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진 대전광역시 주민자치원로회의 상임회장
김명진 대전광역시 주민자치원로회의 상임회장

“지방자치단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곳이 지방의회 아닙니까. 그런데 시의원, 구의원들이 행정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떠넘겨집니다. 이제 주민자치위원회가 이웃과 마을을 보살피는 것을 넘어 지역사회로 시야를 넓히고 역할을 모색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민자치위원으로서의 경험과 경륜을 갖춘 원로들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주민자치위원으로서의 경험·경륜 갖춘 원로들 힘 모아야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14살에 대전으로 이사 온 김명진 회장은 동구 판암동에서 사업체를 시작해 20여 년 전 효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농기계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업체 특성에 맞게 건물 설계까지 직접 할 정도로 추진력이 강한 그였기에 주변에서 “마을 일도 한 번 관심을 가져보라”는 제안이 끊이지 않았다.

마침 사업체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봉사활동을 해보겠다는 마음은 먹은 터라 지인들의 추천으로 2008년 효동 주민자치위원에 위촉됐다. 이후 효동 주민자치위원장, 동구 주민자치협의회장, 대전시 주민자치협의회 수석부회장을 연이어 맡았고 2018년에는 주민자치 및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대전시장 표창까지 받았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주민자치위원회라고 하면 지역 유지들의 ‘친목모임’ 정도로 인식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주민자치가 무엇인지 알리는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마을에서 이런 일을 해보자’고 하면 ‘통장도 있고 동장도 있는데 왜 우리가 직접 해야 하느냐’고 되묻기 일쑤였으니까요.”

주민들이 마을에 관심을 갖게 할 방안은 고민하던 김명진 회장은 ‘100인 원탁회의’를 구상했다.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 마을에 필요한 일’을 주제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뜻에서다. 2017년 9월, 천동초등학교에서 열린 100인 원탁회의에는 초등학생부터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주민 130여 명이 참석해 평소 터놓고 얘기할 기회가 없었던 마을현안을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김 회장은 이날 제기된 안건들을 구청과 구의회에 전달하고 지원과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후 3년간 계속된 100인 원탁회의는 주민들의 생생한 현장 목소리를 전하는 창구 역할을 톡톡히 했다.

‘100인 원탁회의’ 만들어 주민들 생생한 현장 목소리 전해

“처음에는 다들 회의가 제대로 진행이나 될까, 반신반의했지요. 하지만 주민들의 목소리를 엄중하게 듣고 행정기관에 전달하겠다고 하니 참석자들 모두 진지하게 임하더군요. 특히 체면상 이런저런 눈치를 봐야 하는 어른들과 달리 학생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에서 주민자치의 희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다른 지역에서 벤치마킹 하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큽니다.”

김명진 회장의 추진력이 낳은 또 다른 성과는 ‘비학산 알바위 축제’다. 동구에 위치한 비학산은 ‘학이 날아가는 모습’이라는 아름다운 본래 이름에도 불구하고, 일제강점기 당시 세워진 인단(仁丹) 광고판 때문에 ‘인단산’으로 불려왔다. 지명 유래를 알게 된 김 회장은 지역 어르신들과 단체들의 자문을 받아 비학산의 원래 이름을 되찾는 한편 이를 주민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비학산 알바위축제’를 기획했다. 그가 단장을 맡은 비학산알바위축제기획단은 2016년 제1회 축제를 시작으로 효동, 가오동, 천동 주민 2000여 명이 참석하는 화합의 장을 펼쳐 “주민 스스로 만든 축제로 진정한 주민자치의 모범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로도 김명진 회장은 효동 안전마을만들기 추진위원장, 효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공동위원장 등의 소임을 맡아 다양한 마을사업을 펼쳐왔다.

“효동에는 13개 지역단체가 있는데 그 중 주민자치위원회는 ‘맏형’으로서 단체들을 아우르는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그간 마을 단체는 많고 사람은 부족하다보니 한 명이 3~4개 단체를 겸임하는 사례도 많았는데, 제가 위원장을 맡고서는 1인 1개 단체만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야 소속 단체에 애정과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습니다. 최근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전환하면서 위원 수가 많게는 50명까지 늘어나는데 서울 같은 대도시와 달리 지역에선 운영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재 대전시는 대덕구(12), 서구(4), 유성구(3), 동구(2) 등 21개 동에서 주민자치회 시범운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시범운영을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대전 중구는 주민자치회 전면 시행을 두고 구청과 시의회가 갈등을 벌이다 관련 조례를 폐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김 회장은 “주민자치회로 전환 후 지원금을 두고 이전투구하거나 다른 지역 사람이 위원장을 맡아 불만이 제기된 곳이 있다”며 “한 지역에서는 회장이 2개월 만에 그만뒀다고 하더라. 추첨으로 위원을 선발하다보니 마을과 주민자치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없는 분들은 금방 관심이 떨어지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주민자치위원 제 역할 하기 위해 ‘초심’ ‘교육’ 필수...입법화 위해 노력도

때문에 주민자치위원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선 ‘초심’과 ‘교육’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주민자치위원장이 무슨 벼슬이나 완장이 아니잖아요. 위원장이 됐다고 다른 단체장을 아래로 보거나 명령하듯 해서는 안 됩니다. 주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부지런히 공부해 역량을 키워나간다면 주민자치가 조금씩 더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구성된 원로회의가 올 한해 코로나19로 활동을 펼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김 회장은 “지난해 12월 대전시 주민자치원로회의가 창립한 이후 감염병 사태로 조직 구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가능한 연말쯤에는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현직 주민자치위원들을 도와 지역과 주민자치 발전의 밑거름이자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원로들이 경험과 지혜를 모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활동이 제약을 받는 상황이지만 지역구 국회의원을 만나 주민자치회 법안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관심과 지원을 당부하는 등 주민자치회 관련 입법을 위해 적극 나서기도 했다. 그는 “주민자치는 시대의 요구다. 팬더믹 사태를 겪으며 이웃과 마을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된 만큼 앞으로 주민자치는 ‘대세’가 될 것”이라며 “주민자치 원로들이 힘을 모아 관련 입법과 주민자치 실질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주민자치 활동을 하며 기쁜 순간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뜻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보람됩니다.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이웃과 마을에 대한 크나큰 애정과 관심으로 활동하고 계신 전국의 주민자치위원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비록 현직에서는 물러났지만 원로회의를 활성화함으로써 주민자치 실질화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김명진 회장은 2018년 주민자치 및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대전시장 표창을 받았다.
김명진 회장은 2018년 주민자치 및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한 공로로 대전시장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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