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철(67) 대전광역시 주민자치회 대표회장은 대전의 ‘큰 어른’이다. 굳이 전직(충남대학교 총장)이나 현직(대한적십자사 대전세종지사 회장)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딱 5분만 대화를 나눠보면 명쾌한 해법제시와 특유의 시원시원한 화법에 절로 고개를 숙이고 공감하게 된다.

그는 말 그대로 ‘대전토박이’다. 3살 때부터 지금까지, 대학직장생활 10년을 제외하고 줄곧 대전에서만 살았다. “저 같은 사람을 대전토박이라고 하죠. 생애 전부를 대전에서 지냈어요. 잉어가 연못에 살잖아요? 제가 잉어라면 대전은 연못이죠. 대전이라는 연못에서 생존도 하고 생활도 하고 그랬어요. 제게 대전은 그런 의미죠.”

한 곳에 오래 뿌리를 내리고 살아 온 토박이라면 마을의 의미가 특히 남다르겠지만 현대 도시인들은 생활터전이 자주 바뀌어 지역, 동네에 대한 인식이 옅을 수밖에 없고 이런 상황에서 주민자치는 더더욱 먼 얘기일 수 있다. 이에 대한 정상철 회장의 견해는 명쾌하다.

“내가 살고 있는 연못에 먹이가 줄고 물이 말라가거나 썩으면 어떻게 돼요? 잉어가 아예 못살게 돼죠. 내가 어떤 지역에 가서 토박이가 되든 잠깐 살다 떠나든 거기서 숨 쉬고 먹고 살아야 합니다. 사는 동안 그 연못이 깨끗하고 먹이도 풍부하고 물도 썩지 말아야 하죠. 그걸 자기가 만들어야지 누가 만들겠어요? 사는 동안 연못을 직접 만들고 가꾸고 꾸미고 유지해야 하는, 그런 일의 중요성은 짧게 살든 길게 살든 재론의 여지가 없어요. 짧게 산다고 숨을 안 쉬나요? 사는 동안 만큼은 자기 생존과 생활이 가능케 하는 공간에 대해 관심을 갖고 뭔가를 가꾸고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짧게 산다고 피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의무이기도 권리이기도 하고, 보상도 반드시 있어요. 손해 보는 게 아니에요.”

생존·생활의 공간 ‘마을’, 짧게 살든 길게 살든 관심 갖고 가꾸고 유지해야

고향에서 길게 토박이로 살든, 뜻하지 않게 자주자주 거주지를 옮기든 누구나 마을 일, 주민자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깔끔하게 정리가 됐다. 그렇다면, 역시 어려운 문제인 ‘주민자치 실질화’에 대한 해법 찾기에 도전해보자.

“실질적인 주민자치를 하자, 진정한 주민자치를 구현하자고 했을 때 그에 대한 정의를 내려 보라 하면 너무 간단합니다. ‘실제로 하면 되잖아’예요. 뭐냐면 ‘말만 하지 않고 실제로 하면 돼’ 이게 답입니다. 그냥 주민들에게 맡겨주면 됩니다. 예산 풍부하게 주고 주민들이 알아서 하라고 하면 끝납니다. 무슨 사업을 할 건지, 그걸 어떻게 결정할 건지, 사업 결정부터 비용 배분까지 알아서 하라고 맡기면 돼요. 개별 사업을 실행할 때도 그걸 주민자치위원들이 직접 할지, 외부사람에게 맡길지 다 알아서 하라고 그래요. 그리고 난 다음에 예산을 준 지자체는 결과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만 하면 됩니다. 이 사이클이 세 번 돌면 대번에 효과가 나옵니다.”

시원시원한 화법만큼이나 통 큰 해법, 핵심을 찌르는 해답이다.

“시작과 과정에 대해 간섭하지 말고 결과에 대해 평가만 하라, 그러면 그것이 쌓이고, 이 과정이 딱 3번만 돌면 실질적 주민자치가 바로 됩니다. 주민들 다 능력 있고 다 해낼 수 있어요. 관에서 간섭 안하고 맡기면 맘대로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보는 눈이 많아서 함부로 못합니다. 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게 돼 있어요. 관에서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하고 사람을 이렇게 써야 한다고 정해서 보내고…. 사람 알아서 쓰라고 하고요, ‘우린 전문가가 필요하니 보내주십쇼’ 하는 곳엔 보내주면 되고요. 시작, 진행과정에서 관이 자꾸 개입하고 의견내고 끼어들고 하니까 자치 아니라 관치라는 말 나오는 거죠. 다시 말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주민자치는 예산 주고 주민에게 다 맡기면 됩니다.”

예산·권한 주고 일체 간섭하지 말고 결과에 대해 공정히 평가만 하라

‘주민자치 실질화’와 관련해 정상철 대표회장은 법·제도를 갖추는 것 못지 않게 지방자치단체장의 혁신 마인드, 주민자치에 대한 가치관과 의지, 비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법 제정을 위한 노력은 계속해 나가되, 각 지역의 주민자치는 지자체장의 의지와 정책, 방침으로도 확 바뀔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지자체장과 만날 땐 이 같은 변화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력하게 어필한다. 쓴 소리나 돌직구도 서슴없이 던지는 편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소신에 대해서는 거침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정상철 대표회장도 또 대전 주민자치회 차원에서도 고민이 많다.
“주치자치회 뿐 아니라 모든 조직과 집단, 사회가 다 마찬가지일거예요. 그렇다고 포스트 코로나가 되면 문제가 다 해결될까? 어림도 없을 것 같습니다. 코로나 문제가 해결돼도 팬데믹은 주기적으로 오게 돼 있어서 모든 사회가 언택트 시대를 대비해야 합니다. 다만 비대면이면서도 효과는 대면과 큰 차이 안 나게 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겠지요. 즉 하이테크를 이용한 언택트에 하이터치가 있어야 하죠. 이 기술이 어색하면 안 되고 실제 사람 만나는 것과 큰 차이 없게 인간 감성이 살아있어야 할 거고요. 근데 제 생각은, 이렇게 해봐야 한계가 있어요. 결국 사람은 껴안고 살 부대끼고 손잡고 해야 하거든요. 살 냄새 나는 터치를 하고 살아야 인간성이 유지되지 그렇지 않으면 인간성이 무너집니다.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안 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만나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위를 쪼개서 만난다든지 어떤 방법으로든 사람들은 피부 접촉, 눈빛 접촉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기술은 절대 사람냄새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게 변하지 않는 소신입니다.”

비대면시대 주민자치 고민...‘교육’에 중점-원로·여성회의와의 시너지도

대전 주민자치회의 내년도 사업의 기본은 교육이 될 전망이다. 주민자치에 대한 교육, 트렌드 변화에 대한 교육, 리더십 교육 등을 포함해 주민자치가 중심이 되고 다양한 대처가 필요한 사항들에 대한 교육이 이뤄질 예정이다. 코로나19로 많은 사업들이 취소되고 차질을 빚은 올해를 넘어 내년을 위해서는 아이디어를 모아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을 준비하고 있다. 또, 주민자치원로회의여성회의와의 협력을 통한 시너지도 기대한다.
“원로회의의 경우 주민자치 활동을 하면서 얻었던 경험, 지식 등을 사장시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경험, 지식은 체내에 녹아 있기 때문에 체화되어 있는 경험과 지식을 활용하면 시너지가 커집니다. 또 마을의 현안을 일선에서 보고 만지는 분들이 여성입니다. 그 마을 실정에 맞는 사업을 도출 하는데 여성의 힘이 크고 여성들의 섬세한 터치가 사업을 원활히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자산을 잘 활용하는 게 중요합니다.”

끝으로 ‘민’ ‘관’ 양쪽에 대한 주문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내가 원하든 원치 않든 이 마을에서 사는 건 사실이고 마을이 내게 호흡을 제공하고 마을이 있어서 돈 벌어 생존하고 즐길 수도 있다. 설사 내년에 떠난다 하더라도 1년간은 누려야 하니까 주민자치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관은 주민을 믿어라. 능력도 믿고 마음도 믿어라. 주민에게 권한을 줘라. 못미더우니까 자꾸만 끼어들어서 관치를 하는데 예산을 줬으면 그냥 내버려두고 나중에 평가하고. 꼭 필요한 도움만 주고 도움이라는 미명으로 간섭하지 말고. 풀뿌리주민자치가 뿌리 내리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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