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과 진실이 혼재한 시대
공공성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기제는 공론장이다. 공론장은 신문이나 방송, 소셜미디어 등과 같은 매체를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러다 보니 매체 자체가 공론장 및 여론의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어찌 됐건 우리는 기술의 발달 덕분에 다양한 매체들을 이용해 수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이 똑똑해지고 있으며, 웬만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속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말 내가 열심히 검색해서 접근한 정보가 사실일까?

2016년에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포스트-트루스’를 선정하고, 그 의미를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으로 정의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사람들은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정보의 진위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가 자신의 신념이나 감정에 맞는지 여부에 따라서 진위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객관적인 사실에 비춰 볼 때 거짓인 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실을 왜곡하거나 거짓된 정보를 유포하고 믿는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럼에도 포스트-트루스 개념이 등장하게 된 것은 진실의 왜곡이 과거와 달리 매우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포스트-트루스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확증편향의 몇 가지 이유
첫째는 사람들의 인지심리학적 특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인지심리학에서 정보 처리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지 편향들 가운데 하나인 ‘확증편향’은 포스트-트루스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개념이다. 확증편향은 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간절히 바랄 때, 또는 어떤 사건을 접하고 감정이 앞설 때, 그리고 저마다의 뿌리 깊은 신념을 지키고자 할 때 확증편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확증편향으로 인해 사람들은 원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모으거나, 어떤 것을 설명하거나 주장할 때 편향된 방법을 동원한다(위키피디아 참고).

확증편향과 관련된 개념으로 역화효과와 근접편향과 같은 것이 있다. 역화효과는 기존 믿음을 부정하는 사실을 접했을 때, 믿음을 바꾸는 대신 사실을 거부하고 오히려 기존 믿음을 강화하는 경향을 말한다. 근접편향은 물리적, 심리적으로 자신에게 친숙하고 가까울수록 그것에 호의적인 정보만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치적으로 특정한 입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입장과 일치하는 정치인의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믿음을 더욱 강화한다. 그리고 자신의 입장과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입장을 비판하면, 그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돼 있어 객관성을 상실했다고 치부해버린다.

둘째는 객관적으로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전통적인 신문, 방송과는 다른 다양한 형태의 소셜미디어가 등장했다. 거의 대부분 사람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쥐어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언제 어디에서나 소통할 수 있으며,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고, 원하지 않는 정보도 귀찮을 정도로 수없이 접하게 된다. 어찌 됐건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 접근하거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리고 원하지 않는 정보를 차단하고, 자신과 신념, 의견, 기호, 종교 등이 다른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 방법 또한 많아졌다. 이렇게 해서 소셜미디어는 소위 끼리끼리 문화를 양산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다. 미디어 자체가 사람들의 관계방식과 삶의 방식을 변화시킨 것이다.

셋째는 절제력을 상실한 이익의 추구 경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정치집단, 관료집단, 기업집단(미디어기업 포함), 종교집단 그리고 수많은 소셜미디어 참여자들이 이익에 얽매이게 되면 정보들이 왜곡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가 조작을 위해 코로나 백신 개발과 관련해 제약회사들이 벌이는 정보 왜곡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것이다.

친구와 적이 함께 살기 위한 고민
포스트-트루스는 인지적으로 확증편향을 가지고 있으며 끼리끼리 문화에 길들인 사람들과 절제력 없이 이익 추구에 혈안이 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합작품이다. 포스트-트루스 시대에는 과학적으로 발견된 진리가 진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정당들이 주장하는 현실이 진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통계치가 진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정보 처리 능력은 불완전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 판단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오직 ‘당파’뿐이다. 세상에는 오직 두 부류의 인간만이 존재한다. 세상에는 나와 신념, 감정, 의견, 기호, 입장을 공유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의 ‘친구’들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이고 공정하며 정상적인 데 반해 나의 ‘적’들은 비이성적이고 주관적이며 비과학적이고 편파적이며 비정상적이다. 나와 친구들이 나누는 정보는 진짜고, 적들이 유포하는 정보는 가짜다.
문제는 친구와 적이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과서에서는 사람들이 토론하고 숙의해 합의를 이루라고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대화가 불가능하다. 공공성의 핵심 기제인 공론장은 마치 신기루와 같다. 그러다 보니 대화와 타협을 본질로 하는 정치는 무조건 다수결이 됐고, 모든 결정의 시시비비는 국민의 판단 대신에 검찰과 법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것이 포스트-트루스 시대에 비친 우리의 자화상이다.
아무리 과학적인 진실을 주장해도 그것을 하나의 주장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하는 포스트-트루스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확실하게 어느 한 편에 서버리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양비론을 펼치며 마치 자신이 중립적인 것인 양 처신하는 것이 좋을까? 어떤 입장에 있건 나의 주장이나 생각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번만이라도 해보았으면 좋으련만 ….

임의영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
임의영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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