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외국정책사례] 독일의 노후소득 보장과 의료 및 돌봄서비스
상태바
[정책-외국정책사례] 독일의 노후소득 보장과 의료 및 돌봄서비스
  • 남현주 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21.02.08 1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일의 인구 변화와 사회보장 변화
1880년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사회보험제도를 도입한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고도의 성장과 함께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했다. 그러나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경제성장의 둔화가 시작되면서 독일의 사회보장제도는 1980년대 후반부터 점차적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 핵가족화와 가족에 대한 인식 변화, 여성의 노동참여 증가와 가족의 돌봄기능 감소 등 20세기 선진국의 대표적인 인구사회학적 변화는 독일에서도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또한 연령대별 인구를 살펴보면 1970년 구서독에서 20대 미만의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9.7%였으나 2018년 18.4%로 감소했으며, 67세 이상 인구의 비율은 같은 기간 11.1%에서 19.2%로 증가했다. 연방통계청의 인구 추이에 따르면 절대적인 인구수는 2020년 이후부터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2060년에는 20세 미만의 인구 비율은 18.0%, 생산가능 연령인 20세 이상 67세 미만의 인구 비율은 54.6%에 불과하며, 67세 이상 인구는 27.4%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인구사회학적 변화와 문제를 극복하고자 최근 독일에서 이루어진 노후소득보장, 의료보장, 노인돌봄 관련 다양한 개혁이 우리에게 주는 핵심적인 정책적 함의를 간략하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노후소득 보장
독일국민의 노후소득 보장을 책임지는 대표적인 제도는 “공적연금(gesetzliche Rentenversicherung)”이다. 이 제도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된다. 1889년부터 시행된 공적연금은 지난 130여 년 동안 두 차례의 세계전쟁과 경제공황 그리고 1990년 통일을 겪으면서도 적절한 보험료 수준으로 높은 급여를 제공하며 상당히 성공적으로 운영돼왔다고 평가받고 있다.

독일은 1990년대 이후 공적연금제도의 재정안정화를 위해 급여수준의 인하, 급여수급 연령의 상향조정, 사적연금 가입 촉진 등의 개혁을 단행했다. 이러한 독일의 연금개혁은 저소득층 가계의 노후빈곤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연금개혁의 방향성이 적절하게 설정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동안 진행된 독일의 연금개혁 중 필자의 눈에 띄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독일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장기적인 개혁 방향을 설정하고 법적 효력이 있는 준장기적 연금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을 결정한다. 2018년 연방노동사회부에 설치된 “신뢰할 수 있는 세대 간 계약(Verlässlicher Generationenvertrag)” 연금위원회는 공적연금에 대한 신뢰가 지속될 수 있기 위해 2025년 이후에도 법적 구속력이 있는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의 유지를 권장했다. 위원회는 44~49%의 소득대체율과 20~24%의 연금보험료율의 범위 내에서 이를 7년주기(예 : 2026~2032년, 2033~2039년 등)로 유지할 것을 제안했다.

우리나라도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고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기간별 최고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적정 기금 규모 등을 설정하고 세부 단계별 계획을 세워 점진적인 개혁을 진행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처럼 정치 상황에 따라 국민연금의 조정이 이슈화되는 경우를 고려하면 독일처럼 국회의 법률 개정 없이 인구 변화와 노동시장 상황에 따라 정치 중립적으로 연금액을 자동 조정하는 제도의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

독일의 자녀 양육 기간 인정제도도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이 있다. 독일은 1986년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처음에는 1년을 인정했으나 1992년 법 개정을 통해 3년으로 확대했다. 급여비용은 전액 정부의 일반예산에서 지원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2008년에서야 둘째 자녀 이상을 출산 또는 입양한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출산크레딧제도를 통해 자녀 양육 기간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6년부터 2020년까지 총 225조 원의 예산을 출산장려정책에 편성해왔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 이후 출산율은 1.0 미만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산크레딧제도의 확대는 이제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된다.

한 가지 더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고령자의 고용상황이 개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노인연령 기준의 상향조정 필요성과 함께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 또한 65세 그 이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독일이 100년 가까이 유지해오던 65세 연금 수급 연령을 67세로 상향 조정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노동시장이 전반적으로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노동에 대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 독일 국민의 경우 퇴직과 동시에 노령연금의 수급이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2019년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경제활동인구조사-고령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퇴직자 평균연령은 49.4세이며 55~79세 가운데 연금을 수령하는 비중은 45.9%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금개혁을 통해 연금 수급 연령을 2033년까지 65세로 상향 조정했지만 정년연장은 물론 정년보장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의 상향 조정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되기 어렵다. 따라서 고령 노동자들의 고용 조건을 개선하고 퇴직이 연금 수급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 개입이 선행돼야 한다.

의료보장
독일은 1883년 세계 최초로 공적의료보험을 도입해 중앙집권적으로 운영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구동독은 중앙집권적 의료보험제도를 계속 유지했으나, 구서독은 민간의료보험제도를 추가로 도입해 분권형 의료보험제도를 운영했다. 인구 고령화와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의료보험의 지출은 갈수록 증가하고 저출산의 문제 또한 심각해지자 독일은 1980년대부터 의료보험개혁을 시행했다.

우리나라는 독일의 공적의료보험을 모델로 우리나라의 특성에 맞게 발전시켜왔으며, 특히 건강보험이 2000년 통합될 당시 발생한 재정안정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독일의 의료보험 개혁 사례를 참고하기도 했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증가로 의료보험의 재정적자가 증가하자 독일 정부는 지출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 차례 개혁을 진행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의료보험개혁이 의료수요와 비용의 억제에 초점을 맞춰왔다면, 2000년대 이후 개혁은 새로운 재정 방식의 도입과 의료보험조합 간 경쟁 강화 및 민간의료보험의 역할을 확대함으로써 공적의료보험의 재정안정화를 모색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의료보장개혁에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의 의료보장성 확대를 위한 정책적 함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2008년 개혁에서 독일 연방정부는 경제생활을 하지 않는 배우자와 자녀 및 저소득 계층 지원을 확대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생계형 건강보험체납자 지원을 위한 국가의 재정 부담이 강화될 필요성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둘째, 독일은 2008년 개혁 이후 전국적으로 단일한 일반보험료율을 적용하고 있으며, 2014년 개혁 이후 부과되는 추가보험료율 또한 연방정부가 확정해 발표한다. 독일이 100개가 넘는 공적의료보험조합과 수십 개의 민간 의료보험사의 보험료 부과기준을 법으로 규정해 강제로 적용한 것은 가입자의 형평성을 고려하기 위함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의 단일화 필요성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셋째, 독일의 의료보장개혁은 의료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목적으로 진보정당이든 보수정당이든 상관없이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쳐 진행돼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개혁과 관련해 사각지대 해소와 보장성 강화에 대한 다양한 이익집단 간 단기적인 논쟁만 이뤄졌을 뿐, 장기적 비전을 갖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데에는 실패했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우리나라도 사회적 합의과정을 통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장기적 비전에서 단계별 개혁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심화되고 있어 중부담-중복지로 나가기 위한 사회적·정치적 합의가 시급해"

노인돌봄
독일에서 노인 수발 문제에 관한 논의는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논의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사회적 문제의식이 배경에 있었다. 독일에서도 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되기 전 수발의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과 가족이 떠맡아야 했는데, 이는 본인은 물론 가족에게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본인과 가족이 수발 부담을 감당할 수 없을 경우 사회부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사회부조는 노인들의 수발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 이유는 사회부조가 사회적 위험을 대처하기 위한 전형적 급여가 아니라 예외적 급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부조는 독일노인의 수발 욕구를 근본적으로 충족시키는 대안이 될 수 없었다. 또한 노인들은 사회부조의 수급을 위해 소득, 자산, 부양의무자 조건을 충족시켜야 했으며, 평생 열심히 노동해서 받게 된 노령연금을 모두 본인의 수발을 위해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독일에서는 노인들을 이처럼 사회부조 수급자로 전락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다.

결국, 고령화가 심각해지면서 장기요양대상자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으며, 급기야 전체 사회부조 지출액의 1/3을 장기요양 급여지출이 차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사회부조 재정의 책임 주체인 지방정부는 이를 감당하기 힘들게 됐고, 결국 1995년에 독일의 사회보험 전통에 부합하는 “사회적 장기요양보험제도(soziale Pflegeversicherung)”가 도입됐다. 바로 이 다섯 번째 사회보험인 장기요양보험이 독일의 대표적인 노인돌봄을 책임지는 제도이다.

1995년 도입 이후 독일 장기요양보험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럼에도 여러 문제점이 지적됐고, 이러한 지적들은 쟁점화돼 그동안 여러 차례 크고 작은 개혁과정을 거치면서 정책에 반영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과 유사한 독일 장기요양보험은 몇 가지 근본적인 시사점을 던져 준다.

첫째,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장기요양 필요성의 개념과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이다. 독일에서 제도 도입 이후 지속적인 논의와 시범운영을 통해 새롭게 정립된 장기요양 필요성 개념은 2017년 드디어 본격적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적용됐다. 새로운 장기요양 필요성 개념의 도입과 함께 등급체계도 개편되면서 장기요양 인정자 수는 늘어나고 장기요양보험급여도 확대됐다. 이로 인해 국민은 더 높은 보험료를 납부하고 정부는 장기요양 지출을 늘릴 수밖에 없지만 대부분 독일 국민이 만족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우리나라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이 국민의 욕구에 부합하고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재정 지출의 한계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합리적이고 충분한 학문적·정치적 논의과정을 통해 제도의 지속성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둘째, 재가급여 종류의 다양성과 장기요양보험급여 수급자의 선택권 보장이다. 2008년 개혁을 시작으로 2017년 시행된 “장기요양강화법 II”까지 독일 장기요양보험은 재가급여 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제도를 개선해 나가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재가급여가 시설급여보다 경제적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장기요양대상자 입장에서도 재가서비스는 본인에게 익숙한 지역사회와 주거환경에서 최대한 오래 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는 큰 장점을 갖고 있다. 독일의 재가급여수급자는 현금급여와 현물급여, 또는 현금급여와 주야간 보호 이용 등 다양한 연계 방식을 통해 본인의 욕구에 맞는 급여를 선택할 권리를 갖고 있다. 이 권리는 장기요양보험법이 장기요양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인간존엄성에 부합하는 자립적이고 자기결정적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로서 보장하는 권리이다.

셋째, 독일은 가족연대를 중시하는 보수주의적 국가로서 장기요양보험 도입 당시부터 가족은 물론 자원봉사자 등 비공식 수발자를 사회보장적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2008년 이후 개혁 과정에서 대리 수발 조건을 완화하고 근로자를 위한 단축 근무나 단기휴직제도를 도입하는 등 가족보호를 제공하려는 국가의 정책적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자녀의 부모 수발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녀의 부모 부양이 법적으로 의무화돼 있기 때문에 비공식 수발자의 역할은 당분간 축소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렇다면 가족구조 유지는 물론 재가복지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비공식 수발자들이 독일에서처럼 직·간접적인 사회적 보상체계 안에 편입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의 비공식 수발자 대부분이 수발로 인해 소득 활동을 하지 못해 본인의 노후보장을 준비하지 못하는 점을 감안하면 출산크레딧제도처럼 가족수발크레딧제도를 도입해 수발 기간을 연금 가입 기간으로 추가 산입하는 방안과 같은 사회보장제도 내의 수급권 보장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복지비 부담의 사회적 합의가 과제
이미 오래전부터 고령화가 진행된 독일은 재정 부족에 대응해 모든 사회보험제도에서 다양한 형태의 개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독일에서 사회보험의 개혁은 단순히 사회 지출의 삭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1990년대부터 2019년까지의 사회보장지출 규모를 살펴보면 1991년 3천956억 유로에서 2019년 1조 403억 유로로 오히려 증가했다. 독일은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국가로서 사회복지를 축소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성공적으로 재편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 사회보험 개혁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사실상 독일의 사회보험은 개별 보험들의 개혁 내용이 매우 상이하기 때문에 일관된 방향성을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독일의 경우 연금보험과 의료보험 그리고 장기요양보험의 구조개혁에 있어서 공공의 부담을 절감하고 비용부담자와 급여수급자 간 고통을 적절히 분담하는 방식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저출산과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이다. 따라서 독일과 마찬가지로 분명 모든 사회보험에서의 개혁이 불가피하다. 재정건전성 요인에 대한 고민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은 저부담-저복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중부담-중복지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복지 패러다임의 필연적 전환의 당위성을 부인할 수 없다면 오랜 사회적 담론의 시간과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적 타협과 사회적 합의의 균형을 찾고자 했던 독일의 경험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한국 사회가 개혁의 필요성에 직면해 독일의 사례를 비추어 정의의 규범적 원칙과 사회적 연대에 부합하는 개혁을 실천하는 데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남현주 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남현주 가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