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의 사회보장 준비해야
코로나-19는 한국 사회에 내재한 여러 문제를 표면화시켰다. 특히 사회보장 영역은 그 정도가 심각해 기존 제도의 한계와 결함을 극명하게 드러냈고, 사회보장의 재구성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 감염병 재난은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이번 위기를 기회로 삼아 기존의 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발상과 그것의 과감한 실천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은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사회보장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사회보장 재구성의 기본 방향 :
자율성, 포괄성, 보편성 그리고 개인 단위

개혁은 기존의 것을 점진적 방식으로 조금씩 고치기보다는 과감한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며 이러한 방식이 위기의 국면에서 분출한 국민의 요구와 지지와도 상응한다. 무엇보다도 이 방식은 원칙을 분명히 하고 이에 근거해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해야 일관성과 체계성을 담보할 수 있다.

첫째, 사회보장체계는 각 구성 요소들의 자율성에 기반을 두면서 이들을 체계적으로 연결한다는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사회보장은 크게 소득보장, 고용보장, 사회서비스보장 등 세 개의 하위 체계로 구성되는데, 각각은 자체 적으로 완결성을 갖춰야 하며 서로 간의 중복은 피해야 한다. 개인이 아팠을 때 소요되는 비용을 예로 들어 보자. 소득보장은 해당 비용을 포함해야 한다고 여기기 쉽지만, 이 비용은 건강보장체계가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처리하는 것이지 소득보장을 통해 처리할 바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소득보장이 담당해야 할 몫은 현격히 축소된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 중 대부분은 사회서비스보장을 통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사회보장체계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유럽의 국가들이 자영업자, 소상공인, 프리랜서 등에게 파격적 지원을 신속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들이 소득, 고용,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모든 국민에게 기본적인 욕구/필요를 충족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지출(social expenditure)의 총량이 크고 포괄적인 소득보장제도를 가진 국가일수록 경제위기의 충격, 특히 소득 감소의 충격을 흡수하는 효과가 크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사회지출 중 대부분은 평상시에 작동하는 것이지 위기 상황에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고용보장의 혁신 방향 :
고용유지의 관행화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강화

코로나-19 사태는 고용의 3대 지표인 취업자 수, 고용률, 실업률은 2020년 5월 이후 지속적으로 악화시키고 있다(통계청, 「고용동향」, 2020. 12.). 특히 전년 동월에 비해 취업자 수가 9달 연속으로 하락한 것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21년 만에 처음이다. 이런 충격파는 반대급부로 고용유지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유럽 국가들이 가장 공들여 지원한 것은 바로 이 고용유지였다. 고용유지를 위해 다량의 현금지원을 제공했으며 유급휴가를 크게 확대했고, 재택근무와 같은 새로운 근무 형태를 확대했다. 물론 이것들은 이미 있었던 것이지만 코로나-19 국면에서는 보다 의미 있는 수단이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러한 조치들을 코로나-19 사태의 종결 후에도 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즉 회사의 재무적 수익에 집착해 해고하기보다는 사회적 관점에서 고용유지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관행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일자리를 옮기거나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경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직업 재훈련과 직업 재교육이다. 스웨덴의 경우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있어 가장 앞선 예를 보여준다. 우리나라도 10여 년 전부터 직업 재교육에 대한 지원이 늘기 시작했는데 교육의 질이 낮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지금도 일고 있다. 따라서 직업 재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획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이 분야에서 교육을 담당할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매우 시급한 과제이다.

소득보장의 혁신 방향 :
생애주기별 다양화 통한 소득보장의 보편성 실현

코로나-19가 불러온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전 국민 고용보험의 도입이다. 우리나라 소득보장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광범위한 사각지대에 있다. 고용보험의 경우 취업자의 절반 정도가 미가입 상태에 있기에 ‘반쪽짜리 보험’이라 비판받아 왔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실직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영업자와 임시직 근로자여서 실제로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는 경우가 적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더욱 부각됐다. 이에 정부는 프랑스와 덴마크의 선례를 따라 소득에 기반한 전국민 고용보험의 도입을 결정했고, 2020년 12월에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비록 자영업자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제시되지 않은 한계는 있으나 환영할 만한 변화이며 추진해야 할 방향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전 국민 고용보험으로는 소득보장체계의 부족함을 메울 수 없다. 고용보험은 실직한 상태에서 작동하는 것이고 급여의 제공 기간도 1년이 채 되지 않아, 고용된 경험이 없거나 장기실업자에게는 그림 위의 떡이다. 뿐만 아니라 소득보장의 대표 격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적용 대상자가 전 국민의 3%가 채 되지 않기에 보편성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보다 보편적 소득보장제도의 구축이 필요하며 이것이 최근에 기본소득제도가 각광받는 이유이다.

"코로나로 사회보장의 미비점 드러나 자율성, 포괄성, 보편성의 원칙에 따라 개혁적인 사회보장 재구성 필요해"

개인적 소견으로 보면, 기본소득은 사회보장이 기반하고 있는 원리와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어서 여기서 다루기는 곤란해 보인다. 사실 기본소득이 달성하고자 하는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득 보장’은 여타의 소득보장제도들로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아동수당을 18세까지 확대하고 청년들에게는 청년수당을 장년에게는 장년수당 그리고 65세 이상부터는 기존의 기초연금을 제공함으로써 모든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할 수 있다.

소득보장은 소득의 상실이나 감소를 메워주거나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취업해 임금을 받고 있는 상태라면 그것 자체가 소득보장이 성공적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이 경우에는 별도의 소득보장을 위한 조치를 할 필요가 없다. 결국, 취업 상태에 있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생애주기별로 사회수당의 성격을 갖는 현금급여를 제공함으로써 모든 국민은 최소한의 소득이 보장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상병수당과 유급병가수당의 도입이 필요하다. 코로나-19는 감염자에게는 질병으로 인한 휴직을 유발했고 가정구성원에게는 감염자의 사후 간병과 돌봄에 대한 부담을 낳았다.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들은 상병수당을 도입하고 있어 질병으로 인한 휴직 기간 동안의 소득 감소를 메워준다. 또한 간병과 돌봄 제공자에게 병가휴직과 병가수당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 두 제도가 아직 도입되지 않았는데, 이번 코로나-19사태는 이 두 제도가 매우 유용한 제도임을 다시금 보여줬다.

사회서비스보장의 혁신 방향 :
지역화, 비대면서비스 개발, 재가서비스 중심

코로나-19는 음압병상의 부족과 취약계층(영유아, 노인, 장애인)에 대한 돌봄의 공백 상태를 야기하면서 우리나라 사회서비스보장체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이에 대한 여러 대응방안을 고민하게 했다.
우선 지역 중심으로 감염병의 대유행 및 장기화에 대비해 의료시스템의 수용 능력을 확대하고 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실 이 대응방안은 이미 결정된 바가 있지만 불충분하게 집행됐다. 사실 보건의료 분야는 중앙집권이 아니라 지역분권화가 필요한 대표적인 영역이다. 선진국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광역 단위나 여러 개의 기초자치단체를 묶은 단위에서 보건의료정책을 관장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단지 정책의 방향성만을 제시하고 결과에 대한 감사를 할 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는 지속적인 요구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지역화가 달성되지 않았고, 감염병 관리의 미진한 현실은 그 결과 중 하나이다.

코로나-19가 사회서비스보장에서 비대면서비스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의료계에서는 원격진료, 디지털 인프라 구축 등 다양한 비대면 모델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돌봄 분야에서의 논의는 미약한 수준인데, 돌봄서비스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서비스를 직접 제공해야 하는 특성 때문이다. 일부 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비대면서비스를 조심스럽게 시도하고 있지만, 소독 및 방역 장비의 부족, 온라인 장비와 사용기술의 부재, 비대면 관련 프로그램 운영 경험 미흡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19가 진정되더라도 앞으로 대면서비스와 비대면서비스의 혼용을 도모해 비대면서비스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서비스의 다양화를 달성해야 한다.

"결국 증세가 필연적인 상황에서 공론화 통해 공감대를 구축하고 새로운 재원 마련에 고심해야"

코로나-19는 대규모 시설에 대해 철퇴를 내렸다. 2020년 3월의 1차 유행기에는 요양시설에서의 감염이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같은 해 9월의 2차 유행기에서는 요양시설에서의 집단감염이 문제가 됐다. 만약 소규모 시설이 중심이었다면 코로나-19에 대한 대처가 보다 용이했을 것이다. 물론 유럽의 경우에는 소규모 시설에서도 코로나-19 감염사례가 많았기에 한계가 있음도 분명하다.

이런 맥락에서 강조되는 것이 재가서비스의 확충이다. 재가서비스에서 대면서비스는 1대1로 이뤄짐으로써 감염 예방 조치의 실행이 보다 용이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돌봄 영역에서는 재가서비스로의 전환이 전 세계적 추세이다. 즉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재가서비스의 확대와 해당 서비스의 질을 제고하는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기회에 시설서비스에서 재가서비스로의 전환을 정책 방향으로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사회보장 재정체계의 혁신 방향 :
새로운 조세와 재원의 활용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우리 사회는 사회보장의 확대에 대한 공감대가 커졌다. 보편적 복지, 해고 방지와 고용유지를 위한 적극적인 정부 지원, 기본적인 소득의 보장 등에 대한 지지의 상승이 나타났다. 하지만 복수의 여론조사들은 사회보장의 확대를 위한 증세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여전함을 보여준다. 복지 확대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고 확대되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이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증세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모순적 인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이런 모순적 상황은 증세에 대한 국민적 공론화 과정의 부족에 기인한 바가 크다. 경기도가 최근 2년에 걸쳐 시행한 기본소득 도입 및 재원방안 마련과 관련된 ‘2020 도정정책 공론화조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기본소득제 도입 시 추가적인 세금 부과에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2019년에는 1차 39.4%, 2차 57.0%, 3차에서는 75.1%가 찬성했고, 2020년에는 1차 34%, 2차 46%, 3차에서는 67%가 찬성했다.

즉 공론화 과정을 통해 기본소득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재원을 자신의 주머니에서 내겠다는 판단도 높아졌다. 이는 사회보장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 논리이다.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수록 국민은 증세의 필요성을 받아들이고 감당할 가능성이 높다. 시급히 공론화에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까? 낭비되는 예산을 찾아내고 경제발전에 사용되거나 토목사업에 소요되는 재정을 사회보장으로 돌리는 구조조정, 조세감면제도의 전면적 축소, 기존 조세의 세율 인상 등은 자주 거론된 방안이다. 여기서는 새로운 조세와 수입원을 강조하고자 한다. 최근 지식, 정보, 사회인프라 등 공동의 소유로 볼 수 있는 공유부에 대해 그리고 그것을 사용해 얻는 소득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자는 논의가 있다. 그리고 탄소세와 같이 환경과 관련된 새로운 세금도 전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새로운 조세를 도입해 사회보장 확대의 재원으로 활용할 만하다. 우리나라의 공기업이 얻는 수익 중 일부를 재원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대부분 공기업은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수익을 자체 내에서 금융자산으로 전환해 보전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이 수익들을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보장의 재원 체계가 가야 할 방향은 지역화폐의 사용이다. 특히 현금급여는 지역화폐의 사용을 심도 있게 고려해야 한다. 지역화폐의 성패에 대한 연구가 많지는 않지만 아직까지는 유용하다는 연구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지역화폐와 사회보장 재원과의 연관은 향후 사회보장의 지방분권화와도 연결된다.
사회보장의 대부분은 중앙정부가 일괄적으로 운영하기보다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그 책임을 가져야 하며 그에 대응하는 재정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즉 지자체가 직접 조세를 걷고 그것의 사회보장에의 사용을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이 경우에는 지역화폐의 활용은 주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국민 역시 능동적 자세 가져야
타국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방역체계의 성공으로 커다란 피해를 피해가고 있다. 이런 성공은 정부와 일선의 방역 전문가들의 공도 크지만 무엇보다도 국민의 참여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국민의 노력은 수동적인 성격을 갖는다. 자신의 피해를 피하고자 하는 노력이었고 당국의 요청에 단순히 응한 측면도 있다. 이제 우리 국민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전환해야 할 때이다.
선진국의 예처럼, 평상시의 사회보장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위기 시에도 삶의 질의 하락은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이를 적극적으로 요청해야 한다. 이런 요구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며 변화의 출발점을 제공할 것이다.

이권능 정책연구소함께살기 소장
이권능 정책연구소함께살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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