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는 섬진강

 새 움트는 날/ 한 번쯤 걸어 보렵니다/ 봄을 보고/ 전라도 한을 보고/ 전라도 멋을 보렵니다/ 참으로 편안한 곳에서 발원해/ 남으로 남으로/ 누구를 만나러 가는 길/ 사연도 많고/ 인연도 많고/ 동행도 많으니/ 일일이 들어 주랴/ 일일이 상관하랴/ 일일이 맞아 주랴/ 그래서 늦었노라고/ 그래서 할 말이 많았노라고/ 그 누가 속 터지는/ 속마음 알겠소만/ 그래도 희망 품고/ 살렵니다/ 그 넓은 마음 펼쳐 있는/ 남해를 생각하며/ 한 가닥 용기 갖고/ 살렵니다/ 나를 지켜 줄 단단한 백(background)/ 지리산이 있으니 …….

이상은 필자의 시집 6집의 ‘섬진강’이라는 시이다. 봄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그래서 필자는 경칩이 지나면 봄을 맞으러 섬진강으로 떠난다. 여기에 나서면 강물에서, 강가에 핀 산수유와 매화, 벚꽃에서 그리고 급하지 않은 물 흐름에서 봄이 왔음을 몸소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봄맞이는 세월의 흐름을 몸소 체험하고자 하는 일도 있지만 그 뒤 배경에는 시의 재료를 찾는 것도 있고 10여 년 전부터 시작한 사진의 소재를 찾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섬진강은 본디 모래가람, 다사강多沙江, 사천沙川 등으로 불리 오다가 1385년(우왕11)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로 침입했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울부짖자 왜구들이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어 섬진강蟾津江으로 불렀다 한다. 섬진강은 그 시원이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데미샘에서 발원해 임실 사선대를 경유하고 곧이어 옥정호에 가두어 몸을 섞다가 그 일부는 정읍 방향으로 넘겨 전기를 생산하고 계화도 간척지의 농업용수로 이용되고 나머지 대다수의 물은 섬진강 다목적 댐을 통해 남쪽을 향해 임실, 순창, 곡성, 남원, 구례, 광양, 하동의 긴 여행을 떠난다.

이 강은 여느 강과 달리 봄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주는 강이기도 하다. 무려 225㎞의 긴 다리를 뻗어 남해에 담그고 긴 팔은 지리산을 품 안에 안고 있는 형세이다. 그렇다 보니 쌍계사, 화엄사, 천은사, 연곡사 등 천년고찰을 보듬고 있고 고대 가야문화와 백제문화의 충돌지대 그리고 백제와 신라문화와 경계를 이루며 전북, 전남, 경남 등 섬진강 지역만의 고유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1918년 발간된 <조선지지> 자료에 의하면 하구에서 38.7㎞ 지점인 구례군 토지면까지 수운을 운행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에는 왜구들이 섬진강을 통해 내륙으로 침입했다는 기록들은 지금은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지만 그만큼 주민과 생사고락을 함께한 현장이기도 하다. 또한 6·25전쟁 시에는 빨치산의 주무대가 지리산이었기 때문에 좌익과 우익의 틈새에서 고초를 겪었을 주민의 애환은 지금도 말 못 할 한 역사를 간직한 강이다.

굽이굽이 사연 간직한 섬진강
봄소식을 전하는 봄꽃 소식하면 아무래도 우리는 섬진강을 연상하게 된다. 또 섬진강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 댐인 섬진강 댐 바로 밑 섬진강을 마을 앞에 두고 있는 진메 마을은 김시인 생가이자 김용택시인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다. 문학관이라고 하기에는 소박하지만 고향집 같은 문학관은 여기 말고 더는 없을 것이다. 김용택 시인은 이곳 진메 마을에서 태어나 덕치초등학교를 졸업했고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퇴임했다.

생가의 당호堂號는 회문재回文齋를 쓰고 있는데 이는 ‘글이 다시 돌아오는 집’이라는 뜻도 있지만 바로 인근 회문산回文山에서 차용한 것 아닌지 싶다. 특히 벚꽃 피던 날 덕치초등학교를 방문하면 교정을 지키고 있는 나이 든 벚나무 무리는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이곳 진메 마을에서 섬진강을 따라 내려가면 이름도 재밌는 순창 장군목의 요강바위가 나온다. 이곳 장군목 유원지는 맑고 깨끗한 강물이 수만 년 동안 흐르면서 만들어 놓은 기묘한 바위들이 3㎞에 걸쳐 있으며 그중 유명한 바위가 바로 요강바위이다. 이 요강바위는 ‘아이를 못 낳는 여인들이 요강바위에 들어가 지성을 들이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다.

이어서 곡성 기차마을에서 증기기관차를 타고 과거로 떠나보기도 하고, 계곡에 흐르는 물에 노란 물감을 풀어 놓은 구례 산수유 마을과 지천이 은빛으로 물든 봄의 여신 광양 매화마을 그리고 하얀 꽃길의 하동 벚꽃 길이 봄을 갈구하는 상춘객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완만한 물 흐름은 느림의 미학을 몸소 실천하고 서양화보다는 동양화 화폭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섬진강은 요즘 같이 바삐 사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안식을 찾아 주기에 딱 알맞은 곳이다. 그것이 섬진강의 매력이요 그래서 섬진강을 필자는 좋아한다.

물론 사시사철 풍기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고 멋있지만, 그중에서 섬진강의 봄은 한파에 갇혔던 사람들의 마음을 자연과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감정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강이다. 어릴 적 떠나 온 고향마을을 보는 듯하고 어릴 적 냇가에서 물고기 잡던 추억을 소환하기 딱 좋은 곳이자 어머니 품 같은 곳이 섬진강이다.

그리고 강을 따라가다 보면 문화의 태생지요 그 감흥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몽룡과 성춘향’의 무대였던 남원 광한루와 영호남이 만나는 조영남의 ‘화개장터’가 생각나고,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를 촬영했던 최참판댁이 섬진강 어귀에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우리 민족의 한과 얼을 담은 판소리의 동편제와 서편제 계보를 나누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이런 봄날, 코로나로 지친 육신을 섬진강에서 녹여보는 것도 좋은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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