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주민자치 전면실시
최근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내년도에 주민자치회 전면실시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준비로 분주하다. 워킹그룹을 만들어서 담당공무원은 주민자치위원이나 지방의회의원, 학계 전문가 등과 함께 구체적인 주민자치회 운영의 제도설계와 운영설계에 여념이 없다. 예를 들어 주민자치회가 전면실시하게 되면, 수당 지급이나 실비지급에 대한 근거 규정을 만들어 둬야 하고, 주민자치회의 정수를 어떻게 해야 하며, 위원의 선정은 어떻게 하고, 주민자치회의 재정 확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외국인 거주자는 참여할 수 있는 것인지, 주민으로서의 참여란 것이 모든 가족 구성원이 참여하는 것인지 아니면 세대 중 1명만 참여할 수 있는 것인지, 위원의 임기는 단임인지 연임인지 등 논의해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주민자치회를 전면실시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회 설치 및 운영조례를 만들어야 법령상의 근거를 가지고 예산지원이나 행정과의 관계, 주민에게 권리와 의무를 부과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주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사항은 법률의 위임이 없는 경우에 조례만으로 세금을 부과하거나 자치관리비를 징수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 주민자치회를 전면실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나 비영리목적의 각종 민간단체, 직능 자생단체등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는가도 또 하나의 과제가 될 수 있다. 이 점에서 기존의 주민자치센터의 설치 및 운영조례를 완전히 폐지하고 새로운 주민자치회 설치 및 운영조례를 제정할 것인지, 아니면, 기존의 주민자치센터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일부 수정하면서 주민자치센터의 기능, 시설, 운영, 자원봉사자, 강사, 사용료, 이용, 주민자치위원회 설치와 기능, 구성, 선정심의위원회, 위원장직무, 사무국장, 회의, 협의회 등의 규정을 그대로 살리면서 주민자치회 실시에 따른 조항들만 수정할 것인지 등 새로운 주민자치회를 위한 선택과 결정이 필요하게 된다.

이 일을 담당하는 공무원이 주민자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는가에 따라서 관치적 주민자치의 연장선상에서 관련된 제도설계 및 운영설계라는 길로 빠질 수도 있고, 주민자치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생각과 철학, 가치를 가지고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의 취지와 가치에 부합하는 제도설계와 운영설계의 길을 선택해 나갈 수도 있다. 이 글을 통해 실무에서 주민자치회의 새로운 출범을 위해 준비하는 공무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몇 가지 적어보고자 한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 속 주민자치
지방자치법이 32년 만에 전부개정됐다. 2020년 12월 9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지방자치의 주체가 주민이 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됐다. 지방의회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제고해, 지방의회가 정책능력을 제고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고, 특별자치단체를 설치하거나 특례시와 인수위원회제도를 새롭게 도입함으로써, 지방행정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또 중앙지방협력회의를 신설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를 국정의 동반자로서의 위상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지방자치법을 전부개정하게 된 것은 한국이 자치분권의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지방자치를 통해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여야 간의 평화로운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주의의 보다 성숙한 발전 그릇을 만드는 역할을 견고히 하기 위함이다. 이번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에도 협치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국정의 균형발전정책에도 기여할 수 있는 기반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방자치법의 전부개정은 ‘주민 중심의 지방자치’를 구현하겠다는 21세기 한국 지방자치 분권의 가치와 철학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즉 기존의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에서 주민은 없고, 지방자치단체만 있는 ‘단체자치’ 중심의 지방자치법이었던 것이다.

획기적인 주민주권을 구현하기 위해 이번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은 법체계에서도 목적규정인 제1조에서 ‘주민의 지방자치행정에 대한 참여에 관한 사항’을 추가했고, 법 제17조에서는 주민의 권리를 확대해 ‘주민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결정 및 집행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신설’한 것이다. 즉 이전의 지방자치법에서는 주민은 자치단체의 재산과 공공시설을 이용할 권리로서의 소비자로서 인식됐고, 균등한 혜택을 받을 권리라는 추상적 권리와 선거에 대한 참정권을 가진 유권자로서 인식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을 통해서는 주민이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결정과 집행과정에 참여할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주민의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주민조례 발안제(제19조), 주민감사 청구인수 하향조정(제21조), 청구권기준 연령완화(제21조), 자치단체 기관구성 형태 다양화(제4조) 등을 통해 주민의 지방자치에 대한 권리를 보다 강화하고 있다.

정작 알맹이는 빠져버린 격
그런데 이번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에서 정작 주민의 자치에 관한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는 근린정부 형성권에 해당하는 ‘주민자치회’ 규정이 삭제됐다. 원래 정부안으로서 국회에 넘어간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 의하면, 주민자치회 근거 규정이 제26조에 존재했었다. 그런데 이것이 지난 21대 국회에서 심의·의결되면서, 추후의 논의로 남겨두면서 삭제된 것이다.

원래 정부 제출 법률안에서는 주민자치회는 ‘풀뿌리자치의 활성화를 위해 읍·면·동별로 주민자치회를 구성해 운영할 수 있다’고 했고, 주민자치회의 기능으로서 “1) 주민의 화합 및 공동체 형성, 2) 읍·면·동의 행정기능 중 주민생활과 밀접한 사무에 대한 읍·면·동장과의 협의, 3)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위탁하는 사무의 처리, 4) 지역발전과 주민의 복리 증진, 5) 그 밖에 관계 법령 또는 조례 규칙으로 정하는 사항”으로 돼 있었다.

또 주민자치회에는 대표자 1인을 포함한 위원을 두도록돼 있었고, 주민자치회의 위원은 ‘주민자치회의 회원 중에서 지역 내 주민의 대표성을 고려해 주민자치회가 선정하며, 명예직으로 한다’고 돼 있었다. 주민자치의 재원과 관련해서는 ‘주민자치회는 그 운영 및 기능수행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자치회의 운영 및 기능수행에 필요한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또 주민자치회는 기능수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다른 주민자치회와 연계해 주민자치협의체를 구성·운영할 수 있고, 주민자치회 또는 주민자치협의체의 구성 및 운영 등에 필요한 사항은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하는 범위에서 주민자치회가 규약으로 정한다고 돼 있었다.

그런데 새롭게 국회에서 의결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에서 ‘주민자치회’에 대한 법률 조항이 빠져버렸다는 것은 앞으로 주민자치회에 대한 의미와 대책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라는 난제가 남겨져 있는 셈이다. 왜 주민자치회에 대한 근거 조항이 빠져버렸고, 이에 대한 국회 차원의 대책이 무엇인가가 궁금하다. 당시의 논의과정에서 별도의 주민자치법률을 만들어서 주민자치에 대한 제도설계를 새롭게 하기 위해 근거 규정이 빠졌다는 설도 있고, 국회의원들이 주민자치에 대한 법률을 명문화시키는 것에 대한 합의를 하기 어려웠다는 설도 있다. 어찌 됐든 현재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에서 주민 중심의 지방자치를 새롭게 구현하겠다고 하면서, 주민에 의한 근린자치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 규정이 빠져있다는 것은 화룡점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민주권 강조와 참여 근거 마련했으나 핵심인 주민자치회에 대한 규정 없어 주민자치 현장에 혼란 커지고 있어"

물론 정부안으로서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에서 다루고 있는 주민자치회가 주민자치의 기본가치와 철학에 부합하지 않는 여전히 관치적인 측면이 있다는 비판과 주민자치가 자치로서의 자기입법과 자기통제가 가능할 수 있는 근린자치정부로서의 제도설계가 돼 있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었다. 무엇보다도 주민자치로서의 지방자치 규모로서 읍·면·동은 너무 그 규모가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크다는 점이다. 또 주민자치에는 주민자치정부와 공동체자치는 구분해야 하는데, 양자가 서로 혼합돼 있어, 주민자치를 공동체자치 정도로 인식한다는 문제제기도 있었던 것이다.

이상적 주민자치 만들기 위한 노력 이어져야
그렇다면 현재 2021년의 시점에서 국회를 통과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을 가지고 주민자치회는 어떻게 그 앞길을 헤쳐나가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주민자치회를 시범실시했던 시·군·구나 앞으로 전부실시를 추진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의 입장에서 상당한 혼란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

주민주권에 입각한 주민자치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기획하고 구상하는 주민자치회의 모습은 상당히 다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의 주민자치위원회와 주민자치센터를 승계하면서 주민자치회에 대한 기획을 준비하는 지방자치단체도 있을 것이고, 완전히 새로운 주민자치회를 시민사회의 NGO나 학계의 전문가들과 주민자치회 시범실시를 했던 주민참여자들과 함께 숙의토론해가면서 쟁점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는 지방자치단체도 있을 것이다.

이미 선도적으로 시민주권에 입각한 지방자치를 선도하려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주민총회를 기획하고 실행해보면서 한국의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이상적인 풀뿌리 민주주의로서의 주민자치를 만들어가는 곳도 있고, 주민참여예산제도나 참여형 구역자치계획 등을 활용하면서 주민자치의 체감도를 높여가는 곳도 있다.

또 주민자치회는 그 규모나 단위가 읍·면·동이 너무 크므로 통리 단위로 조직돼야 하고, 주민총회를 통한 타운미팅형의 자치권한이 부여되고, 자치규약을 통해 자치입법권이 부여돼, 주민이 자치관리에 필요한 세원을 부담하게 해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주민자치회의 전면실시를 준비하는 공무원들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제도기획보다는 현실성을 감안하고, 실현가능성을 고려하면서 점진적으로 제도를 만들어갈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성과 지역 실정을 감안하면서 조금씩 만들어가되, 주민자치가 가야 할 이상적인 비전과 시민사회의 시민성을 깨우고 성숙하게 하는 교육의 장이고 생활 공화정의 장으로서 만들어가야 할 꿈을 버리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현실의 공무원만으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 있으니, 지역사회에서 가용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도움과 소통, 협력을 구하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김찬동 충남대학교 자치행정학과 교수
김찬동 충남대학교 자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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