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속 사회 변화
4차 산업혁명은 지식·정보·통신·기술의 융합을 말하며,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봇공학, 디지털화 등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기술 진보는 생산성 향상, 노동시간 축소,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한 인력 대체, 저임금 노동의 확대, 지식·정보·기술의 소수 점유와 자본과의 결탁 등의 다양한 변화를 수반하고 있다. 이 변화들은 우리에게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사회보장체계는 어떤 체계보다도 내·외적 변화에 대한 강한 적응(adaptation)을 특징으로 한다. 복지국가가 1세기가 넘도록 유지·발전해 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4차 산업혁명은 긍정적 효과를 최대화하고 부정적 효과를 최소화하는 이 능력에 대해 새로운 시험의 장을 열고 있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체계가 보여줘야 하는 적응의 모습들을 그려 본다.

사회보장체계의 총체적 대응이 필요하다
사회보장체계는 소득보장, 고용·노동보장, 사회서비스보장 등을 포괄한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응은 각 분야가 독립적으로 그리고 개별적으로 하기보다는 상호연계하면서 유기적으로 해야 한다. 실제 각 영역은 자율적이면서도 동시에 다른 영역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소득보장은 단순히 현금급여를 지급하거나 해고를 금지하고 적정임금을 강제하는 것만으로 달성되지는 않는다. 소득의 많은 부분은 건강,요양, 육아, 주거, 교육, 직업 재교육, 상담, 이동 등의 사회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사용되며, 만약 질 높은 사회서비스가 저렴한 가격으로 공적으로 제공된다면 소득은 그만큼 줄어 들어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즉 사회서비스 보장의 강도가 높다면 소득보장의 강도가 낮아져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에 의해 일자리를 잃거나 소득이 줄어드는 사람들에게는 한편으로는 현금급여 보장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함과 동시에 사회서비스를 공적으로 제공해야하며 양자 간의 비중에 대해서는 현실의 여건에 맞춰 지속적으로 수정해나가야 한다.

고용·노동 중심에서 개인별 사회권 보장 중심으로 변해야 총체적·유기적 대응과 더불어, 적응의 핵심 중 하나는 고용관계 중심의 사회보장체계를 개인의 사회권 중심으로 개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보장체계는 사회보험을 중심축으로 하여 구축됐고, 사회보험은 주로 고용관계를 전제한다. 고용이 돼야만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들 수 있고, 건강보험과 국민연금도 고용됐을 때 가입과 유지가 보다 용이하다. 다른 제도들, 특히 소득보장의 급여들은 고용이 돼야만 받을 수 있거나 고용되는 것을 목적으로 해 제공된다.

4차 산업혁명은 무엇보다도 고용과 노동의 영역에서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실업의 위험을 증가시키고 실업의 기간도 늘리는 경향이 있다. 플랫폼에 기반한 노동이 증가하고 대부분은 1인 사업자로 활동한다. 즉 고용관계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사회보장체계의 다양한 보호장치들로부터 배제된 경우가 많아짐을 의미한다. 현재 주된 논의대상인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해소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사각지대의 해소는 고용·노동의 중심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달성하기 어렵다. 따라서 과감하게 사회보장의 중심축을 고용노동에서 개인별 사회권의 보장으로 옮겨 놓아야 한다.

사실 건강, 주거, 교육권, 임신, 출산, 육아, 기본적 생계유지 등은 모두가 인권으로서 인정되는 사회권의 구성요소이다. 사회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떠한 조건 없이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 즉 고용과는 상관없이 반드시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체계는 고용·노동의 중심축으로 인해 보장이 불완전하게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이 무르익고 있는 지금은 노동권과 다른 사회권과의 연결고리를 끊어야 하며, 각각의 사회권은 그것 자체로 충분히 보장될 수 있도록 혁신해야 한다.

소득보장체계의 재구성
무엇보다도 소득보장체계는 시민 자격에 기반해 모든 국민을 포괄하는 개인별 체계로 전환돼야 한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혹은 일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기본적 수준의 소득이 보장됨으로써 일에서의 차별이 실생활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은 노동을 해 적절한 임금을 확보하는 것과는 무관하게 달성돼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노동시장에 진입하기 이전의 아동과 청소년에게 기본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현금급여를 지급하는 것은 타당하며, 은퇴 후 노인들에게도 기초연금을 제공하는 것도 타당하다.

만약 노동을 하고 적정임금을 보장하는 것이 소득 보장의 핵심이 된다면 노동이 불안정한 4차 산업시대에는 지속적으로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노동-임금에 의거한 공적 연금 제도가 소득보장의 핵심이라면 젊어서 저임금에 처해 있던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저소득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실업보험은 실업 기간에 실업보험료를 낸 사람들에 한정해 작동한다. 이 제도로는 아직 노동계약을 체결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나 장기 실업자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다. 이 배제된 사람들을 포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현금급여를 만들어야 한다.

"주거와 교육서비스가 공적으로 제공되면 저임금이나 실업에도 살아갈 수 있고 이런 차원에서 소득보장체계를 논해야"

그렇다고 소득보장을 하나의 단일한 제도를 통해 해소하는 것이 정답이 되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다르며 그에 따르는 필요한 소득액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중장년과 같은 크기의 소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생애 주기에 맞게 여러 개의 소득보장제도가 설정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서 지적했듯이 사회서비스보장과의 연관을 고려해야 한다. 소득의 많은 부분은 사회서비스의 구매에 소요되기 때문에, 해당 사회서비스를 질을 보장하면서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사실 사회서비스의 대상들은 주로 시장실패가 일어나는 것들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개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보건의료서비스와 요양서비스를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 성공한 사례는 국제적으로 없다. 육아서비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주거와 교육 분야가 보다 큰 문제이다. 시장 논리에 기반하다 보니 집값 안정은 바랄 수 없게 되고 주거서비스 확보를 위해 국민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너무 크다. 공교육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사교육시장이 커졌고 우리나라 특유의 교육열에 의해 교육비 지출은 OECD 가입국 중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됐다. 결국, 임금소득이 높더라도 주거와 교육서비스에 소요되는 비용이 너무 커 생활에 여유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상황은 고용불안정을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의 시기에 국민의 생활을 더 어렵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대로 주거와 교육서비스를 공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다면 그래서 이 영역에 사용해야 하는 지출의 크기가 작아진다면, 실업에 처하거나 저임금을 받더라도 살아가는 데 심각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즉 소득보장체계는 이러한 연계 고리들을 고려하면서 구성돼야 하는 것이지 임금소득을 높은 수준으로 보장해 다른 영역에서의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기조하에 구성돼서는 안 된다.

근본적으로 기술 진보의 사회화가 필수적이다
사회보장체계의 기존 제도와 실천들을 혁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기술 진보의 결과물을 공동의 것으로 만들고 공동의 이익에 봉사하도록 만드는 사회화가 필요하며, 나아가 이러한 대응을 사회보장체계의 핵심 요소로 새롭게 포함시켜야 한다. 사실, 지식·정보·기술은 애초부터 공공성에 기반한 것이며 따라서 이것의 사회화는 지극히 타당하다.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은 이미 형성돼 있던 지식과 기술에 기초한다. 기존의 지식과 기술은 선조들이 우리 모두에게 물려준 공동의 유산이며, 따라서 이것에서 유래한 현재의 지식과 기술도 어느 정도는 공동의 것이다. 정보도 공공성에 기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정보의 제공자는 다수의 국민이며, 정보를 활용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정보의 축적은 커진다. 많은 환자가 그들의 신체와 활동에 대한 정보들을 축적했기에 의료기술은 발전했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의 결과물들은 소수에 의해서 독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구성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운용돼야 한다.

그렇다면 기술 진보의 사회화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달성할 수 있을까? 먼저 지식·정보·기술의 소유권을 공적인것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 가장 맹위를 떨치는 영역 중 하나인 보건의료 분야를 예로 들어 보자. 국공립연구기관에서 치료법을 개발해 특허권을 확보하고, 이를 저렴한 가격에 국민에게 제공하거나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금지 또는 최소화하는 사회적 규제 아래에서 민간기관이 이치료법을 사용하도록 하면 된다.

지식·정보·기술이 낳은 설비나 기기들을 공적으로 구매해 함께 사용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첨단 지식과 기술이 녹아든 의료기기와 검사·분석 장치들 그리고 대면하지 않고도 진료를 가능하게 하는 ICT 기술과 기기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고 있다. 이제는 로봇이 수술하고 컴퓨터가 진단과 처방을 하며, 의료인보다 더 높은 정확도를 자랑하고 있다. 이런 설비와 기기를 정부나 비영리 민간단체가 구입한 후, 이를 운용할 때 이윤을 추구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최소화하는 것이다. 사실 공공의료기관이나 공공요양기관은 이미 이러한 사회화를 실현해나가고 있다. 이를 더 강화하면 되는 것이고, 그 사용권을 민간기관에 확대하면 된다.

사실, 기술 진보 자체만 놓고 본다면, 즉 기술 진보에 결부된 이윤 추구의 부정적 모습을 빼놓고 본다면, 분명히 인간의 삶과 건강에 많은 긍정적인 결과들을 낳는다. 문제는 기술 진보에 덧씌워진 이윤 추구와 이로부터 유발되는 불평등과 배제이다. 만약 기술 진보에 대한 공적 개입이 없어 해당 기술 진보를 이용하기 위해 막대한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면, 국민의 일부는 눈에 보이는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된다.따라서 기술 진보를 사회화해 이들로부터 불평등이 양산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기술 진보가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일 수 있는 첩경이다. 지금의 4차 산업혁명의 심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체계가 당장 정립해야 할 표적은 바로 이것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이미 시작됐고 피할 수 없다. 현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복지국가의 사회보장체계를 혁신하여 피할 수 없는 변화에 가장 적절하게 적응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단시일 내에 이룰 수 없으며 국민의 이해와 지지에 기초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 품고 있는 긍정과 부정의 양날이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지는 사회보장의 재구성에 대한 우리의 결정과 노력에 달렸다.

이권능 정책연구소함께살기 소장
이권능 정책연구소함께살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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