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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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우리 선생님이 달라졌어요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1.02.0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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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과 길고양이’ ‘안경’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른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세이 오가타)은 꽤 독특한 사람이다. 은퇴를 하고 나서도 늘 셔츠에 양복차림인 그는 시종일관 무뚝뚝한 얼굴로 동네를 활보한다. 빵 맛이 바뀌었다고 자주 다니는 베이커리에 쫓아가 따지기도 하고 길고양이가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구석구석 막아 놓기도 하는 걸 보면 여간 까다로운 성격이 아니다. 타인의 말을 오해하거나 갑자기 큰 소리를 낼 때는 피하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동네 사람들과도 도통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같은 마을에 살고 있지만 그에게 친한 이웃은 하나도 없다. 집에서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고 카메라를 만지는 것이 그의 낙이다. 그가 찍은 사진을 좋아하는 청년, ‘쇼고’(쇼메타니 쇼타)만이 교장 선생님의 집에 드나드는 유일한 사람이다.

꼬장꼬장한 그들이 소통을 싫어하고 혼자 있기 좋아하는 이유
‘타에코’(코바야시 사토미)도 꼬장꼬장한 성격임에 틀림없다. 휴가를 왔지만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남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면 부담스러워 한다. 살갑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며 연신 ‘됐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녀는 자신의 계획에 없던 일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모른다.

자신을 찾아 멀리까지 온 제자에게도 어서 돌아가라고 눈치를 줄 정도다.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뜨개질을 하는 것만이 그녀가 휴가를 즐기는 방법이다.

‘선생님과 길고양이’(감독 후카가와 요시히로, 2015)의 교장 선생님, ‘안경’(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2007)의 타에코는 이처럼 성별도 나이도 상황도 다르지만 타인과 소통하기 싫어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두 사람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교장 선생님은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슬픔 때문에 아내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을 모두 멀리하게 되었고, 타에코는 휴대폰이 조장하는 정신없는 일상에 지쳐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신경 쓸 여유를 잃어버린 듯 보인다.

그런데 이들이 변하기 시작한다. 교장 선생님의 마을에는 집집마다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길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교장 선생님에게는 ‘미’, 미용실에서는 ‘타마코’, 여학생에게는 ‘치히로’, 가게 점원에게는 ‘솔라’로 불리는 이 길고양이(이하 타마코)는 동네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고 있다. ‘

선생님과 길고양이’는 타마코가 보내는 하루의 여정을 타마코의 시점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사실 이 가게, 저 가게에서 밥을 얻어먹는 처지인데도 타마코는 늘 당당하고 거리낌이 없다.

집고양이가 누리지 못하는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담벼락이나 돌 위에서 사람들을 관찰할 때, 타마코는 이 마을의 수호동물인 양 영적인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타마코의 일과 중에는 교장 선생님을 방문하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교장 선생님은 아내가 고양이를 애지중지 하던 기억 때문에 매번 타마코를 쫓아내 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마을에서 고양이 네 마리가 변사체로 발견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타마코도 마을에서 사라져 버린다. 누군가 고양이를 상대로 나쁜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교장 선생님은 누구보다 앞장서 타마코를 찾아 나선다. 여기에 타마코에게 하루의 위안을 얻던 마을 사람들이 줄줄이 동참한다.

그들의 변화가 시작 된다
‘안경’은 쉼을 찾아 한적한 바닷가 마을을 찾은 교수의 여행기 정도로 요약할 수도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는 한 마을이 가진 남다른 매력을 타에코라는 이방인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타에코는 미리 예약해 놓은 ‘하마다’라는 민박집으로 들어간다. 손님이 많이 오는 게 싫어 간판도 아주 작게 만들어놓은 하마다에서 타에코는 이 마을과 숙소에 정해진 일과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아침마다 손님들의 잠을 깨우고,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메르시 체조를 하고, 식사를 모여서 함께 하고, 빙수를 먹는 등 타에코로서는 절대 따르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빙수 장수, ‘사쿠라’(모타이 마사코)가 있다.

사쿠라는 이른 봄 이 곳에 도착해 한 동안 하마다에 머무르며 손님을 맞고 빙수를 만든다. 마을 사람들은 친절하면서도 어딘가 마력이 느껴지는 사쿠라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눈치다. 참다못한 타에코는 급기야 다른 숙소로 이동, 아니 탈출까지 시도하지만 그 곳에는 훨씬 더 혹독한 규율이 기다리고 있다. “저희 마린 팰리스에서는 오전에는 밭일을 하고, 오후부터는 공부를 합니다.

여기에서는 (중략) 우리가 자연의 혜택에서 살고 있다는 체험을 하죠. 태양, 그리고 우주 만물에 경의를 표하며 하루하루를 지내자 라는 콘셉트예요.” 밝은 얼굴로 타에코를 맞아준 숙소 직원의 말에 타에코는 당장 그 곳을 나온다. 이 곳의 콘셉트는 하마다 보다 훨씬 더 타에코의 취향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차를 타고 한참 왔던 길을 터덜터덜 걸어서 돌아가는 타에코는 지칠 대로 지친 모습이다. 구원자처럼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사쿠라 앞에서, 타에코는 짐가방을 버리는 것으로 자신이 하마다의 방식에 동참할 것임을 증명해 보인다.

비록 계획했던 대로 휴가를 즐기는 데는 실패했지만 하마다의 생활에 감사하게 된 타에코는 다음 날부터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빙수를 즐기는 등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고양이의 소중함을 깨달은 후, 사람들과의 관계에 적극적이 된 교장 선생님의 모습과 흡사하다. 그렇게 마음을 열고 나자, 놀랍게도 타에코의 휴가는 훨씬 즐거워지기 시작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속담이 그녀의 상황과 잘 들어맞았던 셈이다.

타에코가 느껴보고자 했던 ‘슬로우 라이프’의 행복은 사실, 그녀가 처음에 이질감을 느꼈던 이 곳 주민들의 생활과 사고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례로, 사쿠라가 만들어 주는 빙수를 먹을 때, 사람들은 마주 앉는 법 없이 바다를 보며 나란히 앉는다.

떠들썩한 대화를 하지 않아도 조금 떨어져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각자의 사색에 잠겨 있는 모습은 이 마을의 성격을 대변한다. 그것은 출신도 성향도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살면서 같은 것을 누리며 서로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이상적인 한 마을의 이미지로 연결시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마을은 타에코에게 함께 아침마다 체조하는 즐거움, 빙수의 기쁨, 사색의 묘미를 알려준다.

가까워져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교장 선생님의 변화도 극적이라 할 만하다. 타마코의 행방을 알기 위해 가가호호를 방문하고 주민들과 전단지를 만들고 붙이는 등 협력하게 되면서 그는 이웃들과 지난 몇 년간보다 더 많은 대화를 하게 된다. 처음에는 교장 선생님이 어렵고 그와의 대화가 어색했던 사람들도 그의 따뜻한 속마음을 알게 되자 점차 그를 가깝게 느끼기 시작한다.

경직된 외모와 어울리지 않게 얇은 고양이 소리를 내며 애타게 타마코를 찾아다니던 교장 선생님은 이제껏 해보지 못했던 경험들을 하게 된다.

늘 깔끔하던 옷은 점점 더러워지고 단정했던 모습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타마코를 좇아 전봇대를 기어 올라가는 바람에 경찰서에 출두하기도 하고, 젊은 사람들에게 난생 처음 꾸지람까지 들으면서도 교장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그의 의지는 타마코를 모질게 대했던 데 대한 미안함 뿐 아니라 다른 이웃들에게도 타마코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를 깨닫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한 여학생이 타마코가 자신의 자살을 막아 주었다고 고백하자 더 격렬하게 고양이를 찾아 헤매는 모습에서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교장 선생님의 열심에 고양이를 못 마땅하게 여겼던 주민들조차도 도움을 주게 되고, 함께 고양이를 좋아했던 이웃들은 그가 본래 언어유희를 즐길 줄 아는 유쾌한 사람이었음도 알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타마코는 종적을 감춤으로써 오랫동안 끊어진 채로 있었던 교장 선생님과 이웃들의 관계를 이어준 것이다. 영화 후반부 교장 선생님이 ‘소중하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하는 대상은 타마코에서부터 고양이를 좋아하던 아내와의 추억, 그리고 타마코를 매개로 가까워진 여러 이웃들 모두로 확장시켜볼 수 있다. 그에게는 소중한 것들이 아주 많이 생겼다.

이제 타에코는 이른 봄이면 하마다에서 주민들과 함께 사쿠라를 기다린다. 제자도 그녀 뒤를 따른다.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게 해준 마을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하마다에서는 여전히 사색이 특기인 사람들이 또 다른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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