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주민자치 연구세미나
제40회 박진곤 박사 ‘21세기 영국 패리시 카운실의 부흥:알리스테어 존스의 연구분석 소개

선진국의 주민자치 사례를 얘기할 때 미국의 타운미팅, 독일과 스위스의 게마인데와 함께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영국의 패리시 카운실(협의회)의 최근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흔치않은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주민자치학회는 9월 22일 ‘21세기 영국 패리시 카운실의 부흥’을 주제로 제40회 주민자치 연구세미나를 개최, 박진곤 박사(성신여대 강사)가 발제를 맡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특별히 2020년에 발간된 알리스테어 존스(Alistair Jones, 드몽포르대 교수)의 저서 ‘잉글랜드 패리시 카운실 파워의 부흥(The Resurgence of Parish Council Powers in England)’의 주요 내용을 정리해 소개했다. 이 책은 △1장도입: 패리시 카운실의 개념 △2장 지방정부의 비용절감 추진 △3장 패리시 카운실의 증가 △4장 국제적 비교 △5장 역량 이슈 △6장 결론: 패리시 카운실의 부흥 등으로 구성돼 패리시의 형성과정과 법적지위, 활동과 영향, 최근 부흥 원인 등을 분석하고 있다.

“패리시 카운실, 주민과 가장 밀착된 조직...민주주의에서 중요한 역할”
발제에 따르면, 지방정부에 관한 연구에서 패리시 카운실은 상대적으로 등한시 되어 왔으나 최근 중앙과 지방의 상위 정부 권력은 패리시 카운실 재구성 및 역할 확대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패리시 카운실이 지방정부 내에서도 가장 지역, 주민과 가깝게 접촉하는 기구이며 민주주의 관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잉글랜드 내 현재 형태와 기능의 패리시 카운실은 1894년의 지방정부법(Local Government Act)에 의해 형성됐으며, 300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농촌 지역은 반드시 패리시 카운실을 형성할 것을 요구 받기도 했다. 하지만 패리시 카운실 자체의 역사는 최소 500년 가까이 될 정도로 훨씬 더 오래됐으며 역사적으로 도로와 하수구 보수, 빈민 구제/관리, 공공 조명 보수, 치안 유지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잉글랜드 전역에 형성되어 있지는 않으며 특히 대도시에는 형성이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박 박사는 설명했다.

박진곤 박사는 “영국은 의회주권제에 의해 운영되므로 의회는 아무런 헌법적 제약 없이 지역 기구를 형성하거나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한번 형성된 패리시 카운실이 상위 정부 권력에 의해 철폐되는 것은 매우 드물다. 오히려 요즘은 패리시 구성이 늘고 있다”라며 “현재 잉글랜드의 약 70%의 인구가 패리시 카운실이나 패리시 미팅을 결여하고 있다. 콘월 등의 몇몇 지역에서는 패리시 카운실전통이 매우 오래되었으며 강하다. 이것이 부재한 지역은 대부분 도시 지역들이다. 이는 도시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이의 유익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 극명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다만 도시 지역에서 패리시가 형성된다면 훨씬 큰 규모 가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발제 박진곤 박사(왼쪽), 토론 홍형득 교수
발제 박진곤 박사(왼쪽), 토론 홍형득 교수

알리스테어 존스 교수가 분석한 ‘21세기 잉글랜드 패리시 카운실의 부흥’과 관련된 세 가지 정치적 변화는 △지방정부 조직의 규모 확대 △긴축 재정 정책 △지방주의(localism)’ 등이다.

먼저 ‘지방정부 조직의 규모 확대’는 1972년 지방정부법에 의해 그 숫자가 크게 감소했으며 이후 추가적인 통폐합 조치들이 시행됐다. 변화의 명분은 ‘규모의 경제’와 결부된 높은 비용 효율성이지만 이러한 경제적 유익이 지방정부 조직의 규모 확대로부터 비롯된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고 존스 교수는 주장했다고 박진곤 박사는 발표했다.

한편, 이 같은 지방정부 조직의 거대화 현상은 ‘민주주의적 손실(the democratic deficit)’을 야기한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라고 박 박사는 언급했다.

즉, 인구와 지역상으로 비대해진 지역 정부 조직은 이전보다 지역 시민들로부터 멀어진 모습을 보여 왔으며,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많은 이로 하여금 지역과 가깝게 접촉하는 패리시 카운실의 새로운 형성이나 역할 확대에 관심을 갖게 했다고 존스 교수는 분석했다. 박 교수는 “바로 이 지점이 패리시 카운실 부흥의 가장 큰 이론적 명분”이라고 지적했다.

“지방정부 거대화, 민주주의적 손실 야기…주민과 가까운 패리시 카운실 역할 재조명”
패리시 카운실의 부흥과 관련된 두 번째 중요한 변화는 지방정부의 긴축재정 프로그램‘이다. 이는 2007~8년의 세계 금융위기로부터 비롯됐으며 이를 통해 특히 지방정부 재정 지출의 대규모 삭감이 이뤄졌다. 이같은 흐름은 지방정부로 하여금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고민하게 했다고 박진곤 박사는 설명했다. 그리고 패리시 카운실이 선택적 공공 서비스 제공의 책임을 맡을 기회를 얻기도 한 것이다.

세 번째 변화는 ‘로컬리즘’이다. 2011년 로컬리즘법은 중앙에서 지방으로의 대대적 권한 및 업무이양에 초점이 맞춰졌으며 이는 긴축 재정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던 측면도 있다. 지방이 필요로 하는 공공 서비스를 그 지역 공동체를 통해 조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며 모두의 초기 예상과는 달리 패리시 카운실이 상당 부분 이 같은 공공 서비스 제공의 책임을 맡게 되었던 것이다.

알리스테어 존스의 저서 3장은 패리시 카운실의 급부상과 증가를 다뤘으며 그들이 속한 지역 공동체를 위해 패리시 카운실이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지 탐구, 분석해 실었다. 이에 따르면, 영국법은 패리시 카운실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을 어느 정도 제한하고 있지만(즉 상위 정부기구에 명시적으로 위임된 권한 및 업무는 침해 불가) 그러한 제한 내에서 패리시 카운실은 다른 공적/사적 기구들과 협업하여 지역공동체를 위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새로운 파트너십을 통해 자신의 역할을 강화해온 측면이 있다.

패리시 카운실의 대표적 역할로 ‘패리시 플랜(Parish Plans)’ 수립과 실행이 있다. ‘패리시 플랜’은 패리시 카운실이 이 자신이 속한 지역공동체의 개발에 대해 수립하는 전반적인 계획이다. 이는 상위 지방정부 기구의 개발계획과 충돌하기도 한다.통상적으로 패리시 카운실은 자원 부족으로 인해 단독으로 자신의 패리시 플랜을 실현시키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상위 지방정부 기구나 다른 종류 파트너와의 협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협력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패리시 플랜은 실현불가능한 희망사항에 그치게 되어 패리시 카운실의 무력감을 강화할 수도 있다고 박진곤 박사는 설명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주민세 혹은 개발부담충당금 같은 속성을 지닌 패리시 프리셉트(Parish Precept)는 각 패리시에 소속된 납세자들로부터 별도로 거둬들이는 세금으로, 대부분의 패리시 카운실은 상위 지방정부 기구의 자금이 아닌 이 ‘프리셉트’에 재정적으로 의존한다. 건물 임대 등을 통한 수입도 존재하지만 프리셉트가 패리시 카운실재정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 프리셉트에 대한 법적인 상한선은 존재하지 않지만 매우 과도한 양을 징수하는 경우는 드물다. 왜냐하면 카운실은 선거와 연결되어있는 조직으로 카운실멤버들이 유권자들의 선거로 선출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많은 액수의 프리셉트를 징수하긴 어렵다.

박진곤 박사는 “상위 지방정부 기구는 통상적으로 패리시 카운실과의 논의를 거쳐 지역 개발 계획을 수립한다. 하지만 많은 카운실 멤버들의 보고에 따르면 상위 지방정부 기구가 진지하게 그들의 의견 및 패리시 플랜을 고려하는 경우는 드물다. 법적으로 의견 반영의 의무는 없다”라며 “통행권, 버스 정류소, 가로 조명, 주차 등의 교통 관련 사안들은 종종 패리시 카운실이 다루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안들에 대해 패리시 카운실과 상위 지방정부 기구가 의견차이로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사회 채진원 교수(왼쪽), 토론 전은경 원장
사회 채진원 교수(왼쪽), 토론 전은경 원장

“주민대표성, 패리시 카운실의 가장 중요한 역할…역량 강화는 상당한 시간·경험 요구”
발제에 따르면, 많은 패리시 카운실이 다른 기구와 파트너십을 이루어 지역공동체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파트너십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띠며 상위 지방정부 기구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전보다 더 다양한 사안에 공헌할 수도 있다.

또 주민대표성(Representation)은 패리시 카운실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패리시 카운실은 가장 ‘지역적인’ 지방정부 형태이며 유권자들에게 가장 가까운 자치기구이다. 그러나 패리시 카운실 선거에서는 상대적으로 정당의 역할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또한 많은 카운실러들이 단독으로 경쟁 없이 선출되며 어떤 이들은 선거 없이 기존멤버들에 의해 선임되어 카운실러가 되기도 한다.선거는 보통 4년에 한번 진행된다.

제4장 해외사례 비교와 관련, 분석 대상 국가들은 포르투갈, 폴란드, 자메이카, 트리니나드토바고, 독일, 덴마크, 스웨덴, 체코 공화국 등이며 이들 나라에서는 모두 패리시 카운실과 비슷한 정부조직이 발견 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정부나 중앙 정부에 대한 의존(특히 금전적 의존) △존재에 대한 헌법적 보호의 일반적 부재 △헌법적 보호가 어느 정도 존재하더라도 상위 정부 기구가 빈번히 이들 역할 및 구조에 개입 △대부분의 국가에서 서비스 제공 역량의 부족을 근거로 이들을 통폐합하거나 심지어 철폐했던 역사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5장 ‘역량’은 패리시 부흥 전망에 시사점을 줄 요소이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인데도 이에 대한 비현실적 기대도 많다. 먼저 존스 교수가 정리한 역량의 개념은 ‘변화를 예견하고 이에 영향을 주는 것’ ‘정책에 대해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것’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 ‘자원들을 끌어당기고 흡수하는 것’ ‘자원들 관리’ ‘미래 행동을 가이드하기 위해 현재 활동들을 평가하는 것’ 등이다.

많은 패리시 카운실이 상위 정부 기구보다는 매우 적은 재정을 운영하는데 이는 서비스 제공의 역량을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프리셉트를 많이 올리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고 따라서 다른 공적 혹은 사적 기구/단체와 파트너십을 형성해 특정한 프로젝트나 서비스 제공을 위한 자금을 조성하는 방법도 고려된다. 특정한 패리시 카운실의 역량강화는 상당한 시간과 경험을 요구 한다고 박진곤박사는 언급했다.

역량 강화와 관련해서 존스 박사는 △상위 정부기구와의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상위 정부 기구가 패리시 카운실에게 새로운 활동의 탐색을 가능케 하는 시간과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해당 지역공동체의 참여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런 점에서 지역공동체 자체의 역량 강화도 참여와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리더십과 관련해 존스 교수는 “패리시 카운실의 리더들은 특히 ‘플랜’ 수립을 통해 패리시 카운실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카운실러들은 패리시가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파악하고 그것을 제공할 방법을 고안해야 하며 다른 기구나 단체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자금 조성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들은 지역 공동체로부터 의견을 이끌어내고 함께 호흡하며 일해야 한다. 또한, 상위 정부 기구들과 의견을 조율해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정부 조직 규모 비대화-정부·유권자 사이 괴리,
패리시 카운실 신설 및 역할 확대 요구↑”

끝으로 박진곤 박사는 “이 책은 21세기 잉글랜드 패리시 카운실의 부흥과 관련해 300개에 가까운 패리시 카운실이 21세기에 설립되었고 이러한 과정은 현재진행형이다. 패리시 카운실은 그 어떤 선출된 정부 기구보다도 유권자들과 친밀한 관계에 놓여있다. 카운실러들은 유권자들 대부분의 이름을 알기도 한다. 지방정부 조직 규모의 비대화와 이를 수반한 정부와 유권자 사이의 괴리는 패리시카운실의 새로운 설립 및 역할 확대에 대한 요구로 이어져왔다. 패리시 카운실의 지속적 개발을 위해서는 상위 정부 기구 및 지역공동체로부터의 지지가 요구 된다고 결론짓고 있다”고 말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발제 후 채진원 한국주민자치학회 학술부회장의 진행으로 본격적인 토론이 이어졌다. 채진원 부회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주민자치센터와 주민자치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공무원 저항 때문에 애초 기획과는 달리 자문기구의 성격이 되면서 영국 패리시와는 다른 길을 걷게 됐다. 권한을 이양 받지 못한 상황에서 상부기구의 개입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경로를 밟게 됐다. 패리시 카운실 대표자, 집행부구성 방식도 우리와 다르고, 동네에서 필요한 공공서비스를 위탁 받아 집행하는 것도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갈 길이 멀다. 여러 측면에서 많은 비교 시사점 얻은 것 같다”고 서두를 꺼냈다.

홍형득 강원대 교수는 “방대한 내용을 잘 정리해주셔서 공부가 많이 됐다. 우리가 패리시에 대해 유의해야 할 게 있다. 패리시는 태생적으로 자치조직이라기보다는 종교 교구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1500년대부터 영국에서는 정치-종교 일체화 시기인 중세에 교구가 지역주민들의 커뮤니티역할을 했고 1894년에 자치조직으로 편입되어 이후 여러 차례 제도가 바뀌면서 축소, 확대 과정을 거쳤다. 정치적으로는 노동당, 보수당 정권이 들어섰을 때 광역화 기조로 자치에 대한 한계를 드러냈고 행정조직이 재정적 한계와 효율성 때문에 행정서비스를 제대로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 패리시가 부각됐다.

수요, 환경 등이 패리시를 다시 부각하게 한 측면, 맥락이 아닌가 생각한다”라며 “패리시는 수백 가지의 얼굴 가지고 있어 일반적으로 얘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사람들마다 다 다른 얘길 하는 것 같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이다.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운 측면이 있고 일반적으로 얘기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홍형득 교수는 “패리시는 30명에서 10만 명까지 조직 규모가 다양하고 주민들에게 깊이 뿌리내려 있다. 행정조직과 딱 일치하지 않고 하나의 행정조직에 여러 패리시가 있기도 하고 도시엔 아예 하나도 없기도 하다”라며 “영국의 자치조직을 얘기하면서 패리시를 어떻게 해석할까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고민이 있다. 영국은 다층적 자치구조라고 얘기한다. 유나이티드 킹덤에 4개의 4지역이 연방처럼 운영되는데 특히 스코틀랜드는 독자성이 굉장히 강하다. 발제에서 거론된 잉글랜드 패리시는 나머지 지역 사례와는 또 다르다.

기본적으로 패리시는 자치 행정조직이 아니다. 다만 어떤 패리시는 행정사무를 거의 할 수 없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행정에서 많은 부분을 이양 받아 하고 있기도 하다. 대부분의 패리시 조직은 재정적으로 열악해 행정서비스 제공 역할을 하지 못하는데 점차 그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할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상위 행정조직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토론 한종수 박사(왼쪽), 토론 류호익 회장
토론 한종수 박사(왼쪽), 토론 류호익 회장

“패리시, 수백 가지의 얼굴 가지고 있어…근본적
역할은 주민 삶의 질 제고”

그는 또 “패리시는 권한으로 보면 행정보다는 공동체의 대표에 가깝고 지역수요에 맞는 공공서비스 제공하며 주민 삶의 질 제고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그 역할에 있어서 행정과 구분 할 수 없을 때도 있지만 행정보다는 주민 삶에 있어서 더 근본적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다양한 역할을 하되 상위법에서 제한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하며 상위 조직과 협의에 의해 큰 역할을 하는 패리시가 많다”라며 패리시 운영 모습들 중에서 패리시 대표제가 있는데 하나의 지역, 단위 내에 여러 패리시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대표를 두는 경우다. 협의회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패리시 간 교육훈련, 지원 등을 하며 작은 조직들이 이의 지원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패리시가 한국 주민자치에 주는 함의에 대해 홍 교수는 “한국의 주민자치는 너무 인위적이다. 패리시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무보수 명예직으로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느낌이고 그 전통을 지켜주기 위해 중앙정부, 지방정부가 제도적으로 보완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게 한국과의 근본적 차이인 것 같다. 주민자치는 단순히 행정서비스의 보완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은 이런 점이 굉장히 강하다는 느낌이다. 한국의 주민자치회는 외부의 지원이 없으면 하루아침에 문 닫을 조직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이런 부분들을 하나씩 갖추고 보완해나가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채진원 교수는 “영국은 보통법/관습법(Common Law)의 나라다. 보텀업 방식으로 법이 자라나 끊임없이 충돌하고 상호작용 하며 오랜 경험 속에서 축적된 나라다. 이런 경험이 없는 우리나라 같은 나라들이 실정법 통치를 강제 강압으로 하게 되고 주민자치가 자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이 인위적 압력이나 강제, 예산지원이 없으면 작동이 안되는 상황이 되는 것 같다. 영국은 자력, 자조, 상호부조, 자발적 결사체 전통 남아 있어서, 굳이 우리나라에서 그 유사한 전통을 찾자면 향약 촌계에 더 가까운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진곤 박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 이야기들을 잘 듣고 새로운 사실도 많이 알아가는 것 같다. 패리시는 일반화하기 굉장히 어려운 개념이고 규모와 지역전통, 수요가 다 다르다. 법에 저촉되지 않으면 패리시는 창의적으로 막 설립되고 그런 프로젝트도 많이 생겼다. 지방에 따라 다 달라지고 있고 개성화 되는 것 같다. 질서정연하거나 단일화된 행정조직 느낌이 아니라 대단히 생동감 있는 조직이며 지역색을 많이 뛰고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전은경 한국주민자치교육원장은 “지역공동체가 커뮤니티를 의미하는 것인지? 우리의 경우 로컬 커뮤니티라고 하면 지역사회 내의 작은 동아리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패리시의 지역 대표기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한국 주민자치회의 대표 기능이 행정과의 협의라고 한다면 패리시의 대표기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궁금하다”고 질의했다.

이에 박진곤 박사는 “패리시 카운실의 대표기능은 카운실 멤버들이 선출된 다음에 계획을 자체적으로 수립하는데 상위 정부기구와 중복되거나 충돌되는 계획 수립은 안 되게 되어 있어 상위 정부기구와 조율을 하거나 지역 민의를 반영해 무리한 개발을 막는 역할 등을 수행한다. 다만, 이들의 불만이라면 의견 수렴은 하는데 상위 행정기구에서 듣는 시늉만 한다는 것이다. 의견 반영에 대한 강제조항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류호익 한국주민자치강사회의 공동회장은 “패리시는 기초정부로서의 지위가 아닌 애매모호한 포지션을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오늘 발표로 많은 부분이 이해가 됐다. 역량 강화에 있어 정부기구와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 관계가 잘 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박진곤 박사는 “서기(clerk)의 전문성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한다. 행정, 재정적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잘 운영할 수 있고 이는 전문적 영역이라 자격조건 돼야 할 수 있고 평가 시험도 있다. 아무나 지원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다”라며 “저자 존스 교수는 패리시 카운실의 입장에서 이 책을 쓴 것 같다. 패리시 카운실에 대해 비판 보다는 상위 정부기구가 잘 수용해야 한다는 논조이고 패리시가 성장하고 역량 개발이 될 수 있게 자원, 시간을 더 지원해야 한다는 논조로 쓴 것 같다. 다만 현실적으로 어떠한가는 별개의 문제인 것 같다”고 답했다.

박상규 경기도 주민자치회 대표회장은 “영국은 과연 어떤 제도로 주민자치가 잘 되고 있나 궁금하고 우리나라 주민자치가 너무 근본적 태생적으로 많이 어렵다는 생각이다. 영국의 주민자치 대체조직이 여럿 있는지 이것도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주민자치, 인위적·강제적으로 외양만 갖추는 것
아닌 작지만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뿌리내렸으면”

이에 박진곤 박사는 “시민사회 개념 속에 포함되는 집단, 단체, 조직들이 영국에도 많다. 그러나 지방정부에서 가장 주민과 밀접한 조직은 패리시 카운실 일 것이다. 정부에 포함되지 않은 단체들이 간접적으로 공공서비스 제공 역할을 하고 있는데 패리시도 다른 단체들과 협업을 많이 한다. 패리시카운실이 기댈 수 있는 조직, 단체들이 많은 것 같다”고 답했다.

홍형득 교수는 “한국은 주민자치 단위가 너무 커서 감당이 안 되는 것 같다. 체계화되지 않은 현 주민자치회 조직이 어떻게 역할을 할 수 있겠나. 제도적으로 주민자치가 그 시작이 작아도 뿌리를 내리게 되면 강해질 수 있는데, 지금은 지원한다고 해서 뿌리내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작지만 제대로 된 시작을 했으면 좋겠다. 정부에서 막 인위적으로 하거나 외양만 갖추는 게 아니라 작지만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주민자치가 됐으면 좋겠다. 당장 모양을 갖추고 실적을 내고 그런 게 아니고. 또 하나, 현 주민자치회는 기존 마을조직들과 갈등이 상당히 큰 것 같다. 그렇게 벽에 부딪치는 자체가 안타까운 모습이다. 주민자치의 근본을 생각하면서 작지만 단단하게 시작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채진원 교수는 “민주주의 결손 이라는 용어가 있다. 한국의 경우 부울경 메가시티로 지역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식의 공약이 많이 나왔는데 한편으로 맞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주민들의 대표성이 더 축소된다는 생각이 든다. 국회의원, 도지사 1인 당 주민 수가 더 많아지는데 주민을 위한 서비스를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 결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패리시 카운실이 거론되는 것 같다. 민주주의 공백, 결손, 그 틈을 좁힐 수 있는 게 패리시 카운실인 것 같다. 주민들과 밀착해 대의를 잘 할 수 있는 채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주민자치위원 선출방식이 해당지역 주민들의 직선이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 대표성, 책임성이 떨어진다. 패리시와의 근본적 차이다. 메가시티 논의와 관련해 왜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나하는 게 의문이다. 주민자치에 있어 절차적대표성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은데 이걸 지적하는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은경 한국주민자치교육원장은 “주민자치라는 용어 자체가 뭔가 본질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본질을 잘 담아내는 용어가 아닌 듯해서 ‘주민평의회’라는 말을 쓰면 좀 더 나을까? 본질에 더 다가갈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홍형득 교수는 “용어보다 실제의 문제인데 자치에 있어서 지역의 주권주의, 보충성의 원리를 얘기하는데 이의 가장 근본에서 우리가 익숙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보충성의 원리는 주민이 중심이고 필요한 부분들을 지원받는 것인데 우리는 이를 거꾸로 생각한다.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형득 교수는 “영국의 패리시를 우리나라에 가져와서 한다 해도 실패할 것이다. 패리시는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오랫동안의 역사, 문화, 이데올로기 등 복합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패리시를 잘 안다고 해서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일부 응용할 수는 있겠지만 한국적 정서와는 잘 안 맞는다 생각한다”라며 “우리는 그동안 일제시대, 개발독재시대, 빠르게 성장하는 환경을 거치면서 주민자치 환경하고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 왔다. 지금부터라도 서서히 적응해가는 제도를 싹을 틔우며 만드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되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형식만 갖춘다고 해서 되는 게아니다. 주민의 의견 수렴 문화가 갖춰져야 하는데 껍데기만 가져온다면 더 왜곡될 수 있다. 긴 호흡을 가지고 천천히 접근해가야 우리의 주민자치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박진곤 박사는 “한국 주민자치에 대해 많은 말씀을 듣고 정말 공부가 많이 됐다. 미국에서 서양 정치사상 위주로 공부했기에 우리나라의 정치적 측면을 잘 몰랐었기에 대단히 기쁘고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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