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숙 전북 주민자치여성회의 상임회장
김채숙 전북 주민자치여성회의 상임회장

“매일 아침을 먹고 나면 특별한 일정이 없어도 무조건 나갈 준비를 합니다. 늘 뭔가 할 준비가 돼 있는 거죠. 그러면 꼭 나갈 일이 생깁니다. 이렇게 할 일이 있다는 것에 항상 감사합니다. 코로나19 시대에 집에만 있었으면 오히려 더 힘들었을 거예요.”

김채숙(69) 전라북도 주민자치여성회의 상임회장. 전북 주민자치원로회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동네일에 팔 걷어 부치고 나서는 김채숙 회장을 주변에서 가만 놓아두지 않는다. 갑자기 공석이 된 통장에 선임되는가 하면 주민참여예산 기획행정분과위원장을 4년 꽉 채워 맡아 하기도 했다. 또, 올해 1월에는 구도심 뉴딜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도시재생주민협의체 회장에 뽑혔다. 이렇게 역할이 주어지면 이를 마다하지 않는 게 김 회장의 살아온 방식이다.

40년간 지역·여성단체-주민자치 활동...한 번 책임 맡으면 꼭 해내

처음 동네일과 인연을 맺은 건 30대 초반 부녀회 활동을 통해서였다. 2000년부터는 여성단체(소비자교육중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4년간 여성단체협의회장도 맡아 이끌었다.

“뭘 하면 쉽게 못하겠다고 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한 번 책임을 맡으면 꼭 해내고야 마니까 자꾸 직책이 맡겨지더라고요. 또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프리랜서로 일도 열심히 했어요. 지금도 공공분야 아르바이트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주민자치와도 출범 초창기부터 연결됐다. 주민자치위원을 거쳐 2005~6년 부위원장을, 2009년엔 평화동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아 3년간 의욕적으로 일했다. 익산시 29개 동(군) 중 여성 위원장이 김 회장 포함해 딱 2명이던 시절이었다. 지역 활동에서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지금은 한 명 더 늘어나 29개 동 중 여성 위원장이 3명이에요. 여성들의 비중이 약하죠. 주민자치위원도 최소한의 인원으로 여성할당이 정해져 있지만 보통 딱 그 숫자까지만 여성으로 채워져요. 주민 수는 반반인데 그렇게 따지면 어디든 여성 위원 수가 절반은 돼야 하는데 한참 모자라죠. 여성들이 더 잘 뭉치고 일도 훨씬 야무지게 잘하는데 말이죠.”

이 여성들의 힘을 전북 주민자치 활성화에 잘 녹여내기로 했다. 지난 6월 정식 출범한 전북 주민자치여성회의 상임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단, 출범하자마자 코로나19 2차 확산이 시작되고 방역이 강화돼 활동에 제약이 걸렸다. 으쌰으쌰 마음을 모아 의욕적으로 해나가려던 일들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임원들에게 일단 명함부터 만들어드리고 지자체장 등과 만나 주민자치 활성화에 대해 협조를 요청하는 등 활동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딱 막아버렸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석 연휴 끝나면 우선 임원 분들과 만나 각 지역별 조직화를 추진하려고 합니다.”

주민자치 실질화를 위한 노력은 추석 명절 연휴에도 멈추지 않는다. 연휴 중 지역 국회의원인 김수흥, 한병도 의원을 만나 주민자치 법률안 발의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를 구할 예정이다.

추석 연휴 중에도 지역 국회의원 만나 주민자치 법률안 발의 필요성 설명

“주민자치위원회 활동을 하고 지금은 전직 위원장으로서 고문직에 있으면서 전직 위원, 위원장들의 역할과 풀(pool)이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이 분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잘 활용하면 주민자치 활성화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이요. 그래서 원로회의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고요. 또 지역의 살림꾼으로서의 여성들의 역할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이들을 잘 조직하고 엮어서 우리 익산시만이라도 문어발 조직을 만들자 하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웃음).”

주민자치회 운영에 대한 견해도 확고하다. 주민자치회로의 전환과 맞물려 도입된 주민자치지원관 제도에 대해 김채숙 회장은 일찍이 의구심을 갖고 지자체장에게 적극 어필을 하기도 했다. 실제 익산시에는 지원관 제도가 아직 도입되지 않고 있다.

“이게 될까? 하는 생각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뭐든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주민들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움직이지 않으면 되는 일도 없는 것 같아요. 할 수 있다,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뭐든 할 수 있는 걸 해야 합니다.”

마을활동-봉사 할 수 있어 감사...이게 나한테 주어진 달란트

고희(古稀)에 접어드는 김채숙 회장은 최근 몇 년 간 개인적으로 큰 시련을 겪었다. 가족들이 잇따라 투병생활을 하며 김 회장의 손길이 더욱 바빠지고 마음고생도 많았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아무 일도 못하고 그냥 주저앉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김채숙 회장은 간병을 하는 와중에도 마을 일, 봉사활동을 놓지 않았다.

“심적으로 너무 힘들고 마음고생도 많았는데, 한편으론 이렇게 마을 일이나 봉사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우울증이 와서 지금 내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일할 수 있는 게 너무 감사하고 ‘아 이건 내게 주어진 달란트다’라는 마음이 생겨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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