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주민자치 실질화 정책토론회
기조 발제
“자치권 보장-통리 설치로 주민·지역 대표하는 실질적 주민자치회 돼야”

왜곡된 행안부 표준조례, 기형적인 주민자치회 만들어
전상직 회장은 “주민자치에 몸담은 지 20년이 넘었다. 가장 안타깝고 애석한 점은 주민자치 실질화를 위해 주민자치위원뿐 아니라 시장, 군수, 구청장, 국회의원, 총리 등에게도 매번 같은 말씀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단체자치 30년,주민자치는 20년이 넘었지만 전주시만 봐도 단체자치는 잘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주민자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왜 그럴까? 단체자치는 발전할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고 주민자치는 발전할 수 없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라며 발제의 포문을 열었다.

이어서 “한국의 지방자치는 주민자치가 없는 기형적 구조다. 주민자치회 법, 회장 선출, 회원 총회, 조직과 인력, 자치사무와 재정 등이 모두 부재되어 있다”라고 비판하며 “주민자치를 간략히 정의하면 마을의 생활관계를 주민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하는 체계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주민이 자발적, 자주적, 자율적으로 자치할 수 있도록 주민자치회에 분권력과 자치력을 부여해 줘야 한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또 “그러나 지금의 주민자치는 읍면동장 아래에 위치해 있다. 시장, 군수, 구청장들은 시민단체에 주민자치를 위탁해 행정과 정치를 위한 주민관치로 변질되어 있는 상태”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제자리걸음하고 있는 주민자치의 현실도 꼬집었다.

“김대중 정부는 혁신적인 주민자치회 설치를 추진했으나 행정 관료들의 반발에 부딪혀 주민자치센터의 프로그램 을 심의하는 정도의 주민자치위원회로 격하시켰다. 그마저도 일체의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읍면동장 하부조직으로 전락시킨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에서도 역시 입법권과 인사권, 재정권이 부재된 시범실시 주민자치회에 그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는 아예 시민단체에 위탁해 주민과 주민자치회를 철저히 무력화시켰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문제는 행정도, 지방의회도, 학자도 주민자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행정안전부 주민자치회 표준조례안이고 서울형 주민자치회”라며 자세한 설명을 이어갔다.

전 회장은 행정안전부 표준조례가 주민자치를 철저하게 왜곡시켰다며 구체적 증거로 “지방자치분권 및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 제27조 주민자치회 설치에 관해 ‘풀뿌리자치 활성화와 민주적 참여의식 고양을 위해 읍면동에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 주민자치회를 둘 수 있다’는 조항을 행안부 표준조례에서는 ‘해당 행정구역의 주민으로 구성되는’이란 문구를 삭제했다”며 “이로 인해 주민자치회의 회칙 제정권은 박탈되고 대신 시군구 조례에 묶여 관치화되었다. 주민자치회장 선출권도 박탈되고 공개추첨으로 무력화시켰다. 주민자치회 재정권 역시 빼앗아 시군구예산에 의지하게끔 예속화 시킨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전 회장의 주장대로 현재 주민자치회는 주민이 아닌 위원으로 구성된 기형적인 형태다.

사전의무교육으로 걸러내고 추첨으로 차단하고
그는 특히 사전의무교육과 추첨제로 이어지는 주민자치위원 선정방식을 강하게 비판했다. “매우 불명확한 공고를 통해 공개모집하고 사전의무교육을 강제한 뒤 추첨으로 선정되는 주민자치위원 선정방식은 겹겹의 장애를 만들어 뜻 있는 주민의 주민자치회 진입을 원천적으로 막아 놓았다”라며 “주민자치회는 대표성, 사회성, 신뢰성이 높아야 하는데 추첨으로 위원을 선정하면 자치사업의 연속성을 보장하지 못함과 동시에 자치계획 수립 등의 사무조차 불가능하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주민자치회의 구역 및 계층에 대해서도 강도 높은 비판의 화살을 던졌다.

“읍면동 단위에 주민자치회를 설치한 것은 명백한 주민자치정책의 오류다. 한국의 읍면동 대다수가 자치단체에 가까운 규모다. 인구에서도 무보수 명예직의 비상근 주민자치회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며, 면적에서도 생활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라며 “주민자치회를 통리 계층에 설치하는 것이 이론적, 현실적으로 가장 적절하고 기존의 행정 보조기능을 주민자치회로 전환하면 주민자치 실질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중구조의 주민자치회는 지역이나 주민을 대표하는 자치기능, 자치단체와 협력하는 협치기능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자치기능을 통리 계층에 두고, 협치기능을 읍면동에 두는 이중구조로 주민자치회 설계가 가능하다.

전 회장은 또 “주민자치회에게 할 수 없는 사무를 강요한 점도 문제”라며 “주민자치위원의 능력 부족 탓이 아니다. 권력화, 이익화, 신분화가 문제다. 주민자치는 행정 서비스나 시민운동과 전혀 다르다. 쉽고 재미있고 비용이 적게 드는 일들이 바로 주민자치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주민자치회에 주민이 자치할 수 있도록 권리능력과 행위능력을 부여해야 한다. 그런데 봉사활동을 사업화하는 행정과시형 사업이나 시민단체 활동을 사업화하는 완장형 사업만 종용하고 있다. 공동체 생활에 필요한 마을서비스 사업 같은 주민자치형 사업은 진행되고 있지 않은 현실”이라고 성토했다.

시민단체에 위탁된 주민자치, 식민지와 같아
전상직 회장은 행정과 정치가 주민자치에 저지른 가장 큰 폐해는 주민자치회를 시민단체에 위탁해 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표준조례 제21조(지방자치단체의지원) ‘⑧시장(또는 군수·구청장)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관련 법인 또는 단체 등으로 하여금 주민자치회의 설치·운영을 지원하게 할 수 있다’는 조항에 근거한 것”이라며 “시군구장이 시민단체에 주민자치를 위탁시켰고, 위탁 받은 시민단체는 중간지원조직이라는 허명 아래 주민자치를 간섭하고 침해하며 지배해 버렸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서 “관련 조례를 통과시킨 지방의회도 주민자치를 훼손시킨 공범과 같다. 주민자치를 포괄적으로 위탁시키는 조례를 알고 통과시켰다면 무책임의 극치이고, 모르고 했다면 무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같은 참사는 서울형 주민자치회에서 이미 확인한 바 있다. 서울형 주민자치회는 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마을자치센터-동자치지원관으로 이뤄지는 철저한 수직체계를 구축해 주민자치회를 가장 말단에 던져 버렸다”라고 꼬집으며 “행전안전부의 주민자치회 시범실시 사업은 최초 87개로 시작, 현재 1300여 개 읍면동으로 펴진 상태다. 그것도 기존 주민자치위원회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분석조차 부재된 채로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주민 동의 없이 무차별적으로 실행 중이라는 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주민자치회가 직접 주민자치센터를 운영해 주민들과 소통하고 주민자치의 기틀을 다져야 한다고 주장한 전 회장은 “주민과 주민자치회는 충분히 자치역량이 있다. 하지만 행정이나 정치에서는 주민들에게 자치역량이 없다고 호도한다”라며 “분권이 없는 상태의 자치역량은 민원의 소지가 되고 정치적 편향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주민의 개인역량을 집단역량화시킨다면 읍면동장이나 지방의원들에게 절대 반가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럴수록 주민자치회가 주민들에게 자치의 동기를 부여하고 지속적으로 숙성시켜야 한다. 더불어 지역과 사회, 사업 등에 따라 주민자치회의 유형을 특화시켜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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