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찬동 충남대학교 자치행정과 교수

 

김찬동 충남대학교 자치행정과 교수
김찬동 충남대학교 자치행정과 교수

한국에서 주민자치 정책은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책 기획이 체계적으로 잘됐더라도, 정책 집행이 실패하면 ‘실패한 정책’이 된다. 정책집행이 실패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수 있다. 정책의 목표가 불명확하거나, 정책의 목표와 수단의 인과관계 수립이 잘못됐거나, 정책 문제에 대한 분석이 다각적으로 이뤄지지 못했을 경우, 정책 집행이 실패할 수 있다. 또 정책 집행을 위한 자원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거나, 정책 추진에 대한 다양한 정책 참여자들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에도 정책 집행은 실패할 수 있다.

주민자치 정책의 경우에는 정책목표가 풀뿌리 민주주의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인지, 주민 편의와 복리증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풀뿌리민주주의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치적인 성격의 것이 정책목표라고 하면, 주민들이 주권자로서 마을총회(town meeting)에 참여하고 공동규약을 제정해, 공동서비스를 공급하는 데 필요한 세원을 징수해 집행하는 관리시스템이 조직돼야 할 것이다. 직접민주정으로 운영하든가, 마을의 규모가 크다면 간접민주정으로서 지방의원을 선출해, 이들로 하여금 조례 입법이나 마을예산의 심의의결 및 결산, 집행 관리의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주민자치는 정책실패의 대표사례


그러나 주민자치 정책의 목표가 단지 마을에서 주민 편의와 복지 증진이라고 하는 관리적 성격의 것에 불과하다면, 지방자치의 본질을 회복하는 정책가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즉 지방자치는 지역민주주의를 통해 구현되는 것이고, 주민이 지방정부에 주권자가 돼야 하는 것이다. 즉 주민주권이 구현돼야 비로소 지방자치가 정상화되는 것이다.

전자의 관점으로 주민자치를 볼 경우에는 주민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주권자로서 권리와 참여를 하게 할 것인가를 갖고 제도설계를 하게 될 것이다.그런데 후자의 관점으로 보면, 주민자치를 하나의 사업으로 보고, 그 사업을 집행할 조직을 추가로 만드는것에 초점을 두고 조직을 설계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주민자치 정책은 후자의 관점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주민자치를 위해 주민자치센터를 설치하는 것으로 정책도구로서의 조직을 두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것은 ‘주민자치센터 설치 및 운영조례’로 표현되고 있다. 주민자치의 본질을 조직을 설치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주민자치 정책의 상위 정책이 지방자치 정책이고, 지방자치 정책은 그 정책목표가 한국의 민주적 발전이다.

지방자치법 제1조는 “지방자치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기본적인 관계를 정함으로써 지방자치행정을 민주적이고 능률적으로 수행하고, 지방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며, 대한민국을 민주적으로 발전시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주민주권이 구현돼야 지방자치 정상화

그러나 과연 주민자치 정책이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풀뿌리 민주주의를 구축하려는 시도나 노력이 제대로 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단적으로 지방자치법에 주민자치라는 정책용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현재 국회에 제출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에는 주민자치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음).

지방자치법은 지방자치단체들 간의 관계를 정함으로써 단체자치의 패러다임에 한정돼 있고, 이런 가치와 철학을 구현하기 위한 정책수단, 정책도구, 정책활동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것은 지방자치의 본질이고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주민자치 없는 지방자치를 기획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들만의 권한다툼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미 한국의 지방자치는 제도의 부활 이후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그들만의 권한다툼으로 여겨져서 진정한 주민자치, 즉 주민을 위한, 주민에 의한, 주민의 지방자치가 되고 있지 않다. 자치의 기본 단위가 너무 커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체험하기는 불가능하게 돼 있어, 결과적으로 대의민주주의를 지방자치의 모든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정책의 가치나 철학이 지방자치의 본질을 반영해 제도설계나 정책 내용을 기획할 수 없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집행 과정에서도 담당자들이나 집행 조직이 정책목표와 정책가치를 공유하지 못하게 된다. 정책 집행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는 셈이다.
 

'주민자치' 용어 조차 없는 지방자치법

여기서 왜 주민자치 정책이 정책가치와 정책용어의 공유를 하지 못해 정책 집행의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가? 우선 주민자치 정책은 지방정부를 형성하는 목표를 갖고 있지 못하며, 단지 하나의 행정하부 조직으로 만들거나, 프로그램을 하나 만드는 것이 정책목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주민자치 정책이나 정책도구로서의 주민자치센터는 하나의 시설과 프로그램, 그리고 행정사무에 불과해 주민들의 자치사무나 자치를 위한 조직은 아니다. 그럼에도 ‘주민자치’라는 정책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주민자치 정책은, 자치권을 자치 단위에 이관하기 위해서는 행정 통제조직을 철거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자치의 기본상식’을 구비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주민자치에 대한 이해에서 제도설계자들이 반 자치적인 의도와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유추된다.

요컨대, 한국의 주민자치 정책은 대표적인 정책 실패의 사례로서 제도의 재설계가 요구되는 정책이다. 따라서 한국의 주민자치 정책을 주권재민과 주민주권에 입각해 지방자치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도록 새로운 정책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정책수단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국정패러다임의 정책도구를 도입해야 할것이다.

2020년에는 한국의 주민자치 정책이 지방자치의 본질을 회복해, 민주주의 발전을 균형 있게 견인할 수있는 정책 제안들이 제시될 것으로 기대해 본다. 21세기 선진국의 새로운 모델을 지향하는 한국에서 자치분권적 국정패러다임에 부합하는 주민자치 정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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