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들고 있으면 바보 vs 현금 최대한 보유해야
“현금을 들고 있으면 바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번지는 반면, “지금이야말로 현금을 최대한 보유해서 다가오는 투자기회를 노려야 한다”라는 상반된 의견도 팽팽하다. 전자는 코로나-19 이후 저금리 속에서 유례없이 급격히 팽창하는 유동성 공급이 구조적으로 일정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데 주목하는 견해이다. 유동성의 급속한 회수는 취약한 실물경제를 한층 더 붕괴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후자는 코로나 사태가 백신과 치료제의 보급 등을 통해 상당 정도 종식되면서 경제가 정상화되면 풀려나간 유동성의 축소가 불가피한데, 그 이유는 불가피한 인플레이션이 명목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비정상적 거품을 보여준 자산시장의 정상화 즉, 큰 폭의 자산가격 하락을 예상하게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달러의 살포는 유례없는 일로 알려져 있다. 2008년 이후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수습하는 기간의 통화량 증가율과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전자가 산술급수적 증가라면 후자는 가치 기하급수적이라 할 만하다. 달러의 증가는 타국의 입장에서는 대對 환율의 하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국의 통화량 또한 증가시키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가히 전 세계적인 유동성 증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고용 등 실물경제에 대한 코로나-19의 충격이 파괴적이라 할 만큼 심각한 것인 반면, 부동산과 주식시장 등 자산시장의 놀라운 활황 또한 세계적 현상이다.

코로나-19 관련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경제회복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물론 미국과 유럽처럼 자체 백신을 만들어 보급할 능력이 있는 지역과 백신이 확보되지 않거나 여전히 상황을 관리할 수 없는 지역(국가)의 경제회복 속도와 길은 다를 것이다. 미국과 유럽 지역도 코로나-19에 대한 상황관리가 매우 낙관적인 경우에라야 2021년 하반기 정도나 회복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예측이 다수이다. 백신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지역의 경우는 그 이후나 2022년 이후로 경제회복을 미루는 전망이 설득력 있다. 그만큼 코로나 종식을 둘러싼, 아니 종식이 될 것이냐 하는 문제까지를 포함해 불확실성이 매우 크며, 그 경제적 효과와 향후 경제구조에 미칠 영향을 재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지난 연말 이래 미국 금융계와 금융학계, 연방준비은행 간 큰 논쟁적 이슈는 코로나가 어느 정도 종식돼 가는 경우 출구전략은 어떠해야 하는가로 모였다. 지금과 같은 초저금리와 유동성 증가를 일정 기간(파월의 말로는 3년 내외) 용인하며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은 감수하면서 속도 조절을 할 것인지, 아니면 선제적 금리 인상을 통해 유동성 관리의 의지를 분명히 하고 인플레이션에 선제대응할 것인지의 정책적 선택에 관한 논쟁이다. 투자자들에게는 사활을 건 전망이 될 터이다.

제롬 파월 미국 연준 의장은 2019년 3월에 인플레이션율이 2%(통상 물가상승률 2%는 미국 연준이 긴축이냐 완화냐를 결정하는 주요 기준으로 알려져 있다)를 좀 웃돌더라도 과잉대응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최근에도 ‘기준금리 조정을 서두르지 않는다’는 방침을 재확인함으로써 자산 매입을 축소하는 논의나 금리 인상 문제는 논의할 단계가 아니며, 이를 논의할 만큼 미국경제의 목표에 미치지 못했음을 분명히 했다.

반면 “펜데믹 이후 상상도 못 한 인플레이션이 온다”는 지난해 미국경제학회에서 나온 주장이다. “지난 30년간 못 봤던 인플레이션이 온다”는 국내에서도 파장을 일으킨 월가의 보고서 내용이다(CNBC에서의 제임스 비앙코의 인터뷰 등). 그 근거는 보고서마다 다양하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2008년 이후의 통화 팽창, 그리고 코로나 사태 이후 그 이전의 어떤 경험도 필적할 수 없는 통화 팽창이다. 2020년 이후의 달러화 증가량을 보면, 2008년 이후의 통화 증발은 장난스러운 수준이다. 그 돈들은 다 어디 갔으며 어떤 일을 하고 있나가 바로 앞에서 제기한 출구전략에 대한 답을 찾는 한 고리이다.

괴리를 보이고 있는 실물경제와 자산시장
그 이전부터 진행됐지만 코로나-19 이후 더욱 뚜렷해진 현상이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의 괴리다. 전 세계 GDP가 폭락하고 실업률은 폭등하고 기업의 폐업은 늘어나기만 하는데 주식, 부동산, 금, 은, 구리 등 광물, 골동품, 심지어 비트코인까지 가격이 폭등하는 이 괴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경제 위기라 해도 무방할 실물경기 침체는 주가와 부동산 가격의 하락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가고 있다.

이 괴리에 대한 설명을 거칠게 정리해 보자면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거품론이다. 여기서 거품이란 합리적으로 그 가격이 정당화되지 않는 상태로 정의한다. 또 하나는 이와 달리 정당화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어느 쪽이나 공통적으로 무제한의 통화공급에 따른 유동성 과잉을 원인이나 배경으로 지적한다. 거품론은 현재의 자산가격 급등이 실물경제에 의해 뒷받침될 수 없는 과잉유동성의 효과일 뿐이고, 따라서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정당화될 수 없다는 낯익은 설명을 제시한다. 그러나 거품이 경기과열이 아닌 마이너스 성장과 경제침체와 함께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 이 입장에서는 코로나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가고 경제가 정상화되면 거품인 자산가격은 폭락하게 된다. 따라서 선제적 금리 인상과 유동성 관리가 필요하다.

한편 현재의 자산가치 상승이 정당화될 여지가 있다는 입장은 두어 가지 갈래를 갖는다. 증시가 코로나 이후 예상되는 급격한 회복을 미리 반영한다는 천편일률적 입장을 제외한다면, 하나는 양극화와 산업구조 변화에서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현재 미·중 증시를 끌고 가는 기업인 아마존, 애플, 테슬라, 넷플릭스, 알리바바 등은 신산업에 속하며 이들 신산업의 미래가치가 폭주하는 증시를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광범한 좀비기업의 존재와 이들의 덩달아 부풀어진 거품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 다른 설명은 ‘숨겨진’ 인플레이션론이다. 무제한 양적완화로 화폐량이 엄청난 속도로 증가하고 있을 때 경제 주체는 당연히 화폐가치의 하락에 직면하게 되고 이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는 실물자산을 구입해야 한다. 대표적인 실물자산은 부동산과 기업자산이므로 현재의 자산과 실물의 괴리는 화폐가치의 하락을 반영하는 것이다. 일반 상품의 경우는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인플레이션을 표현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 이후에 유동성 증가를 둔화시키면서 자산가치의 폭락을 피하고 안정화시키는 것이 합리적인 출구전략이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숨겨진 화폐가치 하락(인플레이션)의 방식을 끌고 가자는 것이다.

급증했던 부채는 숨겨진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면서 그 가치가 하락하고 10년~20년에 걸쳐 감가된다. 임금의 자산 대비 가치는 폭락하는 셈인데 임금 대비 일반 상품의 가치도 안정적이므로 큰 문제로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이 파월식 출구전략이 의미하는 것이라면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추가적인 실물경제위기는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장기적 저성장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유철규 성공회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유철규 성공회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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