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물질에서 인류의 악몽으로
플라스틱은 한때 꿈의 물질로 찬양을 받았다. 인간이 원하는 물질적 특성과 모양을 자유자재로 구현할 수 있고, 석유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원료로 마음껏 쓸 수 있었기 때문에 인간은 플라스틱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플라스틱이라는 물질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은 비로소 물질적 결핍으로부터 해방돼 모두가 동등하게 물질 소비를 누릴 수 있게 됐다. 플라스틱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물질 소비의 민주화 시대가 활짝 열렸다. 그런데 이제 플라스틱은 끔찍한 악의 물질로 비난을 받고 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물질로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끊임없이 확장하는 플라스틱 제국
플라스틱 문제는 너무 많은 양을 사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양을 사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사용량이 많은 만큼 쓰레기 발생량이 많은 데 비해 쓰레기 처리로 인한 문제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1950년대 이후 인간은 원 없이 플라스틱을 소비했다. 1950년 플라스틱 생산량이 2백만 톤에 불과했다면, 65년이 지난 2015년 플라스틱 생산량은 약 4억 톤으로 2백 배 증가했다. 1989년을 기점으로 플라스틱은 부피 기준으로 철강생산량을 앞질렀다. 플라스틱은 현재 인간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물질이다.

그 결과 우리는 앞으로 어쩌면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처치 곤란한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 매년 2억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하고 있는데, 20년이 지나면 4억 톤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매년 바다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양이 1.1천만 톤인데 20년 후에는 3천만 톤으로 3배가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65년 동안 인간이 바다에 투기한 쓰레기의 양이 1억 5천만 톤인데, 2040년이 되면 6억 5천만 톤으로 4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2050년이 되면 바다에서 물고기보다 쓰레기가 많아지고, 인간의 몸속에도 환경호르몬과 미세 플라스틱이 쌓여 플라스틱 인간이 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나온다.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83억 톤의 플라스틱이 생산됐고, 이 중 58억 톤이 쓰레기로 배출됐다. 그런데 쓰레기로 배출된 양 중 단 9%만이 재활용됐고, 12%가 소각됐고, 79%가 매립되거나 투기됐다. 2016년 기준으로만 따지더라도 재활용률은 12%에 불과하다. 재활용률이 높다는 독일조차도 플라스틱에 한정하면 38% 수준에 불과하다.

플라스틱 생산 및 소각으로 인해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은 매년 약 9억 톤에서 18억 톤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배출하는 온실가스 7억 톤보다 훨씬 많은 양이 배출된다. 9억 톤 정도의 온실가스는 500㎿ 석탄화력발전소 189개를 운영하는 것과 맞먹은 양이라고 한다. 이 상태로 플라스틱 사용량이 계속 증가하면 플라스틱에서 기인한 온실가스의 양은 2050년까지 3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에너지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더라도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지 못한다면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기 어렵다. 에너지 전환과 더불어 물질 전환도 중요한 과제다.

탈 플라스틱 혹은 플라스틱 순환경제로 가는 길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플라스틱으로부터 탈출하자고 이야기하지만 인간이 플라스틱에서 벗어나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플라스틱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고, 그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지금 시점에서는 플라스틱이 주는 장점은 품으면서 문제는 현명하게 해결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플라스틱을 소비하면서 물질 소비의 민주화를 구현했다는 지금은 이것을 넘어서 플라스틱 소비를 현명하게 통제할 수 있는 물질 소비의 근대화가 필요하다.

즉 모두가 평등하게 많이 쓰고자 하는 욕망을 넘어서 필요에 맞게 알맞게 쓰는 이성이 필요하다. 풍부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기획해야 한다. 돈키호테는 현실을 진실의 적이라고 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에 갇혀 이룩할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하는 것을 미친 짓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 플라스틱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세상, 즉 플라스틱 순환경제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먼저 플라스틱 소비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일회용품과 일회용품 포장재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일회용 사회에서 재사용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오래된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 음식과 음료 소비에서 다회용기를 사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다회용기 대여세척산업이 필요하다. 다회용기 대여세척산업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집중적인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 포장재 없는 매장도 동네 단위로 만들어져야 한다. 정부와 생산자의 지원이 필요하다. 일회용 포장재 없이 필요한 제품을 소비자가 구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최근에 포장재 없는 매장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고,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리필스테이션을 여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의 흐름이 더 큰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에서 일회용품 및 과대포장을 규제하고 있지만 일회용이 확산되는 흐름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매장 내에서 사용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컵의 사용을 금지하고, 테이크 아웃되는 일회용 컵에 대해서는 2022년 7월부터 보증금제가 적용되는 등 기존에 비해 많은 진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규제는 항상 부분적으로 작동하고 있고 변화를 위한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일회용 포장재를 사용하는 경우와 재사용 혹은 리필용 제품을 생산하는 경우를 구분해 재사용 혹은 리필용 제품의 생산을 일정 비율 강제하거나 일회용 포장재에 대해 강력한 보증금 제도를 도입하는 등 규제의 정비가 필요하다. 매장 내에서는 모든 일회용품의 사용을 금지하고, 테이크아웃 혹은 배달되는 일회용기에 대해서는 부담금을 부과해야 한다. 배달 앱의 경우에도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음식점을 우선 노출시키는 등 소비자에 대한 정보제공을 의무화하도록 해야 한다. 장례식장에 대해서도 다회용기 대여·세척사업의 진척에 따라서 일회용기의 사용을 금지하거나 부담금을 부과해 다회용기 사용 경쟁력을 강화시키도록 해야 한다. 포장재 없는 매장에 대해서는 대형유통매장 설치를 의무화하고, 매장 지정제도를 도입해 지정된 매장에 대해서는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플라스틱을 종이 등 다른 재질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플라스틱이든 종이든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줄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친환경 재질이니까 마음껏 사용해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소비자에게 줘서는 안 된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경우에도 생분해 플라스틱이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에 한정해서 대체하도록 해야 한다. 자원재활용법에서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에 대해서 폐기물 부담금(150원/㎏)을 면제하고, 비닐식탁보 및 비닐봉지는 일회용품 규제대상에서 제외(비닐식탁보는 사용금지 대상에서 제외, 비닐봉지는 무상제공 금지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 업계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약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에 대한 적극적인 규제 완화 및 보조금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무조건적인 확대 정책은 플라스틱 문제를 개선하지도 않을뿐더러 혼란만 일으킨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는 품목의 우선순위를 설정한 후 대체효과가 있는 품목에 집중해야 한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의미 있는 영역은 환경에 투기될 가능성이 높은 어구나 농업용 멀칭비닐 같은 제품이다.
플라스틱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면 다시 자원으로 순환시켜야 한다. 현재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폐기물 관리 선진국이라고 하더라도 30%대에 불과하다. 기술적으로도 50%를 넘기 어렵다고 한다. 재질구조의 한계, 분리배출 및 선별의 한계, 재활용 기술의 한계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이 성공적으로 진행돼 연료로 사용되는 석유 소비량이 줄어들게 되면 플라스틱 원료로 사용되는 석유의 양이 증가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플라스틱 재생원료 소비가 등한시될 것이다. 누가 값싸고 품질 좋은 신재를 사용하지 품질 낮은 재생원료를 사용하겠는가? 에너지로 직접 사용되는 석유의 양은 줄어들지라도 플라스틱으로 사용되는 석유의 양은 증가하게 되고 결국 플라스틱 소각을 통해 온실가스가 배출되게 될 것이다. 하루빨리 재생원료의 품질을 높이고, 재생원료의 수요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깨끗한 플라스틱을 재질별로 모을 수 있는 체계와 고품질의 재생원료를 얻을 수 있는 재활용 기술개발이 동시에 필요하다. 생산단계에서 재활용을 고려한 제품의 재질구조 개선이 필요하며, 적극적인 재생원료 구매를 통해 재활용에 대한 투자가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페트병에 한해서만 색깔을 투명한 색으로 단순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모든 플라스틱 용기에 대해서도 색깔과 재질을 단순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플라스틱을 단순 파쇄세척 후 녹여서 다시 재생원료로 만드는 기계적 재활용만으로는 재생원료로 반복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복적으로 녹이는 과정에서 물성이 떨어지는 다운사이클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을 고품질의 재생원료로 반복 순환시키기 위해서는 기계적 재활용뿐만 아니라 순수한 플라스틱 원료를 추출할 수 있는 화학적 재활용 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다.

재생원료 품질 개선을 위한 투자가 촉진되기 위해서는 고품질 재생원료에 대한 수요가 안정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생산자에게 재활용 비용을 부담하는 것을 넘어서 재생원료를 반드시 사용하도록 의무를 확대해야 한다.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 규제는 이미 EU에서 도입하고 있고 범위가 확대될 전망이다. 환경부에서는 올해 9월 발표한 자원순환 정책 대전환 계획에서 2030년까지 플라스틱 식품포장재 내 재생원료 비율을 3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정책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 규제 로드맵이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돼야만 인프라 구축 및 기술개발을 위한 투자가 가능하다.

탈 플라스틱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문제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소비자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생산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문제해결을 시작과 끝 모두 생산자에게 달려 있다.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고 재활용이 잘 될 수 있는 구조로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재생원료 구매를 적극적으로 해서 플라스틱 순환경제가 작동할 수 있는 시장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기여하지 않는 생산자는 앞으로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오고 있다. 재생원료를 사용하지 않는 제품은 세계 시장에 판매하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 산업의 표준이 바뀌고 있다. 따라서 탈 플라스틱은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미래 산업경쟁력을 결정하는 핵심과제이다. 기업들도 단순히 환경규제로만 인식해 저항하지 말고,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제품을 어떻게 만들지를 고민해야 한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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