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공성의 눈으로 본 영화이야기] 영화 맹크와 공공성
상태바
[문화-공공성의 눈으로 본 영화이야기] 영화 맹크와 공공성
  • 김기홍 한성대학교 크리에이티브인문학부 교수
  • 승인 2021.01.15 1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시민 케인의 한 장면
영화 시민 케인의 한 장면

최근 주목받고 있는 작품 <맹크>
최근 발표된 할리우드 영화 <맹크>(Mank)가 상당한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영화 팬들을 설레게 만들만한 키워드가 해시태그에 많이 걸리는 흥미로운 영화다. 평단의 반응도 호의적이고, 영화제 수상작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상업 영화지만 뭔가 예술적 느낌이 나는 진지한 영화’ 취향에도 잘 맞아서, 상복이 있을 거라는 얘기도 나돈다.

가령, 뉴욕 타임스 영화 칼럼니스트 카일 뷰캐넌(Kyle Buchanan)은 <맹크>가 아카데미 영화상 작품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수상이 유력한 작품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작품 안팎으로, 공공성의 시각에서 해석해볼 여지 또한 풍성한 영화다.

<시민 케인>과 허스트
영국 영화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Sight & Sound)가 전 세계 영화비평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역사상 최고의 영화’에 1등으로 가장 많이 선정된 영화가 있다. 이 작품은 미국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의 ‘100년의 역사, 100편의 영화’에서도 두 차례 1등으로 선정됐다. ‘죽기 전에 봐야 할 …’ 식의 제목이 붙은 영화 목록에 흔히 맨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바로 <시민 케인>(Citizen Kane)이다.

<맹크>는 <시민 케인>의 시나리오의 집필 비하인드를 다룬 영화다. <시민 케인>이 워낙 걸출한 영화인 데다, 제작과 배급 과정에서 역사에 기록될 만큼 큰 소란이 있었기 때문에 영화 소재로 제격이다. 이 영화가 다루는 인물이 미국의 신문 재벌 윌리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라는 것이 소란의 발단이었다. 그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 신문 업계의 풍운아였다. 황색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큰 부자가 됐는데, 아닌 게 아니라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그에게서 비롯됐다.

TV는커녕 라디오조차 없었던 19세기 말, 신문은 진득한 독서를 원하지 않는 대중들을 위한 거의 유일한 볼거리였다. 특히 만화를 곁들인 ‘쉽게 읽히는’ 신문은 압도적으로 인기 있는 오락이었다. 1890년 일간지, 주간지 등을 모두 합쳐 1만 2천 종의 신문이 발행됐다. 시장이 커져서 신문 재벌이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 1만 2천 종의 신문을 모두 하나의 가판대에 걸 수는 없으니 유통을 장악해야 메이저 신문이 될 수 있었다. 내용이 재미있어 대중의 선택을 받는 것이 유통 장악의 첫걸음이었다.

퓰리처상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가 첫 번째 신문왕이었다. 헝가리 출신으로, 유럽에서도 지원병을 모집한 남북전쟁 때 미국으로 건너와 굶어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의 뼈저린 고난을 극복하고 크게 성공한 아메리칸 드림의 구현자다. 막노동으로 연명하며 독학으로 변호사 자격증을 땄고, 신문기자 경력도 쌓았다. 1883년 적자에 허덕이던 뉴욕 월드(The New York World) 신문사를 인수한 그는 개척 가능한 시장을 타진했다.
신문의 주요 독자들은 교육받은 사람들이었다. 아무래도 소수일 수밖에 없었다. 이민자답게, 퓰리처는 속속 유입되는 이민자들에게 눈을 돌렸다. 1880년 100만 명이던 뉴욕 인구는 이민자 쇄도에 힘입어 10년 만에 150만 명이 될 만큼 인구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퓰리처의 눈에 모두 뉴스와 오락을 원하는 잠재 고객이었다.

퓰리처는 ‘뉴 저널리즘’(new journalism)으로 불리는 새로운 기법을 창안했다. 오늘날 언론 글쓰기의 기본으로 돼 있는 것으로, 기자들에게 만연체를 지양하고 짧은 문장에 내용을 압축하는 훈련을 시켰다. “축약해서 써! 축약해!”(Condense! Condense!)가 기자들에게 늘 건네는 말이었다. 자극적인 내용의 기사를 어울리는 헤드라인에 버무렸고, 일요 신문에는 만화를 전면에 배치하는 전략을 썼다. 2만 부에 불과했던 신문의 일일 판매 부수는 37만 4천 부까지 괄목 성장했다. 퓰리처는 여러 신문사를 사들이고 유통을 장악하며 자신의 언론 제국을 건설했다.

이때 허스트가 등장한다. 퓰리처보다 열여섯 살 어린 풋내기였지만, 출신 성분이 퓰리처와 사뭇 달랐다. 신문사는 광산, 농장과 함께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이었다. 허스트는 ‘금수저’인 데다, 교수를 능멸해 하버드에서 퇴학을 당한 망나니였다. 게다가 장래 꿈이 대통령이었다. 사뭇 진지해서 이후 재산과 언론 영향력을 바탕으로 정치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정감 가지 않는 인물이지만, 성공할 그릇이었다.

퓰리처의 신문사에서 견습 기자로 일하며 밑바닥 일을 눈여겨 보아두었고, 잘 팔리는 신문의 비결을 연구했다. 게다가 자본이라는 막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허스트는 적자를 면치 못하던 뉴욕의 한 신문사를 사들였는데, 어머니의 친구가 일 년에 100만 달러씩 적자를 볼 수도 있다고 우려하자, 어머니가 걱정하지 마라며, “그 정도 적자라면 30년은 버틸 수 있어”라고 답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시작부터 돈을 쌓아두고 사업을 하게 된 허스트는 먼저 신문의 가격을 크게 인하해 출혈경쟁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퓰리처처럼 신문 기자들을 훈련 시키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대신 퓰리처가 애써 훈련해놓은 민완 기자들을 무차별적으로 헤드헌팅하기 시작했다.

먼저 ‘일요 신문의 아버지’로 불리는 퓰리처 신문사의 유명 편집장 고다드(Morrill Goddard)를 높은 연봉으로 꼬드겨 스카우트했다. 아끼는 직원의 배신에 충격을 받았지만, 퓰리처는 브리스 베인(Arthur Brisbane)이라는 능력 있는 기자를 편집장 자리에 앉혀 응수했다. 그러자 허스트는 바로 브리스 베인을 꼬드겨 자신의 신문사 데스크에 앉혔다. 더 나아가 허스트는 퓰리처의 <뉴욕 월드> 신문사 직원 전원을 자신의 <뉴욕 저널> 신문사로 데리고 왔다.

상식 밖의 과열 경쟁은 신문 연재만화 작가까지 확대됐다. 퓰리처 신문사는 <옐로우 키드>(Yellow Kid)라는 만화로 크게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만화가인 아웃코트(Richard Outcault)를 스카우트해 자신의 신문에 똑같은 <옐로우 키드>를 연재하도록 했다. 저작권 개념이 없던 시기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화가 난 퓰리처는 럭스(George Luks)라는 만화가를 기용해 자신의 신문에 <옐로우 키드> 연재를 이어갔다. 같은 캐릭터의 만화가 동시에 다른 신문에 연재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사태는 곧 정리됐다. 허스트가 럭스마저 스카우트한 것이다.

경악할 일이었다. 허스트는 상도尙道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사람이었다. 뉴욕 프레스(New York Press)의 워드먼(Ervin Wardman)은 옐로우 키드를 둘러싼 이 지저분한 사건을 보고 ‘옐로우(황색) 저널리즘’이라는 이름을 고안해 선정적인 언론 행태에 붙였다. 뉴욕 선(New York Sun) 신문사의 보가트(John Bogart)가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허스트식 선정주의 언론의 기본 태도를 잘 설명해준다. 허스트는 채 2년이 지나지 않아 퓰리처 신문의 판매 부수를 앞섰고, 이후에도 황색 저널리즘 기법으로 승승장구했다.

<맹크>는 허스트가 칠십 대에 이른 1940년이 배경이다. 그는 아내와 별거하고 십수 년째 여배우 메리언 데이비스(Marion Davies)와 동거 중이었다. 허스트 캐슬로 불리는 캘리포니아의 거대 저택에서 살며, 자신이 몸담은 언론은 물론, 정치계, 영화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지내고 있었다.

오손 웰즈와 맹크
<시민 케인>의 감독은 오손 웰스(Orson Wells)다. 영화와 같은 예체능계는 어느 분야보다 어머니 뱃속에서 가지고 태어난 재능이 중요한데, 웰스는 타고난 천재였다. 특히 이야기를 지어내고 표현하는 스토리텔링에 탁월했다. 배우이자 감독이었고, 작가이자 제작자로서, 라디오, 연극, 영화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재능을 과시했다.

20대 초반에 머큐리 극장(Mercury Theatre)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생방송 라디오 드라마를 제작했는데, H.G 웰스의 SF 소설 <우주 전쟁>을 극화한 드라마는 너무나 실감 나서 시청자들이 실제 외계인이 쳐들어온 줄 알고 공황 상태에 빠졌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갔다. 이 후일담은 매우 심하게 과장된 것이긴 하지만, 이 라디오 드라마로 웰스는 천재적 재능을 가진 인물로 크게 유명해졌다.

1933년 작 <킹콩>을 제작하는 등 1930년대 할리우드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영화사였던 RKO 픽처스가 내리막길을 걷게 되자 웰스에게 희망을 걸고서 접근한다. 소위 ‘할리우드 시스템’의 특징은 감독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듯 자기 멋대로 영화를 제작하는 프랑스와 달리, 영화제작에 대한 영화사의 간섭이 매우 심하다는 것이다. 특히 최종 편집권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아니라 영화사에 귀속돼 있다. 흥행에 방해가 될 것 같은 장면은 다 쳐내고 러닝타임이나 내용 모두 오락 영화의 규격에 맞게 소비하기 편안한 상품으로 가공한다. 애써 만든 장면들이 편집을 당하게 되니 감독들이 이 시스템을 좋아할 리 없다. RKO는 웰스에게 작품에 대해 간섭하지 않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당시 웰스는 영화감독 경험조차 없는 24세 청년이었으나, 재능과 실력이 뛰어나고 카리스마가 있어 이미 풋내기가 아니라 거물 같은 느낌이었다.

이 ‘소년 거물’은 당대의 미국을 풍자하는 데 관심이 있었고, 삐뚤어진 자화상을 그리기 위해 인물 하나를 지목하고자 했다. 웰스는 늘 관심이 있었던 ‘문제적 인물’ 허스트를 연구하고 캐릭터를 해부해 영화로 재구성하기로 한다. 가제는 ‘미국인’(American)이었다. 그러나 50년 이상 나이 차가 나는 허스트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해 농밀한 글쓰기가 불가능했다. 그를 잘 아는 사람 중 작가가 필요했다. 그 사람이 허먼 맹키비치(Herman Jacob Mankiewicz), 바로 ‘맹크’였다.

맹크는 기자이자 영화비평가, 시나리오 작가였다. 영화에서 게리 올드먼(Gary Oldman)이 역할을 맡았다. 영화에서 작가를 묘사하는 전형 중 하나로서, 말로 당해낼 수 없는 달변가다. 냉소적이기 그지없고, 잘 나가다가도 한순간 틀어지면 본인도 스스로가 제어가 안 돼서 사회생활이 순탄하지 않은 스타일이다. 그래서 메이저 영화사인 MGM에서 어중간한 대우를 받으며 지내다가 ‘높은 분’에게 입을 잘못 놀려 쫓겨나게 됐다.

"경쟁사의 유능한 직원의 헤드헌팅 무차별적인 저작권 침해 등 황색 저널리즘으로 승승장구한 허스트"

허스트를 모델로 시나리오를 써보지 않겠냐는 웰스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은 것은 꼭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맹크는 미국의 위선과 그림자를 한 인물에 담는다는 프로젝트에 공감했고, 그 대상이 허스트라는 점이 특히 와닿았다. 맹크는 허스트를 잘 아는 사람이다. 허스트의 동거녀인 메리언과의 친분 덕분이다. 메리언은 실제 인물 또한 아름다운 여배우이자 작가이고, 독지가이기도 했다. 돈 많은 늙은 남자를 꾀어 조강지처와 헤어지게 만들고 귀족 같은 생활을 한 여배우이니 좋은 소리를 들었을 리 만무하지만, 천성은 착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본인이 작가이다 보니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을 좋아했는데, 맹크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언행이 늘 삐딱하고 꼬여있지만, 박식하고 문학적 은유와 수사법에 능한 데다 선한 사람이다. 맹크는 메리언의 멘토와 같은 역할이었다. 허스트도 애인의 멘토에게는 부자다운 관대함을 보여준다.

이렇게 되면 글쓰기가 힘들다. 웰스의 의도는 허스트의 치부를 드러내고 가면을 벗겨 군중들에게 보여주자는 것으로, 심하게 얘기하면 ‘조리돌림’ 하자는 것이다. 게다가 허스트에 대해 글을 쓰면 애인인 메리언에 대해 쓰지 않을 도리가 없는데, 메리언은 개인적으로 친근하고 서로 신뢰하는 사이다. 친분이 있는 사람을 나쁘게 이야기하기는 힘든 법이다.

사실은 더 큰 문제가 있다. 허스트의 영향력이다. 그는 실제로 관대한 사람이 아니다. 젊은 시절 가히 폭력적인 성공의 비법에서 보았듯,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 자본 귀족의 귀공자로 태어나 더 큰 자본을 축적한 성공한 사람으로서, 자존심과 자만심 또한 그의 부 만큼이나 크다. 특히 영화계에도 큰 영향력이 있다. 자신과 척을 진 사람을 그냥 놔둘 인물이 아니다. 그에 대한 글을 집필한다면, 영화계에서 매장당하는 것 정도는 각오해야 할 것이다.

실제 <시민 케인>에서 허스트를 모티브로 한 주인공 케인은 ‘입체적’ 인물로서, 위선적이며 다중인격자에 성격파탄자이기도 하다.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도록 그려지지만, 그가 실존인물 허스트라면 신문 재벌 허스트를 보는 눈이 예전과 달라질 수 있다. <시민 케인>이 제작되자 허스트는 구체적으로 움직였다. 그가 가진 많은 신문이 영화 개봉 소식을 아예 전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시사회 행사를 막으려 하기도 했고, 무산되자 흥행을 방해하기 위해 영향력을 동원했으며, 나중에도 웰스를 미워해 그의 커리어에 흠집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 웰스는 천재에다 강한 사내고 스물네 살이었다. 젊은 혈기와 기백이 하늘을 찔렀다.

“늙은 허스트 따위는 두렵지 않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도 상관없다. 무조건 진행한다. 나는 오손 웰스니까.”

맹크는 입장이 다르다. 일개 작가일 뿐이고, 허스트, 메리언과 친분도 있는 데다, 영화판에서 매장당하면 갈 곳도 마땅치 않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다 알기 때문에 웰스는 맹크에게 원고료는 두둑이 드릴 테니 좋은 글을 쓰시고, 허스트의 뒤 끝에 크게 다칠지 모르니 이름은 밝히지 마시라고 권한다. 맹크도 동의해서 비밀 유지 계약서를 작성했다. 글도 비밀리에 쓰기로 한다. 그래서 영화의 첫 장면이 두세 명의 도우미만 있는 캘리포니아 사막의 한적한 시골집에서 맹크가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맹크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허스트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한 걸까. 그가 밝히고 싶은 허스트의 치부이자 그림자, 즉 미국의 위선은 정치였다.

<시민 케인>과 정치
영화는 맹크가 복잡하고 민감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시민 케인>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추적한다. 주로 1934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당시 공화당의 프랭크 매리엄(Frank Marriam)과 민주당의 업튼 싱클레어(Upton Sinclair)가 맞붙었다. 실제 프랭크는 전형적인 공화당 정치인이었고, 싱클레어는 ‘정의로운 사회주의 미국’을 꿈꾸는 소설가 출신의 이상주의자였다. 싱클레어의 대표작 <정글>(Jungle)은 육류 가공업계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소설이었고,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맹크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자였다. 더군다나 1930년대는 대공황 시기였다.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달리 말하자면 부의 편중이 너무 심해져서,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증대됐다. 맹크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 그는 심정적으로 싱클레어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거운동 중인 싱클레어는 대공황의 어려움이 미국을 폭력으로 집어삼키기 전에 자신에게 투표해 평화적으로 공정분배를 달성하자는, 사뭇 강경한 사회주의적 유세를 펼친다.

영화 맹크의 한 장면
영화 맹크의 한 장면

“동지들이여! 이 나라의 부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로 재분배될 겁니다. 법률 제정이나 폭력적인 혁명으로요. 고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의 비판에는 거침이 없고 성역도 없다. 미국은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보수주의뿐만 아니라 국가 자체가 기독교와 뗄 수 없어서 선거 유세에서 종교를 비판하는 것은 절대 금기다. 그러나 싱클레어는 아랑곳하지 않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한 마르크스를 따른다. 어떻게 보면, 미국 민주당의 강성 좌파 샌더스와 비슷한 느낌이다.

“여러분! 대공황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요. 과일이 썩고 채소가 바다에 버려지고 있지요. (일반인의 구매력이 낮아져) 판매할 시장이 없으니까요. (유명 복음주의 전도사 방송인) 에이미 셈플 맥퍼슨(Aimee Semple McPherson)이 저를 ‘불경한 빨갱이’라고 욕하더군요. 기독교는 지배층을 견고히 하고 피지배층을 착취하는 데 너무 흔하게 악용됩니다. 그것이야말로 죄악이고 오류입니다. 토머스 제퍼슨이 말했습니다. 이성이 자유롭다면 진실은 오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요.”

맹크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에 대한 지지를 숨길 길이 없다. 그런데,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특히 MGM은 노골적으로 공화당 편이다. 대놓고 공화당 선거 모금에 몇 푼이라도 내고 이름을 적으라고 요구한다. 맹크는 눈 딱 감고 지폐 한 장 내고 이름 적으면 될 일에도 참여하지 않아 어떤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허스트도 참석한 술자리에서 할리우드 인사들이 선거에 대해 잡담을 늘어놓다가 싱클레어 후보를 얼뜨기 볼셰비키 공산주의자로 묘사하며 낄낄거리자, 발끈한 맹크는 사회주의자라고 정정한다. 그게 그거지 무슨 차이가 있냐는 말에 맹크가 냉소적으로 쏘아붙인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도 구분 못 하나? 사회주의는 부를 배분하고, 공산주의는 가난을 배분하잖아.”

선거가 다가오는 어느 날, 영화사의 친한 친구가 정색한 표정으로 자신이 만드는 영화를 한번 봐달라고 말한다. 보니까 선거 선전 영화다. 언뜻 보면 싱클레어를 지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내용이 이상하다. 싱클레어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등장한 단역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면, 하나같이 부랑자 같은 차림새인데, 말을 이상하게 한다. 혁명이 도래했다는 둥, 러시아도 했는데 미국이라고 못할 게 뭐가 있느냐는 둥 하는, ‘혁명 전야의 프롤레타리아’를 연상케 하는 발언들이다. 누가 봐도 싱클레어는 위험한 혁명 주동자처럼 보인다. 완전히 가짜 뉴스다. 경악한 맹크는 누가 돈을 대서 이런 걸 만드냐고 추궁한다. 즉답은 피하지만, 허스트임이 분명하다.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 찬 황색 저널리즘의 달인이 너무나 못된 짓을 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끔찍한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맹크는 허스트를 용서할 수 없다.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고 정의를 관철하는 캐릭터가 위선적인 요즘 세상에 반향 일으켜"

<시민 케인>과 <맹크>
결국 맹크는 <시민 케인>의 시나리오를 집필한다. 웰스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굉장히 잘 쓴 글이라고 반색한다. 그런데 맹크는 웰스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혀달라고 요구한다. 웰스는 계약 위반이라며 불같이 화를 낸다. 남의 공을 가로채려는 게 아니다. 허스트와 친분이 있는 맹크의 이름이 극작가로 공개되면 너무 노골적으로 허스트가 극 중 캐릭터의 모델인 것이 밝혀지기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맹크는 자신의 인생의 최고 작품이기 때문에 크레딧에 이름을 밝혀달라고 고집을 부리고, 웰스는 받아들인다.

작품의 주인공 케인은 언론 재벌이자 야심 넘치는 정치인이고, 두 번째 부인 수잔 알렉산더는 실패한 오페라 가수로서, 술독에 빠져 사는 여자다. 누가 봐도 허스트와 메리엄을 그린 것이다. 둘이 사는 플로리다의 성 제너두(Xanadu)는 온갖 그림과 회화, 조각들도 뒤덮인 곳으로, 미술품은 하도 많아 목록을 작성할 수 없을 정도이고, 열 개의 뮤지엄을 채울 정도다. 모두 전 세계에서 약탈해 온 것들이다. 누가 봐도 ‘허스트 캐슬’을 비꼰 것이다. 허스트는 분노한다. 현실 세계에서 허스트는 앞서 언급한 ‘못된 짓’을 획책한다.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시민 케인>이지만, 당시 아홉 개 부문 후보로 올랐던 아카데미상은 하나밖에 받지 못했다.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모두 받지 못했다. 허스트의 ‘못된 짓’의 영향 때문일까? 아무도 모른다. 아이러니라고 할까, 하나 받은 상이 각본상이었다. 맹크와 케인의 공동 수상이었다.

<맹크>의 감독은 데이비드 핀처(David Fincher)다. 각본을 쓴 사람은 그의 아버지 잭 핀처다. 이 작품을 집필하고 세상을 등졌다. 핀처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정작 <시민 케인>은 받지 못했던 작품상, 감독상을 <맹크>는 받게 될까. 많은 이가 궁금해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핀처는 <소셜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로 두 차례 후보에 올랐던 유명 감독이어서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게리 올드먼은 몇 해 전 윈스턴 처칠을 연기한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바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영화를 보고 나서 자꾸 생각이 날 만큼 연기를 매우 잘했다. 올드먼은 전작에서도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서 호평을 얻은 바 있는데, 냉소적이고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 정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실천하는 영화 캐릭터가 반향을 일으키는 세상인 것 같다. 세상이 점점 위선적으로 변해가기 때문일까. <맹크>는 <시민 케인>의 역사성과 오버랩되며 현실과 창작, 정의와 위선의 경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오랜만에 만나는 수작이었다.

김기홍 한성대학교 크리에이티브인문학부 교수
김기홍 한성대학교 크리에이티브인문학부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