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뜨거운 감자, 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 도입 논란과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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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뜨거운 감자, 기본소득] 농민기본소득 도입 논란과 필요성
  • 유찬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 승인 2021.03.1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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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논의 본격화
기본소득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만 기본소득 관련 법안이 3건 발의됐고, 2020년 12월 22일에는 「기본소득공론화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다. 최근 기본소득 논의는 일자리가 없는 시대에 대비해 안전망을 제공하고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며 기본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힘을 얻고 있다(이원재, 2020, 「기본소득제- 정의, 쟁점, 전망」 『시선집중 GSnJ』, 제280호,GSnJ Institute). 국내에서는 2015년 성남시가 청년배당,2016년 서울시가 청년수당을 도입하면서 논의가 본격화 됐다(조권중·최상미·장동열, 2017, 『기본소득의 쟁점과 제도 연구』, 서울연구원).

이 가운데 농업 부문에서도 2020년 2월 출범한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를 중심으로 이른바 농민기본소득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기도에서 2020년 2월「경기도 농민기본소득 지원 조례안」을 발의했으나, 조례안이 가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2021년 예산 176억 원이 의결됐다.

한편 2018년 해남군에서 처음으로 조례를 제정하면서 확산되고 있는 농민수당, 2020년 5월 도입된 공익직불제와 맞물려 논의 지형이 사뭇 복잡하다. 농민기본소득과 다른 제도 간 관계가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고, 농민기본소득 자체를 둘러싼 논쟁도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관련 쟁점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농민기본소득을 둘러싼 주요 논쟁을 정리하고 과제를 제안하고자 한다.

쟁점 1 : 농민기본소득과 기본소득 원칙 합치성
기본소득이 갖춰야 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보편성(“누구에게나 준다”), 무조건성(“노동을 하지 않아도 준다”), 개별성(“개개인에게 준다”)이다(강남훈, 2014, 「집중탐구 :모두에게 존엄과 자유를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는 ‘기본소득」, 『계간 민주』 제10권: 136-157.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농민기본소득은 무조건성과 개별성을 충족한다. 이점에서 준수사항을 요구하고, 농가 단위로 지원하는 공익직불제 및 농민수당과 다르다. 문제는 보편성이다.

원칙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줘야 하지만, 농민기본소득은 ‘농민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이다. 누구에게나 주는 기본소득을 ‘농민’에게만 준다고 하니 모순에 빠진다. 일각에서는 ‘범주형 기본소득’ 개념을 들어 특정 집단에게만 주는 기본소득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청년수당,아동수당, 기초연금 등 비슷한 제도는 나이라는 보편적인 인구학적 특성을 기준으로 하는 반면, 농민기본소득은 ‘농민’이라는 직군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요컨대,보편적 기준이라고 하기 어려운 특정 직군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 논리가 아직 부족하다.

쟁점 2 : ‘농민’의 정의와 범위 모호
현재 법이나 정책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는 ‘농업인’이다. 비록 ‘농민’의 정확한 정의가 없지만, 농민과 농업인은 다르다고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렇듯 기본소득 지급 대상인 농민과 ‘공식’ 용어인 농업인의 정의가 다르다면, 그 범위도 다를 텐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간단히 예를 들어 보자. 한 동네에서 수십 년을 살면서 농사를 짓다가 나이가 늘어 농사를 그만둔 A가 있다고 하자. A는 마을에서 오래 살면서 동네일에도 적극 참여했다.지역 정서상 A는 농민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A는 농업인이 아닐 수 있고, 따라서 각종 정책 대상에서 빠질 것이다.같은 동네에 사는 B는 한국인 팀장을 두고 외국인 근로자를 쓰면서 축산업을 크게 하는 한편, 인근 지역에서 ‘출퇴근 농사’를 짓는다. 축산을 크게 하다 보니 동네 사람들과 마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B는 제도상으로는 엄연히 농업인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B를 농민이라고 인정할까?

가상의 사례지만 현실에서 심심치 않게 마주할 수 있다.이럴 때 A와 B 중 누구에게 농민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옳을까? 이렇듯 ‘농민’의 정의와 범주가 분명하지 않기에, 그리고 지역마다 동네마다 생각하는 바가 다를 것이기에, 누구에게 농민기본소득을 줄 것인가라는 문제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쟁점 3 : 농민기본소득과 다른 제도와의 관계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농민기본소득, 농민수당, 공익직불제는 공통점이 상당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떠한 관계인지,앞으로 어떻게 운용해야 할지 공식 논의는 매우 부족하다.이는 농민기본소득의 위상과 방향성과도 관계된다. 한편에서는 농민기본소득은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나가는 교두보이고, 장기적으로 농민수당과 공익직불제 중 소농직불제를 농민기본소득에 통합해 보편적 기본소득 및 농업참여소득으로 재편하자고 주장한다(김찬휘, 2020, “보편적 기본소득과 농민기본소득 : 농민기본소득과 농민수당,공익형직불제의 관계”, 『농업·농촌의 길 2020』 제5분과 토론문). 다른 한편에서는 농민기본소득은 공익직불제 및 농민수당과 다르므로 따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유찬희·김태영, 2020, 『농가 소득 직접지원제도 실태와 과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여기에 이해관계자들의 생각이 사뭇 다르기 때문에 이쟁점을 놓고 합의가 이루어지기는 매우 어려울 듯하다.2019년 지자체 담당자와 농업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이 점을 더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다(박준기·이두영·박지연·임준혁, 2019, 『지방자치단체의 농가 소득지원 실태와 정책과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정 담당자는 지역 농업인의 요구도 중요하기 때문에 농민수당을 도입했으나, 재정 부담이 크고 다른 사업을 운용할 여력이 줄어든다고 응답한 비중이 높았다(충청남도는 농민수당을 도입하며 농업환경 실천사업을 폐지했다). 이에 정책 담당자 중 70.8%는 농민수당을 직접지불제로 통합하거나 중앙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반면 농업인은 재정 문제가 크다는 점을 알지만 지역에 농민수당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더불어 중앙정부와 지자체 중 어느 쪽이 사업을 운영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여기서 농민수당을 농민기본소득으로 바꿔도 이에 대한 지자체 농정 담당자나 농업인의 생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필요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생각과 ‘누가 운영하건 농업인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생각의 간극을 좁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편 중앙정부는 공익 직불제 안착에 가장 무게를 두고 있다. 요컨대, 농민기본소득이나 농민수당을 놓고 중앙정부-지자체-농업인(-그리고 지역 주민)이라는 이해관계자의 생각이 다르게 때문에 제도 시행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질 소지가 여전히 남아있다. 이 문제는 앞서 논의한 “왜 특정 집단에게만 지원하는가”라는 문제와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배분해야 하는가” 그리고 “누가 이 역할을 맡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동시에 얽혀 교착 상태에 놓여 있는 결과이다.

쟁점 4 : 재정 부담 가중 가능성
농민기본소득 등을 도입하려 할 때 지자체의 예산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비근한 예로 농민수당을 도입한 지자체의 2020년 예산을 살펴보자. 전라남도 1천459억 원(시·군비 875억 원), 전라북도 612억 원(시·군비 368억 원), 충청남도 1천320억 원(시·군비 759억원), 강원도 730억 원(시·군비 365억 원) 등이다. 경기도는 2021년 농민기본소득 예산 176억 원을 편성했다. 지역 특성과 지급 단가에 따라 규모는 다르지만 지자체 재정에 부담이 되리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더욱이, 농민수당 조례를 제정한 시·군 사례를 보면, 농업·농촌 예산 규모가 작은 지자체일수록 농민수당 예산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농민수당을 도입하면 지자체재정자립도나 재정자주도가 낮아진다는 결과도 이러한 현실과 무관치 않다(전성만·조기현, 2020, 『농민수당이 지방재정에 미치는 영향』,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이 문제는 농민기본소득을 도입할 때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농민기본소득의 도입 정당성 근거 마련 선행 필요
기본소득 논의가 사회 의제가 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농업 부문에서 농민기본소득 논의도 결을 같이 한다. 한편으로는 가격지지에서 소득지지(직접지불제)로 이행한 뒤 다시 발전을 꾀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고령화와 인구 과소화가 심해지는 농업·농촌의 현실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할 수 있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불요불급不要不急한 사업을 재편하고 예산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밋빛 꿈을 꾸기에 앞서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앞서 제기한 쟁점은 그 일각이다. 농민기본소득은 단순히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무엇보다 농민의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고, 농촌다움을 살리는 초석이 돼야 한다. 이 본연의 목적을 이루려면, 어느 제도가 농민의 삶을 지원하는 가장 긴요하고 적절한 방식인가라는 고민을 토대로, 지급대상을 명확히 하고 예산 효율성을 높일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 전반에서 이루어질 기본소득제 필요성 논의에 덧붙여, 왜 농민기본소득이 필요한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한다면, 농민기본소득 운동은 사회 구성원이 공감하지 못하는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찬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유찬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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