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를 계기로 급변하는 시대
최근 코로나-19 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은 우리의 생활방식뿐만 아니라 일터에서 일하는 방식까지 큰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 학교의 수업, 직장의 업무, 소매점 및 식당 이용 등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활동들은 빠르게 비대면 온라인 방식으로 전환됐고 우리 사회는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재택근무, 비대면의 일상이 급히 도입됐지만, 일터의 생산성을 크게 해치지는 않았고 오히려 일부에서는 생산성의 향상도 경험하고 있다.

오랫동안 사회를 지배해 온 경쟁을 통한 성장, 결과 중심의 사회는 더 이상 최선이 아니며 공존을 통한 지속가능성, 과정 중심의 새로운 표준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점에서 4차 산업혁명의 혁신기술들은 우리가 새로운 표준으로 이동하는 것을 수월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보통 혁신적 기술들은 일상생활에는 편리함과 재미를 위해 활발히 활용되지만, 일터에서의 도입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편이다.

기존 일하는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채택하는 것은 관성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나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이러한 관성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기계들이 점점 더 다양한 분야에 도입되면서 혁신기술은 소소한 업무보조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구조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존재로 발전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사회는 갈망했던 이전 상태로 돌아가겠지만, 혁신기술이 제공한 편리함과 효율성을 경험한 일터와 일상에서는 변화가 지속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 글에서는 뉴노멀 시대의 도래에 따라 우리의 일터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그리고 직업교육훈련이 일터의 긍정적인 변화를 촉진하는 데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지 고찰해보고자 한다.

노동생산성과 일터 혁신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높은 교육열과 대학진학률로 노동시장에 고학력자들이 풍부하고 ICT 강국을 자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노동생산성과 비효율적인 교육시스템에 발목이 잡혀 저성장의 늪에 빠져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근무시간당 GDP)은 2017년 37달러로 OECD 평균 54.7달러와 격차가 크고, 서비스 산업의 노동생산성은 4.91달러로 OECD 29개국 중 22위 수준이다.

이러한 한국의 고질적인 저생산성의 원인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긴 노동시간에 기인하는 데 필자는 일하는 시간을 줄이면서도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업무 방식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일터에 도입되지 못하는 것이 근원적 문제라고 본다. OECD 조사에서도 한국의 중소기업이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데이터 같은 첨단 IT 기술 활용에서 뒤처져 있으며, 숙련 노동자 및 관리자의 채용과 인력 훈련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OECD Economic Surveys KOREA, 2020). 풍부한 자원과 고학력 인력을 바탕으로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가능하고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실제 일터에서는 낡은 방식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일터 혁신의 필요성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논의돼 온 주제이다. 그동안 수많은 기업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수평적 조직, 근무 유연화, 임파워먼트, 각종 교육훈련 등과 관련된 제도와 관행들을 적극 채택하고 있으나 형식만 따를 뿐 일하는 방식의 변화로는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가 보인다.

위계적 조직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꾸는 일은 창의성이 중요시되는 요즘 시대에 기업의 인적자원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기업의 발전에 필요한 아이디어는 지위고하를 따지지 않지만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 직급 낮은 직원은 쉽게 침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대로 명명되는 요즘 젊은 세대는 기술 관련 지식과 스킬에 능숙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산성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OECD, 2016).

글로벌 기업인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 등에서 젊은 임직원이 자신의 상사에게 그들의 지식과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이른바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를 실시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낡은 방식으로 일하는 데 익숙한 고위 직원이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위계적 문화에서는 젊은 세대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하기 어려우며 장시간의 저부가가치의 단순 업무로 생산성의 공백을 메꾸게 된다. 지금도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자동화 대상인 업무를 강도 높은 노동으로 수행하고 있을지 모른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형성하기 위해 우리나라 대부분의 조직이 팀제를 채택하고 팀장과 팀원을 두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대리, 과장, 부장 등의 위계가 유지되고 있는 점은 형식과 실질이 괴리된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근무 유연화에 대한 이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근무 유연화는 본질적으로 직원들의 복지 차원이 아니라 기업의 생산성 향상 동기에서 마련된 제도이다. 법적으로 허용하는 주당 노동시간이 제한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노동자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생산적인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꼭 회사에 마련된 물리적 업무공간으로 출근하지 않더라도 ICT, 자동화 기술을 활용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면 노동자는 그만큼 절약된 시간을 생산적인 업무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의 기업들은 관리통제의 이유로 제한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여전히 노동자들은 재택근무를 증명하는 보고를 하는 데 따로 시간을 써야 한다. 디지털 기술과 앱 사용에 익숙한 세대들이 여전히 낡은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한국의 노동생산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핵심은 위계적 조직문화를 극복해 젊은 세대의 역량과 스킬을 활용하고, 이를 통해 일터의 일하는 방식을 혁신해 불필요한 노동시간을 제거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일터 혁신과 직업교육훈련
그동안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해 일터를 혁신하고자 하는 기업의 노력과 정부의 지원 사업은 꾸준히 있어 왔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는 일하는 방식의 개선보다 주변적인 인적자원관리 제도를 개선하는 데 급급해 성과가 미미한 편이다. 일터의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미약하고 인사관리 제도의 개선은 상대적으로 활발하다는 것은 OECD 국가 간 고성과작업관행(HPWP) 비교분석 자료에 잘 나타난다. 고성과작업장 지수 점수에서 한국은 29개 회원국 중 평균 이하의 낮은 점수를 보이는데,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인사관리 부문은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보이는 반면, 작업조직 부분은 하위 5위를 차지하고 있다(오계택 외, 2018, 「일터 혁신 실태 설문조사 및 분석」).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는 일터 혁신을 촉진하는 데에는 근로자직업교육훈련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인적자본 감가상각률(노동자의 역량이 퇴화하는 정도)은 노동생산성과는 음의 관계가 노동시간과는 양의 관계가 뚜렷이 확인되고, 노동자의 교육훈련 참여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감가상각률이 낮게 나타났다(반가운 외, 2017, 「국제성인역량조사 자료를 이용한 한국과 OECD 국가의 비교」). 한국은 노동시간이 세계 최고 수준이면서 사업주지원 교육훈련 참여율은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한국의 고질적인 노동생산성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일터에서 일하는 방식이 개선되려면 먼저 수평적인 조직문화에서 젊은 세대의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일터의 기성세대들에 대한 직업교육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터의 작업방식에 결정권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들이 제안하는 새로운 지식과 작업방식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는 낯설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취업 후 장시간의 노동과 제대로 된 교육훈련의 기회를 갖지 못한 한국의 기성세대에게 새로운 작업방식은 낯선 만큼 자신의 역량 부족이 드러나거나 생산성이 떨어질 위협으로 느껴질 것이다. 어느 정도 위계적인 문화가 남아있는 한국의 조직에서 이러한 세대 간, 계층 간 지식과 스킬의 차이는 일터에서 일하는 방식이 개선되는 것을 방해하고 궁극적으로는 기업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재직자 대상의 직업교육훈련을 시대에 맞게 정비하고 훈련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기업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직업교육훈련의 패러다임 전환
일자리가 화두인 요즘 정부와 지자체는 취업률 성과를 위한 인력 양성 사업을 다양하게 설계해 청년을 비롯한 구직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보통 중소기업, 특히 제조업계의 인력난은 구직자의 눈높이와 일자리 조건의 미스매치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아 취업난, 구인난 해소를 위한 인력 양성 사업은 고용유지율이 낮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뉴노멀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취업률 성과를 위한 직업교육훈련을 확대하기 위해 일터의 노동자들에 대한 투자를 희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소기업의 재직자에 대한 직업교육훈련은 새로운 지식과 역량이 필요한 작업방식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해소해 일터에서 세대 간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 수 있고 궁극적으로 낡은 작업방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일터 혁신은 청년들이 기피하는 일터를 선호하는 일터로 바꾸고, 주 52시간제로 단축된 노동시간을 향상된 생산성으로 극복하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일터 혁신을 위한 재직자 직업교육훈련을 위해서는 훈련의 내용과 방식에서 차별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현재 재직자들에게 제공되고 있는 교육훈련의 상당 부분이 가까운 미래에 자동화될 단순 업무에 관한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대단히 반복적인 업무, 인간의 판단이 중요하지 않은 업무, 공감 능력이 덜 필요한 업무, 대량의 데이터를 만들고 처리하는 업무는 대표적인 자동화 대상 업무이다.

이제 기존의 낡은 작업 방식을 전제로 한 지식과 역량을 전달하기보다 자동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업무를 반복 가능한 패턴과 프로세스를 만들어 단순 노동을 제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동화 및 디지털 기술과 도구를 학습하고 업무에 활용하는 능력, 업무상 생성되는 데이터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중심으로 교육훈련 내용이 정비돼야 한다.

또한 교육훈련 방식도 시대에 맞게 변화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역량이 뛰어난 개인이라도 팀과 조직 전체의 업무 방식의 변화까지 가져올 수는 없다. 일터의 작업 방식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업무의 자동화, 디지털화에 대해 모든 직원이 집중하고 생산적인 토론을 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존에 개인별로 참여하는 직업교육훈련은 이런 점에서 한계가 명확하다. 결국, 일터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개인 단위의 교육훈련보다 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훈련이 요구되는 시점인데 현장에서는 도입이 쉽지 않은 방식이다. 특히 인력 운용에 여유가 없는 중소, 영세한 기업일수록 노동자를 외부 교육훈련에 참여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집체강의식 훈련 방식을 ICT,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도록 하는 혁신이 필요하다. 온라인, 비대면 시대를 일상으로 경험하고 있는 요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훈련 방식의 도입은 의지만 있다면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자동화, 디지털화는 직업교육훈련의 내용과 방법만을 대상으로 삼아서는 부족하고 직업교육훈련 그 자체의 혁신도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 다시 말해, 일터 혁신을 촉진하는 직업교육훈련 지원사업이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이를 전달하는 시스템도 함께 혁신돼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훈련이 디지털화돼 개인 또는 집단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접근할 수 있게 하려면 전달 방식의 특성상 그 내용은 짧은 시간의 분량으로 파편화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또한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교육훈련에 참여하게 되는 만큼 서로 다른 특성의 학습자 교육을 위한 교육자들의 헌신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러한 변화에 훈련교사의 역할은 파편화된 훈련내용을 개인별로 맞춤 구성해주고 지도하는 멘토로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훈련교사들이 이러한 환경과 역할 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 하려면 그간 이들을 괴롭히던 무거운 행정의 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정부의 훈련사업에서 엄격히 요구하는 행정업무들, 예를 들어 출결 체크, 시험과 채점, 취업 알선 등의 업무를 자동화해 제거하고 훈련교사들이 디지털,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훈련생 개인 맞춤형 수업을 구상하거나 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교육훈련 인프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정부, 기업, 교육기관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직업교육훈련의 학습자 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을 구축해 보자. 효과적인 직업교육훈련 지원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서 여러 지원사업들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정보들을 축적해 훈련생의 학습패턴과 성과 등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공공 훈련서비스와 프로그램의 중복투자를 방지하고 다양한 공공서비스들을 국민에게 효율적으로 연계 전달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나동만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나동만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

 

저작권자 © 더퍼블릭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