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문화에세이] 선암사(仙巖寺) 가을로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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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문화에세이] 선암사(仙巖寺) 가을로 떠나다
  • 김철모 시인, 정읍문학회장
  • 승인 2021.02.09 1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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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주는 선암사

<선암사仙巖寺 늦가을>
산 정상에서 움튼/ 화려한 외출은/ 계곡에 다다라/ 사시사철 흐르는 물에/ 자취를 묻힌다/ 경내 이곳저곳 흐르며/ 세상 잡내를 물어다/ 작은 연못에 잠시 가둬 두었다가/ 토에 내기를 여러 차례/ 조계산 계곡물에 합수하면서/ 천년고찰 선암사는 몸소/ 세상 순리를 보여주고/ 작은 연못에 노니는 잉어는/ 범인凡人들에게/ 어변성룡魚變成龍의/ 꿈을 주며/ 희망을 전하고 있다.

가을날, 36주년 구혼舊婚여행을 밤바다가 아름다운 여수를 찾아 바다 내음과 정취를 만끽하고 돌아오던 길에 선암사에 들렀다. 선암사는 2009년 12월 사적 507호로 지정됐으며 2018년 6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해남 대흥사 등 7개 사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찰로 유명하다.

승주 IC에서 고속도로를 내려 상사호를 따라 굽이굽이 선암사로 가는 길은 동자승의 출가 길에 밟고 갔을 어머님의 눈물과 수없는 각오였으리라. 상사호 상류의 굽이 친 구석마다 호수에 몸을 담은 가을 풍경은 곳곳마다 한 폭의 동양화가 병풍을 이루고 있었는데 세속을 벗어나 중생을 구원하러 나선 길이 이리 아름답다면 너나 할 것 없이 나서고 싶은 길이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수행을 떠나는 출가 길은 자신을 수없이 시험하고 자신의 한계에 수없이 도전과 응전으로 점철된 고행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선암사에 닿기 위해서는 조계산의 속살을 한 가닥 한 가닥 살펴봐야 가능하다. 선암사 초입, 우리를 처음 맞는 것은 신선이 올라갔다고 전하는 아치형의 승선교昇仙橋이다. 선암사 수호자라 불리는 호암대사가 자신을 구해준 관음보살을 기리기 위해 원통전과 함께 1698년에 무지개 다리를 세웠다고 전한다. 승선교 무지개다리 사이로 내비친 강선루降仙樓는 선암사의 경치 중 백미이자 선암사를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자연과 건축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여주는 누각형 건물로 산사 입구부터 우리를 긴장하게 만든다.

조용히 전해지는 깨달음
본격적으로 선암사 경내에 들어서면 여느 사찰들과 달리 한 촌락을 형성할 정도의 가람배치에 놀란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형성된 동서남북 가람의 배치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는 고향 마을과 같다. 이러니 사찰이라기보다 고향 마을에 온 기분을 느끼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사찰이 풍기는 엄숙함보다는 고향의 정취가 넘쳐흘러 오랜만에 찾은 고향의 아득함을 느끼게 한다. 좀 늦은 가을에 자아내는 산사의 천장 뚫린 파란 하늘과 벌써 겨울 속으로 자리 잡은 형형색색 갈아입은 조계산의 화려한 외출이 경내에 서 있는 편백나무와 농익은 은행나무와 함께 조화를 이룬다. 못내 마지막 가을을 보내는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산사의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다른 산사와 달리 유달리 색다른 모습은 유원지 못지않은 잘 가꿔 놓은 정원과 함께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세상의 순리를 전하고자 하는 작은 수로들이다. 물방울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작은 시내를 이루고 다시 수로를 따라 내려가 작은 탕에 이르러 다른 곳에서 내려온 물과 몸을 섞는다. 그리고 넘쳐 큰 탕으로 흐른 뒤 또다시 다른 수로에서 흘러 내려온 물과 한 몸이 돼 잠시 머물렀다가 또다시 낮은 곳으로 흐른다. 결국 우리에게 욕심이 과하면 넘치기 마련이고 과한 것이 좀 부족함만 못하다는 이치와 세상은 물 흐르듯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전하고 있는 듯해 지난 온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

그 대표적인 곳이 달마전 석조이고 삼인당三印塘이다. 이 달마전 석조는 거칠고 모난 심성이 불교의 수행생활을 통해 다듬어지고 더 나아가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처럼 서로의 높낮이와 크기를 적절히 4단으로 배치돼 있다. 첫단은 상탕으로 다기물 청수라 해 부처님께 올리는 청정수를 말한다. 두 번째는 중탕이라 해 일반 스님과 대중들의 음용수로 밥을 짓는 용도로 사용하고, 세 번째는 하탕이라 해 세수를 하거나 의복을 빠는 데 사용한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 허드레 탕이라 해 해우소를 다녀와서 손을 씻는 용도로 사용하니 사람도 그릇에 따라 용처가 있고 역할이 있음을 깨닫게 하고 있다.

이처럼 흐르는 물을 가두었다가 다시 흐르게 하면서 산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묵언의 수행을 전하는 선암사가 돋보인다. 태고종 총림과 조계종 제20교구 본사로서 단연 승려들의 수행도량으로 왜 자리 잡고 있는지 백번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리고 세상의 시름을 내려놓고 결국 자연에게 자양분을 주는 양반집 별채만한 뒷간 또한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준다.

조금 일찍 선암사를 찾았더라면 어떠했을까. 가을 산사의 또 다른 매력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길 떠난 조계산의 단풍을 제대로 전송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또 하나 일정은 내년 봄 연두 옷으로 갈아입을 즈음 이곳을 다시 찾고 싶다. 상사호 수변에 어우러진 수양버들과 조계산에 푹 빠져 있는 산사를 보고 싶다. 고향의 봄, 고요함과 아름다움이 흐르는 이곳, 산사로 떠나는 여행을 감행하기를 권하고 싶다.

김철모 시인, 정읍문학회장
김철모 시인, 정읍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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