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사진 워너브러더스코리아/누리픽쳐스

많은 영화의 배경이 ‘마을’이다. 영화 주인공들의 삶의 터전 역시 그들이 사는 마을이고 동네이기 때문이다. 스크린 속 인물들은 배경이 되는 마을, 그리고 이웃들과 때로 갈등하고 협력하며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은 해피엔딩이 되기도 하고 비극으로 치닫기도 한다.
앞으로 ‘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에서는 마을과 사람들의 케미스트리, 그들 사이의 교감과 성장, 변화를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그 속에서 주민자치의 바람직한 방향, 때로 반면교사의 깨달음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 주>

⁎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다 보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소식들을 접할 때가 있다. 스릴러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엽기적인 범죄, SF적 이상기후와 황당한 참사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멀리 갈 것 없이 온 인류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만남을 자제해야 하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대폭발테러사건, 일명 9.11 테러 뉴스만큼 현실로 믿기 어려웠던 사건도 드물다. 납치된 민간 항공기들이 110층 높이의 빌딩 두 개를 들이받고 건물이 폭발하며 무너져 내리는 영상은 그 어떤 블록버스터의 한 장면보다 자극적이었다. 21세기 초엽에 세계 경제의 중심지, 뉴욕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그 충격의 강도만큼 미국 사회와 국제 정세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영화계가 9.11을 이야기하는 데는 오랜 숙려의 시간이 필요했다. 더욱이 수 천 명의 민간인 사상자를 낸 비극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상업적 소재로 이용하기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테러 이후 탈레반을 향한 미국의 보복 및 그 결과에 비판적으로 접근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와는 결을 달리하는 영화가 있다. 조나단 사프런 포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Extremely Loud And Incredibly Close, 2011, 스티븐 달드리. 이하 ‘엄청나게’)은 9.11이 뉴욕 시민들에게 남긴 지독한 트라우마와 그 이상적 치유법을 제시한 지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작품이다.

9.11이 남긴 지독한 트라우마 그리고 그 이상적 치유법
사이렌 소리와 함께 학교가 일찍 끝나던 어느 날, ‘오스카’(토마스 혼)는 각별한 사이였던 아빠를 잃는다. 그 날은 아빠가 남긴 여러 개의 전화 메시지와 뉴스 속보가 오스카의 머릿속에서 뒤엉키며 또 다른 폭발을 일으키던 날이기도 하다. 본래 미세한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어 지능은 뛰어나지만 지하철도 타지 못하고 대인 관계에도 어려움을 겪는 오스카는 1년이 지나도 아빠와 마지막으로 하고 있던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뉴욕의 여섯 번째 자치구를 증명해야 하는 미션에 아빠가 분명히 어떤 힌트를 남겼을 거라 믿으며 유품을 뒤지던 중 ‘블랙’이라는 이름이 쓰인 봉투 안에서 열쇠 하나를 발견한다. 그 때부터 오스카는 주말마다 뉴욕시에 살고 있는 블랙이라는 성을 가진 사람들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열쇠의 정체에 대해 묻는다. 

방독면부터 탬버린, 쌍안경, 호루라기, 호신술까지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 끝에 집을 떠나지만 열 살 소년의 이 비밀스런 ‘탐험’은 꽤 위험하고 많이 외로워 보인다. 그러던 중, 오스카는 우연히 할머니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말 못하는 노인을 만나 그와 탐험을 함께하게 된다. 친할아버지인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그 세입자와 동행하면서 오스카는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두려움과 강박증도 조금씩 극복해 간다.
오스카의 상실감과 그리움은 9.11테러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뉴욕시민을 대변하듯 깊고 진하게 묘사된다. 그것은 한 소년에게 3년이 걸리더라도 뉴욕에 있는 모든 블랙 씨를 만나겠다는 결심을 하게 할 만큼 인생에 절대적인 사건이었고, 종종 ‘나쁜 짓’(자해)을 하게 만들 만큼 고통스러운 비극이었다.

오스카는 처음 만난 세입자에게 자신의 상황을 열변하듯 털어놓는다. 엄마나 할머니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비밀을 오히려 낯선 사람에게 술술 이야기하게 되는 심리가 아이러니 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그려진다. 노인은 오스카 몸의 상처를 보고는 놀라는 대신 이제 자러 가야겠다고 하지만, 곧 탐험에 동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다. 오스카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몇 마디 말보다 동행이라 판단한 노인의 지혜는 이후 오스카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끌어낸다.

그러나 오스카의 상처를 보듬는 사람이 할아버지 뿐 만은 아니다. 오스카가 만난 뉴욕의 블랙 씨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소년을 위로해준다. 오스카가 찾아가기 전까지 생면부지의 관계였지만 그들은 기도를 해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그림을 그려주고, 몇 번이나 꼭 끌어안아 주면서 자신이 오스카와 무관하지 않으며 그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음을 표현한다. 사실 그들은 대부분 오스카의 계획을 눈치 챈 엄마를 통해 오스카의 방문을 예고 받은 상태였고 이미 엄마에게도 비슷한 방식의 위로를 전한 후였다. 직접적인 피해가 없었다 해도 뉴욕 시민들에게 9.11은 공동의 재난이자 함께 극복해 나가야 할 비극이라는 점을 그들은 잘 인지하고 있다.

오스카의 아빠가 말한 것처럼 뉴욕시민들은 여섯 번째 자치구가 가라앉는 것, 즉 테러라는 사건을 막지는 못했을지 몰라도 현재 무너진 두 동의 빌딩 자리에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9/11 메모리얼 뮤지엄’을 세우고 평화를 염원하고 있다. 마음 속 흉터까지 사라지기는 어렵겠지만 이 거대한 도시에도 서로를 향한 위로가 있는 한 상처가 다시 곪지는 않을 것이다.

힘든 누군가를 위해 이웃들이 할 수 있는 일
위로 좀 할 줄 아는 공동체를 보여주는 또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Lars And The Real Girl, 2007, 크레이그 질레스피. 이하 ‘그녀’)는 한국 제목 때문에 종종 로맨틱 코미디로 오인 받는 작품이다.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당황스러울 수 있겠으나 훌륭한 각본과 따뜻한 메시지가 인상적이고, 최근 ‘아이, 토냐’(2017), ‘크루엘라’(2021) 등을 연출한 크레이그 질레스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점도 주목해 볼 만하다.

커뮤니티 공동의 재난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엄청나게’와 달리 이 영화에는 가정사로 인해 정신적 이상을 겪는 20대 청년이 등장한다. ‘라스’(라이언 고슬링)는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이지만 언젠가부터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임신한 형수 ‘카린’(에밀리 모티머)은 혼자 차고에서 지내며 식사 한 번 같이 하지 않는 라스를 염려하는데, 정작 형 ‘거스’(폴 슈나이더)는 동생의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어느 날, 라스가 인터넷에서 만난 여자친구라며 리얼돌, 비앙카를 데려오자 거스는 그제서야 동생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인정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우울한 아버지와 단둘이 지내야 했던 라스의 감정을 돌아보게 된다.

‘그녀’는 ‘엄청나게’ 보다 더 분명하게 한 사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필요한 이웃들의 협조와 단합에 대해 말한다. 교회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리얼돌은 금기시해야 할 존재임에도 주민들은 의사의 조언과 거스 부부의 부탁을 받아들여 라스와 마찬가지로 비앙카를 진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교회에서는 비앙카를 새신자로 환영해주고, 직장 파티에 모인 이들 또한 비앙카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표한다.

리얼돌을 씻기고 재우며 이런저런 모임에 데리고 다니는 가족과 이웃들의 수고는 세심하고 따뜻하다. 그리고 그 모든 행위가 사실은 비앙카가 아닌 자신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라스는 스스로 비앙카를 떠나보낸다. 비앙카를 매개로 타인의 기분과 감정에 공감하는 법을 배운 라스에게 인형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된 것이다. 비앙카의 장례식이 끝난 후, 라스가 직장동료이자 호감을 느끼고 있던 ‘마고’에게 한 발짝 다가서는 마지막 장면은 주민들의 인내와 노력이 만들어낸 해피엔딩이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있는 이웃을 방치해두지 않는 방법
‘엄청나게’에도 좋은 대사들이 많지만 문학을 원작으로 한 만큼 현학적인 데가 있다면 ‘그녀’에는 좀 더 쉽고 날카로운 명대사들이 등장한다. 비앙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교회 노부인은 방에서 간호를 하고 있던 라스를 거실로 부른 후 손수 마련한 음식을 대접한다. 거실에는 함께 찾아온 노부인들이 뜨개질과 퀼팅을 하고 있다. 그들은 가끔 라스에게 미소를 보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라스가 자신이 할 일이 있는지 묻자 한 사람이 대꾸한다.

“아니, 넌 그냥 잘 먹어두렴. 우린 그냥 앉아 있으려고 온 거야. 힘든 일이 닥치면 주변 사람들이 그러는 법이거든. 찾아와서 곁에 앉지.”

비대면이 강요되는 시대에 이 얼마나 의미심장한 말인가.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조차 곁을 지켜주는 것에 인색하게 굴었던 시절을 부끄럽게 만드는 대사다. 그러나 지금도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로 고통을 토로하는 공동체의 일원들, 믿을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있는 이웃을 방치해두지 않는 방법은 있을 것이고 우리는 그 해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윤성은 영화평론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저작권자 © 더퍼블릭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