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호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김창호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민주주의의 핵심, 자율성
민주주의의 하위 개념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율성’이다. 사회의 각 부분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상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사회 전체가 하나의 역동성을 갖는 구조가 바로 민주사회에 부합하는 이상적 상태이다. 따라서 지난 민주화 과정에서 파시즘적 정치권력으로부터 사회의 각 부분이 독립, 자율성을 갖는 것은 주요한 과제였다. 독립과 자율성은 가장 기초적으로는 개인의 자유에 바탕으로 두고 있는 것이었다. 나아가 반파시즘 투쟁은 개인이든 사회 부분이든 자율이 민주주의에서 사회 운영의 중요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에 따른 것이었다. 따라서 지난 민주화 과정에서 자유를 포함한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는 것과 함께 사회 각 부분의 자율성 확보가 투쟁의 중심을 이뤘다. 정치적 자유를 위한 정당 활동의 독립, 경제사회의 자율적 활동, 언론 및 시민사회의 간섭받지 않은 의사소통 등을 보장확보하는 일이야말로 크게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 작게는 각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대화, 분화와 자율성
근대적 학문체계를 정립한 인물 중 하나가 막스 베버(Max Weber, 1864∼1920)이다. 그리고 그의 이론의 주요한 관심사는 바로 근대화이다. 막스 베버에게서 근대의 핵심은 ‘분화’이다. 종교와 정치의 분화, 학문의 분화, 개인의 분화(개인화) 등 ‘분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통상 ‘근대화=경제발전’이라는 등식은 사실상 근대화 개념에 부합하는 인식은 아니었던 셈이다. 196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성장을 주도해온 군사독재 파시즘 세력들은 이 같은 등식을 우리에게 강요해왔다. 성장이 곧 근대화이며, 이를 주도하고 있는 군사 파시즘 세력에 대한 저항은 근대화를 방해하는 시도로 매도해왔다. 따라서 군사 파시즘 세력에게는 ‘성장’은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성장이야말로 파시즘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근대화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국가권력은 총동원됐다. 국가가 주도해 모든 산업 분야를 통제·관리했다. 이 같은 국가동원체제(개발독재)에 저항하는 어떤 정치적, 시민적 행위도 용납하지 않았다.

군사 파시즘 아래서 우리 사회는 수직적 서열사회였다. 서열명령사회에서는 다양성과 분화는 용납되지 않았다. 다양성과 분화는 체제의 효율성을 떨어트릴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에 저항하는 세력은 언제나 불온한 세력, ‘빨갱이’로 몰아 ‘처단’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근대화 = 경제성장’이라는 등식이 관철된 모습은 근대적 의미의 분화가 덜된 사회였다 할 수 있다. ‘근대화’가 근대화의 본래 모습이었다기 보다, 오히려 근대화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수평사회의 등장, 언론과 시장의 헤게모니
민주화의 주요 과제는 군사독재 권위주의의 청산이었다. 민주화를 통해 군사독재 권력을 청산하는 것은 물론, 사회적 다양성과 사회 각 부분의 자율성이 증대될 것이며, 그것이 우리 사회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라 확신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민주화는 단순히 정치적 민주화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근대화에 이르는 과정이기도 했던 셈이다.

사회의 다양성과 분화는 수평사회에 대한 전망을 낳았다. 한국 사회는 이런 전망과 함께 점차 사회 각 부분이 수평적 관계 속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이를 더욱 촉발한 것은 인터넷 매체의 등장이었고, 소셜미디어가 소통을 주도함으로써 더 이상 수평화를 거부하거나 지체할 수 없게 됐다. 이제 정치권력을 최정점으로 정치권력이 수직적으로 경제사회, 시민사회를 통제하는 서열사회, 지시명령사회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우리 사회의 각 부분이 분리·자립적일 뿐 아니라 자율적 결정체계를 가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거부할 수 없게 됐다.

이로써 우리 사회는 명실공히 민주화와 근대화가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결과는 경제성장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의 관계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지만, 경제적 토대 위에서 민주화가 진행됐다는 세계적 경험들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경로를 거쳤든 우리 사회는 근대화의 이념에 부합하는 근대화에 도달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가 기대했던 민주화에 부합하는 것이었을까? 사회 각 부분의 자율성이 높아짐으로써 나타난 것은 의외의 결과였다. 권위주의 권력이 소멸하면서 과거 권위주의에 익숙해져 있는 사회 부분들이 우리 사회의 지배 권력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속된 말로 ‘호랑이 대신 여우’가 등장한 셈이다.

가장 먼저 우리 사회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부분은 언론이었다. 몇몇의 언론을 제외하고 대부분 권위주의 시대의 관점을 바탕으로 우리 시민사회를 과잉대표했다. 그들은 여전히 개발독재의 관점을 견지했으며, 정치적 다양성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분열·갈등·대립 등과 같은 권위주의 시대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회적 다양성과 변화에 대해 이념적 공세를 펼치는 것 또한 과거에 비해 크게 변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언론이 우리 사회의 헤게모니를 쟁취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1990∼2010년 사이 30년은 언론의 전성기였다. 권위주의 권력 아래서 ‘유착적 통제’에 익숙하던 언론은 독자적인 어젠다 생산능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권위주의가 언제나 어젠다를 제공했기 때문에 언론 자신의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권위주의 권력이 소멸했음에도 언론은 독자적 어젠다 생산능력을 갖출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명령자가 사라지자 언론이 그들을 대신해 우리 사회의 중심을 차지했다.

특히 1998년 IMF를 거치면서 언론은 경제사회의 물적 기반을 바탕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듯이 보였다. 경제권력과의 동맹 체제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헤게모니를 관철하는 것은 물론, 경제권력을 대신해 끊임없이 신자유주의를 강요했다. 반면, 권력에 대해서는 비판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공격적 유착’을 추구했다. 작게는 언론사의 이익을 거래하려 했고, 크게는 경제권력에 굴복하도록 요구했다.

영혼 없는 관료사회(Fachmenschen ohne Geist)
관료사회는 이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조용히 엎드려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들의 지위와 안전을 위해 다양한 장치와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공무원 사회는 더 이상 공공성의 담지자가 아니며, 이제 사회의 여러 직능단체와 유사한 이익집단으로 전락했다. 정권의 교체과정을 거치면서 이 같은 경향은 더욱 심화되고 있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공공성)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는 주요 이유이다.

‘관료 통제’ 문제가 처음으로 이슈로 등장한 것은 김영삼 정부에서부터였다. 과거 군사독재의 보상체계 속에서 성장하고 있던 관료들은 더 이상 그것에 안주할 수 없게 됐다. 민주화 정부 아래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것이 ‘복지부동伏地不動’이었다. ‘복지부동’은 그 당시 관료사회를 평가하는 대표적인 언술이었다. 단순히 복지부동에만 머물지 않았다. ‘복지내동(伏地內動 : 납작 엎드려 땅속에서만 움직인다)’, ‘복지안동(伏地眼動 : 납작 엎드려 눈만 굴린다)’이라는 표현들이 연이어 창조되면서 관료사회를 희화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복무한 공직자들에 대해 주리를 틀기 시작했다. 그때 회자된 용어가 ‘영혼 없는 공무원’이었다. 막스 베버가 ‘정치적 열정에서 벗어나 자신의 직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공무원들의 직업윤리를 규정한 용어가 바로 그것이다. 2008년 정권교체기에 갑자기 막스 베버의 이 말이 소환된 것은,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들이 공무원들의 충성서약을 요구하자 공무원들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이 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념과 정치와 상관없이 관료들은 선출된 권력에 충성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었다. 이것을 낚아챈 당시 인수위원들은 공무원들에게 망신을 주기 위해 이 말을 언론에 흘렸다.

이명박 정부가 공무원들을 망신 주기는 했지만, 관료 통제에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관료들의 심리적 이반을 불러왔다. 나아가 관료 통제의 실패라는 측면에서 정부부처의 통폐합도 대표적인 실패작이었다. 관료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한다는 명분으로 국정홍보처, 예산처, 인사위원회, 여성부, 통일부 등이 논의의 대상이었다. 여성부, 통일부는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반영한 부서였고, 예산처와 인사위원회는 예산과 인사의 투명성을 높이고 관료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 국가설계를 위해 분리한 부서였다. 그러나 그 같은 시도도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장관과 차관의 숫자는 줄어들었지만 약 2천여 명이 공무원을 보유한 부처가 등장함으로써 관료 통제의 실패를 가져왔다. 예산과 인사를 공무원들에게 넘겨줌으로써 이들이 어떤 통제나 간섭도 쉽지 않은 사각지대에 놓이고 말았다.

관료 통제의 실패가 위기를 부른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실패에는 ‘관료 통제의 실패’가 일정 정도 작용했다고 본다. 관료제도의 효과적 운영보다 소수의 충성파들을 중심으로 정권을 운영한 결과였다. 그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심지어 관료 출신 장관이 대통령의 인사에 항명하는 양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오늘날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조직감각’이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정책능력’이 중요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소통능력’이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기 위한 중요한 자질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나 9·11 테러와 국제적 위기에 노출되면서 미국에서도 ‘조직감각’이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간주되고 있다.

대통령의 조직감각이 가장 잘 발휘돼야 할 곳은 바로 관료사회이다. 결국 대통령도 관료집단의 동의와 지원 속에서 자신의 정치적 어젠다를 실현할 수밖에 없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처럼 물리적 폭력기구(군, 검찰, 국정원, 경찰 등)를 동원해 우리 사회 각 부분을 통재할 있는 시대는 지났다. 그나마 대통령이 직접 명령하거나 지휘할 수 있는 곳은 관료사회뿐이다.

따라서 관료사회에 대한 합리적 통제는 성공적인 대통령을 위해 필수불가피한 부분이다. 과거 군사독재의 보상체계가 사라진 만큼 관료들의 합리적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리더십이 대통령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그것이 대통령 개인의 리더십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시민적 차원에서 관료사회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제고해야 하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하겠지만, 대통령 리더십도 중요한 부분임에 틀림없다.

물론, 관료 통제가 특정 정치적 목표를 위한 정치적 동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관료사회가 공적가치에 부합하도록 스스로 혁신하고 우리 사회의 공공영역의 구체적 운영자로서 자긍심을 갖도록 강제하는 방법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적 관료 통제가 가능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위기는 단순히 ‘대통령의 실패’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관료 통제의 실패는 결국 우리 사회의 위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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