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정책제안] 청년 세대의 젠더갈등과 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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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정책제안] 청년 세대의 젠더갈등과 해소
  • 오재호 경기연구원 전략정책부 연구위원
  • 승인 2021.04.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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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의제는 어떻게 이어져 왔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단체는 1898년(고종 35년) 9월 서울 북촌 여성들이 조직한 찬양회贊養會였다. 양반 신분이었던 찬양회 여성들은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사회 활동에 참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주장을 담은 ‘여권통문女權通文’을 발표했다. 1876년부터 우리나라는 본격적으로 개화기를 맞이하면서 여성도 남성과 함께 학교 교육을 받았다.

찬양회는 그로부터 20여 년 지나 생겨났으니 교육받은 여성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찬양회는 교육을 통해 남녀가 평등해져야 한다는 가치관에 따라 7세에서 13세를 대상으로 하는 우리나라 최초 여자 소학교를 만들어 운영했다. 당시 여성들의 뜻에 따라 이 학교를 정부가 운영하는 관립으로 전환하려고 했지만 여성의 교육을 반대하는 사회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근대를 대표하는 여성단체는 1927년에 조직된 근우회勤友會다. 한자 뜻대로 풀자면 무궁화 친구들의 모임이다.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을 말하는 지금 시대에는 여성을 꽃으로 상징하는 것이 부적절하지만 당시만 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근우회는 여성이 단결해 스스로 지위를 향상하려는 취지에서 창립됐다. 여성이 봉건적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인식은 일제 강점기 민족 해방이란 시대 정신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한국사회 성평등 의제는 항일운동과 함께 수면 위로 떠올랐다. 1910년부터 1930대에 태어난 1세대 여성운동가들은 동성동본금혼령, 호주제 폐지, 대학 여성학 과목 개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여성 인권을 사회 의제로 다뤘고, 그 과정에서 많은 여성 리더가 배출됐다. 우리나라 초기 여성운동은 교육을 통해 남성중심사회를 바꿔보려는 노력이었지만, 일제 강점기와 시대적으로 맞물려 구국운동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뤄졌다.

근대 항일여성단체들은 일제 사찰로 와해됐다. 해방에 연이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동안 사그라들었던 여성운동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과 함께 다시 본격화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한국 여성운동은 독자적 의제를 중심으로 이뤄지기보다는 진보운동의 영향권 안에서 일부 영역을 차지했을 뿐이다.

여성운동이 독자적 운동으로 발전한 것은 1980년대 말부터이다. 1987년 여성 저임금과 차별적 대우를 개선하기 위해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 확립에 주목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남녀고용평등법을 제정했고, 2007년에는 이 법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로 개정했다. 명칭만 놓고 봐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과거와 크게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정치권에 진출한 진보 여성리더들은 국가에 여성부 신설을 요구했고 2001년 여성부를 공식 행정부처로서 설립했다. 이화여대 졸업생이 제기한 헌법소원을 계기로 1999년에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일치로 군 가산점제를 위헌으로 판정하고 폐지했다. 2005년에는 가부장적 제도의 상징이었던 호주제가 오랜 위헌소송을 거듭한 끝에 폐지됐다.
그 외 1994년 성폭력특별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 2004년 성매매방지법 제정, 2013년 성범죄에 관한 친고죄(고소권자가 고소해야 기소할 수 있는 범죄) 규정 일괄 삭제, 2004년 비례대표 50% 여성 할당제 의무화 등 성평등 의제에서 비롯한 여성 인권은 법·사회 제도 성과로 나타났다.

평등은 공정과 어떻게 다른가
불과 2~3년 전까지 우리나라 주요 대학에는 총여학생회가 있었다. 총여학생회는 대학의 여학생을 대표하는 기구였다. 대학 총여학생회는 남성에 비해 사회적 약자이고, 남성 중심사회에서 보호해야 할 여학생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적어도 총여학생회를 만들 땐 그랬다. 2013년 건국대학교를 시작으로 2019년 연세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주요 대학 총여학생회는 대학생들의 선거를 거쳐 사라져갔다. 존치와 폐지를 둘러싼 찬반양론이 분분했지만 결국 폐지하게 된 것은 우리 사회 여성이 더 이상 약자가 아니고 차별받지도 않는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총여학생회를 전체 학생회비로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도 작지 않았다. 평등과 공정을 구별할 때 이 대목에 주목해야 한다.

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달리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평등에 호소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권의 평등을 말하기는 해도 인권의 공정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한편, 모두가 낸 회비로 일부의 복지를 지원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공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대체로 이런 경우에는 공정한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고 말하지, 평등한 절차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평등과 공정은 모두 보편적 가치이지만, 평등은 실현할 가치의 내용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공정은 형식과 절차를 주로 겨냥한다. 그럼 이제 두 가치에 접근하기에 좀 더 명확해졌다. 남녀가 평등한가를 묻는다면 지금 우리 사회 여성의 차별받는 현실을 들여다볼 일이고, 공정한가를 묻는다면 개선하는 과정과 방식이 온당한가를 진단할 일이다.

우리나라 1990년생은 남아선호사상이 사라지고 법·제도적 성차별을 없앤 이후 태어났다. 실제로 산아제한정책으로 인해 남녀 성비 불균형이 심각했지만 2000년대 후반에는 자연 성비가 이뤄진 것을 보면, 가족 안에서 성차별이 사라지던 시기에 지금의 청년들이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지금 20세 이상 청년들은 고정적인 성 역할이나 전통적인 남성상 혹은 여성상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2018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의하면, 20대 남성 80%, 여성 83%가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응답한 데 반해, 2008년 같은 조사에서는 20대 남성 44%, 여성 61%만 그렇다고 응답했다. 한편, 2018년에는 20대 남성 41%, 여성 26%가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한 반면, 2008년 당시에는 20대 남성 72%, 여성 53%가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1970년대 출생인 지금 50세 전후 세대는 대체로 남자가 밥값을 내고, 결혼할 때 집을 마련해야 하며, 국방의 의무는 남성 몫이라고 생각했던 반면, 지금 20대 청년들은 오히려 다수가 남성만 군대에 가는 것은 차별이라고 여기는 비율이 더 높고, 남녀가 모든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바뀌었다. 이런 인식 변화는 지금 청년들이 가부장제로부터 오히려 자유롭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상시해고가 일상화하면서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가운데 지금 청년들은 여성의 사회 진입 조건이 남성에 비해 결코 열악하지 않다고 여긴다. 대학진학률은 오히려 2005년에 남녀 역전이 이뤄졌고, 같은 해 15~20세 남녀 고용률도 여성이 남성을 앞서기 시작했다. 2018년 기준 여학생 대학진학률(73.8%)은 남학생(65.9%)보다 7.9%p 높았고, 청년 여성 고용률(44.6%)은 청년 남성(40.8%)보다 3.8%p 높았다.

청년 세대 젠더갈등 본질은 공정성
남녀 대학진학률과 고용률은 연령대별로 그 양상이 다르게 나타날 것이며, 남녀 간 임금 수준, 경력 단절 등 다양한 요인 추가로 고려하면 남녀의 사회적 지위를 둘러싼 논의의 여지는 더 커진다. 여기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크게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을 적극적으로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해야 하는가에 주목해보기로 하자.

2002년 당시 20대 남성 62%, 여성 85%가 여성 할당제에 찬성했다. 16년이 지난 2018년에는 20대 남성 68%, 여성 43%가 여성할당제를 역차별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공공 및 민간에서 고용할 때 취약계층을 우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강하게 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할당제에 대해서 20대 남성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물론 20대 여성들조차 반대 여론이 늘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여성과 남성의 사회 진입 기회의 격차가 과거에 비해 개선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편, 청년 세대는 남녀 모두 범죄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며, 성범죄에 대해 강력하게 처벌하되 무고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고한 피해자 보호는 성폭력 피해 여성이 피해 사실을 주장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쟁점이 되고 있다. 성범죄에서 가해와 피해는 당사자들의 주관적인 상황 해석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일방의 주장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CCTV가 없는 장소에서 남성의 가해 여부 및 정도를 오로지 여성 진술에만 의존할 수 없다. 성범죄와 관련한 피해자 중심주의(victim-centered approach)는 사건을 해석하고 판단할 때 가해자의 의도나 경험보다 피해 당사자 진술과 관점에 중심을 두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성폭력 사건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피해자 중심주의로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다만 최근에는 피해자에게 사건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전적으로 위임하거나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권한을 줄 수 없으며, 피해자 진술이 가해자 진술에 우선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우리나라 세대별 갈등 양상은 제각기 다르다. 20대는 성 갈등, 30대는 빈부 및 성 갈등, 40대 및 50대는 빈부 갈등, 60대는 이념 및 빈부 갈등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한국리서치 조사에 의하면 20대 남성 23%가 여성이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한 반면, 20대 여성은 75%, 30대 여성은 82%가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한편, 20대 남성들은 68.7%가 오히려 자신들이 역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반면, 20대 여성 56.2%, 30대 이상 여성 70.1%는 남성 역차별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청년 남녀 누구도 이제는 성별 우대정책을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남녀 각자가 여전히 느끼는 차별들이 있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세대와 성별을 넘어 보이는 것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70년대 학번 지인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어느 날 식사 자리에서 자녀교육 이야기가 나왔는데, 본인은 평생 딸을 키우면서 ‘여자는 이러저러해야 한다’란 말을 금기로 여겼다고 한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사람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라고만 가르쳤다는 말을 마저 듣고 나서 딸의 아버지인 그의 가치관을 이해하게 됐다.

성평등을 이상적으로 실현한 사회라면 인권을 말할 때 성별 구분 없이 사람만 남을 것이다. 즉, 성별 인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 인권이 있을 뿐이다. 이는 세대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청소년, 청년, 노인은 생애주기일 뿐 청년을 위한 나라든 노인을 위한 나라든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하고, 역량에 맞는 역할이 주어질 뿐이며, 젊더라도 몸이 불편하다면 보살핌을 받아야 하고, 나이가 많아도 심신이 강건하다면 활동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이런저런 구별 형식을 걷어내면 비로소 보편적 가치가 제대로 보일지 모른다.

정책은 그 시대 상황에 맞아야 한다. 지금 청년 남성은 여성을 배려할 만큼 자신들을 수혜자라고 생각지 않으며, 청년 여성도 적극적 우대조치로 기회를 얻어야 할 만큼 자신들을 배려 대상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러니 정치권에서 청년 세대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성평등을 앞세워 남성 혹은 여성 어느 한쪽을 우대하는 정책을 추진한다면 청년들은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기성세대가 과거 청년이었던 시절에 남성이 여성에 비해 사회 진출 기회를 더 많이 얻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이 사회에서 기득권을 손에 쥔 기성세대 남성들은 한때 자신들이 많은 혜택을 누렸다고 생각해서인지 지금 와서 애써 불균형을 바로잡으려 한다. 그러나 과거 세대가 누린 혜택을 당사자 아닌 지금 청년 남성에게 내려놓으라는 요구는 부당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청년들은 우리 사회 성평등 정책을 다름 아닌 세대 간 공정성 문제로 인식한다. 공정성에 민감한 청년들이라면 자신들은 단지 공정한 세상을 원할 뿐 혜택을 바란 적도 없다고 항변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성별 우대 프레임에서 벗어나 고용, 노동, 가족 등 남녀 모두가 공감하는 가치를 중심으로 성평등 정책 방향을 새롭게 정해야 한다. 정책을 세울 때 이념, 지역, 종교 갈등이 없도록 고려하듯 젠더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여론을 양극화하고 사회 일부를 의식한 나머지 편향된 정보를 전달하지는 않는지도 다시 돌아봐야 한다.

지금까지의 성평등 의제가 주요 분야에서 여성의 지위를 끌어올리는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사회 전체 공정성 수준을 높이는 것이어야 한다. ‘사람’은 모두를 아우르는 명사이기 때문에 맥락에서 동떨어지면 모호하고 추상적이지만, 인권을 말하는 순간 더할 나위 없이 명료한 공정성의 담지자擔持者가 된다. 이제 우리 사회도 세대와 성별을 넘어 사람을 볼 때가 됐다.

오재호 경기연구원 전략정책부 연구위원
오재호 경기연구원 전략정책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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