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인 전기료와 공공기관의 존재 이유
폭스뉴스에 따르면 텍사스주 알링턴의 한 주민이 평상시에는 전기료로 월평균 660달러(73만 원)를 내다가 이상 한파로 인해 1만 7천 달러(1천881만 원)의 청구서를 받는 등 텍사스 주민 2만 9천 명 정도가 이런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 왜 전기료 폭탄과 같은 불공정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텍사스주는 미국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전기 민영화를 시행하는 주이다. 감세와 민영화로 대변되는 시장의 자유를 추구하는 공화당이 주정부와 의회를 장악한 탓이다. 기업의 사익을 보장하기 위해 전력 시장에 주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공공정책이 부재한 탓이다. 공공기관이 제 역할을 못 하는 탓에 주민이 극심한 고통을 받게 된다.

만약 전기료를 전력 회사들의 주관적인 결정이 아니라 객관적인 인공지능에 의해 결정한다면 이러한 가격 폭등을 막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절대적 기준으로 여기는 객관성도 바로 공정성이 아니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하면 공정성이 확보되는가?

수학자인 캐시 오닐이 저술한 『대량살상 수학무기』는 편견과 이익에 집착하는 인간과 달리 감정이 없는 인공지능이라는 기계가 사심 없이 처리하는 객관성을 믿지 말 것을 강조한다. 오닐 박사는 2008년 월가 발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며 수학과 금융이 결탁한 파괴적 힘에 환멸을 느끼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빅데이터 경제가 실은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위험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객관성의 전형인 수학 모형 프로그램도 인간의 자의적인 선택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악한 의도건 선한 의도건 간에 인간의 선입견과 오해 및 편향성이 반영돼 코드화가 이뤄진다. 오닐 박사가 몸담았던 금융업계도 마찬가지로 인종과 부, 민족과 문화와 얽힌 편견을 코드화해 다수의 빈자와 약자는 더욱 가난해졌고 소수의 부유층은 더욱더 부유해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학 모형 프로그램의 알고리즘이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아 신의 결정처럼 반박 불가능하고 수정 불가능하게 여겨진다는 데에 있다. 현대의 수학자와 컴퓨터 과학자가 신의 뜻을 독점한 종교 사제가 된 하다. 요즘 편향적이라고 비판을 받는 다음과 네이버의 뉴스 알고리즘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식품과 의약품의 안전성과 효능을 인정하는 식약처라는 공공기관이 존재하듯이 금융 및 포탈 회사들의 수학적 모형으로 만들어진 신상품에 대해서도 불공정성과 부작용에 대해 논의하고 평가하는 공공기관이 절실히 필요하다.

공공성의 재정의가 필요한 시대 상황
미증유의 신종 바이러스와 이상 기후 변화 등이 자연으로부터 오는 위험이 증가하고,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창조적 파괴’라는 불리는 극심한 사회 변동을 겪어야 하는 ‘뉴노멀’의 시대가 도래했다.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 미국의 코로나-19 방역 난맥상과 텍사스주의 이상 한파로 인한 전기료 폭등 사례에서 보듯이 공공기관의 존재와 역할이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미래에 코로나-19와 같은 사태들을 대비하려면 공공의료기관의 확대와 공공의대의 증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이 정책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의사협회의 총파업으로 인해 아직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그런데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나라 시민은 민영화된 미국 의료 체제와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 체제를 비교하며 의료의 공공성이 국민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험했다.

사회철학적으로 공공성이란 공개성, 공론장, 공적 영역, 공익, 공동선, 공적 가치 등과 관련해서 다양하게 정의된다. 그런데 2000년대부터 경영 논리가 우리나라 행정에 도입돼 공공기관의 브랜드화와 마케팅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이러한 경향은 성공적인 경영인이자 사업가인 이명박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밑바탕이 됐다.

공공성을 추구해야 하는 행정이 이익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경영이 아닌 이유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과 우리나라의 이명박 전 대통령을 통해 입증됐다. 마이클 샌델은 『왜 도덕인가』[원제목은 공공 철학(Public Philosophy)]에서 공공기관의 상업화로 인해 국민을 고객으로 보는 관점으로 그 공공성이 훼손된다고 비판한다.

공공성을 겨냥한 시민과의 소통과 민선 공직자 홍보를 위한 일방적인 마케팅은 구분돼야 한다. 공공기관이 공공성을 독점하고 시민에게 베푼다는 시혜적 인식을 벗어던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촛불혁명 이후 시민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두고 개혁을 요구하는 (다양한 시민이 주체가 되는) 다중 민주주의 시대를 맞이했다.

세계적인 정치철학자인 네그리와 하트가 쓴 『어셈블리』에 의하면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가 엘리트들의 과두제의 게임으로 운영되고 있는 반면에, 촛불 민주주의로 인해 시민사회가 전략을 짜는 리더가 되고 공공기관이 전술을 실행하는 역할을 맡는 새로운 리더십이 출현하고 있다. 신진 국회의원들이 시민과 소통하며 입법 제안을 받는 ‘국회의원 시키신 분’ 프로젝트도 있을 정도이다.

공공성은 시민사회와 공공기관이 협력해서 만들어가야 한다. 이럴 때 자본의 지배와 착취 메커니즘으로부터 공통·공유(the common)를 지향하는 사회경제적 구조로 ‘거대한 변형’이 일어난다. 네그리와 하트에 의하면 “공유된 사회적 부, 즉 공통적인 것에 담겨 있는 부의 존재는 민주적인 정치적 대안을 조직할 필수적 토대일 뿐만 아니라, 또한 더 중요하게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재규정해 그 중심기둥에 부를 놓게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공공성을 재정의할 순간이다.

김성우 상지대학교 교양대학 조교수
김성우 상지대학교 교양대학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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