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정책제안] 농어촌기본소득, 국가균형발전의 새로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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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정책제안] 농어촌기본소득, 국가균형발전의 새로운 길
  •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 승인 2020.10.0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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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

국가균형발전정책 추진과 우려스러운 앞날
행정수도 이전 논의가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총선 이후 잠잠하던 공공기관 이전 시즌2 논의가 확대돼 국회와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 논의가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청와대 이전은 어렵더라도 국회 전체의 세종시 이전은 가능할 것으로 여기고 있다. 여야가 합의만 하면 옮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회와 2차 공공기관 이전이 본격화되면 다시 전국은 부동산 광풍이 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국가균형발전정책의 로드맵이다. 세종시는 한 차례 부동산 광풍이 불더니 지금은 휴화산처럼 잠잠해졌다. 그러나 국회 이전이 본격화될 경우 부동산 광풍이 다시 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국회, 청와대 등 공공기관 이전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정책을 한번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 이전으로 과연 국가균형발전을 이룩했는가. 물론 그동안 공공기관 이전을 통한 국가균형발전정책으로 국가균형발전의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 세종시가 어느 정도 위용을 갖춰 국가 행정의 중심 기능을 담당하고 있고 전국 10개 지역에 건설된 혁신도시에 사람과 자원이 몰리면서 혁신도시는 지역의 발전 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정부는 세종시와 10개의 혁신도시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자본이 투자되고 공공조달이 증가해 참여정부에서 시작된 국가균형발전정책의 효과가 점점 나타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국가균형발전정책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작년 말 전국 인구 통계 결과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를 처음으로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수도 이전 카드를 던질 정도로 강력했던 참여정부의 국가균형발전정책은 좌절됐지만 그래도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의 장애를 뚫고 세종시와 혁신도시를 건설해 국가균형발전정책의 기초를 다졌다는 점은 인정된다. 그런데 국가균형발전 효과가 나타난다고 하는 요즘 국가 전체 인구는 오히려 수도권이 비수도권을 앞섰으니 이와 같은 평가가 과연 맞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현 정부는 참여정부 이후 강력하게 추진된 공공기관 이전이 2018년 무렵 거의 완성이 돼 더 이상 수도권 인구의 지방 이전이 없는 상황이기에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이 다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강력한 2차 공공기관 이전을 공언했다. 지금 추세라면 1차 공공기관 이전 규모에 국회까지 비수도권으로 이전할 것 같다. 그 결과 어느 정도 인구 분산 효과도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더 이상 이전할 공공기관이 없는 이후에는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 세종시와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산업클러스트를 형성해 국가 산업의 분산과 집적 효과를 거둘 것인가? 예상컨대, 이러한 추세라면 수도권 공공기관을 비수도권으로 이전해도 수도권 인구 집중은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에 혁신도시를 건설하고, 건설된 혁신도시에 공공기관을 이전해 인구를 분산시킨다는 이론은 대기업을 키워 그 성과를 중소기업과 일반 국민에게 나눈다는 이론, 이른바 낙수효과를 말하는데 이러한 이론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게 경제학계의 정설이 되고 있다. 따라서 세종특별자치시를 키우고 전국에 10개 이상의 혁신도시에 공공기관을 이전해 국가균형발전을 이룩한다는 정책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그 한계 또한 분명해 보인다. 오히려 이러한 정책은 농촌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균형발전정책이 아니라 대표적인 국가불균형정책이라 할 수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국가균형발전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세종시와 10개의 혁신도시 건설이 궁극적으로 국가균형발전, 특히 도시와 농어촌 간 불균형 발전이 해소됐는가. 오히려 그 반대가 되지 않았는가. 국가균형발전정책이 국토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농어촌의 발전을 배제한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국가균형발전정책이 될 수밖에 없고 배제는 하지 않지만 도시 건설과 인프라 건설 위주의 국가균형발전정책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농촌 무시의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결코 국가균형발전정책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세종시와 10개의 혁신도시를 만들기 위해 전국의 수많은 농지가 도시계획 용지로 수용돼 사라지고 많은 농민과 농촌 주민은 자신의 터전을 잃었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지어진 도시가 끊임없이 주변의 자원과 인력을 끌어들여 지역의 포식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혁신도시가 지역의 낙수효과 또는 후광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농촌 공동화의 또 다른 주범이 되고 있다.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제2조에서 “국가균형발전이란 지역 간 발전의 기회균등을 촉진하고 지역의 자립적 발전역량을 증진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해 전국이 개성있게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지만, 농촌 현실을 보면 괴리가 상당히 크다. 물론 국가균형발전정책이 공공기관 이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에 관한 많은 정책이 있다. 그럼에도 공공기관 이전을 언급하는 것은 국가균형발전의 대표적인 정책들이 그 한계가 분명하기에 이제는 근본적 방향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농촌·농민에 대한 배제
현재와 같이 농촌에 사람을 유지하는 것, 나아가 농촌에 사람을 더 유치하는 것이 기후 위기의 시대에 적합한 정책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전 세계 인구는 2050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고 인류가 그 많은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와 자원을 소비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지구의 수명은 물론 인간의 존재 자체도 위험해지기 때문에 인구의 확대는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다. 더욱이 인구의 팽창 시기에 벌였던 무분별한 개간과 간척, 식량 증산을 위해 사용한 많은 화학비료와 제초제 등을 생각한다면 농촌마을의 확장과 농업 방식도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마을이 유지되고 농촌에 사람이 필요한 것은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기후와 풍토 때문이다. 만약 농촌이 관리가 안 되고 마을에 사람이 없게 되면 우리나라 국토는 어떻게 될까. 미래 식량문제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어느 정도 해결해준다고 하더라도 올해와 같이 홍수가 일어나고 산불이 발생하며, 난개발이 확산되고 공해기업이 우후죽순 농촌에 들어선다면 통제할 수 없는 재앙이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농촌에는 적정인구가 유지되는 게 국토관리 측면에서 유효하다. 또 그들이 농촌에서 농업뿐만 아니라 환경과 생태계 보전, 문화와 전통을 지키는 다양한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도 국토 어디에서 살든 인간적인 품위를 잃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농민을 비롯 농촌 주민에게 적정한 직불금을 지급한다. 그들에게 소득을 직접 지불해 전국 어디에서 살든 그들의 삶을 인정하고 보장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도시와 농촌 간 불균형은 전방위적으로 이뤄져왔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원인을 꼽기 힘들지만 가장 핵심적 원인은 정부가 의도적으로 농촌을 무시하고 배제하고 도시의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농어촌 주민을 정당한 주권의 국민으로 보지 않고 젊은 사람들은 도시 노동자의 예비 인력으로, 노인들은 복지의 대상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았다. 농촌을 위한다는 많은 사업은 행정 당국과 그들과 연관된 단체와 조직의 유지 수단으로 전락했고 일부 성공한 마을이 출현하면 이를 그들의 사업 성과로 포장해 일반 마을 주민을 ‘루저’로 만들었다.

거점마을, 중심지마을, 권역사업, 신활력플러스사업, 농촌협약 등 농촌사업들은 끊임없이 거대화, 규모화됐지만 농촌에 희망이 생기고 활력이 돌아왔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사례가 아무리 중앙정부의 권한이 지자체에 이양됐다고 하더라도 중앙정부는 여전히 중앙에서 마을까지 이어지는 권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농어촌 주민에 기본소득 지급해야
농어촌 주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 우리나라 농어촌 정책은 농어민이 기본적 생존조차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포장된 각종 사업을 만들어 그들을 ‘희망고문’하거나 스스로 고사하게 만들고 있다. 농어촌 주민의 가장 큰 어려움은 생존할 소득이 없다는 것이다. 더욱 불행한 일은 농어민 스스로 자신의 소득 문제를 농어촌에서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서구처럼, 지방분권이 철저하고 대도시 발전이 아니라 중소도시 발전으로 지역 발전체계를 가져왔다면 농촌 주민도 겸업 소득 등을 통해 농촌에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생존방식이 거의 불가능하다. 농사도 소규모이기 때문에 생존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들이 다 필요 없다면 기존과 같은 규모화, 기계화 방식으로 계속 농정사업을 하면 된다. 하지만 농촌에 어느 정도 인구를 유지시켜 각종 재해와 재난에도 적절히 대처하고, 무분별한 개발과 침입을 막아내고 환경과 생태계를 보전해 다가올 기후 위기, 식량 위기, 생태계 위기를 대비하고자 한다면 농어촌 주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

현재 광역 지자체로는 경북을 제외하고 모든 지자체에서 농(어)민수당제를 실시하고 있거나 실시할 예정이다. 충남도는 전국 최초로 농가당 80만 원의 농어민수당 지급을 결정해 올해 지급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농어촌은 회생될 수 없다. 농어민 인구는 농어촌 인구의 1/4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더욱이 농어촌에는 농어업과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지만 농어민수당에서 배제되는 선의의 피해자가 상당히 존재한다.

그들 중에는 평생을 농어업에 종사하다 지금은 힘에 부치거나 다른 이유 등으로 농사일과 어업에 종사하지 못하는 이도 많다. 현재 정부의 농어업인 기준으로 이들에 대한 농어민수당을 배제한다는 것도 도의적으로 맞지 않다. 따라서 농어민수당의 확대 차원에서라도 농어촌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전부 지급할 수 없다면 농어촌 인구가 현격하게 감소한 ‘인구소멸’ 위기지역부터 지급하는 방법도 설득력이 있다. 농어촌의 인구를 억지로 늘리기보다는 거기에서 살고 사람들이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고, 우리 국토가 치우침이 없이 골고루 발전한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농어촌을 찾게 될 것이다.

이러한 필자의 외침이 공허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올해 경기도는 ‘농촌기본소득 사회실험’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연구 결과를 통해 내년에 경기도는 공모를 통해 한 개 면面을 대상으로 전 주민에게 매월 기본소득(약 30만 원)을 지급하는 사회실험을 실시할 계획이다. 실험을 통해 농촌기본소득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심리적 효과 등을 측정할 예정이다. 이러한 기본소득이 농촌주민에게 여러 유의미하고 긍정적 효과를 보일 경우 이를 적극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단언컨대, 농촌 주민에게 기본소득을 주면 그들은 자신이 만들고 싶은 농촌, 자신이 가꾸고자 하는 마을, 키우고 싶은 작물을 심을 것이다. 자치와 자립, 호혜와 배려를 스스로 실천할 것이다. 그래서 경기도의 이러한 실험은 매우 의미가 있고 기대가 된다.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이제는 도시문명이 아니라 자연과 생태계를 살리는 농생명문화로 전환해야 한다. 농어촌 주민에게 기본소득은 이러한 문명의 전환에 소중하고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미증유의 코로나-19는 인류가 가지 않았던 길을 요구하고 있다. 기본소득은 그 길의 나침반이자 든든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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