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방자치학회 하계학술대회 한국주민자치중앙회 세션
발제문 요약

2020년 국회 1호 법안으로 ‘주민자치회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하 주민자치회법) 제정안이 1월 2일발의됐다. 20대 국회에서 이 법안은 자동으로 폐기가 되었지만, 이번 21대 국회는 사정이 다르다. 180석을 지닌거대 여당의 의석구조와 함께 최근 여권이 행정수도 이전, 지역균형발전 등의 관계법 개정과 지방분권 개헌 이슈를 재론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여건은 좋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법안이 국민의 전폭적 동의와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야당과 시민사회의 이견을 설득해야 하는일이 남아 있다. 특히, 주민자치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역량이 객관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상명하달식의 법률과 행정에만 의존할 경우에는 ‘주민자치회법’ 제5조와 제6조 및 1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민자치회의설립’과 ‘규약’ 및 ‘주민총회’의 운영이 과거 ‘한국자유총연맹’이나 ‘새마을운동중앙회’처럼 관변단체로 전락하거나 ‘관제주민자치회’로 형해화(形骸化)될 위험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관변단체로의 전락이나 관제주민자치회로 형해화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 법제도화와 주민참여 역량간의 함수관계를 보여주는 주민자치의 실패와 성공사례의 경험과 실천을 정치학적으로 접근하여 시사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인류에게 남긴 것은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정신이었다. 약 100년이 지난 1871년에도 그 정신은 고스란히 이어졌다.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과의 무리한 전쟁에서 패배하자 프랑스 민중들은 과거 대혁명 때와 같이 민병대를 조직해 적국에 대항했다. 동년 3월 26일 파리 시민들은 자체 선거로써 코뮌(시민회의) 대표자를 선출했다. 같은 해 5월 21일 정부군은 파리로 진격했다. 파리코뮌의 비극적 ‘피의 일주일’ 이 시작되었고 많게는 5만 명이 사망했다. 파리코뮌은 실패했지만 그 주민자치의 경험은 유산으로 남겨졌다.

타운미팅(town meeting)은 미국의 식민지시대에 생긴 마을주민총회이다. 이것은 직접민주정치의 한 형태로 미국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발전시킨 토대였다. 이 제도는 초기 미국의 북부 식민지인에 의해서 보급됐으며 뉴잉글랜드지방에서 선도적으로 발달했다. 해마다 적어도 1회 이상 열리며 선거권을 가지는 전(全) 주민의 직접 참여로 예산안의 확정, 공무원·학교 이사의 선출,조례 제정 등 주요 정책에 대한 토론과 표결이 이루어지는 타운의 최고의결기관으로서 식민지시대 및 독립 전후에는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 혁명 참가자들 중 제퍼슨은 구(wards)와 같은 작은 마을단위의 기초공화국(elementary republic)이 큰 연방공화국의 존립 조건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마을을 형성하는 구 단위의 기초공화국은 중앙정부의 전제적인 경향과 공적문제에 대한 개인 생활의 무기력과 무관심을 동시에 구원한다고 보았다. 그는 읍(township)은 “전체주민의 목소리가 모든 시민의 공동이성에 의해 공평하게, 충분히, 평화롭게 표현되고 논의되며 결정되는” ‘기초공화국의 독창적 모델’이었다고 평가했다.

파리코뮌, 미국 타운미팅과 제퍼슨의 기초공화국안 사례가 주민자치에 주는 정치적 함의는, 첫째, 주민자치가 성공한 미국(타운-카운티-주-연방)의 사례는 ‘연방주의’라는 특징이 있다. 한국 ‘주민자치회’의 활성화와 실질화를 위해서는 중앙집권적 국가가 아닌 ‘연방주의 공화주의 국가모델’을 지향하고, ‘연방제적 주민자치국가’를 위한 지방분권과 주민자치 개헌운동을 주민자치회의 실질화와 연계시켜 진행할 필요가 있다.

둘째, ‘주민자치회’의 활성화와 실질화를 위해서는 근대적 국가권력의 억압기제 속에서 타율적으로 길들여지고 훈육된 주체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자유로운 주체역량을 키우는 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즉,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고 참여하는 주민자치의 자유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가교형 사회자본’(briging socialcapital)의 형성과 함께 한국의 법체계를 현행 ‘대륙법체계’에서 ‘보통법체계’로 개선하는 운동이 필요하다. 특히 사법부의 독립과 배심원제도(대배심원제도, 소배심원제도) 도입과 국민참여재판 운영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필요가 있다.

셋째, ‘주민자치회’의 활성화와 실질화를 위해서는 연방주의 국가와 타운제도 및 보통법적 사법체계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공유와 함께 ‘생활개혁운동’의 전개가 필요가 있다.

넷째, ‘주민자치회’는 주민자치역량 강화를 위해 일명‘마을 만들기 콘셉트’에서 ‘마을 자라기(마을 가꾸기) 콘셉트’로 노선 정립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마을은 만들도록(making down) 해서는 안 되고 자라나도록(growing up) 가꿔야 한다. 이에 시민활동가와 시민지도자들은 ‘메이커’(maker)의 역할이 아닌 ‘정원사’(gardener)의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마을의 정원사들은 마을이 단지 건물들이 있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말과 행위가 상호작용하여 열리는 공감과 소통의 공간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사람들의 말과 행위가 자라나도록 어떻게 가꿀 것인지 그 경험과 사례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마을 자라기(마을 가꾸기) 콘셉트’와 ‘마을 만들기 콘셉트’를 기초로 해서 주민자치의 모델을 이론화하면 ‘액션-그로잉(action-growing)형’과 ‘메이킹(making)형’으로 유형화 할 수 있다. ‘메이킹 유형’은 어떤 보편적 형상(Idea)과 단일한 목적(goal)을 강조하기에 그 개념 틀에 맞춰 사람들을 하향식으로 조직해 빠른 성과를 낼 수 있다. 또, 메이킹이 주로 상상의 무에서 현실의 유를 창조하거나 외부에서 이식시켜주는 외부주입 개념이기 때문에(무한세계관) 힘의 크기와 강도가 강하고, 힘의 방향이 위로부터 아래로 가는 하향식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위로부터의 강요와 강제,폭력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액션-그로잉 유형’은 한정된 경험과 사례의 세계에서나온 유에서 다른 유로 한발 더 나아가는 개념(유한세계관)이기에 그 힘의 크기는 메이킹보다는 약하고, 그 힘의 방향은 아래로부터 위로 가는 상향식이 될 수밖에 없다. 성장하면서 스스로 변화해가는 자발적 힘의 개념에 가깝다. 요즘과 같이 지구화, 후기산업화, 탈물질주의,탈냉전, 정보화 등으로 표현되는 21세기 전환기적 시대상황은 사회와 사람의 이익을 유동화·파편화·원자화 시키는 만큼, 메이킹으로 접근하는 정치나 주민자치는 경직되고 유연성이 떨어지기에 시대적실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주민자치의 정치적 함의는 물리적이고 억압적인 국가권력과 중앙집권적 관료주의 정부형태를 인간의 자유로운 말과 소통이 가능한 주민참여의 공간으로 대체하는 것을 말한다. 주민자치의 핵심은 자유롭고 평등한 주민들의 참여를 통한 공론장 개설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올바른 지방자치를 위해 주민자치 즉, 주민참여 활성화방안을 먼저 논의하고 제도적 방안을 정책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특히, 지방정부의 의식개혁과 자질 개선을 위한 1)지방권력 문턱 낮추기 및 특권폐지 운동 2)지방의 폐쇄적 연고 타파운동 3)지방의 지식문화기반 조성사업 등이다. 이를 통해 자치에 참여하는 주체가 단체장이나 지방의원, 공무원만이 아니라 지방자치의 핵심이 주민에 의한 자치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주민자치를 위한 실질적 방안으로 주민교육, 주민능력개발, 주민 참여유도 활동에 대한 노력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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