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만들기? 자라나게 가꾸는 것이 주민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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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만들기? 자라나게 가꾸는 것이 주민자치”
  • 김윤미 ·여수령기자
  • 승인 2020.09.03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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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방자치학회 하계학술대회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세션

SECTION 2. 주민자치의 정치학적 고찰과 함의

 

몇 년 사이 ‘마을 만들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마을 주민 스스로 생활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주민공동체를 회복하자는 취지는 ‘주민자치’와 동일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고개가 갸웃해진다. 주민과 마을을 내세우면서도 실상 행정기관이나 시민단체가 사업을 주도하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장훈 중앙대학교 교수(정치외교학과)의 사회로 진행된 한국지방자치학회 하계학술대회 한국주민자치중앙회 기획세션에서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연구위원은 “마을생태계는 돈과 행정, 활동가들의 목적의식 같은 외부 이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이제는 주민자치역량 강화를 위해 ‘마을만들기’에서 ‘마을 자라기(마을 가꾸기)’로 노선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13일 알로프트서울명동호텔에서 열린 이날 대회에서 채진원 연구위원은 ‘주민자치의 정치학적 고찰과 함의’를 주제로 발표했다. 채 연구위원은 최근 행정안 전부가 주민자치회 규정이 포함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을 언급하며 “‘주민자치는 시기상조인가’ ‘주민자치 역량이 있는가’ 같은 근본적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주민자치 실패와 성공사례를 정치학적으로 접근해 시사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발제 주제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1871년 파리코뮌, 미국의 타운미팅과 제퍼슨의 기초공화국안 사례가 한국의 주민자치 실질화에 미치는 정치적함의를 모색했다.

“행정ㆍ돈ㆍ활동가들로 마을생태계 만들 수 없어”

채 연구위원에 따르면 1871년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과의 무리한 전쟁에서 패배하자 프랑스 민중들은 과거 대혁명 때와 같이 민병대를 조직하여 적국에 대항했다. 같은 해 3월 26일 파리 시민들은 자체 선거로써 코뮌(시민회의) 대표자를 선출했다. 이어 5월 21일 정부군은 파리로 진격했다. 파리코뮌의 비극적 ‘피의 일주일’이 시작되었고, 많게는 5만 명이 사망했다. 파리코뮌은 실패했지만 그 주민자치의 경험은 유산으로 남겨졌다.

타운미팅(town meeting)은 미국의 식민지시대에 생긴 마을주민총회이다. 이것은 직접민주정치의 한형태로 미국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발전시킨 토대였다. 타운미팅은 해마다 적어도 1회 이상 열리며 선거권을 가지는 전(全) 주민의 직접 참여로 예산안의 확정, 공무원·학교 이사의 선출, 조례 제정 등 주요 정책에 대한 토론과 표결이 이루어지는 타운의 최고의 결기관으로서 식민지시대 및 독립 전후에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퍼슨은 구(wards)와 같은 작은 마을단위의 기초공화국(elementary republic)이 큰 연방공화국의 존립 조건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읍(township)이 “전체주민의 목소리가 모든 시민의 공동이성에 의해 공평하게, 충분히, 평화롭게 표현되고 논의되며 결정되는” ‘기초공화국의 독창적인 모델’이었다고 평가했다.

채 연구위원은 “세 사례는 중앙집권적 관료주의 정부 형태를 ‘근거리의 자발적 시민결사체’ 내지 ‘자발적시민 참여 공간’으로 전환함으로써 ‘시민들의 실질적자유를 추구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의 주민자치 활성화를 위해선 ‘연방제적 주민자치국가’를 지향으로 삼아 지방분권과 개헌운동을 주민자치와 연계해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다만 “중앙집권주의와 관료주의, 대륙법적 전통이 지배적인 한국 풍토를 무시한 채 서구의 이론이나 규범을 당위적으로 주장할 경우 ‘제도이식론’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며 주의를 요구했다.

“마을 만들기는 하향식… 이제는 마을 자라기로 노선 정립해야”

최근 행정기관 주도로 진행되는 ‘마을 만들기’ 사업에도 큰 우려를 나타냈다. 채 연구위원은 “한국의 일명 ‘마을 만들기’는 중앙에 의한 하향식 메이킹 다운(making down) 방식에 가깝다”며 “주민자치역량 강화를 위해 ‘마을 만들기’에서 ‘마을 자라기(마을 가꾸기)’ 콘셉트로 노선 정립하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마을생태계는 위계적 중심이 있는 돈과 행정, 활동가들의 목적의식과 같은 외부이식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짚고 “마을은 만들도록(making down) 해서는 안 되고 자라나도록(growing up) 가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주민자치지원관 등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민활동가에 대해선 “‘메이커(maker)’의 역할이 아닌 ‘정원사(gardener)’의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채 연구위원은 주민자치의 모델을 ‘액션-그로잉(action-growing)형’과 ‘메이킹(making)형’으로 유형화 했다. 그는 “‘메이킹형’은 무에서 유를 청조하거나 외부주입 개념이기에 힘의 크기와 강도가 강하고, 힘의 방향이 위로부터 아래로 향하는 하향식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위로부터의 강요와 강제, 폭력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액션-그로잉형’은 주민자치를 사람들이 말을 통해 개성을 드러내고 공감하면서 열리는 공적 행위(action)로 이해하고, 사람들 사이의 말하기 행위가 풍부하게 자라나게(growing)할수록 공론장이 활성화 된다고 가정한다”며 “힘의 크기는 ‘메이킹형’ 보다 약하고 힘의 방향은 아래로부터 위로 가는 상향식이므로 스스로 성장하고 변화해가는 ‘자발적 힘’의 개념에 가깝다”고 차이를 짚었다.

채진원 연구위원, 장훈 교수, 이현출 교수, 신재혁 교수, 김찬동 교수(왼쪽부터)
채진원 연구위원, 장훈 교수, 이현출 교수, 신재혁 교수, 김찬동 교수(왼쪽부터)

“주민자치 핵심은 주민 참여를 통한 공론장 개설”

채 연구위원은 “주민자치의 핵심은 자유롭고 평등한 주민들의 참여를 통한 공론장 개설의 문제”라고 강조하며 “공론장의 참여를 막거나 왜곡할 수 있는 지방 토호세력이나 이익집단의 공격과 민주적 전제정의 가능성을 견제하고, 균형을 잡을 수 있는 주민의 참여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책여건을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그간 우리사회의 주민자치 담론 형성이 부족했던 점을 지적하고 “올바른 지방자치를 위해 주민자치, 즉 주민참여 활성화 방안을 먼저 논의하고 제도적 방안을 정책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거듭주장했다.

토론을 맡은 이현출 건국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기존의 ‘메이킹’ 개념에서 주민의 자치역량이 강화되면 다양한 형태의 ‘그로잉’ 모델이 등장하리라고 본다”며 “주민자치회가 그로잉 모델로 연착륙하기 위해서는 한국주민자치중앙회 등의 시민조직을 통한 구성원들 교육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와 함께 주민자치회와 기초의원의 관계 수립을과제로 제시했다. 이현출 교수는 “주민자치회에 읍·면·동 차원의 민원이 집중되고 주민세 등 예산 가용 권한까지 주어지면 기초의원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영향력을 축소시킨다고 느낄 수 있다”며 “주민자치회와 기초위원 간에 맞닥뜨리게 될 갈등모델과 해결방안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지방자치-주민자치 재설계 위해 학계 협력 필요”

신재혁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이상적 주민자치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 주민자치의 지향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고 평가하고 “다만 경제적 여유가 없는 주민들이 주민자치회에 참여하기 어렵다면 주민들의 자유롭고 평등한 참여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어 “분권, 지방자치, 주민자치가 중앙집권보다 왜 좋은지를 많은 이들에게 설득해야 한다. 또, 인간이 공공을 위한 선한 존재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존재라는 점이 간과된 면도 있는 것 같다. 또 중앙집권의 장점 중효율성, 책임소재의 명확성 등을 들 수 있는데 지방자치와 주민자치의 경우 이게 모호해질 수 있고, 분권이 강화되면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우려도 있다. 자치를 했을 때 이와 같은 문제를 어떻게 해소하고, 이 같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자치가 좋은 점이 훨씬 더 많다는 점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김찬동 충남대 교수(행정학부)는 “발제자가 제안한‘그로잉업 방식의 자치’에 깊이 공감한다”며 “주민자치는 행정권력 혹은 활동가의 목적의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 다양한 욕구와 동기가 자생적으로 자라남으로써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또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자유로운 말과 행동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공적영역을 인식하고 공공성에 대한 생태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이야말로 자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오늘 정치학적 시각을 접하면서 지방자치, 주민자치 재설계라는 차원에서 정치학계, 법학계와의 소통, 배움에 대해서도 새삼 깨닫게 됐다”고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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