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뜨거운 감자, 기본소득] 생태적, 사회적 전환을 위한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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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뜨거운 감자, 기본소득] 생태적, 사회적 전환을 위한 기본소득
  •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 승인 2021.03.1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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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와 4차 산업혁명으로 주목받은 기본소득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소득을 보장한다는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매우 단순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해수면 위에 보이는 빙산은 전체의 10%에 불과한 것처럼, 단순한 기본소득 아이디어가 다기하고 심원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본소득의 생태적효과이다. 오늘날 인류는 심각한 기후변화와 생태 위기에 맞서서 시급하게 생태적, 사회적 전환을 이뤄야 한다는 과제가 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때 기본소득은 이런 위기를 낳은 경제 성장의 강박에서 벗어나면서도 인간의 존엄한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주요한 방책이다.

최근 들어 기본소득이 관심과 지지를 모으게 된 것은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간 일자리가 축소되고 소멸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서 대다수는 고용노동에서 벌어들인 소득으로 삶을 꾸려가고 있다. 만약 기술의 발전으로 고용노동 자체가 축소된다면 대다수의 삶 자체가 유지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제 순환의 한 축인 소비도 줄어들어 경제 자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기본소득과 같은 소득 보장이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다. 실리콘 밸리의 유명 인사들이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은 이런 배경이 있다. 이는 기본소득에 대한 소극적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현재와 같은 생태적 위기를 낳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틀은 그대로 놓아둔 채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방식으로 체제를 유지하자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에 기본소득이 주목받게 된 것은 생태적 위기에 대한 적극적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의 ‘환경적 자각’ 이후인 1970년대 초에 영국의 워런 존슨은 “환경적 방책으로서의 보장 소득”이라는 글에서 기본적인 경제 문제를 고용 유지를 위한 지속적인 성장의 필요성에서 찾았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거친 이후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는 완전고용이 필요하다는 합의가 이루어졌고, 이는 끊임없는 성장의 추구로 이어졌다. 이 속에서 과잉 생산과 과잉 소비가 나타났고, 이게 생태 위기의 근원이 됐다. 바로 이 시기에 인간의 삶과 경제가 생태적 한계 내에 있다는 『성장의 한계』(1972)가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심각한 기후변화
오늘날 우리가 기후변화로 표현되는 심각한 생태 위기를 겪고 있으며, 긴급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2018년 10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가 제출한 보고서 <섭씨 1.5도 지구 온난화>에 따르면 최근의 인위적 온난화로 인한 온도 상승은 10년마다 섭씨0.2도이며, 지금 속도로 지속되면 2030~2052년 사이에 산업화 이전과 비교할 때 지구 평균 온도가 섭씨 1.5도 상승한다고 추정한다. 그리고 이 이하로 억제하지 않을 경우 광범위한 생태적 파괴와 인간적 고통이 닥쳐올 것이라고 경고한다.

물론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 온난화만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구와 인류는 기존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생태적 한계를 넘어서는 다중적인 생태 위기를 겪고 있다. 스웨덴의 스톡홀름 회복력 센터(Stockholm Resilience Center)는 기후변화를 포함해서 대기권 오존 고갈, 생물 다양성의 상실과 멸종, 화학적 오염, 대양 산성화등 아홉 가지의 행성적 한계를 제시하고, 이 가운데 몇몇은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는 것이 가장 긴급한 과제이긴 하다. 앞서 말한 IPCC 보고서는 섭씨 1.5도로 억제하게 위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절반으로 줄여야하며, 2050년에는 순제로에 도달해야 한다. 유엔이 2019년에 낸 <온실가스 배출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매년 7.6%를 줄여야 한다.

생태적 전환의 길
이런 상황에 맞서 인류는 2015년 파리 기후협약을 맺었다. 또한 미국과 유럽연합을 시작으로 ‘녹색 뉴딜’(Green New Deal)을 긴급하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녹색 뉴딜을 간단하게 말하면 비화석연료(보통 신재생에너지라고 말한다)에 기반한 경제로 정의로운 전환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 제로에 도달한다는 포괄적인 계획이다. 에너지 체제의 전환을 위해 대대적인 공적 투자를 벌이고, 이 과정에서 좋은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한 이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부문과 지역에 대한 지원, 사회적, 환경적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녹색 뉴딜은 그 이름과 목표에서 알 수 있듯이 대규모 경기부양책이다. 따라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구체적인 방법이 결여될 경우 원래의 목표, 즉 탈탄소 경제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경기부양책이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낳은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좋은 일자리의 보장이 그렇다.

따라서 첫째, 비화석연료의 도입만이 문제가 아니라 화석연료를 경제 체제로부터 직접적으로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 중단부터 내연기관 자동차에 대한 금지에 볼 수 있듯이 직접적인 규제를 실시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 정의가 요청된다. 모두가 필수적인 수준의 에너지를 향유해야 하지만, 소수가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셋째, 경제 성장의 추구과정에서 이루어진 광범위한 생태 파괴를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녹색 뉴딜을 탈성장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지구와 인류가 처한 생태적 한계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물질적 생산에 기반한 무한한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필요하며, 인간의 살림살이를 ‘정상 상태 경제’로 돌려야 한다. 이때 정상 상태 경제는 모든 사람이 심각한 인간성의 박탈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하는 바닥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기본소득의 생태적 효과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의 정당성과 원천은 공유부에 있다. 자연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적 부도 어느 특정 개인의 야심과 노력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다. 따라서 모두가 자연적, 인공적 공유부에 대한 몫이 있다. 이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권리이다. 또한 기본소득은 개인들에게 물질적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개인의 자율성을 확대한다. 이 자율성은 두 방향을 향할 수 있다. 하나는 정치공동체에 동등한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으며, 이 속에서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소득이 보장되기 때문에 고용 노동에서 벗어나 개인적,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벌일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이다.

앞서 워런 존슨의 주장에서 볼 수 있듯이 기본소득을 통한 경제적 보장으로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필요성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기본소득의 주요한 생태적 효과이다.이에 대해 여러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말하고 있다. 기본소득이 보장됨으로써 사람들이 환경적 영향이 더 작은 자율적 영역으로 옮겨갈 수 있다거나, 물질적 소비를 적게 하고 여가를 더 많이 선택한다거나, 일자리 나누기를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기본소득의 생태적 효과는 소비주의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말하는 유한계급의 ‘과시적 소비’에서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소비는 지위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 됐다. 이런 소비주의는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이 부추기는 일이지만, 불평등이 심각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남들과 ‘구별짓기’하려는 욕망의 발로이기도 하다. 기본소득의 또 다른효과 가운데 하나가 불평등 완화이다. 기본소득을 통해 좀 더 평등한 사회가 이루어진다면 소비주의와 과시적 소비는 큰 의미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탄소세 + 탄소배당, 노동시간 단축, 사회적 경제 그리고 기본소득
생태적, 사회적 전환을 위해 가장 긴급하게 필요한 것이 탄소 배출의 감축이다. 이를 위해 화석연료 경제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방책으로 제출돼 있는 것이 탄소세이다. 탄소세는 탄소배출량에 부과하는 것이며, 이는 가격에 반영되며, 반영돼야 한다. 탄소세는 시장 가격을 통해 탄소 배출량이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퇴출시키는 개입 정책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경우 저소득층의 부담이 더 커지는 역진적 효과가 나온다는 것이며, 정치적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프랑스의 ‘노란 조끼’ 시위에서 볼 수 있었다.

따라서 탄소세는 탄소배당과 결합돼야 한다. 탄소배당은 탄소세로 거두어들인 돈 전부를 모두에게 1/n로 나눠주는 것이다. 이럴 경우 소득이 적은 사람일지라 해도 탄소세의 부담을 적게 느끼게 된다. 따라서 목표로 하는 탄소 감축량에 따라 탄소세 세율을 조정하는 것이 쉬워진다. 탄소세 + 탄소배당은 기본소득 방식이 긍정적 전환과 불평등 완화에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하지만 생태적, 사회적 전환을 이루기 위해서는 탄소세+ 탄소배당만이 아니라 충분한 기본소득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충분한 기본소득이 도입될 경우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고용 노동에서 벗어나서 자율적 영역에서의 활동으로 옮겨갈 수 있다. 또한 노동 시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노동 조건 및 생활 조건 개선을 위해, 물질적 성장의 감소를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끝으로 협동조합을 포함한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성별 분업을 깨고, 가사와 육아 등을 공정하게 분배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이다.

자연과 공생을 위한 방안의 하나, 기본소득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삶에 갑자기 들이닥친 아이러니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분명 인간의 생태계 파괴로 몸살을 앓은 ‘자연의 복수’이다. 하지만 방역을 위한 경제활동의 축소와 단절로 인해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실험을 하고 있다. 기존의 성장 일변도의 경제를 벗어나야만 자연의 회복과 인간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이 속에서 우리는 기존의 취약층이 더 어려워지고, 또 새로운 취약층이 생겨나는 것도 보았다. 이렇게 코로나-19팬데믹은 기후변화와 생태 위기라는 도전에 긴급하게 맞서야 하고, 또 그 방향과 방향이 무엇인지를 아프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것은 기존의 경제에서 벗어나야 하고, 그 과정은 정의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소득을 줌으로써 경제적 보장을 하는 기본소득이 바로 이런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좀 더 평등한 상태에서 모두가 성장의 강박에서 벗어나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 그리고 자연과 연대와 공생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그런 방향 말이다.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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