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바꾼 풍경, 재택근무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가 광범위하게 시행되면서 근로자 상당수가 어느 날 갑자기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특정 산업이나 일부 기업에서만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재택근무를 경험하면서 생각보다는 해볼 만하다는 인식과 함께 재택근무의 정식 도입 논의도 확대되고 있다.

‘원격근무’는 ICT를 활용해 사무실이 아닌 다양한 대체장소에서 일하는 방식을 의미하며, ‘재택근무’는 원격근무의 일종으로 근로자의 집에서 일하는 개념으로 정의된다. 원격근무는 1973년 미국의 잭 닐스(Jack Nilles)가 ‘Telecommut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소개했으며, 당시 석유파동 위기를 맞아 에너지 소비를 절감하고 출퇴근에 따른 교통 혼잡을 완화하는 방안으로 제시됐다. 이후 주요국을 중심으로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 노동효율성 제고, 삶의 질 향상 요구 등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추진됐으며, 각 국가의 산업구조, ICT 인프라, 근로문화 및 노동환경에 따라 원격근무 확산 정도는 상이하게 나타나고 있다.

유럽, 노동유연성 및 일과 삶의 균형 추구
유럽에서는 2002년 EU 차원의 사용자단체 및 노동조합들(ETUC, UNICE, UEAPME, CEEP)이 참여해 ‘텔레워크에 관한 기본협정(Framework Agreement on Telework)’을 체결했다. 주요 내용으로 원격근무자의 고용 상태 및 고용 조건, 데이터 보호, 프라이버시, 작업 장비, 건강 및 안전, 훈련 등 원격근무 사용을 위한 일반적인 프레임워크를 정의하고, 각국의 경영 및 노동 관련 절차와 관행에 따라 협정이 이행될 수 있도록 했다. 텔레워크 기본협정은 이후 유럽 각국에서 원격근무 정책의 근간이 되고 있다.

유럽은 15~64세 임금근로자의 5.4%가 정기적으로 재택근무를 하고 있으며, 특히 네덜란드(14.1%), 핀란드(14.1%), 룩셈부르크(11.6%), 오스트리아(9.9%)에서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Eurostat, 2019).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원격근무가 가장 활성화된 국가로 법·제도적 기반과 우수한 ICT 인프라, 상호신뢰에 기반을 둔 근로문화가 원격근무 활성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일과 삶의 균형 및 조직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Het Nieuwe Werken(The New Way of Working)’이 확산됐으며, 이는 ICT 기반의 가상작업환경을 통해 일하는 시간과 공간을 유연화하고, 조직 및 업무 방식을 재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네덜란드 정부는 원격근무를 도입한 고용주에게 사회보장기여금을 감면하는 한편 고용주가 지불한 원격근로자의 인터넷 및 전화비용에 대해 세제혜택을 제공한다. 2016년 시행된 노동법(Wet flexibel werken)에서는 26주 이상 근무한 직원이 고용주에게 근무 장소 및 시간의 조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또한, 가정의 98% 이상이 초고속 인터넷을 사용하며, 현대식 업무공간을 제공하는 공공도서관, 인터넷이 가능한 커피숍, 유료 공유오피스 등 원격근무가 가능한 공공 및 상업 시설이 활성화돼 있다(https://www.bbc.com/worklife/article/20200623-what-the-dutch-can-teach-the-world-about-remote-work, 2021. 2. 25.).

핀란드는 1996년 제정된 근로시간법[Working Hours Act(605/1996)]에 근거해 근로자가 근무 시작 및 종료 시간을 최대 3시간까지 조정할 수 있으며, 2020년 1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법안에서는 고용주의 동의하에 직원들이 근무시간의 절반 이상 동안 일하는 시간과 장소를 결정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핀란드의 노동문화, 동료 시민에 대한 높은 신뢰 수준(Eurobarometer, 2018)은 원격근무의 확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ICT 기술이 제공하는 근로시간과 공간의 유연성은 한편으로 근로자의 건강을 위협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업무환경이 디지털화되면서 근로자들은 회사와 더 자주, 더 오래 연결되고, 가정에서 비공식적인 초과근무를 수행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이에 프랑스는 2017년부터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노동개혁법에 반영하고 있으며,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도 관련 법령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미국, 인력관리 효율화 및 원격근로자 유치
미국 오바마 정부는 2010년 텔레워크 촉진법(Telework Enhancement Act)을 제정하고 연방정부의 원격근무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인사관리처(OPM : Office of Personnel Management)는 원격근무제를 전담해 관련 지침의 수립·제공, 성과관리, 원격근무제 교육, 우수사례 발굴, 실태보고, 원격근무포털 운영 등을 수행하며, 연방기관은 TMO(Telework Managing Office)를 지정하고 OPM의 지침과 매뉴얼에 따라 원격근무 정책을 수립, 추진한다.

이후 트럼프 정부는 원격근무의 효율성 및 효과성 입증이 어렵고, 근로자의 혁신성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연방정부의 원격근무 정책을 축소했으며, 이에 따라 2018년 농무부, 보훈부, 사회보장국에서는 원격근무 정책을 제한·폐지했다. 반면, 특허청, 국방부, 총무청 등은 우수인력의 확보와 재난 및 악천후 시 기관 운영의 연속성을 위해 원격근무제를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주정부에서는 원격근로자 유치를 위해 재정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OECD, 2020). 버몬트주와 오클라호마주 털사(Tulsa)는 지역 내 인구감소 문제에 대응하고, 우수 인재를 유치하는 방안으로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원격근로자에게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버몬트주는 2019년부터 지역 내에 위치한 가정이나 공동 작업공간에서 근무하는 원격근로자를 대상으로 컴퓨터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광대역 접속 및 업그레이드, 공동 작업공간 비용을 최대 5천 달러에서 7천500달러까지 지원한다. 오클라호마주 털사는 신규로 이주한 원격근로자를 대상으로 1만 달러의 지원금과 공유오피스 공간, 커뮤니티 구축 프로그램 등을 제공한다.

일본, 지방도시 재생과 연계
일본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원격근무를 추진했으며, 2018년 ‘일하는 방식 개혁법’ 통과 이후 총무성과 텔레워크 협회를 중심으로 관련 정책을 실시했다. 정부 차원의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면 중심의 직장문화, 팩스 기반의 문서 전송과 도장을 사용하는 업무 관행, 각 가정의 네트워크 인프라 미비 등으로 일본 내 원격근무 확산은 미흡한 상황이다.

한편, 지방정부는 도시재생 및 인구 유입을 목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원격근무 모델을 시도하고 있다. 도쿠시마현은 지역 인구감소로 인한 빈집, 유휴시설을 수도권 ICT 기업의 위성사무실(Satellite Office)로 유치해 지역재생을 도모하고 있다. 위성사무실은 본사 사무실의 기능을 분산시킨 거점사무실을 의미하며, 도쿠시마현의 미요시시, 미마시, 가미야마정, 미나미정 등 지역 전역에서 약 65개 기업이 위성사무실을 운영 중이다.

도쿠시마현은 시골에서의 여유로운 삶, 저렴한 경영관리 비용을 강점으로 옛 민가, 폐공장, 요양시설 등을 기업의 합숙시설, 공유오피스, 농업체험시설로 제공함으로써 일과 삶이 공존하는 공간을 구현했다. 지역 전역에 설치된 초고속 인터넷망, 풍부한 자연환경과 역사를 가진 고택, 정부의 보조금 지원책은 위성사무실 유치에 유리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 정부 및 지자체에서는 2018년 ‘일하는 방식 개혁’ 정책의 일환으로 워케이션(Workation) 사업을 장려하고 있다.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조합한 용어로 휴가를 즐기며 일하는 방식을 의미하며, 일과 여가의 조화를 도모하는 한편 지역 성장을 위한 목적으로 추진됐다. 2019년 7월에는 ‘워케이션 지자체 협의회’가 설립돼 지역 사례와 워케이션 시설 정보의 공유를 추진하고 있으며, 해안 피서지, 온천 등 관광자원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워케이션 활성화 논의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국내, 스마트워크센터 운영
국내에서는 1997년 근로기준법 상에 유연근무제가 도입되고, 2010년 ‘스마트워크 활성화 추진전략’이 발표되면서 원격근무 도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2019년 기준으로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는 임금근로자는 10.8%이며, 이중 재택·원격근무 활용 비율은 4.3%로 보고되는 등 원격근무 확산은 미진한 상황이다(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2019).

행정안전부는 ‘스마트워크 활성화 추진전략’에 근거해 2010년부터 스마트워크센터를 구축·운영하고 있다. 스마트워크센터는 근로자의 주거지 인근이나 출장지 등 사무실 밖의 원격지에 구축된 업무공간으로 일과 삶의 균형, 여성인력 활용 확대, 노동생산성 향상,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행정효율 제고 등의 다양한 목적하에 추진됐다.

현재 서울·세종·과천청사, 국회, 서울역 등 총 16개소가 운영 중이며, 공무원 및 공공기관 직원, 사전에 이용승인을 받은 일반인이 이용할 수 있다. 민간부문의 경우 최근 SK텔레콤, 롯데쇼핑, 쿠팡에서 본사 이외 지역에 스마트워크센터와 유사한 거점 오피스를 구축하고, 직원들이 가까운 사무실로 출근해 일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일하는 방식의 새로운 표준으로 부상
제조업에서 지식집약 산업 중심으로 경제구조가 재편되면서 원격근무가 가능한 일자리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현재 미국 일자리의 37%는 전적으로 집에서 수행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Dingel&Neiman, 2020, 「How Many Jobs Can be Done at Home?」), 전 세계적으로는 약 6명 중 1명, 선진국에서는 4명 중 1명 이상이 재택근무가 가능한 업무 군에 있는 것으로 예측된다(Berg et al., 2020, 「Working from home: Estimating the worldwide potential」). 화상회의와 원격협업솔루션, 클라우드 환경 등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가상의 업무환경에서 구성원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과 협업을 지원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재택근무 경험은 이러한 일하는 방식의 변화 가능성을 현실로 이끌고 있다. 최고재무관리자(CFO)를 대상으로 실시한 가트너의 설문조사(「Gartner CFO survey」)에서는 응답자의 74%가 코로나 이후 최소 5% 이상의 출근 인력을 재택근무로 영구 전환할 계획인 것으로 나타났다. 트위터는 직원들이 원하면 집에서 영원히 일할 수 있다고 선언했으며, 페이스북은 향후 5~10년 안에 직원 중 절반이 원격으로 일할 수 있다고 발표하는 등 글로벌 IT 기업들을 중심으로 원격근무의 일상화, 상시화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는 원격·재택근무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기업이 활용할 수 있는 매뉴얼과 각종 컨설팅 및 기술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재택근무 도입과 설계, 관련 규정 등을 포함한 ‘재택근무 종합 매뉴얼’을 지난 9월 발표했으며, 중소벤처기업부는 ‘비대면 서비스바우처 사업’을 실시해 비대면 서비스 제공기업과 수요기업을 연결하고, 중소기업의 업무 방식 개선과 비대면 서비스 산업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

원격근무는 저출산·고령화에 대응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도모하는 방안으로 지난 40년 이상 꾸준히 논의돼 왔으며, 최근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함께 조직의 업무연속성을 보장하는 방안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해외 주요국의 사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격근무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제도적 기반과 함께 사회구성원들의 신뢰와 합의, 성과 중심의 근로문화가 필수적이다. 공공부문에서도 디지털 전환의 변화 방향을 인지하는 한편, 조직적 혹은 사회적 현안 해결을 위한 관점에서 원격근무 활용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 본 글은 필자의 「디지털 전환에 따른 근무방식 유연화 방안 연구」(서울디지털 재단, 2020)의 일부 내용을 수정·보완함.

박선미 서울디지털재단 정책연구팀 책임연구원
박선미 서울디지털재단 정책연구팀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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