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직간접 피해 속 농촌의 모습
작년 한 해 동안 전 세계를 휩쓸었고 아직도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를 회고하고 성찰하기에는 때 이르다. 그렇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는 농촌 지역사회를 배경으로 향후 차근차근 따져보아야 할 문제들을 미리 던져두는 것도 의미는 있으리라.

코로나-19 감염병으로 발생하는 직접 피해는 당연히 감염으로 인한 질병과 사망이다. 사실, 비교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간접 피해가 엄청나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모든 부문이 코로나-19 사태가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간절히 원한다.

간접 피해의 대부분은 감염 확산을 막으려는 의도에서 접촉을 제한함으로써 생겨난다. 상업 및 서비스업으로 분류되는 대면 접촉형 경제활동이 크게 제한돼 종사자들의 소득이 떨어진다. 문화여가 활동이나 사회복지 서비스 등 대면 접촉을 기반으로 하는 활동도 제한되기 때문에, 그런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됐거나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게 된 이들의 삶이 질이 떨어진다. 이런 식의 직간접 피해는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발생하지만, 그 구체적인 발생의 양상이나 조건은 지역에 따라 상당히 다른 듯하다.

저밀도 사회라고도 하는 농촌 지역에서 코로나-19의 감염 사례는 도시에 비해 현저하게 적다. 전체적으로 보아 ‘직접 피해’가 덜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유형의 ‘직접 피해’가 농촌에 집중되기도 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어느 사이엔가 요양원, 요양병원, 정신병원 같은 돌봄시설이 농촌에 많이 생겨났는데, 이들 시설에서의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눈에 띈다. 작년 상반기 코로나-19 1차 대유행 때에 집단 확진 사태가 일어나 언론의 눈길을 끌었던 청도군의 대남병원이나 봉화군의 푸른요양원 바로 그런 사례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량으로 발생하고 사망 비율도 높은 이유는 금세 알 수 있다. 그런 시설에 거주하는 이들이 대체로 고령이며 기저질환이 있는 데다가 폐쇄된 공간에서 여러 명이 함께 살기 때문에 감염병 전파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들 시설에서의 직접 피해에 농촌이라는 지역적 특성이 작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토지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 요양원 등의 ‘시설’이 입지하기 쉬운 농촌 지역에 시설들이 우후죽순 들어섰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의 간접 피해야말로 농촌 지역사회에 여러 가지 결과를 낳았다. 우선, 경제적으로는 음식점 같은 먹거리 소비 시장이 위축되면서 농가의 경제활동이 큰 위협을 받았다. 민간 부문뿐만 아니라 학교급식 등의 공공 부문 먹거리 시장도 작동을 멈추면서 농민의 판로가 막힌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게다가 졸업식 등의 행사가 열리지 않아 화훼 농가들의 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해졌다.

"코로나 발생 초기 획일적 방역 지침으로 노인에게 필수적이었던 돌봄시설의 폐쇄는 눈에 띄지 않는 많은 폐해와 부작용 일으켜"

농가들의 경제적 피해 문제를 이 글에서 다루려는 것은 아니다.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은 대면 접촉이 제한되면서 일어난 농촌 지역사회에서 주민의 상호작용 측면에서 일어난 변화다.

열악한 농촌의 공적 돌봄서비스
정부의 방역 조치가 강경하게 그리고 전국 수준에서 획일적으로 진행되면서, 농촌에서 가장 곤경을 겪은 이들은 아마 노인들일 테다. 웬만한 시골 동네에서 인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노인들은 대개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서 점심 끼니를 해결하는데, 경로당·마을회관이 문을 닫으니 끼니를 거른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뉴스거리조차 되지 않아 잘 모르는 국민이 많다.

식사뿐만이 아니다.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은 농촌 노인들의 사회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주된 장소인데, 그것이 폐쇄됨으로써 어떤 정신적·신체적 영향이 있었을지 짐작하기가 어렵다. 여럿이 어울려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고 때로는 간단한 일도 같이하는 상호작용은,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 생성되는 계기다. 사회자본이 개인의 정신적·신체적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는 셀 수 없이 많다.

지금에야 상당수의 경로당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지만, 방역에 국가적 관심이 집중됐던 작년 초기에 그렇게까지 무조건적으로 획일적인 지침으로 농촌 마을에서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제했어야 했는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왜냐하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공적 서비스가 불충분한 농촌에서 노인처럼 취약한 입장에 처한 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방어선이 ‘이웃들의 돌봄’이자 ‘지역공동체의 신뢰와 규범’이기 때문이다.

읍·면 지역을 통상 농촌이라고 하는데, 면 지역에 거주하는 노인이 146만 명에 달한다. 그 가운데 40만 명 정도가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는, 즉 돌봄이 필요한 분들이다(김남훈·김정섭, 2021, 「주민이 함께하는 농촌 공동체 돌봄」, 『농업전망 2021: 코로나19 이후 농업·농촌의 변화와 미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문제는, 그 40만 명 가운데 22만 명에 대해서만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의 공적公的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나머지 18만 명의 노인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공적 돌봄서비스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물론, 이 같은 공적 돌봄이 농촌에서 충분히 제공되지 못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여건의 불비不備라는 원인이 있다. 도시라 할 수 있는 동 지역마다 재가노인복지시설은 평균 1.7개가 있지만, 면 지역은 평균 0.5개에 불과하다. 장기요양기관도 동 지역에는 평균 11개가 있지만 면 지역은 평균 0.8개에 불과하다. 노인주간보호시설이 아예 없는 면이 전국 1천200여 면 중에 32%를 차지한다.

내친김에 노인뿐만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사례까지 들여다보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도시 지역에서 성인발달장애인의 공적 서비스 이용률은 32.8%인데, 농촌에서는 18.7%에 불과하다. 전국 곳곳에 산재하는 장애인복지관 중 면 지역에 소재한 것의 비율은 6.7%이며, 장애인 주간보호시설의 경우 그 비율은 5.9%다. 그런데 장애인의 20%가량이 농촌에 살고 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여러 민낯 중 하나는, 농촌에서의 공적 돌봄서비스가 제 기능을 못 한다는 점이다. 재정을 이유로, 혹은 수익성을 이유로 기본권 수준의 서비스 제공이 농촌에서 외면돼 온 현실이 조금씩 까발려진 것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을 어쨌든 농촌 지역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호혜互惠의 문화 속에서 해결해오던 것인데, 그마저도 어렵게 되면서 드러난 사실이다.

회복력을 간직한 농촌 지역공동체에서 희망도 보여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할 때, 앞으로 농촌에서 공적 돌봄 체계가 지니는 한계를 극복하려면 농촌 지역공동체의 주민이 직접 돌봄을 기획하고 제공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주민이 주체로서 돌봄 조직을 구성하고 돌봄에 참여하는 것을 일러 ‘지역공동체 돌봄’이라 개념화할 수 있겠다. 주민이 대상자를 가장 잘 알고 가장 가까운 곳에서 돌봄을 제공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주민자치의 실천이 결합돼야 할 테다.
구체적으로는 주민자치회를 중심으로 농촌 지역사회 주민이 일정한 준비를 갖춰 일을 벌여야 한다. 처음에는 주민이 나서서 이웃의 노인, 장애인, 아동 등에게 돌봄을 제공할 조직을 구성하고 함께 학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역량을 키워야 한다. 지역 내에서 수요 조사를 실시하고, 주민이 함께 토론회나 간담회를 열어 합의를 형성하는 동시에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의 관심을 촉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지역공동체 돌봄의 계획을 수립하고, 계획한 내용을 실천할 법인 형식의 조직을 설립한다. 아마도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협동조합 같은 법인 형식이 바람직할 것이다. 민주적으로 운영되며 수익성 극대화만을 목표로 삼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지향해야 할 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준비된 농촌 지역공동체 돌봄의 단위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해 물적·인적 자원을 지원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읍·면 주민자치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활발한 기획과 활동이 일어나야 한다.

"코로나 이후의 회복된 사회를 그릴 때 정부나 지자체의 재난관리 역량보다 지역공동체의 사회자본이 더 주요한 요소"

대규모 지진이나 태풍 같은 자연재해는 그 자체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재해가 휩쓸고 간 그 사회의 회복력을 가늠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2015년에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했다. 그때 사망이나 부상 같은 인명의 손상을 막고 파괴된 시설을 복구하는 등의 악전고투 속에서 연구자들의 눈길을 끈 것이 ‘회복력’이라는 개념이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 사회 전체가 충격에 휩싸일 만큼 엄청난 재난이었지만, 피해 지역 주민의 삶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정상화됐던 것이다.

뉴올리언스 지역 회복력의 원천은 무엇이었는가를 둘러싼 분석과 연구가 적지 않게 이뤄졌다. 미국 연방정부나 지방정부의 전통적인 재난관리 역량이 회복력의 근원이었다고 보는 분석은 없다. 공공 기관이 따르는 전통적인 재난관리 방식은 역부족이거나 무용지물이었던 경우가 많았고, 뜻밖에도 민간 부문의 다양한 주체가 지방정부 등과 새로운 방식으로 협력하는 사회자본을 만들어낸 것이 중요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인구가 줄고 고령화돼 구매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농촌 지역에서 시장 메커니즘에 기댄 각종 사회서비스 제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당연히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야 하겠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공적 체계는 굼뜨고 인색하다. 난국難局이고 희망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농촌 지역공동체에는 아직 회복력이 있다는 점이다. 회복력의 증거가 어디 있느냐고 물을 사람도 있을 테다. 보름 전 어느 농촌 마을 주민이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을 보았다. 그 주민이 사는 마을의 이장님이 공지한 글이라고 한다.

“◯◯마을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코로나-19로 인해 동회를 비대면으로 하다 보니 비용 절감이 돼서 65세 이상 주민이 포함된 21가구에 소고기 등심 1킬로씩 꾸러미로 드리기로 했습니다. 129만 7천700원어치를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구입했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항상 건강하십시요. 이장 ▢▢▢ 올림.”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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