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수 ​대구가톨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이문수 ​대구가톨릭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공동체 회복에의 열망과 우려

우리는 COVID-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봉쇄라는 극단적 조치에 따라 많은 이가 발코니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전에는 타인들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서로 인사도 하고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것은 전염병의 확산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고립을 선택하기보다는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연대하면서 그동안 잊혔던 사실로서 우리 모두 공동체적 존재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서로가 상처받고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비로소 인간은 공동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공동체적 경험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공동체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주고 있다.

공동체란 서로 알고 있는 사람들, 서로 무엇인가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실체라고 우리는 알고 있다. 또한 공동체는 일정한 영역 안에서 역사와 전통의 공유를 기초로 사람들의 결속과 유대를 보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산업화,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마음의 고향과 같았던 공동체가 붕괴되고, 개인주의와 계약에 기초한 관계가 지배적이 되는 사정을 안타까워하며 공동체의 인위적인 재건을 부르짖곤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공동체에 대한 사유가 하나의 신화라면, 공동체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끈이 아니라 옭아매는 사슬이라면, 공동체가 우리에게 아낌없이 무언가를 내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을 때까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사람들이 과거의 공동체로의 복귀를 원할지는 확신할 수 없다.

프랑스 철학자인 낭시(Jean-Luc Nancy)는 1991년에 『작동하지 않는 공동체』라는 책을 쓰면서 공동체 논쟁에 불을 지핀다. 이 책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그것이 공산주의든 아니면 나치즘이든, 공동체를 다시 살려야 한다는 정치적 선동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비극이 있었는지를 우리에게 각인시키면서 시작한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이유로 낭시는 많은 사람이 아직도 실체로서의 공동체의 상실을 한탄하면서, 될 수 있으면 이를 다시 찾으려고 열망한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사람들이 아직도 공동체라는 실체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우리가 한때는 평화롭게 공존하면서 공동의 가치를 지니고 살았다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과거를 좇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현대로 오면서 발생한 많은 위기를 익명성의 사회에 살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개인들이 공동 또는 공공의 가치를 무시하면서 나타난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공동의 가치를 지닌 채로 외부와 격리된 공동체 속에서 한 번도 살아본 역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 바뀌어야 할 공동체에 대한 논의

현재의 공동체에 대한 연구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업적을 내고 있는 학자는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에스포지토이다. 그는 community에 대한 어원적 접근이 공동체를 이해하는 첫 번째 단계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community는 라틴어 ‘communitas’에서 나온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라틴어 어근 ‘munus’이다. ‘munus’는 ‘책무, 의무(갚아야 하는 선물이라는 의미로)’를 말한다. 에스포지토가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공동체는 받는 것이 아닌 돌려줘야만 하는 선물을 중심으로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공동체란 우리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선물의 대가를 우리가 죽을 때까지 공동체에 대한 의무로서 돌려주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공동체는 어떠한 기능을 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다. 공동체는 개인들이 다른 개인들과 함께 세상에 나오면서 이미 형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동체의 핵심을 규정하는 것은 빈 공간, 죽음, 상실, 빚, 의무와 같은 비교적 어두운 개념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COVID-19의 전 세계적 확산은 지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그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쉽게 속단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영향력에 따라 공동체의 모습도 크게 변할 것이다. 정부 행정이나 정책의 요체는 가능한 범위에서나마 포스트 COVID-19 사회로 들어서면서 좁게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 넓게는 공동체의 성격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를 예측하고 대비를 하는 것이다.

위에서 본 논의를 기초로 포스트 COVID-19 사회에서의 공동체는 최소한 두 가지 면에서 현재의 공동체와는 다른 것이어야 한다. 하나는 외부에 인위적 장벽을 둘러치면서 안과 밖의 구분을 통해 공동체를 규정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공동체는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지 ‘구성적 외부’를 형성하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전염병이 주는 효과로 인해서 지금도 많은 사람이 다른 지역, 다른 국가, 다른 민족, 다른 인종 사람들에 대해 혐오의 감정을 표출하거나 자신들의 공동체로의 진입을 막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렇게 외부의 배제를 통해서 구성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공동체가 아니며, 오직 인간이 공동으로 출현할 때만 공동체의 기초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외부의 타자들과 맺는 지속적인 관계 자체가 우리의 주체성을 형성시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두 번째 주의할 점은 포스트 COVID-19 사회에서의 공동체가 지나치게 인간의 생물적 생존만을 강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오랜 전염병 이후의 공동체에서는 개인의 생물적 건강과 생존이 강조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사실이 하나 있다. 현재 가장 많이 인용되는 철학자인 아감벤(Giorgio Agamben)은 2020년 3월 17일 쓴 짧은 글에서 “생존 말고는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은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공동체가 인간을 비로소 인간으로 만드는 철학적, 종교적, 도덕적, 미적 가치들을 하찮은 것으로 보면서 생물적 가치만을 추구한다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인간과 동물 간의 경계는 흔적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고민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인간의 생물적 생존은 어떤 정부든 최우선적으로 취급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정부 권력이 인간의 생명 문제에 개입하는 순간 그 권력은 생명관리 권력으로 변하면서 생명과는 무관한 가치들에 대해는 둔감해지거나 아니면 무감각해질 수 있다. 이렇게 되는 순간 다양한 가치를 지닌 개인들로 구성된 공동체 내부에서의 분열과 갈등은 심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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