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뜨거운 감자, 기본소득] 기본소득과 사회보장 재정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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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뜨거운 감자, 기본소득] 기본소득과 사회보장 재정의 개혁
  • 유종성 가천대학교 리버럴아츠칼리지 겸 사회정책대학원 교수
  • 승인 2021.03.1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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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찬반 논란
코로나-19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선별보상과 함께 보편지원 요구가 끊이지 않는 것은 피해자를 선별하거나 피해의 정도를 측정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해의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재난기본소득 논의와 함께 보편적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회적 위험이 보편화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다.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 극심해지고 노동시장의 이중화가 심화하면서 불안정 고용과 저소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안정노동자의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고용주와 피고용자가 분담하는 사회보험료를 기반으로 하는 고용보험과 공적연금 등 소득보장 사회보험 제도가 탈산업화 시대의 이중 노동시장에는 정합성을 잃게 되면서 사회보장의 이중화가 심화되고 있다. 공공부문이나 대기업 정규직 등 고용안정과 고소득을 누리는 이들이 사회보험의 보호를 더 많이 받고 있고, 불안정 저소득 취업자들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있거나 약한 보호만을 받는다. 이에 따라 보편적 기본소득이 21세기 새로운 사회보장제도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에 대한 회의론과 반대론도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특히 기본소득이 기존 사회보장제도를 대체하거나 축소할 것에 대한 우려와 함께 기본소득 도입보다는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보완, 강화가 바람직하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한정된 복지 재원의 사용을 빈곤, 취약계층에 집중해야지 굳이 부자에게까지 기본소득을 줄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또, 노동이나 사회적 기여 없이 무위도식하는 사람에게까지 기본소득을 지급해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냐는 질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기본소득론자들은 기본소득은 토지, 환경 등 공유자원으로부터의 수익을 모두가 나누는 것으로서 천부적 권리임을 강조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은 이 같은 공유부(common wealth)의 개념을 확장해 오늘날 사회적 생산의 90%는 개개인의 기여라기보다는 과거로부터 축적돼 온 지식, 기술, 제도 등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90%의 소득세가 마땅하지만, 70%의 소득세를 부과해 세수의 절반으로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한다.

기본소득이 소득재분배효과 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기본소득을 사회적 기본권이라고 할 때 납세의 의무가 수반된다는 것이다. 현재 소득이 없어서 기본소득을 수급하기만 하는 사람도 과거에 소득세를 냈거나 후에 소득이 생기면 세금을 낼 것을 전제로 한다. 즉, 무임승차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며, 상습 체납자는 당연히 수급자격을 상실한다. 또한, 부자는 기본소득으로 받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세금으로 낼 터인데,천부적 권리를 부자라는 이유로 박탈할 이유는 없다. 또한, 같은 금액을 받아도 소득이 전혀 없거나 적은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큰 혜택이 된다. 즉, 모두가 자신의 능력에 따라 기여하는 한편 천부적인 공통의 몫을 똑같이 지급받으면, 자연스럽게 소득 수준에 따른 차등 지원, 차등 기여가 이뤄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8년 전체 가수들의 원천징수 사업소득평균과 최상위 1%, 차상위 9%, 하위 90% 가수들의 평균을 비교해보자. 전체 평균소득은 6천430만 원인데, 최상위 1%는 평균 34억 4천700만 원을 벌었고, 그다음 9%는 평균 2억 5천880만 원을 벌었다. 하위 90%의 대다수 가수는 평균소득이 480만 원에 불과하다. 만일 이들에게 기존의 세금 외에 10%의 소득세를 추가로 부과해 세수 전액을 모두에게 똑같이(1인당 643만 원씩) 기본소득으로 나눠준다면 최상위 1%의 가처분소득(세전소득 – 세금 + 기본소득)은 평균 31억 873만 원, 하위 90%의 가처분소득은 1천75만 원이 돼 이들 간 소득 격차가 718배에서 289배로 줄어든다. 만일 20%의 소득세로 기본소득을 지급한다면 최상위 1%의 가처분소득은 27억 7천46만 원, 하위 90%의 가처분소득은 1천670만 원이 돼 소득 격차가 166배로 줄어든다.

이처럼 정률 소득세를 기반으로 하는 기본소득으로도 상당히 큰 재분배효과를 낼 수 있으며, 누진세를 기반으로 기본소득을 실시하면 더 큰 재분배효과를 거둘 수 있다.굳이 부자를 배제할 필요도 없고 진짜 가난한 사람들을 선별할 필요도 없다. 부자에게서 빼앗아 빈자에게 나누어주는 로빈 후드(Robin Hood)식 재분배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누는 방식이다. 로빈 후드식 재분배에서는 수급자 선별 과정에서 진짜 도움받을 만한 사람들인지 의심이 개입되고 사기와 부정 사례도 있을 수 있고, 수급자들은 사회적 낙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공유부의 일부를 모두가 함께 나누는 방식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소득과 재산 등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부담하면서 천부의 권리에 따라 공동의 몫을 평등하게 분배받는 것이므로 선별에 따르는 의심과 낙인도 없고, 사기와 부정도 없고, 행정비용도 극소화된다. 재난기본소득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소득의 1%를 재난연대특별세로 내고 동일 금액의 재난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선별과정 없이 차등적인 지원 또는 부담을 하는 셈이 돼 재난으로 인한 고통 분담과 이익공유가 자동적으로 이뤄지게 된다.

우리의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재분배효과 낮아
한국의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재분배효과는 어떠한가? OECD에 의하면 2015년 한국의 공공사회지출은 GDP의 10.2%, 재분배효과가 4.4%였다. 공공사회지출 비중은 OECD 평균(20.5%)의 절반에 달했지만, 재분배효과는 OECD 평균(14.9%)의 30%에 그쳐 최하위권에 속했다.즉, 한국은 사회보장 지출 규모가 작기도 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도 매우 열악하다.

한국의 사회보장제도가 이처럼 재분배효과가 작은 것은 조세를 기반으로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공적부조의 비중이 낮고, 공적연금과 고용보험 등 고용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보험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2018년 4/4분기 가계동향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2인 이상 가구에 속한 노인 1인당 공적연금(국민연금, 공무원·사학연금 등 직역연금) 수급액이 소득 1분위는 월평균 19.2만 원, 5분위는 월평균 235.1만 원으로 나타났다. 1인가구를 보면 1분위 독거노인은 월평균 5.2만 원, 5분위 독거노인은 월평균 209.2만 원을 수급했다. 기초연금이 노인빈곤 및 소득불평등 완화에 약간의 역할을 하나그 금액이 너무 적어서 노인빈곤율이 OECD 평균의 4배로 압도적 1위라는 불명예를 유지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연금에는 소득재분배 기능을 강하게 넣었는데, 이것이 작동하지 않는다.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들은 국민연금가입을 기피하거나 보험료 불입을 못해서 은퇴 후 혜택을 제대로 못 받는 것이다.

고용보험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가 최근 전국민 고용보험 또는 전 국민 고용안전망을 이루겠다고 천명했으나, 저임금/저소득 불안정취업자가 많은 한국의 현실에서 현재의 고용보험제도를 유지하면서 모든 취업자를 포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통계청의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에 의하면, 비정규직 임금근로자 748만 명의 월평균 임금은 172만 9천 원으로 실업급여 하한액 월 180만 원보다 적었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평균 근속기간이 2년 5개월로 정규직(평균 7년 10개월)에 비해 고용불안정성이 훨씬 더 심해 고용보험이 더 절실히 필요한데도 고용보험 가입 비율이 44.9%에 불과했다. 특히, 비정규직 중 고용보험 미가입자 412만 명의 월평균 임금은 145만 2천 원에 불과했고,최저임금 미만자의 비중이 44.6%에 달했다. 국민연금 가입률도 4.2%에 불과했다.

정부의 중장기 사회보장재정추계에 따르면, 이처럼 고용보험도 공적연금도 불안정 저소득 취업자들을 사실상 배제하고 있는 현재의 사회보장제도를 그대로 유지해도 고령화의 결과로 2060년이면 한국의 공공사회지출이 GDP의 28.2%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한다. 복지지출 규모로만 보면 복지선진국이 되지만, 사회보장의 이중구조와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온존하며, 재분배효과가 낮은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다.

GDP 10%의 기본소득을 도입해야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기본소득으로 기존 소득보장제도(고용보험, 공적연금, 공적부조)를 “전면” 대체하는 방안과 “부분” 대체하면서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을 통해 이중구조 해소와 재정 안정을 동시에 이루는 방안의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본다.

필자는 위의 첫 번째 대안보다는 두 번째 대안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GDP 10%(1인당 평균 월 30여만 원 수준) 내지 15%(1인당 평균 월 45~50만원 수준) 규모의 ‘생애주기형(연령에 따라 지급액 수준에 차등을 두어 가령 아동은 월 15만 원, 75세 이상 노인은 월 60만 원)’ 전국민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고용보험과 공적연금은 재분배기능 없는 소득 비례의 ‘소득보험’으로 개편하며, 공적부조 중 상당부분을 대체하자는 것이다.

GDP 10%, 나아가서 15% 수준의 기본소득 재원 마련은 정치적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의 복지지출 규모가 2060년까지 GDP 28.2% 내외로 지금보다 GDP 17% 정도 커진다고 할 때, 이를 전부 이중적인 사회보장에 쓸 것이냐, 적어도 GDP 10%는 기본소득에 사용할것이냐 하는 선택의 문제이다.

필자는 GDP 10% 규모의 기본소득은 차기 정부의 의지만 확고하면 5년 내에 가능하다고 본다. 2015년 기준 한국의 공공사회지출(GDP 10.2%)이 광의의 조세 부담(사회보장기여금 포함, GDP 25.2%)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6%로서 OECD 평균인 60.8%의 2/3에 불과하다. 재정지출구조의 개혁으로 복지지출 비중을 OECD 평균 수준으로 올리면서 추가분을 기본소득 재원으로 사용하면 GDP 5%의 재원이 마련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본예산이 400.7조 원이었는데, 2021년 예산은 558조 원으로 157.3조 원 증가했다. 만일 지난 4년간 재정 증가분의 2/3를 기본소득 예산으로 확보했다면 100조 원(GDP 4.2% 정도)의 재원이 마련됐을 것이다.

다음으로 보편적 증세 및 부자 증세를 통해서 GDP 5%를 마련하면 된다. 소득세의 비과세 감면 정비, 보편적인 토지보유세의 강화 및 부유세의 도입, 탄소세의 도입, 상속증여세의 강화 등을 통해 GDP 5% 이상의 증세가 충분히 가능하다. 증세만을 하면 조세저항에 부딪히겠지만, 증세와 기본소득을 동시에 병행하면 국민의 대다수는 순수혜자가 되고 기본소득보다 세금 부담이 더 많아지는 순부담 계층은 상대적으로 소수일 뿐 아니라 자신들만이 징벌적 세금을 내는 게 아니라 공평하게 부담하는 것이므로 크게 저항하기 어려울 것이다.

차기 정부가 5년 임기 내에 GDP 10%의 기본소득을 도입하고 중장기적 사회보장 재정의 개혁을 추진할 것을 기대한다.

유종성 가천대학교 리버럴아츠칼리지 겸 사회정책대학원 교수
유종성 가천대학교 리버럴아츠칼리지 겸 사회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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