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사람들 그리고 영화
Town in Movie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의 흥행은 1년 내내 엄동설한 같던 영화계에 춘풍이 되어주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작품들에는 적지 않은 타격이 되기도 했다. 물론 1년에 관객 수가 2억 명이 넘어갔던 시절에는 매주 개봉작 경쟁이 심했기 때문에 응당 저마다 조마조마하며 주말 성적표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작년 말에는 극장가가 전반적으로 침체된 상황이라 ‘서울의 봄’이 그토록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예상치 못했던 동시기 개봉작들은 화제성이나 극장 수에서 완전히 밀려나 버린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 특히 아쉬운 작품이 있다면 ‘싱글 인 서울’(감독 박범수)이다. ‘달짝지근해: 7510’(감독 이한), ‘30일’(감독 남대중) 등의 로맨틱 코미디들이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던 상황이어서 ‘싱글 인 서울’에 대한 기대는 사실 낮지 않았다. 40대에도 여전히 로맨스물에 강점을 가진 배우들, 이동욱, 임수정이 남다른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내고 각본이나 연출에 있어 앞서 언급한 작품들보다 더 탄탄하다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제목 그대로 서울이라는 화려한 도시에서 혼자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청년층의 이야기가 공감대를 자극한다.


 



화려한 도시 ‘서울’서 혼자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청년층 이야기

출판사 편집장, ‘현진’(임수정)은 바르셀로나와 서울, 두 도시를 배경으로 한 싱글 라이프 에세이 시리즈를 준비 중이다. 원래 참여하기로 했던 작가가 갑자기 임신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작가를 섭외하게 되는데 출판사 사장은 현진과 대학 선후배 사이인 ‘영호’(이동욱)를 추천한다.

영호는 입시학원 인기 강사로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멋진 원룸에 혼자 살고 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대신 혼밥과 인스타 사진 찍기를 즐기는 그는 현진과 티격태격하면서도 어릴 때 그토록 꿈꾸던 작가가 된다는 설렘에 계약서에 사인을 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영호가 써내려간 싱글 예찬이다. “지금 혼자 살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챕터에서 그는 인류역사상 지금처럼 편리한 세상은 없었지만 그 때 보다 삶에 불만족하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살고 있는 이유는 혼자 있는 시간이 적어서라고 주장한다. 밖에 나가면 하루 종일 누군가의 이웃, 직장동료로 살기 때문에 온전히 내가 나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고 집에 와서까지 애인이나 가족들에게 시달리거나 누군가를 위한 누군가가 되지 않으려면 싱글이 답이라는 것이다.

그가 처음부터 비혼주의자나 비연애주의자는 아니었다. 불꽃같았던 첫사랑의 상처, 그 이후로도 계속된 연애의 부정적 경험이 그를 혼자라는 제자리로 돌려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가 자기 자리임을 인정하고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때 생긴 적립금으로 스스로 운동화를 선물하던 날,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자신을 위해 쇼핑을 하고 소고기를 사 먹는 기쁨, 누군가의 취향에 맞춰주지 않아도 된다는 평온함을 맛보자 그는 더 이상 연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영호는 내 취향을 누군가에게 평가받지 않게 되면서 자신이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장점들에 비하면 이따금씩 찾아오는 외로움은 반려묘 한 마리로 충분히 상쇄될 수 있는 작은 단점이다.


 

 

동시대 청년들의 가치관 대변하는 영화 속 주인공

‘싱글 인 서울’이라는 영화가 등장한 것이나 영화 속 편집자가 싱글 라이프에 관한 책을 기획하는 것은 사실상 동욱의 가치관이 동시대 청년들의 그것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1인 가구 비율은 28.6%(2017)에서 34.5%(2022)로 몇 년 동안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 중 2022년 서울의 1인 가구 비율은 38.2%로 전국 평균보다 높다. 영화에도 현진이 새엄마와 살림을 합치는 아버지를 위해 분가를 준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1인 가구 중에는 연애를 하는 사람도 있고 독거노인도 포함되어 있다. 1인 가구의 연령대는 20대부터 70대까지 모두 10퍼센트대로 비교적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편이다. 그러나 한국의 혼인 건수는 최근 11년 연속 감속해 2022년에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으니 1인 가구의 수는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해 보이며 낮은 혼인율은 이미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의 출산율보다 인구절벽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통계도 나온 상태다.

‘싱글 인 서울’이 말해주는 것은 정확히 왜, 이들이 혼자 살기로 결심하는가이다. 타인에게 맞춰주며 연애하는 것이 피곤하다는 말은 혹자에게 이기적이라 비판받을 수 있는 가치판단의 영역인지 몰라도 자녀를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든다거나 집값이 너무 비싸서 결혼을 못 한다는 말은 사회적 문제이므로 계속 공론화시키고 개선점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더 알아가고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 비혼을 선택하는 것은 어떨까?


 

 


대칭적으로 맞닿아 있는 ‘1인 가구’ 자녀세대와 부모세대

최근 개봉한 ‘소풍’(감독 김용균)에도 1인 가구가 등장한다. 남해에서 십대 때 상경해 자수성가한 ‘은심’(나문희)은 서울의 넓은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다. 은심의 절친한 고향 친구이자 사돈인 ‘금순’(김영옥)은 딸과 아들을 결혼시킨 후 남해에서 소소하게 밭농사를 지으며 역시 혼자 산다. 은심은 사업에 무능한 아들이 계속 손을 벌리다 하나 남은 자신의 아파트까지 넘보자 때마침 서울을 찾은 금순과 함께 고향으로 가출 아닌 가출을 한다.

갑자기 40살이나 더 먹은 인물들의 이야기로 넘어가다니 엉뚱한 전개로 보일 것이다. 그렇다. ‘싱글 인 서울’과 ‘소풍’의 주인공들을 연결시켜 보려는 시도는 사실 무모하다. 그러나 짧게나마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각각의 영화 속 두 세대는 어떤 면에서 데칼코마니 같은 면을 갖고 있는데 즉 부모님에게서 떨어져 나온 자녀들과 자녀들을 분가시킨 부모님이라는 점에서 대칭적이다. 통계적으로 1인 가구의 비율이 20대의 19%에서 40~50대에 다소 줄어들었다가 70대에 다시 18%가 된다는 점과 연결시켜 보면 꽤 흥미롭지 않은가.

네 사람은 모두 경제적으로 자립해 있는 인물들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은심과 금순은 노화로 인해 불편한 몸을 갖고 있지만 자녀들에게 손을 벌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두 사람 다 자녀들의 변변찮은 경제력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중이다. 그리고 이제는 자녀들을 뒷바라지 하는 것에 신물을 느낀다. 젊은 시절 내내 헌신했으니 이제 알아서 잘 살아주면 좋겠건만 말년까지 육아는 계속되고 있으며 자녀들 걱정은 이들에게 큰 짐이다. 아들 생각을 잠시 하지 않고 있는 금순과 은심의 얼굴이 더 신나고 평온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유의지와 주체성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선택할 권리

그러나 모든 70대에게 닥쳐 있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건강이다. 몸이 노쇠하고 병들어 잘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은심과 금순을 서글프게 만든다. 친구들도 하나, 둘 요양원으로 보내지거나 세상을 떠나는데 공통적으로 이런 말을 한다. 자유롭게 살다가 죽고 싶다고. 그래서 금순도, 은심도, 이들의 동창인 ‘태호’(박근형)도 병을 자녀들에게 알리지 않는다.

노인들이 일찍 죽고 싶다는 말은 다 거짓이라지만 병원이나 요양원에 있다가 죽고 싶지 않다는 말은 더 진심인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요양원과 병원에 있어도, 설사 자녀들의 효심이 아무리 지극해도 환자로서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속박된 삶을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남해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파킨슨병 증세를 보이는 은심의 손은 점점 심하게 떨려 오고, 금순은 허리병이 도져 거동이 불편한 지경에 이른다. 이들은 어떻게 죽는 것이 행복할까를 고민하다가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이들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는 곧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선택할 권리와 같다. 누군가를 위해 살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의 모습으로 내 삶을 내가 만들어가려고 하는 태도는 ‘싱글 인 서울’의 영호를 비롯한 청년들과 별로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자유의지와 주체성을 갈구하는 것은 특정 세대나 지역과 관계없는 인간의 실존적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유독 지금, 한국에서 국가소멸의 위기와 노년층의 자살률을 걱정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우리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계속 이슈화시키고 그 해결책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토론해 나가야 한다. 아직은 공동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개인의 자유와 결혼과 출산율과 인간의 존엄성이 대치되는 개념이 되지 않을지 감조차 잡을 수 없다. 혼란한 틈을 타 전근대적 가족제도가 더 좋았다는 식의 향수에 젖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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