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회장부터 개발위원(주민을 대표하는 마을회 운영위원. 주민총회에서 추천을 받아 이장이 선임한다-편집자주)만 무려 17년을 한 김철홍 성읍1리장은 올해 초 주민이 직접 선출한 3년 임기 ‘이장’에 취임했다.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인 ‘성읍민속마을’의 지킴이 1호가 된셈이다. 6월 19일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정기회의 탐방 프로그램으로 성읍민속마을을 방문했을 때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열정적으로 마을을 소개하고 향후 발전방안까지 짧게 언급해 깊은 인상을 남겼던 김철홍이장, 이후 보충 인터뷰를 통해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1리 성읍민속마을의 속 깊은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읍면동 민주화’ 논의가 한창인 이 때, 이제는 주민자치회가 ‘읍면동’에서 더 내려가 ‘통리’ 차원에서 구성되어야 실질적인 ‘풀뿌리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미 ‘통리’차원의 주민자치가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 마을이 있다. 제주도의 마을회, 그중에서도 성읍1리는 더 특별하다. 온 마을이 국가지정 중요민속문화재이기 때문에 마을회의 역할,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는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마을을 방문하기 전 미리 성읍1리에 대한 소개글과 마을회 조직도를 받았다. 일단 표만으로도 상당히 체계화 되어 있고 꽤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조직도는 조직도일 뿐’의 사례와 경험도 있던 터라 김철홍 이장에게 직접 설명을 듣기로 했다. ‘개발위원’(대략 운영위원으로 예상했더니 이와 비슷했다)이 20명 가까이 되고 위원회도 크게 3개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임기 3년의 단임제 이장과 감사 2명,그리고 개발위원 19명이 마을회를 이끌어 가고 있어요. 개발위원은 주민총회에서 추천을 받아 이장이 선임하고요. 이 개발위원 중에서 시간을 내서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할 분들이 주로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회의는 보통 한달에 한 번 하고 혹시 긴급한 이슈가 있을 때는 소위원회 형식으로 위원장 회의를 하고 개발위원들의 심의를 받아 결정합니다. 또 청년회, 부녀회, 노인회등 마을단체가 있어서 나름대로 활동하며 마을회를 뒷받침 합니다. 주민자치와 마찬가지 역할이고요, 아주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올해 1월 성읍1리장의 중책을 맡은 김철홍 이장은 보통 두세 명이 입후보하는 이전 선거 때와는 달리 단일후보로 출마해 주민 찬반투표로 이장에 선출됐다. 그의 주요 공약은 △성읍마을 주변의 혐오시설을 없애 청정 마을 만들기△마을을 감싸주는 아름다운 영주산을 명산으로 가꾸는 것 △민속마을 보존과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동시에 꾀하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김 이장은 “이 곳은 산간마을로,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한라산 가까운 중산간지대라 혐오시절이 많이 들어오게 된다. 양돈장, 풍력, 태양광, 쓰레기매립장, 채석장 등. 마을이 목장지대에 오름이 많다 보니 국가에서 법에 위배되지 않은 범위 내에서는 허가를 내주는 경우가 많은데, 경관상이나 악취 때문에 주민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마을 주변에 혐오시설을 없애고 청정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 마을을 감싸주는 있는 영주산은 상당히 아름다운 산이다. 올라가보면 저 멀리 바다까지 제주도의 2/3가 보이는데 성산일출봉, 우도, 서귀포 인근까지 탁 트인 전망이다. 또 오름 군락지로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에 영주산 분화구 인근에 참꽃을 600분 심기도 했는데, 정상 올라가는데도 조망권등을 위해 등반로도 정리해야 한다. 영주산 주위에 있는 제주도에서 제일 큰 저수지도 잘 정비해 영주산을 명산으로 잘 가꾸는 것도 중요한 사업 목표이다”라고 밝혔다.

김철홍 이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세 번째다. “6월에 오셨을 땐 시간이 짧아서 자세히 말씀 못 드렸지만 성읍민속마을은 설명드릴 게 많은 동네”라고 그는 서두를 꺼냈다. 김 이장은 “1984년 정부가 중요민속마을로 지정했는데 실질적으로 주민과 행정과의 대화가 부족하고 주민들이 많이 지쳐 있다.

오랜 기간 문화재로 묶여 있다 보니 주민들의 생활권, 재산권, 인허가 과정, 집신축 부분에서 상당히 제재 받아 그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해 한 해좋아지려나 하던 게 37년이 됐다. 이제는 뭔가 개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민속마을로 가치 있게끔 문화유산을 잘 지켜야 하는데 그렇다고 주민들 입장에선 수입이 되는 건 아니다. 관광소득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기반시설이 잘 갖춰져야 하는데 이게 잘 되지 못했다. 이건 행정에서 도와줘야 할 부분이다. 이래야 주민들도 (불편하지만) 마을에 사는 보람이 생기고 마을도 더 잘 보존될 수 있다. 토산품, 향토음식, 민박, 아름다운 민속 등 마을을 잘 만들어 놓으면 더 많은 분들이 찾아와 만족할 수 있게 되고 그런 속에서 주민들의 경제적 수입도 늘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될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리하자면, 성읍민속마을을 혐오시설 없는 청정마을로 만드는 것, 마을을 지키는 명산 영주산을 더 잘 가꾸는 것 그리고 마을의 전통과 민속도 잘 보존하면서 주민 삶의 질도 높이는 것, 이 세가지가 김철홍 이장의 최대 목표이자 과제인 셈이다.

옛 전통과 문화유산은 잘 보존해야 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의 불편과 고통은 겪고 있는 주민들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또, 막연히 예상하거나 짐작하는 것과 실제 현실은 다른 법이다.

“성 안에만 3만평에 84가구가 있어요.이 중 44가구가 국가에 매입돼 있고 그집들엔 사람이 안 살아요. 박물관이 되어버린 거죠. 민속마을하면 그 속에 사람들이 살고 있어야 하는데 그 원형이 깨진 거죠. 빈집들은 방치 속에서 빨리 훼손돼요. 관리하는 데 국가 예산만 들어가는 거죠. 그 예산이 안 쓰이려면 집을 잘 활용하면서 집 안팎을 관리하고 올레 주변까지 잘 관리해야 사람 사는 집으로 변모할 수 있는데 그걸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 빈집을 활용해 전통음식, 향토음식점을 운영하게 한다든가 하면 주민들 소득도 되고 집도 보호할 수 있고 국가 예산도 절감할 수 있어요. 그 예산을 주민 복지로 돌릴 수도 있고요.”

‘낭만’이 아닌 ‘현실’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김철홍 이장은 “저도 초가집에서 태어났지만 초가집을 벗어나 더 좋은 집에 살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있다. 여러 가구에서 민박을 운영하고 타지 분들이 하룻밤 낭만으로 머물 수는 있으나 현실적으로 일주일 이상은 살고 싶어도 살기 어려울 것이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빈 초가집들을 억지로 모형식으로 그냥 놔두면 상당히 훼손되고 국가 예산만 낭비 된다”고 거듭 지적했다. 그리고 좋은 벤치마킹 사례, 종합적모델로 일본의 ‘시라카와 민속마을’을 언급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일본 전통 농촌의 모습을 잘 간직한 유명 관광지이다. 전통을 잘 지키고 보존하면서 그 속에서 주민들이 경제활동도 영위하는 ‘지속가능’ 모델인셈이다.

김 이장은 중요한 핵심도 빼놓지 않았다.

“사람이 사는 민속마을이라고 해서 찾아왔는데 이게 박물관이다 하면, 사람사는 민속마을과는 다른 거거든요. 민속마을에는 천연기념물, 유·무형문화재, 초가집만 있는 게 아니고, 사람들의 삶과 예전부터 해왔던 문화예술 활동 등도 문화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을엔 이런 부분이 상당히 많이 갖춰져 있습니다. 민요, 각종 동아리 활동, 원님행차 행사, 초가집 지붕 잇기 민속놀이 등 여러 가지가 있고 주민들이 거의 탤런트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고 협조, 지원이 거의 없습니다. 유·무형문화재, 돌하루방만 관리하죠. 성 안 3만평 뿐 아니라 성 밖 24만평까지 모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고 또 그런 힘든 세월 속에서 300여 가구가 많은 아우성 속에서 지금까지 버틴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로나19까지 강타해 주민들의 어려움은 더 커졌다. 매년 10월에 개최하는 가장 큰 마을행사인 ‘정의골 축제’가 지난해 처음으로 열리지 못했다. 8개 반이 돌아가면서 종목을 달리해 매월 실시하는 민속놀이 한마당도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상황이 나아진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겠지만) 오는 10월 공주에서 열리는 전국예술경연대회에 성읍민속마을 주민100여명이 제주도 대표로 참가하게 되어 8월부터는 연습도 해야 한다. 상황을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정의골 축제도 올해는 조심스레 개최 준비를 생각하고 있다.

“평생 성읍에서 살면서 32살 때 청년회장을 시작으로, 실은 그 이전부터 마을일을 해 왔고 마을회 개발위원만 17년을 했습니다.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이장 출마 권유를 받았지만, 친구·사촌·사돈의 팔촌까지 다 얽히게 되는 제주도의 특성상 이장 경선을 하게 되면 그 후유증이 오래가더라고요. 농촌마을일수록 더 오래가고 선거도 혼탁해지고요. 그런 상황을 많이 겪다 보니, 또 이장이라는 자리가 주민의 삶과 안전 보장, 단합과 화합을 이뤄가야 하는 중책이라 여러 차례 고사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어느덧 지금 나이가 되다보니 이장이 3년 단임제인데 이번에 안하면 마을에 봉사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싶고 또 자연스럽게 후보 단일화가 되어 경선을 피할 수 있어서 하게 되었습니다. ‘이걸 개선해야만 주민들도 살고 마을 발전도 있지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행정 당국(도청 세계유산본부)에 하고 싶은 말도 켜켜이 쌓였다. 그는 “담당공무원 임기는 정해져 있지만 주민들은 계속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행정에서 주민들 의견을 듣고 이를 문화재청이나 국가에 전달하는 중간 역할을 해줘야하는데 그 동안은 중간 역할을 제대로 못한 부분이 많다. 소통이 원활히 되지 않고 주민들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다보니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행정 당국이 주민을 위해 이 마을을 살려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고 여기에 주민들이 안도 만들고 계획도 짜고 발전방안도 제시하는 등 스스로 노력하는 게 더해져야 변화와 발전이 있다. 우리 마을에서는 1년 전부터 자체정비계획, 발전방안을 잘 만들어 놓았다.

이런 부분을 행정에서 지원하고 같이 협조해 마을을 살려나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그러지 못한 게 안타깝다. 그 동안 행정 위주로 갔기에 마을이 어렵게 된 것이고 주민들도 관심을 안 갖고 내버려둔 측면이 있다. 7월에 공무원 인사이동이 있는데 우린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새로 오시는 분과 잘 협력해 여러가지 방법으로 변화를 실행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강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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