔 어느 부문에서든 가야할 방향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 하는 모습들이 많았다. ‘대면’ ‘접촉’ ‘친목’ ‘교류’ 등이 필수덕목인 주민자치(위원)회 활동도 큰 타격을 받았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50~70대가 많은 주민자치위원 구성의 특성상 당장 회의부터 ‘언택트(Untack)’나 ‘온택트(Ontack)’로 진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기 싫다고 안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초기엔 ‘취소’ ‘연기’로 일관된 행사나 사업들이 (더 이상 추진 안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비대면 온라인으로 방식을 바꿔 진행되는 사례가 속속 늘고 있다.

먼저 보령시 지역축제로 전국구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보령머드축제’가 지난 7월 주요 프로그램인 라이브공연과 머드체험 행사를 모두 비대면 온라인 방식으로 개최했다. ‘집콕 머드 라이브’는 실시간 온라인공연으로, ‘집콕 머드 체험’은 체험키트를 출시해 참가자들이 SNS에 체험사진과 함께 해시태그를 올려 인증하는 공모전과 릴레이 버드머킷 챌린지 이벤트로 화제를 모았다. 이를 통해 유튜브채널 등 SNS 조회수와 콘텐츠 수가 급증했다.

8월 ‘봉화은어축제’도 전용 유튜브채널을 통한 실시간 생중계 등 9일간 온라인으로 열렸다. 모든 프로그램을 무관중·온라인 콘텐츠로 구성해 시간과 지역의 제한 없이 세계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확산·장기화 뚫고 ‘언택트’시대에 ‘온택트’로 활력 모색

주민자치 현장에서도 새로운 도전과 시도가 목격된다. 앞서 장면1에서도 언급됐듯이 ‘위드 코로나’ 시대에 공간의 제약 없이 비대면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학술대회 현장도 유튜브 실시간 라이브로 생중계 됐다.

또, 장면2에서처럼, 여러 내빈과 관계자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대면’으로 개최하는 것이 정석으로 여겨지던 창립식이 최첨단 온라인 화상회의 방식인 ‘줌(ZOOM)’의 기술로 진행됐다. 행사가 열린 장소는 경남 창원 도의회 대회의실, 참석자는 10명 남짓이지만 경남 각 지역을 비롯해 서울, 원주, 청주, 울산 등에서 접속한 경남 여성회의 임원진 및 전국 여성회의 회장들의 모습이 행사장 대형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서울시 주민자치여성회의 상임회장이자 여의동 주민자치회를 이끌고 있는 이섬숙 회장은 “코로나19로 사업 추진에 많은 어려움과 차질을 빚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고 주저앉을 순 없기에 온라인 방식으로라도 일이 되게끔 추진하려 한다”라며 “여의동만 보더라도 60대 비중이 가장 높을 정도로 주민자치위원들의 연령대가 높아서 온라인프로그램이나 앱,스마트폰을 활용한 온라인 회의 추진에 앞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고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방식을 동원하고 차츰차츰 교육을 통해 온라인 활용을 늘려나 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실제 이섬숙 회장은 코로나19가 한창 확산되던 올해 3월 온오프라인 혼합 방식으로 주민자치회장에 선출됐다. 주민자치위원들이 모여 있는 스마트폰 단체문자방에 정견발표 영상을 찍어 올리고 스마트폰 활용이 힘든 어르신들을 위해 후보자 이력서와 정견발표문을 우편으로도 발송했다. 그리고 선거 당일에 미리 구성된 선거관리위원회와 각 후보 참관인들이 투표 진행 및 개표 과정을 감독하고, 투표가 끝나자마자 개표를 하고 선출된 회장 인사와 결과를 온라인으로 즉시 공유했다. 50명이 넘게 참석하는 정기회의도 온·오프라인 혼합방식으로 진행했다. 안건을 미리 정리해 온라인으로 미리 공유하고 특정일시, 장소를 정해 회장과 간사가 각자 원하는 시간에 방문하는 주민자치위원들에게 일일이 안건을 설명하는 식이다.

“얼마 전 임원회의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다음엔 줌으로도 해보고 다양하게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통해 온라인프로그램에 어려움을 느끼는 위원들에게 개별 교육을 해서 소위 인텔리 노인층이 가장 많다는 여의동에서 변화하는 시대에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뛰어들어 실버파워를 보여주자고 했다. 어르신들도 디지털을 활용해 시대에 발맞춰 나갈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가벼운 공동체’ 실험의 필요성-온·오프라인 결합돼야 든든한 토대

△온택트형 콘텐츠 △전시성 행사 대신 지역 전통과 문화 계승 △‘관’주도에서 ‘민’주도로 △지역주민의 적극적 참여와 열정, 봉사 자세…. 이복수 한림성심대 교수가 제시한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는 지역축제의 방향’이다. ‘지역축제’ 대신 ‘주민자치’를 넣어도 무방할 내용이다.

한편, 공석기 교수(서울대 아시아연구소)는 ‘우리는 쉽게 연결되지만 역량은 사라지고 있다’는 표현을 인용하면서도 “변화된 환경을 거부하고 살 수 없는 상황, 끊임없는 이동과 이주로 과거와 같은 강한 연결망을 유지하기 어려운 맥락 속에서 과거의 공동체를 재생하기보다는 ‘가벼운 공동체’를 지향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한 바 있다. 이어 “풀뿌리 민주주의 탈진 위기 속에서 공동으로 경험하는 전략을 통해 접근하고 지역 성장 동력으로 여성, 이주민, 청년에게 동일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도 마련을 주민자치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박효민 교수(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는 “비록거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는 쇠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커뮤니티를 원하고 조직하고 확대해 가고 있다”라며 “이 같은 커뮤니티의 활성화는 주민자치와 관련해 ‘주민을 물리적 공간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가’는 질문을 던지며 ‘주민을 묶어내는 매개체가 사이버공간일 경우 훨씬 더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치의 문제에 관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사이버에서 시작해 사이버공간에서 그친다면 진정한 주민자치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주민자치는 결국 물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며 이는 주민자치의 행위가 커뮤니티의 의례(예. 마을축제)가 될 때 가능할 것”이라며 “사이버공간에서 출발해 물리적 의례를 만들어내는 것이 주민자치의 토대를 다지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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