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노동자도 자영업자도 아닌 플랫폼 노동자
제4차 산업혁명과 기술혁신의 가속화는 디지털 플랫폼 경제의 발전을 촉진하고 있다. 플랫폼 경제는 공유경제 비즈니스 모델에 기반한 플랫폼 기업의 급성장과 함께 경제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플랫폼을 통해 일자리(job)를 일거리(task)로 분해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일거리 중심의 불안정하고 취약한 플랫폼 노동이 양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음식배달업의 경우 과거에는 식당이 배달원을 직접 고용하는 하나의 일자리였지만 이제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전문 배달 기사들의 일거리가 됐다. 식당은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고 배달원을 고용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플랫폼에 일거리를 주면 된다. 특히 COVID-19 사태 이후 비대면 소비가 증가하면서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거래 및 활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플랫폼 노동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플랫폼 노동 종사자(이하, 플랫폼 노동자)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일거리를 얻어 소득을 얻는 노동자이다. 따라서 플랫폼 노동자는 일정한 장소에 정기적으로 출퇴근을 해 정해진 기간마다 임금을 받는 전통적인 임금노동자가 아니다. 플랫폼 노동자는 플랫폼에 고용된 것이 아니라 플랫폼과 계약을 맺고 노무를 제공하는 계약근로자이기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권리 보장 및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에서는 시간 단위보다 건당 일거리가 거래되므로 플랫폼 노동자는 플랫폼을 통해 건당 수수료를 받는 일거리들을 직접 모아야 한다. 따라서 플랫폼 노동자는 일정한 플랫폼에서 돈을 받고 일거리를 얻기 때문에 자영업자가 아니라 자영업자 대상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특히 여러 플랫폼에서 일거리를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은 플랫폼 노동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와 달리 전속성을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산재보험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의 확대로 인해 모든 종류의 노동이 플랫폼 노동처럼 바뀔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플랫폼 노동은 현재 사회의 문제이자 미래 사회의 쟁점이 될 것이다. 특히 플랫폼 노동자는 법적으로 노동자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플랫폼 노동의 확산은 비정규직 문제와 함께 한국 노동시장의 핵심적인 문제이다. 플랫폼 노동의 특성상 플랫폼 노동자의 정확한 규모를 계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전문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플랫폼 노동자는 약 45만~55만 명으로 추산된다. 더욱이 COVID-19 사태 이후 플랫폼 노동자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사회협약이 활발하게 추진 중
최근 수년간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플랫폼 노동에 대한 많은 연구와 토론회, 정부의 각종 TF 등이 진행돼 왔다. 현재 정부는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을 적용하는 고용안전망 확충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2020년 말까지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로드맵을 마련하고, 2021년 상반기까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플랫폼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을 확대하기 위한 전속성 기준을 개편할 예정이다. 또한 코로나 사태로 인한 물량 증가로 과로 상태인 택배기사들을 위해 2021년 2월까지 과로 방지 및 건강보호 대책이 추진된다.

2020년의 큰 성과는 플랫폼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협약이 활발하게 체결됐다는 점이다. 2020년 5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원회’는 IT 인력·프로젝트 중개 플랫폼 기업 자율규범 마련, 사회보험 적용 방안 검토, IT·SW 인력 중개 플랫폼 및 종사자 발전을 위한 연구조사 등이 포함된 ‘플랫폼 경제 활성화 및 노동 종사자 지원 방안에 관한 합의문’을 발표했다. 자율규범은 계약 체결, 대금 결제, 수수료, 세금, 차별 방지, 분쟁 해결 등과 관련되며 정부는 자율규범을 준수하는 기업을 지원할 예정이다.

지난 9월에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디지털 플랫폼 노동 배달업종 분과위원회’가 ‘배달노동 종사자의 산재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노사정 합의문(안)’을 발표했고, 10월에는 서비스연맹, 라이더유니온 등 플랫폼 노동자 노동조합과 코리아스타트업포럼 회원 기업들 및 전문가 등이 ‘플랫폼 경제 발전과 플랫폼 노동 종사자 권익보장에 관한 협약’이라는 노사 자율의 사회협약을 최초로 체결했다. 또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소속 노조와 청와대, 국토부, 을지로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등이 참여해 대리운전·배달·퀵서비스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표준계약서 협약식도 추진됐다.

특히 배달의민족(딜리버리코리아히어로) 자회사인 ‘우아한 청년들’과 서비스 일반노조 배민라이더스지회가 플랫폼 노동 최초로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커다란 진전도 있었다. 더욱이 지난 7월에는 가사노동자, 대리운전노동자, 문화예술인 등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 대표단체의 협의체인 ‘플랫폼·프리랜서 노동자협동조합협의회’(이하 협의회)가 공식 출범하기도 해 플랫폼 노동자들의 조직화가 지속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사각지대에 높인 플랫폼 노동자를 위해 보수, 과세, 사회 및 고용 보호 등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지원이 필요해"

해외에서도 플랫폼 노동자의 조직화와 사회적 대화가 추진 중
미국이나 EU 국가들은 한국보다 먼저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추진해왔다. 이탈리아 정부는 도시 지역의 음식배달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최소 보호와 최저임금 권리를 보장했다. 스페인은 플랫폼 노동자에게 제3의 지위를 적용해 근로시간, 계약, 사회보호, 단체교섭 등의 보호 및 권리를 부여하고 경제적 의존성이 있는 자영업자를 위해 연차휴가, 부당한 계약해지로부터의 보호, 노동3권 보장, 산재보험 의무가입 등을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2016년 노동법 개정을 통해 온라인 플랫폼에 경제적·기술적으로 종속된 독립적인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사회적 권리를 제공하고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보장했다. 특히 프랑스 정부는 플랫폼의 사회적 책임 원칙을 도입해 플랫폼 기업이 산업재해 보험 비용을 부담하고 플랫폼 노동자들이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독일은 일시적 노무 제공, 경제적 종속성 등을 근거로 단체협약법의 ‘유사근로자’라는 개념을 정의해 플랫폼 노동자에게 임금노동자와 유사한 보호를 제공한다. 유사근로자는 고용주의 지시를 직접 받지 않지만 한 명의 고용주로부터 받는 수입이 총소득의 50% 이상인 근로자이다. 유사근로자인 플랫폼 노동자는 최저임금, 근로시간 규정, 각종 차별금지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유급휴가 및 병가 권리, 안전과 보건, 단체협약 체결권 등을 보장받는다. <표1>은 국가별로 이루어진 다양한 시도들이다.

플랫폼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글로벌 차원의 시도들도 있다. 2016년 12월 오스트리아, 캐나다, 덴마크, 스웨덴, 미국 등의 노조들은 공정한 근로조건과 지배구조에 대한 노동자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노동자, 노동자 조직,플랫폼 고객, 플랫폼 운영자 및 규제기관 간 초국가적 협력을 요구하는 ‘프랑크푸르트 선언문’을 발표했다. 2019년에는 플랫폼에서 노동자의 대표성과 사회적 대화를 도표화하고 평가하면서 유럽 차원에서 플랫폼 노동자의 새로운 대표성과 대화 방식을 개발하는 것을 목적으로 ‘디지털 플랫폼 노동 유럽 관측대’가 설립됐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은 100개 이상의 글로벌 선도기업과 글로벌, 시민사회, 학술단체 등이 참여한 ‘좋은 플랫폼 노동을 위한 원칙 헌장(Charter of principles for good platform work)’을 발표했다. 좋은 플랫폼 노동의 원칙으로는 다양성과 포용성, 안전과 웰빙, 유연성과 공정한 조건, 합리적인 급여와 수수료, 사회보호, 학습과 발전, 의견과 참여, 데이터 관리 등이 제안됐다. <표2>는 이러한 기준들에 맞추어 WEF가 소개한 좋은 플랫폼의 사례이다.

플랫폼 노동자 지원방안
플랫폼 노동자는 외부의 부정적 충격이 발생할 경우 일거리가 감소해 소득이 하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현재 COVID-19로 인해 일부 플랫폼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하에 과로에 시달리는 반면 많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일거리가 없어 생계가 곤란한 상황에 있다. 따라서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과 같은 법적 문제는 지속적으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준비해 가야 하며, 현 단계에서는 노사 당사자 간 사회협약 및 자율규범과 정부의 적극적인 노동자 지원정책을 통해 플랫폼 노동자의 취약한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

플랫폼 경제 발전과 플랫폼 노동 종사자 권익 보장에 관한 협약식(사진:우아한 형제들)
플랫폼 경제 발전과 플랫폼 노동 종사자 권익 보장에 관한 협약식(사진:우아한 형제들)

먼저 플랫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플랫폼은 플랫폼 경제를 위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물질적 기반이므로 윤리적인 사회적 책임 실행의 주체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플랫폼 기업과 플랫폼 노동자 사이의 합의에 기반한 헌장이나 자율규범을 정립하고 사회적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플랫폼 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플랫폼 당사자들 간 대화와 협의를 할 수 있는 장을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사회협약에서 합의된 조치들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플랫폼 기업들은 해외의 경험을 참고해 플랫폼 노동자들을 파트너로 인식해 내부에 노동자 패널이나 포럼을 구성해 의견을 수렴하고, 기업별로 노사 자율의 단체협약의 체결도 필요하다.

또한 플랫폼 노동자는 플랫폼과 불균형한 권력 관계에 직면해 충분한 협상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으므로, 정부는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보수, 과세, 사회보호 및 고용 보호에 관한 규칙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정부는 각 업종별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플랫폼 노동시장의 질서를 확립하고 플랫폼 기업들에 공정거래와 표준계약의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 정부가 고용안전망 확충을 위해 2021년부터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을 확대할 예정이므로 플랫폼 노동자의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 가입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도 있다.

예를 지방자치단체는 저소득 임금노동자에 대한 두루누리 사업과 같이 취약한 플랫폼 노동자들의 보험료 부담 경감을 위한 사회보험료 지원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산재보험 관련 교육 및 홍보 강화를 통해 플랫폼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것도 시급하다.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한 직무 또는 전직 교육 지원, 플랫폼 노동자의 고충 상담과 컨설팅 지원 등도 시급하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현장의 요구를 가장 많이 알고 있으므로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한 옴부즈맨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정책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플랫폼 작업에서의 기회와 구직자를 매칭하는 플랫폼 노동 교육도 필요하다. 정부는 구직자들에게 플랫폼 경제의 새로운 기회를 알리는 동시에 업무의 질과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플랫폼 경제의 기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기술 훈련을 제공하면서,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한 디지털 교육을 통해 플랫폼 기업에 의한 일방적인 플랫폼 운영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도 필요하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위해 플랫폼 노동자의 자발적 의지, 업종 유형 및 특성을 고려한 지원이 시급하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을 활동무대로 하는 택배기사, 음식배달기사, 대리운전기사, 프리랜서 등 업종별 플랫폼 노동자들이 지역 기반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또한 플랫폼 노동자들이 스스로 플랫폼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도록 자문, 기술적 지원과 함께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재원 조달을 지원하는 것은 지역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노동조합이나 플랫폼 협동조합의 설립이 어려운 플랫폼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상호공제회 설립을 지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김은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은경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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