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멸과 농촌융·복합산업 육성의 의의
최근 지방 소멸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되거나, 위험을 자각하는 지역 대부분은 일찍이 과소화·고령화가 진행됐던 농촌 지자체이다. 지방 소멸의 위험이 과장됐다는 견해도 존재하지만, 농촌의 축소는 부인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농촌의 위기는 농촌 경제의 근간이 됐던 농림업의 위상과 궤를 같이한다. 1971년 국가 총생산에서 농림업 부가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26.2%에 달했으나,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8년엔 1.8%로 감소했다. 농가소득에서 농업소득이 차지하는 비중도 36.1%(2018 농가경제통계)에 불과하다.

농림업의 정체에 따른 경제적 기회 감소, 그리고 인구 유출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대한 근본적 대응 없이 농촌의 지속가능한 유지와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OECD는 농촌 정책 3.0(Rural Policy 3.0)으로 명명한 새로운 농촌 정책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농림업 진흥에 초점을 둔 기존 정책 접근에서 발전해, 농촌 정책의 핵심이 지역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 국가 혹은 글로벌 가치사슬에 편입할 수 있는 다양한 기반산업 육성으로 옮겨가야 함을 강조한다.

농촌융·복합산업 정책 추진 경과 및 성과
이러한 배경에서 농업·농촌의 위기를 극복하고, 농촌경제 활성화를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농촌융·복합산업 육성 정책(6차산업화 정책)이 추진돼오고 있다. 2014년 <농촌융·복합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으며, 동 법률에 의거 2015년에는 농촌융·복합산업 육성을 위한 기본계획이 수립돼 농촌융·복합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추진체계를 갖췄다.<농촌융·복합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농촌융·복합산업은 “농업인 또는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자가 농촌지역의 농산물·자연·문화 등 유형·무형의 자원을 이용해 식품가공 등 제조업, 유통·관광 등 서비스업 및 이와 관련된 재화 또는 용역을 복합적으로 결합해 제공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하거나 높이는 산업”으로 정의한다.

농촌융·복합산업 육성 정책 이전부터 농업·농촌에 기반한 산업 육성을 위한 여러 정책은 추진돼왔다. 농촌융·복합산업이 기존 정책·사업과 구분되는 점은 법률에 정의에서 나타나 듯이 농촌 지역의 산업 성장 경로를 반영한 경로의존적인 산업 육성을 꾀했다는 점과 그 과정에서 가치사슬의 지역 내착근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농촌의 기반산업 육성을 통해 귀농·귀촌, 청년 창업·창농 등 농업·농촌의 선순환 생태계 조성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를 지원한다는 점에서 기존 정책과 차별성을 가진다.

농촌융·복합산업 정책은 그 내용에 따라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된다. 정책 초기에는 농촌융·복합산업 가치사슬에 편입할 수 있는 경영체 육성에 초점을 두었다. 농가 및 농업법인의 다각화를 지원하고, 새로운 경영체의 창업, 인증경영체와 같은 우수 경영체의 육성을 통해 농촌융·복합산업의 외연확장을 꾀했다. 2016년부터는 기존 경영체 육성에서 발전해 지역 단위 농촌융·복합산업 육성으로 정책의 기조가 전환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특화품목을 중심으로 생산·가공·유통·관광·수출 등에 종사하는 경영체들이 네트워크 구성, 가치사슬 효율화 등을 통해 집합적 활동에 기반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역단위 시스템’으로 지역 단위 6차산업시스템을 정의하고 농촌 지역의 기반산업으로서 농촌융·복합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농촌융·복합산업 지구사업, 지역 단위 네트워크 구축 지원, 지역 단위농촌관광, 시·도 농촌융·복합산업 지원센터 운영 등이 지역단위 농촌융·복합산업 육성 일환으로 추진되는 사업들이다.

정책 추진과 경영체들의 참여 확대로 농촌융·복합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농업법인 중 가공, 유통, 체험·관광 등 농업 생산 외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법인 수는 2010년 5천249개에서 2017년 1만 2천566개로 증가했다(농림축산식품부, 「2017 농업법인조사」). 농식품부가 인증하는 농촌융·복합산업 인증업체 수 또한 2015년 802개 경영체에서 2019년 11월 기준 1천623개로 증가했다. 경영체 수 증가뿐만 아니라 농촌융·복합산업 생산활동을 수행하는 농가 및 경영체들의 경영 여건 또한 개선됐다. 2018년 기준 농촌융·복합산업 인증경영체 평균매출액은 11억 3천만 원으로 전년(10억 4천만 원) 대비 8% 증가했으며, 평균 고용 창출 인원 또한 12.0명으로 전년(11.4명) 대비 5.2% 증가했다.

농촌융·복합산업은 농촌 지역의 지역 경제 활력을 높이는데도 기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농촌융·복합산업지구로 선정돼 지원 사업이 종료된 4개 지역의 경우, 평균 매출액이 2015년 128억 9천만 원에서 2018년 197억 원으로 약 54% 증가했으며, 방문객 수 또한 2015년 72만 4천 명에서 2018년 96만 6천 명으로 증가했다. 또한 농촌융·복합산업의 성장은 지역에서 1차 생산의 동반 성장을 견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2016년 농촌융·복합산업지구로 선정된 강릉·평창의 경우 2016년 약 52억 원이었던 지역 내 원물(배추) 매출액이 2018년 약 61억 원으로 증가했다(농림축산식품부 내부자료).

순창군 건강장수연구소(자료 : 순창군 건강장수연구소 제공)
순창군 건강장수연구소(자료 : 순창군 건강장수연구소 제공)

농촌융·복합산업 육성 사례 및 시사점
농촌융·복합산업 육성은 농촌에 새로운 경제활동을 이식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득기반을 안정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소멸 위기에 직면한 농촌의 유지와 지속가능한 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충남 논산시에 위치한 ‘궁골식품’은 농촌융·복합산업 경영체가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기존 지역 농업의 활력을 다시금 회복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009년 설립된 궁골식품은 도시에서 귀촌한 창업주가 마을의 주력 생산품인 콩을 판매한 데서 시작했다. 마을 주민과 함께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하고, 가공제품 생산·판매 및 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사업의 영역을 확대했다. ‘궁골식품’ 노동자의 80%는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들이다. 새로운 경제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농촌의 취약계층도 농촌융·복합산업이 성장함에 따른 이익 공유를 보여 주는 사례이다(성주인 외 3인, 2015, 「제1차 농촌융·복합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기본계획 수립방향 연구」, 농림축산식품부).

완주 로컬푸드는 농촌융·복합산업 성장의 파급효과가 지역 전반으로 확산된 사례다. 완주로컬푸드협동조합과 지역농협을 중심으로 농민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직거래 플랫폼을 활성화시키고, 거점가공센터 조성, 가공 공동체 육성, 농가레스토랑 운영, 도시민 대상 체험프로그램 운영 등 다양한 농촌융·복합산업 생산활동을 추진해오고 있다. 농가 및 지역 내 경영체들은 각각의 역량에 따라 농산물 판매와 농촌융·복합산업 가치사슬에 결합하고 있다. 2018년 기준 경작 면적이 1㏊ 미만의 소농 2천500여 개 농가(전체 소농의 43%)가 참여하고 있으며, 매출액은 총 608억 원으로 처음으로 로컬푸드가 시작됐던 2012년 대비 11배가 상승했다. 로컬푸드와 관련한 순이익의 90%가 참여 농가에 환원되는 등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한편, 완주군은 2009년부터 두레농장이라는 농촌형 노인복지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두레농장은 지자체가 제공하는 농업 생산 시설에서 노인과 귀농인이 공동으로 농사를 짓는 프로그램으로, 현재 10여 곳이 운영 중이다. 사업 초기에 판로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소득 불안정성이 높았으나, 로컬푸드를 통해 판매를 시작하면서 참여 농가의 소득이 안정되고 있다(정도채 외 2인, 2016, 「지역단위 6차산업화의 추진방향과 과제」, 『농정포커스』 제123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촌융·복합산업 육성을 통해 지역의 활력을 높이는 사례들을 살펴보면, 농촌융·복합산업 육성의 필요성과 향후 활성화 방안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라북도 순창군은 농촌융·복합산업 지구로 선정될 정도로 장류를 중심으로 가공 및 체험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농촌융·복합산업의 대표적인 집적지 중 하나이다. 최근 장류 제품 외에도 지역의 자연환경과 장수長壽지역이라는 이미지를 활용한 새로운 농촌융·복합산업 육성을 꾀하고 있다. 순창군 건강장수연구소를 중심으로 고령화 시대에 대응한 건강관리, 바른먹거리, 식문화 체험, 자연·경관을 활용한 체류형 명상·치유프로그램 등 ‘건강·장수’를 주제로 한 다양한 체험, 관광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관광객 유치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개별관광객 유치뿐만 아니라 기업 세미나, 연찬회 등 타깃을 다 변화해 농촌형 MICE 산업 육성까지 꾀하고 있다. 순창건강장수연구소는 고령화 관련 연구개발을 추진함으로써 새로운 산업 부문의 육성을 지원하고 있으며, 지역 특산품을 활용한 식단 개발과 같이 지역의 농업·식품산업과의 동반 성장도 꾀하고 있다.

순창군 체험 프로그램(사진 : 순창군 건강장수연구소 제공)
순창군 체험 프로그램(사진 : 순창군 건강장수연구소 제공)

농촌융·복합산업 활성화를 위한 과제
OECD의 논의를 한 번 더 빌려 오면, 2000년대 중반 금
융위기 이후 기존의 산업집적지가 아니라 농촌과 같은 낙후
지역의 산업 성장이 OECD 회원국들의 경제 회복을 견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OECD는 이와 같은 현상을 ‘저밀도 경제
(low-density economy)’ 성장으로 개념화하고 농촌의 특성
에 맞는 산업 육성이 국가 경제 성장에 있어서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농촌 지역과 같은 ‘저밀도 경제’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한 전략은 산업 입지상 조건이 불리한 농촌 지역에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전문화된 영역을 발굴하는 것이고 이는 지역의 자원, 지리적 조건, 성장 경로 등과 무관하지 않다. 원격지 농촌일수록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산업, 즉 농촌융·복합산업의 육성이 지역정책의 중요한 과제로 부각된다. 아울러 농촌이 처한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기 위한 도·농 파트너십 형성, 정책 부문 간 통합적 접근 등이 강조된다(OECD, 2019. 「OECD Regional Outlook 2019:Leveraging Megatrends in Cities and Rural Areas」, OECD Publishing).

앞서 살펴본 사례 및 OECD 저밀도 경제 논의와 관련해 농촌융·복합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견지해야 할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차별화된 제품·서비스 개발을 위한 부단한 혁신이 필요하며, 정책은 이를 지원해야 한다. 농촌융·복합산업 영역에 해당하는 제조·서비스업 부문은 1차 생산물과는 달리 농정의 영역에서 보호받기 어려운 경쟁이 치열한 영역이다. 지역 특화품목의 명성이 농촌융·복합산업의 경쟁력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특산품의 명성에 기대어 단순 가공제품이나 틀에 박힌 체험·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으며, 이러한 시도들로 농촌의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반면에 지역 자원을 기반으로 연구개발·마케팅 등의 혁신활동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농촌융·복합산업을 육성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순창의 사례 외이도 충주의 당뇨 바이오산업, 장성의 컬러 푸드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시도는 실패에 대한 위험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농촌융·복합산업 육성 정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새로운 시도들을 지원하고 그 위험을 부담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둘째, 지역 단위의 협업 및 분업 체계를 구축해, 보다 많은 농가와 지역 내 생산 주체들이 참여하고, 농촌융·복합산업 육성의 성과가 지역에 착근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농가, 선도기업 등 각자의 특성과 역량을 고려해 농촌융·복합산업 가치사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데정책의 초점을 둬야 한다. 완주군을 비롯해 농촌융·복합산업육성의 성공 사례들은 지역 내 민간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가치사슬을 형성할 때, 지속적인 성과 창출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정책 및 지자체 등의 공공부문은 농촌융·복합산업 육성의 원칙과 방향 제시, 지역 단위 산업 육성 기획 그리고 지역내 협업 체계 및 거번넌스 구축 등의 제도적 기반 구축에 주력하고, 민간 주체 간 네트워크를 중개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농촌의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 외부 지역과의 다층적 연계를 형성하고 정책 부문 간 통합적 접근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OECD 저밀도 경제 논의에서도 강조하는 전략으로, 농촌 지역은 산업을 육성하는 데 상대적으로 불리한 여건이며, 따라서 도시 등 외부 지역과의 공간 연계가 중요하다. 제품·서비스의 개발 및 혁신, 판매·마케팅을 포함한 거래 네트워크 형성 등은 농촌의 여건을 고려할 때지역 내 자원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외부 주체들과의 협력 통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 이때 공간 범위는 가치사슬기능의 연계 범위를 고려해 다양한 층위의 공간 연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산업 육성을 위해 인력 유치, 정주환경 개선 등 다양한 정책 부문 간 연계가 필요하다. 일례로 농촌융·복합산업 육성에서 가장 큰 제약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는 농촌의 구인난 문제는 지역의 열악한 정주환경과 관련 있다. 기숙사, 문화시설, 복지시설의 동반집적을 통해 외부 인력을 유치한 구례 자연드림파크의 사례는 다양한 정책 영역의 고려가 중요함을 시사한다.

정도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삶의질정책연구센터 부연구위원
정도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삶의질정책연구센터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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