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우리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상태바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우리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 윤성은 영화평론가
  • 승인 2021.03.16 16: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캡틴 판타스틱’ ‘런’
사진 팝엔터테인먼트/올스타엔터테인먼트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른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산속, 자연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곳에 사슴 한 마리가 여유롭게 거닐고 있다. 갑자기 온몸에 진흙을 바른 소년이 나타나 칼로 순식간에 사슴을 잡는다. 소년이 숨을 고르는 사이, 숨어있던 아이들과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는 사슴의 피로 소년의 이마에 세로줄을 그으며 말한다. “오늘 소년은 죽었고 그를 대신해 남자가 태어났다.” ‘캡틴 판타스틱’(Captain Fantastic, 감독 맷 로스)의 첫 장면이다.

외부와의 단절을 전제로 한 가족공동체의 자기모순 ‘캡틴 판타스틱’
얼핏 광신교도들의 모습 같지만, 이것은 커뮤니티와 제도를 거부하며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첫째 아들, ‘보’(조지 맥케이)가 나름의 성인식을 치르는 장면을 보여주며 ‘벤’(비고 모텐슨) 가족을 소개한다. 수렵 채취 생활을 하는 무리들에게는 사냥이 필수적인 것이라 해도 현대 문명사회의 관점에서 십대에게 칼을 잡게 하고 사냥 능력을 성인의 요건으로 치는 모습은 꽤 충격적이다.

그러나 이 놀라운 가족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이들은 낮에는 암벽 등반, 격투 훈련 등 신체 운동을 하고, 밤에는 각 분야 석학들의 책을 읽는다. 여덟 살 막내부터 십대 초중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아이들이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아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총,균,쇠’ ‘우주의 구조’ ‘코스모스’ 등을 읽고 있는 모습은 기가 막히다. 책을 읽은 후에는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토론을 하고 시험을 친다. 게임이나 스마트폰의 방해가 없는 곳에서 행해지는 벤의 홈스쿨링, 사실상 스파르타식 교육은 환상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6남매가 모두 박식하지만, 6개 국어를 하고 하버드, 예일, 브라운, 스탠퍼드, 프린스턴, 다트머스, MIT 등 최고의 대학에 합격한 ‘보’, 권리장전을 척척 해석하고 응용하는 막내 ‘사자’ 등은 학구열 높은 부모들이 바라는 이상적인 자녀다. 특히 사자는 아기 때부터 이런 생활을 해왔기 때문인지 벤의 교육방식에 가장 잘 적응되어 있다.

"부조리한 사회를 정말 바꾸고자 한다면 아이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람들과 부대끼는 커뮤니티로 진입해야만 한다"

벤은 아내, ‘레슬리’와 함께 자본과 권력에 잠식당한 사회를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그 곳에서 플라톤이 말한 ‘이상국가’를 만들고 아이들을 ‘철인왕’으로 키워내고자 한다. 아이들의 신체적, 지적 수준만 보자면 부부의 계획은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외부와의 단절을 전제로 하는 벤 부부의 가족공동체는 자기모순도 내포하고 있다.

어떠한 위험과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신체 훈련과 지식은 고인물처럼 그들 내부에서 썩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령, 아이들이 사회로 나와 다른 사람들과 섞이기 전에 외국어가 필요할 리 없다.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지식이나 의식도 마찬가지다. 부조리한 사회를 정말 바꾸고자 한다면 아이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람들과 부대끼는 커뮤니티로 진입해야만 한다.

또한, 이들에게는 ‘현실’과 ‘실제’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상태다. 벤과 함께 마을에 내려간 보는 여자애들과 친해지고 싶지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할지조차 모른다. 또래들의 일상을 누리지 못하기에 공통의 관심사조차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막 성인식을 마친 보는 7장의 대학 합격통지서를 들고 진짜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한다. 너는 이런 대학에서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하는 벤에게 보는 말한다. “내가 뭘 아는데? 난 아무 것도 모르는 별세계 괴물(freak)일 뿐이야. 아빠가 우릴 괴물로 만들었어.”

엄마에게 모든 것을 통제당한 장애인 딸의 불가능한 ‘탈출’ 미션 ‘런’
대학에 갈 날만을 기다리는 십대가 또 있다. ‘런’(Run, 감독 아니쉬 차간티)의 ‘클로이’(키에라 앨런)는 하반신을 쓸 수 없고 천식과 알러지, 당뇨까지 있는 장애인으로 십수 년 간 집에 감금되다시피 하며 지내왔다.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은 클로이의 홈스쿨링 교사이자 유일한 친구이며 말동무다. 엄마를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대학에 가는 것 외에는 자유를 누릴 명분이나 방법이 없는 상태이기에 클로이는 합격 통지서가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리는 우편물은 오지 않고 엄마의 쇼핑백에서는 처음 보는 약통이 발견된다. 분명 엄마의 이름이 쓰여 있었던 그 약을 엄마가 자신에게 건네자 클로이는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천신만고 끝에 약의 정체를 알아낸 클로이는 이제 엄마에게서 필사적으로 도망쳐야 하는 입장이 된다. 그러나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에게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미션과도 같다.

클로이의 집은 무선전화나 인터넷이 잘 되지 않을 정도로 마을과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다이앤이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고 클로이가 이웃과 가까워지지 못하도록 고립된 장소를 택한 것이다. 이처럼 지역 사회에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거의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이앤 모녀, 특히 클로이는 벤의 아이들과 비슷한 상황이다. 다이앤이 마당에 직접 농작물을 키워 음식을 해 먹는 모습까지도 닮아 있다. 휠체어 없이 이동이 어려운 클로이는 사실 그 동안 인식하지 못했을 뿐 지금까지 다이앤에게 모든 것을 통제당해 왔던 것이다.

아예 사회 시스템을 거부하고 숨어서 살다시피 하는 벤 가족이야 사각지대에 있었다 치더라도 다이앤 모녀의 경우에는 지역사회가 이들에게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의혹이 남는다. 주민들이 딸에 대한 다이앤의 광적인 집착이나 장애아인 클로이의 생활에 대해 무지, 혹은 무심하다는 것은 여러 장면에서 알 수 있다.

다이앤의 정신 병리학적 징후는 영화 초반부부터 드러난다. 홈스쿨협회 월간 미팅에서 딸이 곧 대학에 갈 텐데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스태프에게 다이앤은 이렇게 말한다. “클로이를 키운 17년 동안 여행도 외출도 데이트도 안 했는데 걔는 어디론가 가서 실컷 즐기게 됐네요. 기분 더럽게 좋아요.” 영화적으로는 이 신이 관객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알려주는 복선의 기능으로 삽입되었다 해도, 현실이었다면 이 모녀의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이후, 클로이가 도움을 요청하는 약사는 지나치게 눈치가 느리고, 우체부도 다이앤이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감지하지 못한다. 클로이 집의 인터넷선 만큼이나 커뮤니티의 보호막도 불안정하고 미약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웹 서핑을 하지 못하는 것보다 훨씬 가혹하다.

지역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홈스쿨링’의 결과는?
‘캡틴 판타스틱’은 벤의 가족, 그 중에서도 벤의 성장을 담은 작품이다. 건장하고 지적인 그는 여섯 아이들을 철인왕으로 훈련시키고 교육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반항적인 십대 자녀들이 대들다가도 결국 순종하는 것은 그가 ‘캡틴 판타스틱’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울증 때문에 병원에 있던 레슬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벤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숲 속에서 이렇게 아이들과 홈스쿨링을 하며 살면 아내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틀린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벤에게 두 번째 충격은 가족 모두가 레슬리의 장례식에 참여한 후 넷째 ‘렐리안’이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겠다고 통보하면서 발생한다. 장인은 양육권을 신청하겠다고 하며 벤의 교육방식이 얼마나 잘못되고 위험한지 조목조목 지적한다. 죽음을 무릅쓴 암벽등반, 진짜 무기(단도) 선물, 대형마트 털기 등은 사회적으로도 용인되기 어렵지만 윤리적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것들이다. 그 동안 당당하기만 했던 벤은 장인 앞에서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그토록 무시해왔던 커뮤니티의 울타리와 교육 시스템을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한다. 잠시 후 렐리안을 데려오기 위해 지붕으로 올라갔던 셋째 ‘베스퍼’가 떨어져 죽을 뻔한 사고를 당하자 벤은 이상국가가 판타지에 불과함을 처절히 깨닫고 반성한다.

홈스쿨링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아이들을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데 효율적 방식이라면 선택지는 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역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상태로 이루어진다면 부모의 심리적, 물리적 상태나 가치관에 따라 얼마든지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보호자들의 각성이 필요한 부분이다. 동시에 마을은 아이들의 안전과 행복권을 위한 연대책임을 갖고 안전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