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학 공공칼럼

미디어, 권력의 지형을 만들다
영상매체(TV)가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을 매일 우리 안방에 전해주기 시작했던 것은 1960년대 초였다. 주로 신문과 라디오가 했던 역할을 그때부터는 TV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의지적 노력이 있을 때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신문과 라디오와 달리, TV는 특별한 노력 없이도 손쉽게 현장을 있는 그대로를 우리에게 안겨주기 시작한 것이다.

TV의 등장은 유럽과 미국 사회를 근본에서 바꿔놓기 시작했다. 물론 2차대전, 한국전쟁, 미·소 냉전으로 이어지면서 TV가 선전매체로 활용되기도 했다. 반면 TV는 거꾸로 이 같은 체제에 도전하고 새로운 질서를 희망하는 문화적 흐름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영상 미디어를 통해 전후 세대들은 자신들의 정서와 감정을 표출·공유하기 시작했고, 결국 기성세대에 저항하면서 사회정치적 변화를 시도했던 ‘68혁명’으로 이어졌다.

그즈음에 미국에서는 젊고 새로운 인물이 갑자기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30대 중반의 나이로 출마한 존 F. 케네디가 단 3번의 TV토론으로 노회한 정치인 리차드 닉슨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애송이 정치인이 거물 정치인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에는 TV 매체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즈음 캐나다 언론학자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 1911~1980)은 미디어와 권력의 관계를 조망하는 일련의 저서를 내놓았다. ‘미디어는 마사지이다’, ‘미디어가 메시지이다’, ‘메시지가 권력이다’ 등과 같은 오늘날 미디어 이론의 고전적 슬로건들을 만들어 낸 인물이 바로 그다. 그의 저서들은 오늘날에도 미디어를 이해하기 위한 현대적 고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

TV가 만든 새로운 권력 지형
마셜 매클루언은 당시 TV 매체의 등장을 직접 목도하면서 미디어와 사회정치적 권력의 상호 관계에 주목했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구전口傳으로 사회문화적 전통과 권력의 정당성이 전파됐다. 고대국가 성립 시기의 설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에 가장 권위 있고 의미생산자는 기억력이 좋은 경험 많은 노인이었다.

문자의 발생으로 권력의 질서는 청각에서 시각에 맞춰 재편됐다. 문자의 구조와 논리에 맞춰 기존 사회의 전통과 권력의 정당성은 새롭게 구성돼야 했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문자를 장악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TV 매체의 등장은 문자 중심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시각은 물론 청각을 포함한 모든 감각을 동원하면서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TV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셜 매클루언은 이를 ‘감각의 야만화’로 표현하면서, ‘미디어는 마사지다’라는 경구로 그 영향력을 강조했다.

미디어의 등장이 가져온 사회정치적 변화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인과관계를 엄격하게 따질 수는 없지만, 1960년대 TV 매체가 한국에 도입되면서 무엇보다 우선 좀 더 개방적인 다양한 대중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했고 대중 연예인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 같은 개방적 대중문화는 냉전적이고 권위주의적 군사문화에 저항하는 문화적 기층을 형성했고, 나아가 그 기층은 정치적 다양성을 논의하고 주장할 수 있는 감성적 공간을 제공했다.
아울러 정치적 담론은 신문이 아니라 TV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TV로 정치인의 음성과 주장을 직접 접하게 되면서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주장하고 있는지 알게 됐고, 여론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김대중, 김영삼 대통령과 같은 대중정치인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대중정치인’의 출현은 당연히 많은 대중의 정치적 참여를 전제한다. 소수의 정치 엘리트들의 과두寡頭 체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수 대중의 참여로 정치적 의사를 결정할 때만 대중정치인이 존립할 수 있다. 물론 1960년 박정희 쿠데타와 함께 시작한 군사독재는 TV 매체를 자신을 정당화하는 여론 매체로 활용하고자 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의도된 기획은 언제나 그것을 배반하는 결과를 수반한다. 군사독재의 정치적 의도와 달리, 대중의 정치적 참여의 확대는 오히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불러왔다.

인터넷 미디어의 등장 : 참여 민주주의의 폭발
21세기에 들어 대중들의 폭발적인 정치 참여가 가능했던 것은 인터넷 미디어라는 동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은 새로운 소통방식과 더불어 새로운 권력 참여방식을 창출했다. 과거 중앙집권적 소통방식과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이 약화되는 대신, 아래로부터의 참여와 의사결정과정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물론 과거에도 ‘다수의 참여와 다수의 동의’라는 민주적 가치가 존중됐지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조직적·소통적 수단은 여전히 중앙 집중적이고 권위적이다. 반면 인터넷 미디어는 ‘주체적 시민의 자발적 참여’라는 민주주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간주됐다. 이제 새로운 유형의 지식생산자가 등장하면서 소수 엘리트가 장악한 기존의 미디어의 영향력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기존의 미디어와 엘리트들에게는 새로운 위기가 찾아왔고 언론개혁은 주요한 사회적 의제로 부상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일상생활 소재를 중심으로 서로 소통하는 인터넷 카페가 생겨났다. 패션(소울드레서)·요리(82쿡)·육아 등 일상적 관심사를 물론, 자동차나 프로야구 등 기호와 취미를 중심으로 동호인 카페가 만들어졌다. 이들의 활발한 소통은 기존의 수직적, 관료적 소통 질서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수평적, 공감적 문화를 만들어 갔다. 나아가 이들은 자신 생활상의 요구를 언제든지 카페를 통해 결집,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당시 인터넷 미디어를 통해 정치적 소통에 적극 참여하려 했던 사람들은, 기존의 냉전주의적·지역주의적 정치지형에서 배제돼 왔던 시민적 자원들이었다. 대학교육을 마치고 나름대로 사회정치적 의식을 지녔던 이들은 블로그나 카페를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 그 영향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존 언론과 다르거나 능가하는 현실 분석과 대안을 내놓기도 하고, 이를 놓고 서로 치열하게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적 시민이 대거 충원됐고, 이 시민은 기존의 냉전적이고 지역주의적 정치 질서를 개혁하기를 원했다. 이들 시민은 인터넷 미디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당시로서는 지적·의식적 측면에서 높은 수준의 정치적 자원이었다. 기존 정당으로 포괄할 수 없는 ‘시민정치’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 이 시점이었고, 그로부터 한국 정치사회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질의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인터넷 미디어의 등장, 그것이 동원한 수준 높은 정치적 자원, 그리고 그들이 가져온 새로운 정치적 지형이 서로 맞물려 새로운 정치적 인물을 요구하게 됐다. ‘시민정치’의 열기는 노무현 대통령을 자신들의 대변자로 호명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들을 대신해 과거와 다른 새로운 정치적 의제를 쟁점화했다. 나아가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슬로건으로 새로운 정치질서에 대한 시민정치 세력들의 열망을 폭발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었다.

참여의 확대, 대중 조작 극복?
정치에서 일정 정도 상징 조작은 불가피하다. 하나의 공동체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치는 그 공동체를 효과적으로 결집하기 위한 수단을 찾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과도할 경우 개인의 인권과 권리가 배제, 억압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특정 세력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과도하게 상징 조작을 강요할 경우 개인의 생명과 권리는 헌신짝 취급을 당해야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히틀러였다. 공포를 동원해 시민을 강제 동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웅의 출현을 미화하면서 시민의 감동과 자발성까지 강요했다. 히틀러 중심으로 기획된 웅장한 집단행사를 통해 정치적 상징을 만들고 이를 미화함으로써 대중의 공포를 위로와 감동으로 전환시켜 나갔다. 대중은 이 감동적 행사에 참여하면서 해방과 희열을 경험하게 됐고, 이 같은 경험의 누적으로 그들의 의식은 점차 마비돼 갔다.

일본이 천황제天皇制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많은 지식인과 정치인들은 그것이 뻔한 거짓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의 역사가 천황의 역사도 아니었고, 왕의 권력 또한 하늘에서 부여된 것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국민통합의 필요 때문에 그 정치적 상징을 만들어 냈고 그것으로 약 1백여 년간 일본을 이끌어 올 수 있었다.

정치에서 상징 조작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지만, 그것이 항상 파시즘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히틀러나 천황제뿐만 아니라 북한의 경우처럼, 대부분의 파시즘이 정치적 상징을 조작함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는 기제를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영웅화, 신격화를 통해 정치적 상징을 만들어 내는 정치를 두고 그것을 후진적 정치라 평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디어와 발전과 참여의 확대는 세계적 차원에서 이 같은 후진적 정치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시민개개인의 주체적이고 수평적 참여가 본질적으로 중요해지면서 소수 정치 엘리트들에 의한 상징 조작을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 미디어 등장으로 시민정치가 확대되면서 정치적 발전은 물론, 사회문화적 선진화와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됐다고 평가받는다.

일본의 지식인들이나 국제 전문가들은 일본의 정체가 정치적 후진성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천황제라는 상징 조작, 그리고 시민의 선택지를 소멸시켜버리는 보수당 장기집권 때문에 시민의 창의적인 자발적 참여가 근본적으로 차단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리고 이 같은 정치적 역동성의 부재가 사회경제적 침체, 즉 ‘잃어버린 30년’을 초래하게 됐다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 시대의 우울한 그림자
그렇다면 미디어의 발전과 참여의 확대가 정치적 민주주의만을 불러왔을까? 시민 개인의 주체적이고 수평적 참여가 소수 정치 엘리트들의 상징 조작정치를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갈 수 있을까? 물론 큰 흐름에서는 이 같은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긍정적 평가를 거스르는 흐름 또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미디어의 발달과 참여의 확대가, 그것을 파시즘적 상징 조작에 이용하려는 정치집단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준 셈이다. 이렇게 본다면 특정 미디어의 정치적 효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유사한 논쟁이 이미 오래전 있었다. 1900년대 초 두 명의 철학적 거장이 사진과 영화 예술의 발전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önflies Benjamin)은, ‘일회성’이 특징이었던 과거의 예술과 달리 대량생산으로 ‘지속성’을 가질 수 있는 영상예술이야말로 많은 대중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 아니라, 예술의 정치적 참여(미학의 정치화)가 가능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반면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Ludwig Wiesengrund Adorno)는 이들 영상예술을 맹목적이고도 총체적으로 대중을 동원하는 ‘정치의 미학화’로 규정했다. 이들 예술이 ‘예술의 대중적 공유’라는 진보적 가치보다 파시즘 이데올로기 매체로 이용될 수 있다는 위험을 경고했다. 마치 5공 군사독재가 엄혹했던 시절 오히려 컬러 TV가 등장했고 영화산업이 발전했던 경험을 예고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렇다면 미디어가 이제 우리의 손아귀에 들어온 소셜 미디어 시대는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소셜 미디어는 블로그나 카페 등과 같은 인터넷 미디어 시대를 넘어 ‘다대다(多對多 : P to P)’ 네트워크 속에서 개별적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상호 관계망을 형성한다. 미디어 학자들과 정치학자들은 일단 소셜 미디어가 가져온 정치적 결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개인 주체들의 수평적 소통과 참여가 우리 사회 의사결정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소셜 미디어 시대에는 국가·정부·역사·혁명 따위의 거대 담론은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으며, 대신 다양한 개인들의 집합적 선택만이 중요한 지위를 갖게 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이 같은 긍정적 평가는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으로 확인됐다. 중동의 여러 국가의 민주화 운동, 미국 금융자본에 대한 전 세계 시민의 집단적 저항(Occupy Wall Street), 유럽으로 몰려든 난민, 심지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구체적 현장이 개인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져 하나의 여론과 의견을 형성, 정치 현실에 반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가 이 같은 긍정적 결과만을 낳고 있는 것일까? 소통과 참여의 기회가 확장된다는 것은 그만큼 조작과 왜곡의 가능성 또한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 우리가 가장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가짜뉴스’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의 인식론, 집단지성의 위기
소셜 미디어의 인식론은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이다. 다양한 개별적인 주체가 사회관계망 속에서 하나의 의견을 구성하고 그것을 인식하는 논리가 다름 아닌 집단지성이다. 이 집단지성은 개인 주체를 토대로 사회정치적 의견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원칙에 더욱 부합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아가 오류 가능성도 적을 뿐 아니라, 설령 ‘가짜뉴스’와 같은 부정적 현상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치유하고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는 확신을 부여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 시대에 정치적으로는 물론 인식론적으로 ‘무오류성無誤謬性’의 지위를 부여받은 집단지성은 과연 안전할까? 사실 집단지성은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이 충족됐을 때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오늘날 소셜 미디어가 소통에 매우 편리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위험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소셜 미디어는 개인 주체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정치적, 인식론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파편화, 극단화의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런 만큼 정치적 이유나 경제적 동기에 의해 특정 상징 조작에 언제든지 동원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들의 지성적 판단은 결정적 중요성을 갖는다. 파편화, 극단화로부터 벗어나 집단지성이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그것에 참여하는 개인이 기본적으로 ‘깨어있는 시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 모두가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지성적 판단을 한다는 전제가 있을 때만 집단지성은 ‘가짜뉴스’와 같은 오류를 극복하고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파편화, 극단화에 쉽게 동화되는 개인은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최면에 동원될 뿐이다. 집단 최면상태에 빠진 이들에게는 지성이 아니라 맹목적이고 무모한 용기(?)만이 주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이란, 다른 것에 대한 공감과 공존을 모색하기보다 ‘메아리방 효과(Echo-Chamber Effect)’에 기대면서 ‘집토끼’만 몰고 다니는 데 골몰하는 것이다.

이처럼 한 공동체 구성원들이 이질적인 것을 내부에서 총질, 배제하면서 과도하게 동질화하려 할 경우 집단지성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집단최면상태에 빠져들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 받아들이고 불리한 정보는 거부하거나 왜곡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상황을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이 일상화될 것이고 자신들만의 진실에 갇히게 될 것이고, 그 결과 실체적 진실을 벗어난 편견과 야만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집단최면 상태에서 얻어진 그들의 의사결정은 인식론적 오류는 물론 정치적 실책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깨어있는 시민’, 인식론적 고통이 따른다
이런 상태에서는 언제나 파시즘이 기생하기 마련이다. 과거 중요한 정치적 사건에서도 이와 유사한 경우들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다. 현대 정치사에서도 권력투쟁 과정에서 기회주의자를 처단(?)했던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그 명분과 달리 그들이 실제로 추구했던 것은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중심으로 집단화하는 것이었고, 그 같은 시도는 대부분 결국 파시즘을 거쳐 비극적 역사로 마무리됐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다시 역사의 악순환에 매몰돼 가려 하는 것일까. 문제는 그들의 맹목성과 무지함이다. 지금 소셜 미디어로 집단최면에 동원되고 있는 개별적 시민이 과거의 시민보다 더 지성적이라 할 수 있을까? 블로그와 카페 등 인터넷 미디어 시대에 비해 오늘날 더 자유롭고 더 많은 참여가 가능하게 됐다고는 하지만, 과연 소셜 미디어 시대의 개인(또는 시민)이 정치적으로나 인식론적으로 그들보다 더 ‘깨어있는 시민’이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런 의문이 비단 소셜 미디어가 가진 파편적, 극단적 특성 때문만이라 할 수 있을까?

‘깨어있는 시민’은 편견과 야만을 넘어서기 위한 인식론적 고통을 감내할 때만 존립할 수 있다. 진실은 우연히 한꺼번에 문득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며, 지난한 인식론적 고통이 수반될 때만 도달할 수 있다. 소란스럽고 난폭한 것은 ‘깨어있는 시민’의 조건이 아니라 ‘집단최면’의 증상일 뿐이다. 이 증상을 진보, 또는 보수 어떤 이념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김창호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김창호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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