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와 팝을 막론하고 ‘지역’을 소재로 한 노래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만큼 삶의 터전인 지역, 도시, 마을,동네, 고향 등은 우리네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요소일 것이다. ‘동네노래 한바퀴’는 각 지역의 정서를 담은 노래와 출신 가수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번 호에서는 ‘대전부르스’로 대표되는 대전과 충청도의 노래, 가수들의 이야기를 살펴본다

특정 도시를 떠올릴 때 연상되는 이미지는 시대마다 세대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굳건한 상징이나 이미지의 힘은 여전히 강하다. ‘대전 부르스’가 그렇고 ‘대전역 가락국수’가 그렇다. 이 ‘2대 강자’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것이 최근 몇 년 사이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오른 ‘성심당’ 정도일 것이다. 어쩌면 ‘대전 부르스’를 알지 못하고 ‘가락국수’를 먹어본 적 없는 세대에겐 ‘성심당 튀소’가 더 친근할 수 있다. 대전역에 내리면 이 3개의 상징들과 모두 만날 수 있다. 과연 어느 쪽으로 먼저 발길이 향할 것인가.

대전발 0시 50분 목포행 완행열차...‘대전 부르스’의 강렬한 추억

잘 있거라 나는 간다 / 이별의 말도 없이 / 떠나가는 새벽열차 / 대전발 영시 오십분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 목포행 완행열차

한 번 흥얼거리게 되면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가사와 멜로디, 적어도 ‘목포행 완행열차’로 끝나는 이 1절까지는 말이다(2절도 끝은 같다). 이 마성의 노래가 바로 1959년 안정애가 발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대전 부르스’(최치수 작사/김부해 작곡)다. 이후 1983년 조용필의 리메이크곡으로도 큰 인기를 누렸다.

애절한 가사를 끈적한 블루스리듬에 담은 트로트곡 ‘대전 부르스’는 10년 이상 열차승무원으로 일한 작사가 최치수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고. 자정이 넘은 시각, 비 오는 플랫홈 열차 앞에서 이별을 앞둔 남녀의 모습을 보고 훗날 이 가사를 쓰게 됐다는 후문이다.

당시 이 곡을 담은 음반은 발매사 창사 이래 최고 판매량을 기록할 정도로 크게 히트했고 유명한 대목인 ‘대전발 0시 50분’을 제목으로 한 영화가 1963년 개봉되기도 했다. 이 영화의 주제가 역시 ‘대전 부르스’다.

‘대전역 가락국수’와도 무관하지 않다. 경부, 호남선이 갈라지는 대전역에선 ‘목포행’을 비롯한 완행열차들이 10여 분간 정차해 이 시간에 가락국수를 먹는 승객이 많았다. ‘대전역 가락국수’가 명물로 떠오른 이유다.

‘대전 부르스’는 대전역 서광장에 세워진 노래비로도 유명했다. 가사가 새겨진 거대한 규모의 노래비는 오랜 기간 대전역 광장의 상징이 되었으나 아쉽게도 몇 년 전 꽃시계 조형물로 대체됐다. 물론 ‘대전 부르스’의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꿈꾸는 백마강’을 부른 이인권(아래)
‘꿈꾸는 백마강’을 부른 이인권(아래)

‘꿈꾸는 백마강’ ‘칠갑산’ ‘수덕사의 여승’ 애절한 가사 속 한의 정서

충청도의 지명 가요들 중에서는 유독 산과 사찰, 강을 배경으로 한 곡들이 눈길을 끈다. 비교적 젊은 세대들에게도 친숙한 곡으로 ‘칠갑산’을 꼽을 수 있다. 국악을 전공한 대학가요제 출신의 가수 주병선이 1989년 발표한 데뷔앨범 수록곡이다. 이 곡은 한 TV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뒤 뒤늦게 빛을 본 경우로 원곡이 따로 있는 리메이크곡이다. 원곡은 1979년 트로트가수 윤상일의 노래로 조용히 묻혀 있다가 주병선의 곡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콩밭 메는 아낙네야 /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 무슨 사연 그리 많아 /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 칠갑산 산마루에 / 울어주던 산새소리가 / 어린 가슴속을 태웠오

전통적 정서를 담은 시적인 가사는 애절한 사연을 압축적으로 전하고 있어 지금 들어도 절절하다. 당시 노랫말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1965년에 발매된 송춘희의 ‘수덕사의 여승’은 제목에서부터 이목을 집중시키는 당대 히트곡이다. 수덕사는 충남 예산 덕숭산에 자리하고 있는 백제시대 사찰로 국보 제49로 지정돼 있는 목조건축 대웅전으로 유명하다. ‘수덕사의 여승’이 인기를 끌며 전국적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곡은 일제강점기 ‘신여성’으로 유명했던 일엽스님의 사연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수 송춘희는 원래 기독교집안에서 자라 불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다가 이곡을 계기로 관심을 갖게 돼 불교로 귀의했다는 사연도 전해진다.

 

왼쪽부터 수덕사의 모습. 수덕사 홈페이지/칠갑산 정상의 모습. 청양군청
왼쪽부터 수덕사의 모습. 수덕사 홈페이지/칠갑산 정상의 모습. 청양군청

강점기에 고통 받던 민초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높은 인기와 가사의 함의 때문인지 조선총독부가 발매금지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광복 이후에도 작사가 조명암의 월북이 문제가 돼 또 다시 금지곡으로 묶이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애절한 곡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밝은 정서의 노래도 눈에 띈다. 가수 조영남은 황해도 출신이지만 한국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와 충남 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내고향 충청도’ ‘삽다리’ 등을 발표했다. 1976년작 ‘내고향 충청도’는 유명한 팝송 ‘더 뱅크스 오브 오하이오(The Banks of Ohio)’의 번안곡이며, 예산 삽교 고향마을을 그린 ‘삽다리’(1978)는 자작곡이다.

‘트로트신’ 심수봉·태진아·김국환·장윤정 ‘국민가수’ 신승훈·이선희 ‘싹쓰리’ 이효리·비...아이돌도 즐비

느릿하지만 귀가 솔깃해지고 끝까지 들어봐야 알 수 있는 충청도 사투리만의 감질 맛 나는 묘한 밀고 당김 때문일까. 대전, 충청에는 이른바 ‘트로트의 신’들이 즐비하다. 서산 출신 심수봉, 계은숙부터 태진아(보은), 김국환(보령), 배일호(논산), 장윤정(충주)이 모두 이 지역 출신이다. 최근 ‘미스터 트롯’으로 인기몰이 중인 신예 이찬원도 대전이 고향이다.
여기에 민요가수 김세레나(논산), 천상의 소리꾼 장사익(홍성)도 빼놓을 수 없다.
세대를 초월해 ‘국민가수’로 꼽히는 이선희의 고향은 충남 보령이며,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은 대전 출신으로 유명하다. 신승훈과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심신도 대전이 고향으로, 이 두 사람은 데뷔 당시 동향으로 자주 묶여 소개되기도 했다. VOS 김경록도 대전 출신이다.
그룹·솔로 활동으로 당대를 호령하고 최근 ‘싹쓰리’로 또 한 번 연예계를 들썩인 ‘영원한 요정’ 이효리와 비(정지훈)도 각각 충북 청주,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발라드가수 ‘별’도 서산 출신이다.
아이돌들의 지분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대전 출신으로는 ‘K팝스타’로 이름을 알린 뛰어난 보컬리스트 박지민(제이미), 그룹 빅스의 ‘혁’, 러블리즈의 류수정, 그리고 ‘업텐션’ ‘X1' 멤버이자 솔로 활동 중인 김우석을 꼽을 수 있다. 선배 아이돌 중에선 JYJ 김재중(공주), 슈퍼주니어 예성(천안)이 있다. 애프터스쿨 나나, 시크릿 전효성, B1A4 신우는 모두 청주 출신이다. 그런가하면 에이핑크 박초롱(청원), B1A4 진영(충주), 러블리즈 미주·오마이걸 지호(옥천)도 충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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