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브루클린’
사진 판씨네마/이십세기폭스코리아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달 18일, 미국에서는 이민 개혁 법안을 담은 ‘2021 미 시민권법(U.S.Citizens)’이 의회에 제출됐다. 이에 따라 1986년 레이건 대통령이 대사면을 실시한 이후 35년 만에 불법체류자 대사면이 실행될 것인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작년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호평을 이어오고 있는 ‘미나리’(Minari, 2020. 감독 정이삭)는 한국 이민자 가정을 소재로 하고 있어 시의성 또한 높은 작품이다.

자본의 출처나 감독의 국적상 미국영화로 분류되지만 익숙한 한국 배우들이 출연할 뿐 아니라 한국어 대사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국내에서도 관심이 뜨겁다. 특히 최근에 영화 뿐 아니라 예능프로그램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70대 배우, 윤여정은 각종 영화상에서 지금까지 무려 26개의 트로피(2월 24일 기준)를 들어 올리며 관록의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다.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이 작품에서 윤여정은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 ‘순이’역을 맡아 열연했는데 여러 인터뷰에서 그녀는 ‘미나리’가 이민자들에 관한 영화가 빠지기 쉬운 전형성을 탈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훌륭하다고 말한 바 있다. 즉, 이민자들은 약자 혹은 피해자이며 토착민들은 강자 혹은 가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미나리’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미나리’ 이민자 관련 영화의 전형성 탈피
미국 이민 붐이 한창이던 1980년대, ‘제이콥’(스티븐 연)은 가족들을 데리고 아칸소의 넓은 들판으로 온다. 하지만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허허벌판에 놓인 컨테이너 집이 황당하기만 하고, 농장을 일구어 성공하겠다는 제이콥의 계획도 못 미덥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안 좋은 ‘데이빗’(앨런 김)과 일찍 철이 든 누나 ‘앤’(노엘 조)은 싸움이 잦은 부모님 사이에서 눈치를 보기 일쑤다. 정이삭 감독은 자신이 기억하는 유년시절을 묘사하기 위해 데이빗의 시점을 많이 사용하는데 영어와 한국어를 함께 사용하는 소년의 눈에는 국적이나 출신에 대한 편견 없이 주변의 풍경과 인물들이 투명하게 담긴다.

농장이 자리 잡기 전까지, 제이콥과 모니카는 캘리포니아에서 해왔던 병아리 성(性)감별 일을 다시 시작한다. 모니카는 먼저 정착한 한국 중년 여성과 함께 일하게 되는데 이 곳에 온 한국 사람들 대부분 한인 교회와 관련된 안 좋은 사연이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 당시 한국 이민자들이 대개 교회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모이고 교류하면서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규모가 커질수록 다양한 문제점들이 발생했고 큰 상처를 안은 채 교회를 이탈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한 번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이민 생활의 고달픔 보다 같은 민족에게 사기 당하고 배척당했다는 배신감이 더 크게 자리 잡기 마련이었다. 제이콥에게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는 한국 이민자들에게 팔 농작물 재배를 시작하는데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국 업체가 중간에서 거래를 가로채는 바람에 몇 달 간의 수고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한다. 화가 난 그는 자신을 돕는 백인 노동자 ‘폴’(윌 패튼)에게 외친다. “도시 한국 사람들, 절대 믿지 마!(Korean People, (in a) big city, You never trust them)”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무서운 것이다
감독은 인종이나 국적, 나이만으로 사람을 재단하는 대신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더 깊이 있게 통찰한다. 일례로 폴은 시시때때로 기도를 하고 일요일에는 십자가를 매는 고행을 하는 독실한 신앙인이다. 그가 나름의 엑소시즘을 행하는 장면을 보면 여느 기독교와는 차이가 있으며 오히려 우리 무속신앙과 닮은 구석도 있다. 폴은 초라한 행색에 비상식적인 말들을 늘어놓기도 해서 동네 미국 아이들은 그를 바보라고 놀리고 확인 안 된 소문까지 퍼뜨린다. 그러나 제이콥에게 그럴 듯한 밭을 일구고 장사를 준비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폴이다. 폴은 제이콥을 믿어주고 격려하며 힘을 실어주는 존재다. 아직 사람에 대한 편견이 없는 순수한 데이빗은 늘 그를 조용히 관찰한다. 마치 그의 행동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알고 싶다는 표정으로.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 ‘순이’를 겪어 나가는 과정도 유사하다. 데이빗이 난생 처음 만난 할머니, ‘순이’는 다른 할머니들보다 훨씬 재밌고 자신에게 용기를 주며 누구보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민자들은 약자 혹은 피해자이며 토착민들은 강자 혹은 가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분이 없다는 것, 이는 ‘미나리’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병아리의 성을 감별해 수컷을 폐기하는 일은 영화의 주제를 거스르는 행위다. 제이콥은 병아리 감별사가 하찮고 저부가가치 노동이기 때문에 자기 사업을 해보려 하지만 그가 그 공장을 빠져 나와야 하는 이유는 사실 윤리적 문제에 있다. ‘쓸모없으면 버려진다. 그러므로 사람도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그의 논리에는 동물은 물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인식도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민 생활에서 제이콥이 넘어서야 할 것은 한국 60~70년대 산업화의 일꾼으로서 강조되었던 개인의 정체성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무서운 것이다’라는 순이의 대사는 여기에도 적용된다.

‘브루클린’ 아일랜드 여성의 미국 이주기...가장 큰 고충은 고독과 향수
미국으로 이주하게 된 아일랜드 여성을 조명한 ‘브루클린’(Brooklyn, 2016. 감독 존 크로울리)도 비슷한 맥락에 있는 작품이다. 젊고 똑똑하지만 일자리가 없어 주말에만 식료품점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던 ‘에일리스’(시얼샤 로넌)는 뉴욕에 정착한 한 신부님을 통해 브루클린으로 간다.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이별부터 끔찍한 배멀미, 짓궂은 하우스 메이트들까지 쉬운 것은 하나도 없지만 에일리스는 조금씩 새로운 공간에 적응해 간다.

‘미나리’에는 등장하지 않는 제이콥 가족의 초기 이주의 시간들이 ‘브루클린’에는 꽤 세세하게 묘사된다. 그러나 이 영화 역시 에일리스가 이민자로서 배척당하고 차별당하는 사건을 보여주는데 큰 무게를 두지 않는다. 그녀를 괴롭히는 것은 미국인도, 이민자들도 아닌 고독감과 향수다. 에일리스는 오직 언니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토로해 내는 한편, 낯선 도시에 익숙해지기 위해 조금씩 더 용기를 낸다. 처음에는 원대한 포부 보다 살아남는 것에 목표를 두었던 그녀지만 야간 학교에서 회계일을 배우면서부터 점점 미래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여기서 에일리스가 사랑하게 되는 남자가 ‘토니’(에모리 코헨)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의 배관공 토니는 아일리스가 미국에 정착하는 데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일 뿐 아니라 두 사람 사이에는 문화적 차이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을 꿈꾸는 대신 정직하고 성실한 남자를 만나 스스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나가는 에일리스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도 유의미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모두에게 고향이 될 수 있는 지역사회란 무엇일까
‘브루클린’에서 가장 대중적이면서 핵심적인 포인트 중 하나는 잠시 아일랜드를 방문하게 된 에일리스가 매력적인 신사 ‘짐 패럴’(도널 글리슨)을 만나 흔들리는 부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에일리스가 브루클린에서 자리를 잡아가자 엄마도, 가장 친한 친구도, 사회에서도 에일리스가 고향에 남아주길 바란다. 아일랜드에서 안정적 생활을 하는 짐 패럴은 에일리스가 다시 브루클린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결정적 인물이다. 그러나 에일리스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좋아하는 ‘미스 켈리’를 보며 다시 긴 여행길에 오를 결심을 한다. ‘이 마을이 어떤 곳인지 잊고 있었다’는 그녀의 대사는 누구나 고향에 대해서 애틋한 감정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잘 드러낸다. 에일리스에게는 자신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곳, 브루클린이 유년시절을 보낸 곳보다 더 소중해진 것이다.

‘미나리’라는 제목은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고 아무데나 쉽게 넣어 먹을 수 있는 식물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이민자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미나리도 물과 햇빛과 좋은 토양이 있을 때 더 힘차게 자라난다. 인구 절벽을 눈앞에 둔 국내에서도 많은 지역사회가 청년 인구 유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효성 있는 정책도 뒷받침되어야겠거니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더 무서운’ 편견이나 텃새도 미나리를 잘 자라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모두에게 고향이 될 수 있는 지역사회란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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