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안」 지상 토론

행정안전부가 ‘주민’도 ‘자치’도 없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아온 ‘주민자치회’를 입법화하기 위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간 시범실시 과정에서 적잖은 문제가 노정되었음에도 보완 과정 없이 법 개정을 강행해 주민자치 현장에 혼란을 가중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본지에서는 해당 법률안 주민자치회 규정에 대한 전문 학자들의 지상토론회를 마련했다.   <편집자주>

육동일 충남대학교 자치행정학과 명예교수. 사진=한국주민자치중앙회 제공
육동일 충남대학교 자치행정학과 명예교수. 사진=한국주민자치중앙회 제공

‘포스트 코로나’와 주민자치

세계 각국은 현재 ‘코로나19’라는 대재앙 앞에 글로벌화와 지방화를 지향했던 복지국가형태에서 탈피해 ‘뉴 노멀사회’의 새로운 국가형태로의 전환을 위한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한국사회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사회의 모든 면이 달라질 것이다. 앞서 20세기 말부터 들이닥친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저출산·고령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급격한 환경변화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변화와 함께 더욱 달라질 거대 중앙정부의 출현과 재정위기, 국민들의 보건·위생의 안전에 대한 요구와 기대 폭발, 그리고 가뜩이나 어려워진 경제문제들을 풀어가기 위해서는 보다 혁신적 국가와 지방관리 시스템, 새로운 정보와 전달체계의 정비, 탈세계화와 폐쇄적 국가의 발호 및 언택트(Untact) 사회 대비, 탈진실(Post-truth)의 이념지향적 사회에 대응한 새로운 리더십 정립, 재난과 복지기금의 조성과 전달 방식의 전환, 그리고 이를 올바르게 이끌어갈 사회이념과 가치관의 정립, 국민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즉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국가와 사회의 틀, 새 사고와 패러다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우리 시대의 화두이자 국가와 국민 생존의 문제를 좌우할 것이다. 특히, 거대 중앙정부의 출현으로 민주주의와 자치분권이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는 현실에서 어떻게 자치와 분권을 지키면서 이 재난과 재앙위기를 극복하느냐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주민자치의 정착은 위기이자 기회가 될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효과적 대응도 전문가의 정확한 진단에 근거해 현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챙길 수 있는 지방정부 중심으로, 그리고 현장에서 생활하는 주민 중심으로 접근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코로나19’를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예방 및 관리하기 위해서도 자치분권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새로운 변화와 개혁을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맞이하기 위한 개혁은 뿌리로부터 상향(bottom-up)적으로 나와야 한다. 개혁의 궁극적 목적을 정부의 효율성 향상이나 능력 증진에 두는 것이 아니라 보다 좋은 사회의 건설에 두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좋은 사회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개인, 가족, 이웃 및 지역의 자발적 주민조직들이 지역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정부(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는 그에 따른 권한과 책임을 지역사회에 이양하고 보다 견고한 지역사회(community)의 재건을 위해 주위 여건을 조성해 가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주민들의 참여와 협동에 의해 자주적 관리가 이루어지는 주민자치의 사회를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견고한 지역사회를 건설해 개개인이 자율적이고 책임감 있는 삶을 추구하는 좋은 사회를 이룩하기 위한 대내·외적 변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의 지방자치가 그 실현의 구체적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민자치의 실질화가 그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주민자치

1) 주민자치 관련법의 전개와 평가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연방제에 버금가는 자치분권을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자치분권 의지를 반영한 ‘자치분권종합계획’을 마련했다. 재정분권, 행정권한의 획기적 지방이양, 정부 간 협력체제 강화, 지방정부의 책임성과 윤리성 제고, 지방선거와 지방행정체제 개편과 함께 주민주권의 실현이 바로 6대 전략으로 채택됐다. 문재인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민주권의 구현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주민자치회의 제도적 근거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 반영했으며, 참고자료가 될 주민자치에 관한 모델 조례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주민주권의 주민시대를 열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주민자치에 대한 법률적 근거는 이명박 정부 시절 제18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약칭 지방분권법)’에서 비롯된다. 주요 내용에는 특별법 제27조 주민자치회의 설치, 제28조 주민자치회의 기능, 제29조 주민자치회의 구성, 그리고 제29조 ④항 행정안전부 장관이 주민자치회의 설치 및 운영에 참고하기 위해 시범적으로 설치·운영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지난 2018년 11월에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안’이 입법예고 된 바 있다. 이 개정안의 궁극적 목적은 주민중심의 지방자치 구현, 지방자치단체의 자율성 강화, 투명성 및 책임성 확보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전부개정안은 주로 특례시 제도의 도입,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강화 같은 내용들만이 주로 부각되어 왔기 때문에 주민참여와 통제의 강력한 수단인 주민자치회에 대해서는 소홀하다는 문제제기가 있어 왔다.

이에 따라 주민자치의 법적 제도화를 위해 정부는 지난 6월 30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국회에 다시 제출했다. 이번 개정안은 20대 국회의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된 법안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이다. 하지만, 개정안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민자치회는 2013년 이래 시범실시 되고 있는 주민자치회의 오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고, 주민자치회의 자율성이 여전히 보장되어 있지 못하는 등 진정한 주민자치를 구현하기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지방자치법 개정안에 규정돼 있는 주민자치 관련 규정들은 대부분 지방분권법에서 가져왔기 때문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주민자치회의 시범실시로 나타난 문제들, 예컨대 읍·면·동 중심의 획일적 주민자치 단위, 주민과 주민자치회의 규정의 불명확성, 읍·면·동장과 주민자치회의 관계의 불명확성, 주민대표기구로서의 한계점, 주민자치위원의 선출문제, 사업과 재정측면에서의 자율성 결여 등의 문제는 주민자치회가 주민자치센터와 차별화가 안 되어 주민도, 자치도 없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아왔다. 

따라서, 실질적 주민자치가 되려면 최소한 다음과 같은 내용들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즉 ①주민자치회 설치단위 및 구체적인 사무 ②읍·면·동 지역사회에서 주민자치회의 법적 위상 ③주민자치회 위원들의 선임절차와 역량강화 방안 ④주민대표조직으로서 필요한 행·재정적 지원 내용 ⑤지역사회 여타의 직능단체들과의 관계 등이 구체적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특히, 주민자치회의 입법화를 위해서는 주민자치회가 어떤 위상을 갖고, 어떠한 기능을 부여할 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2) 주민자치회의 정착방안

주민자치회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는 지역의 주민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따라서, 주민자치회의 유형(협력형, 통합형, 주민주도형 등)을 비롯해 자율적 운영을 위한 규정이 반드시 전국적으로 동일할 필요는 없다.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합의된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지역별로 다양하게 규정토록 하고, 목적에 부합하도록 그 규정을 적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주민자치회의 운영에 관해서는 행정입법(시행령, 시행규칙)으로 결정하고 있는 사항을 조례로 결정할 수 있도록 법률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위해 주민자치법은 법률의 효력범위를 세분화하고, 조례로 규정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하는 동시에 실체법과 절차법이 동시에 규정되어야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민자치회가 지방자치단체의 하부 행정 자문기구 내지 지원기구가 아닌 실질적 주민대표성을 지닌 주민자치기구가 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시·군·구의 행정사무와 읍·면·동의 자치사무를 명확히 구분해 자치사무에 대해서는 예산, 조직, 인력을 분리·이관하는 행정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즉 읍·면·동을 자치사무를 처리하는 자치계층으로 재설계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 읍·면·동이 자치단위가 되어야 비로소 자치입법, 자치조직 및 자치재정권의 자치권이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치입법권의 보장을 위해서는 주민자치회의 효율적 운영이 가능하도록 시행규칙이나 시행세칙을 제정함과 동시에 각 주민자치회별로 주민자치회 규약이나 회칙을 제정해 그 역할과 사업을 명확히 규정하여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본격적 지방자치 시대에
주민자치를 실현시키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실제
결정권의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자율적으로 운영해나가는
실질적 장이 되어야 한다

또 주민자치회의 자기선택권을 보장해 주민자치위원회의 정원, 임기, 위촉 및 해촉방법 등에 관한 중앙정부와 자치단체의 간섭과 통제를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주민자치회 소관 사업의 기획과 집행 및 평가권한, 예산의 편성과 집행권한 등이 주민자치회의 고유 권한임을 명시해야 한다. 주민자치회의 재정확보를 위해서는 수강료 수입, 바자회 등 사업수익금, 기부금 등 자체 재원의 활용범위, 내용, 방법 등을 조례에 명확히 규정하도록 법안을 정비해야 한다.

또 그동안의 주민자치위원회는 읍·면·동장의 위원 위촉부터 사업의 직간접적 간섭과 통제를 통해 정치적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읍·면·동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표방한다 해도 단체장의 최일선 선거조직과 운동을 염두에 두고 발탁된다고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때문에 주민자치회가 풀뿌리 선거조직으로 변질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와 선거활동의 직·간접적 금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함과 동시에 위반시 강력한 처벌을 법률안에 담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현 지방자치 운영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지방자치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이해부족과 무관심이다. 주민자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결국 지방자치의 원동력이 되는 주민들의 자치의식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주민자치도 뿌리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법률안에는 주민들의 자치의식을 제고시키기 위한 주민교육 활성화와 관련된 제반 규정들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진정한 ‘주민자치 시대’ 열어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개혁의 경쟁이 본격화 될 것이다. 각 국가는 개혁을 통해 정부를 보다 반응적이고 쇄신적이고 주민참여적 정부로 재창조하려는 노력들을 경쟁적으로 기울일 것이다. 정부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것도 민주적 과정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효율성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도록 정부 속에 내재된 한계를 타파할 도리밖에 없다. 효율성만을 추구하려면 의사결정과정에 주민의 참여와 요구수용이라는 민주성이 희생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충관계는 우리가 효율적 정부보다 좋은 정부(효율적이며 민주적인 정부)를 추구해야 하는 정당성을 설명해 준다. 결국 지방정부와 주민들에게 주인의식과 자치권을 돌려준다면 지역 현장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재난재앙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게 된다. 이것이 자치분권을 통한 지역사회 회복력 효과다.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정부의 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무조건 시장에 떠넘기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다. 어떤 일들을 어느 수준에서 담당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과 원리가 결여되어 있다면 정부는 그저 팽창될 뿐이고 시장은 이기주의와 인간소외, 불평등을 계속 창출해낼 뿐이어서 견고한 민주주의의 생명력은 고사하게 되며 결국 좋은 사회에 이르지 못하고 만다.

가족, 이웃, 교회 그리고 자발적 조직체 등 지역사회 조직을 재건하려는 외국의 노력들은 바로 좋은 사회를 원하는 인간의 본능이자 희망을 반영하는 것이다. 정부 대신 지역사회에서 제공하는 봉사와 자비는 지역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지역주민의 지지와 협조를 얻는데 성공적 결과를 내고 있다. 모든 개혁은 뿌리로부터 상향적으로 추진될 때 성공할 수 있다. 한국도 이제 지역사회의 영역, 곧 자조적 메커니즘이 작용하는 영역을 존중하고 그 영역을 구성할 개인과 단체를 건전하게 육성하고 그 능력을 개발시켜 나가야 하는 중대한 출발점에 놓여있다. 주민자치회는 이런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지방행정의 환경변화에 따라 지방자치가 뿌리내릴 수 있는가는 주민자치회 성공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에 정리되어 있는 주민자치회는 법률안에 있는 대로 시행된다 해도 주민자치의 성공을 담보할 수 없을 정도로 형식적이고 선언적 수준에 불과하다. 근본적 재검토와 수정보완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주민자치회법도 제정되어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본격적 지방자치 시대에 주민자치를 실현시키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다.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실제 결정권의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자율적으로 운영해나가는 실질적 장이 되어야 한다. 주민자치회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지역주민들의 전폭적 관심과 참여, 그리고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및 공무원들의 미래를 대비한 현명한 판단과 선택이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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