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자원과 마을 관계

공동자원은 생업과 삶에 매우 중요하다. 마을숲(송계), 마을공동어장, 마을공동목장 등 전통적으로 알려진 공동자원의 운영구조와 그 특징을 살펴보면 공동자원은 스스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마을공동체가 공동자원을 운용하고 관리하는 관습이나 규율을 만들어 지켜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기에 다양한 욕구들이 존재한다. 모든 이들의 욕구를 해결할 수도 없고, 어느 사안에 대해서는 이해관계가 상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마을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약속과 규율을 정해야 한다. 마을의 삶터를 운영하는 약속과 규율을 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통과정이 필요하고, 마을마다 고유의 의사결정 구조가 만들어졌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의사결정 구조가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라고 볼 수 있는 공동체 문화는 각 마을의 관습이 형성되는 역사성에 기인한다.

제주에서 물은 상당히 중요하다. 화산섬이라는 물리적 특성 때문에 하천이 발달하지 못하여 지표수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해안가 근처에서 샘솟아 오르는 용천수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중산간 지역에서는 항아리에 빗물을 모아 사용하였고 이를 봉천수라 불렀다. 또한 물이 상시로 흐르지 않는 건천에 물웅덩이가 잠시라도 고이면 그 물을 식수로 사용하였다. 그만큼 물이 소중하였기에 용천수를 이용하는 관습은 불문율이지만 엄격하였다.

용천수에서 나오는 가장 맑은 윗물은 식수로 사용하였고, 다음 흐르는 물은 채소를 씻는 물, 빨래를 하는 물, 아이들이 물놀이하는 물 등 마을의 상황에 따라 용천수를 사용하는 관습이 다양하게 존재했다. 용천수는 제주 마을의 기원이라 할 만큼 중요한 공동자원이다. 이처럼 공동자원에 관한 관습과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마을 내에서 어떤 의사결정 구조를 가졌는지 살펴보는 것은 주민자치의 원형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생각한다.

한편 상하수도가 설치되고 세탁기, 욕실이 집마다 만들어지면서 용천수는 제주 사람들의 삶에서 멀어졌다. 용천수의 상당수가 사라진 것이다. 하지만 물놀이 장소로서는 여전히 유효하여 잘 관리되고 이용되는 곳도 있다. 최근에는 생태관광을 이용하여 용천수 둘레길을 만들면서 사라져가는 용천수를 다시 공동자원으로 만들어가는 시도들이 다양하다.

공동자원은 영원히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공동자원은 기술의 발전, 시장의 유무, 정책과 제도의 변화에 따라 사라지거나 쇠퇴하기도 하며,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마을은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공동자원과 함께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제주 전통마을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선면 성읍민속마을의 모습
제주 전통마을의 모습을 보여주는 표선면 성읍민속마을의 모습

 

제주 마을의 전통적 자치구조

제주의 마을은 행정적으로 정비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인구가 증가하면서 마을이 분리되기도 하고,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4개의 시군이 2개의 행정시로 변하였다. 특히 도시화가 진전된 ‘동’ 지역은 예전부터 운영해왔던 마을공동체를 잘 느낄 수 없지만, ‘리’ 지역은 전통적 방식의 마을공동체를 유지하고 있으며 특유의 마을 자치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제주의 전통적 마을 구조에 관한 연구는 아직 부족하지만 1950년대 이전의 마을 구조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고광민, 2016; 김자경, 2019). <그림 1>은 과거 제주의 마을 구조를 정리한 것이다.

마을은 여러 개의 자연마을로 구성된다. 자연마을은 대표 격인 으뜸을 선출한다. 자연마을이 3곳이 있으면 3명의 으뜸이 존재하게 된다. 으뜸은 나이순으로 수으뜸, 부으뜸, 삼으뜸으로 정하며, 수으뜸이 마을 전체를 관장하는 오늘날의 이장이 된다. 으뜸 밑에는 경민장과 감관이 있다. 경민장은 마을의 사법과 행정을 담당하며, 마을의 자산 및 공금, 호적관리, 향회를 소집한다. 감관은 마을의 자치 경찰 역할을 담당한다. 감관은 유급으로 활동하는 케파장과 수반장을 거느린다. 케파장은 목장을 관리, 담당하는 이를 말하며, 수반장은 바다를 맡는다. 제주는 섬이라 반농반어의 마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을에서 고용하는 하인이 있다. 하인은 사무장과 비슷하게 마을의 공적 업무에 관한 심부름을 담당한다. 마을의 주요 행사인 관혼상제에 관한 실무를 주로 담당하기에 ‘당하인’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마을의 당제를 관리하고 이끌어가기 때문에 ‘심방’이라고도 한다(고광민, 2016; 김자경, 2019 : 57~58 재인용).

마을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은 마을총회와 같은 향회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향회에서 으뜸을 직접 선출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으뜸 제도와 함께 경민장·감관·케파장과 하인 등의 역할을 살펴보면 행정·경제·생활·사법의 영역이 마을 내에서 자치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생업을 꾸려나가는 농업과 어업에서 갈등이 생기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는 케파장과 수반장 그리고 감관의 이중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마을공동목장과 마을공동어장이 마을의 중요한 공동자원이기 때문이다. 감관이 누구를 거느리느냐에 따라 마을의 생업 구조가 달라질 것이다. 마을 내 의사결정 구조를 통해 마을의 산업, 생활구조, 협력관계 등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구자인, 2021: 19).

이는 현재 농어촌 마을을 살펴볼 때도 유효하다. <그림 2>는 제주의 동쪽에 있는 행원리 마을 구조를 정리한 것이다. <그림 1>과 비교해보면 마을의 공동자원은 목장, 어장, 풍력발전, 태양광발전 등 다양하게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으뜸은 마을 사람들이 직접 선출한 마을회장이다. 오늘날 이장도 마을 사람들이 직접 선출하여 마을회장이 된 것이며, 마을회장이 행정리의 이장이나 통장으로 임명된다는 점만 다르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여 개발위원회, 사무장, 감사, 자생 단체 등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마을을 중심으로 의사결정 구조가 형성된 것과 마을총회가 핵심인 것은 여전히 같다.

그림1. 과거 제주의 마을구조
그림1. 과거 제주의 마을구조
그림2. 행원리 마을 구조
그림2. 행원리 마을 구조

 

공동자원과 주민자치

생업과 삶터를 운영하는데 중요한 공동자원은 마을 운영의 중요한 기제였다. 마을공동체가 공동자원을 관리하는 것은 마을 운영 의사결정과정의 핵심이었다. 초지나 바다, 숲 등 자원 이용의 무임승차를 막는 동시에 자원의 고갈을 막기 위한 다양한 장치(감관, 케파장, 수반장 등)를 고안했다. 마을총회는 이러한 장치의 산실이다. 물론 공동자원들이 다수 존재해온 만큼 마을 내에 다양한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층위에 걸쳐 있는 의사결정 구조가 만들어졌다. 과거 제주의 마을에서는 케파장이나 수반장이 공동자원을 직접 관리했지만, 감관·경민장·으뜸·향회(마을총회)의 단계를 거치면서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이 형성되었다.

제주의 마을에는 이러한 관습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으며, 자연마을, 각 자생 단체, 개발위원회 또는 운영위원회, 마을총회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촌계나 마을공동목장이 존재하는 마을은 현재의 마을 자치 규약에도 관습 일부를 반영하고 있다. 공동자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자치 문화는 사회와 경제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제주의 마을에서, 마을주민들이 마을의 공동자원을 직접 공동으로 관리하고 운영해 온 전통과 문화는 그야말로 주민자치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향후 제주의 마을들이 지금까지 공동자원을 유지해 온 것에 대한 다양한 가치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주민자치의 관점에서, 공동자원을 중심으로 마을을 운영하는 경험을 통해 주민자치의 잠재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긍정적으로 수행된 주민자치의 경험은 마을을 행정의 말단에서 주민자치의 최전선으로 전환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다. 공동체적 문제해결의 욕구가 강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주민자치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마을의 자치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 지역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주민자치와 함께 행정이 이러한 주민자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주민이 주체가 되어 행정과 논의하는 협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참고문헌
고광민. 2016. 『제주 생활사』, 한그루
구자인. 2021. “마을조직도의 원칙과 쟁점”, 『마을만들기 길라잡이』, 충남연구원 충남마을만 들기지원센터 편, 그물코.
김자경. 2019. “공동자원을 둘러싼 마을의 의사결정구조와 공동관리: 제주 행원리 사례를 중 심으로”, 『ECO』, 23(1): 5~74.
김자경, 박서현. 2023. “공동자원의 공동관리에 입각한 주민자치 사례 분석 연구-제주의 농촌 마을 사례를 중심으로-”, 『농촌사회』, 33(1): 53~92.


2023년 계묘년 시작과 함께 제주대학교 ‘공동자원과 지속가능사회 연구센터’와 공동으로 ‘공동자원과 주민자치’를 주제로 한 시리즈기획을 새롭게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의 원형과 전통이 잘 계승되어 유지, 발전되는 특별한 지역 ‘제주’ 그리고 공동자원과 주민자치의 이야기가 지면을 한층 풍성하게 해줄 것입니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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