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정부 주목받던 단어 ‘포용’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포용(inclusion)은 공식 석상에서 가장 자주 사용된 용어 중 하나다. 사회정책 영역에서도 ‘포용적 복지’와 ‘포용적 복지국가’가 널리 쓰였다. 임기의 절반이 지난 지금, ‘포용적 복지’의 의미와 특징이 무엇인지 그리고 현실에 제대로 안착되고 있는지를 점검해볼 시점이다.

‘포용적 복지’의 독특한 ‘포용’ 사용법
일반적으로 포용이란 중심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배제된 사람들을 끌어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의미상 복지, 사회보장, 사회정책은 당연히 포용적일 수밖에 없고, 그런 이유로 유럽의 복지선진국에서는 포용적 복지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 대신 1990년대부터 포용정책(inclusive policies)라는 용어는 사용했다. 당시의 사회보장체계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성과 모든 사회적 위험에 대응하는 포괄성을 갖춘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적 변화로 인해 소수의 국민이 이로부터 벗어나 있어 이들을 끌어안는 정책이 필요했다. 따라서 최저임금제도, 최저소득보장제도, 낙후지역의 도시재생,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적극적 우대조치등을 시행했고 이를 통칭해 포용정책이라 부르며 사회정책의 새로운 하위 분야로 위치시켰다.

문재인 정부가 주창하는 ‘포용’은 유럽의 경우와는 크게 다르다. ‘포용’이란 성장에 의한 혜택이 소수에게 독점되지 않고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포용적 복지’란 삶의 모든 영역과 전 생애에 걸쳐 소외나 배제됨이 없이 모두가 혜택을 누리는 복지를 뜻한다. 이에 준거해, 정부는 사회보장제도의 보장성을 높이고, 적용대상자를 넓혀 보편성을 강화하며, 동시에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부조도 보다 촘촘히 하고 있다. 이런 규정 방식은 매우 포괄적이면서 통합적이어서 유럽에서 사용한 용법과는 상반된다. 그리고 사회보장이나 사회정책 자체에 부여돼야 할 방식이지 한 정부의 특별함을 규정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방식이다.

정부가 규정하는 의미의 적절성과는 별개로, ‘포용적 복지’는 사회보장체계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포용적복지’는 한국 사회가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돼야 하는지, 사회보장의 위상 및 역할이 무엇인지, 사회보장이 경제와 어떤 상보적 관계를 맺는지 등에 대한 철학적이고 이론적인 내용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히 사회정책의 위상을 높게 평가하고 역할에 있어서도 상당한 무게를 부여하고 있다. 이전 정부에서는 사회정책이 비록 국정의 목표나 전략으로 제시 됐을지라도 경제성장을 위한 도구적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포용적 복지’는 사회정책의 독립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혁신을 위한 토대를 제공하고 결과적으로는 경제성장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로 상정한다.

‘포용적 복지’는 소득주도 성장과 연관해 일자리 보장과 소득보장을 강조한다
‘포용적 복지’는 소득주도성장과 연결돼 소득보장과 고용보장에 초점을 두는 특징을 보인다. 국민의 소득이 증가하면 이에 따라 고용이 증가하고 경제도 성장하며 그 결과 다시금 소득이 증가한다는 소득주도성장이 문재인 정부 초기에 가장 큰 이슈였다. ‘포용적 복지’도 이에 부합하기 위해 소득보장제도를 강화했다. 월 10만 원의 아동수당과 졸업 후 2년 내의 취업 준비 중인 청년에게 6개월간 매월 50만 원을 제공하는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이 새롭게 도입됐다. 기존의 기초연금은 조기 인상됐다.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은 최저임금 인상이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이란 공약에 따라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7천530원(16.4% 인상), 8천350원(10.9% 인상)으로 인상했다.

‘포용적 복지’의 공공일자리 81만 개(공무원 일자리 17만4천 개, 공공사회서비스 일자리 34만 개, 공기업 일자리 30만 개) 창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목표치는 2019년 6월 기준으로 48.0%가 달성돼 순항하고 있어 여타의 정책들에 비해 가장 좋은 평가를 내릴 만하다. 고용·노동부문에서의 또 다른 이슈는 주 52시간으로의 노동시간 단축이다. 2018년 3월에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어 단계적으로 주52시간(주당 40시간과 연장·휴일근로 12시간)을 시행하기로 했고, 2018년 7월 1일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됐다.

포용적 복지의 대표적인 정책은 문재인 케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직접 발표할 정도로 강조되었고 현재까지의 수행 실적에 있어서도 가장 앞서고 있다. 그 세부 내용을 보면, 첫째,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와 의학적 비급여를 건강보험의 급여로 전환시키고, 둘째, 노인, 아동, 여성, 장애인 등의 취약계층의 의료비 부담을 급여화 및 본인 부담률 완화를 통해 낮추고, 셋째, 소득 수준에 비례한 본인 부담 상한액을 최대 10% 수준으로 인하하며, 넷째,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최대 연 2천만 원으로 제도화한다. 이 내용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제기된 것들인데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강하게 밀어붙여 현재 대부분이 완료된 상태이다.

가장 획기적 제안인 돌봄보장은 추진 정도가 미미해
사실 ‘포용적 복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회서비스 관련 정책들이다. 국공립 어린이집, 국공립 요양시설, 공공병원 등 공공 인프라를 확충하고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해 공공사회서비스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은 100대 국정과제 중 17번이다. 민간에 90%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사회서비스 부문은 서비스의 낮은 질, 지역 간 격차 심화, 노동조건의 열악함, 공급과 전달에 있어서의 비체계성 등 부정적 모습이 점철된 부문임에도 그동안 방치됐다. 이런 상황을 타계하기 위해 국가가 사회서비스의 직접적 제공을 포함해 적극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다른 정부에서는 없었다.

하지만 집권한 지 2년 8개월이 지나는 지금 사회서비스 부문의 변화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사회서비스 공단은 사회서비스원으로 축소돼 서울, 경기, 경남, 대구 등 4개의 광역자치단체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여기서 제공하는 사회서비스의 총량이 전체 대비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사회서비스 기관의 전면적인 공공화 계획은 나오기 않고 있으며 다만 기존의 시급제 고용 방식과는 달리 정규직 월급제가 도입됐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으나 영향력은 미미하다.

2026년부터 전면적으로 실시할 예정인 커뮤니티 케어사업은 보다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이미 사회서비스 시장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이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초 자치단체의 관리 및 조정 역량의 미흡, 커뮤니티 케어의 독특한 맥락과 성공 조건에 대한 낮은 이해 등이 장애가 되고 있다. 더군다나 16개의 기초 자치단체에 178억원밖에 배정되지 않아 정부의 실천 의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낳고 있다.

‘포용적 복지’는 패러다임적 전환을 말하지만 핵심문제는 건들지 않고 있다
‘혁신적 포용국가’와 ‘포용적 복지’는 다른 정부들과는 달리 사회정책의 패러다임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패러다임에는 사회보장체계의 구성과 운영에 대한 그림이 포함돼 있지 않다. 사회보장의 질적 목표를 최소, 기본, 적정, 최대 수준 중 어디에 둘 것인지, 사회보험, 사회서비스, 사회부조 등의 수단들 중에 무엇에 방점을 찍을 것인지, 사회서비스의 공급체계와 전달체계는 어떻게 재구성하며, 공공 부문의 역할은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 10여 가지의 사회적 위험들 사이에 우선성과 비중상 차등은 어떻게 둘 것이지 등을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포용적 복지’에는 이 부분이 빠져 있다. 그런 이유로 ‘포용적 복지’는 복지 지출을 다소늘리겠다는 것 이외에 어떤 사회보장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손쉬운 것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개혁 추진을 통해 포용적복지로의 패러다임 변화 이뤄야"

근본적인 것은 개혁하지 않고 손쉬운 것들에 치중하고 있다는 인상도 낳는다. 가장 많은 재정이 소요되는 건강 부문이 대표적이다. 건강 부문은 건강보험을 통한 개혁만으로는 변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공급체계와 전달체계라는 구조적 문제가 해소돼야 보다 합리적인 건강보장을 달성할 수 있다.공공의료기관 확충, 고가 의료검사의 공공화, 1·2·3차 의료간 분업 체계 구축, 복지 선진국에서는 일반화된 주치의제도 도입, 의료 지방분권화의 실질화 등이 이뤄져야 한다. 항상 중점과제로 문서상에는 올라가지만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다. 이런 모습은 사회서비스의 다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또 다른 하나의 근본은 국민이 사회보장에 대해 갖고 있는 권리의 명확화이다. 기존의 정부나 이번 정부에서도 찾아가는 복지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찾아가는 복지가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라도 요구할 수 있는 복지여야 한다. 사회권이 명확하게 법률로 규정되고 각 욕구에 대응해 개개인이 권리를 인정받고 이를 행사할 수 있는 절차와 통로가 마련돼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요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는 법적 책임을 담당 공무원 또는 담당 제공주체가 지도록 해야 한다. ‘포용적 복지’에 이런 절차적·제도적 구성은 고려되고 있지 않다.

‘포용적 복지’는 사회보장부문에서의 혁신이 필요하다
사실 최근 10년 사이 국정과제를 50% 이상 실현한 정부는 없다. 비전, 목표, 국정과제의 입법화나 제도화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인데, 이는 이미 각 영역에서 자리를 잡은 이해당사자들이 이익집단으로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포용적 복지’ 경우도, 최저임금과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된 경영계의 반발과 사회서비스 영역에서 공공부문의 확대에 대한 민간기관의 반대 등이 있었다. 여기에 정부의 담당 기관도 한몫을 더한다. 국정 비전과 목표는 빨리 가고자 하는데, 행정 당국은 변화를 조금씩 해나가는 점진주의(incrementalism)에 의거해 걸음을 더디게 하고 있다.

‘포용적 복지’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는 무엇보다도 재정과 관련된 지표들이 유용하다. 대표적인 것은 사회보장에 할당된 사회재정이 중앙정부의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다. 사회재정의 비중이 높을수록, ‘포용적 복지’의 위상이 높고 따라서 이를 위한 일들을 많이 그리고 강하게 추진 중이라는 판단이 가능하다. 이 지표는 그리 긍정적인 결과를 낳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초기 3년간 사회재정의 비중은 3.4%가 증가한 반면, 문재인 정부의 초기 3년간에는 2.9%만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즉 사회보장 예산의 비중이 획기적으로 증가했다고는 보기 어렵고, ‘포용적 복지’를 위한 정책적 노력들이 그리 크지 않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포용적 복지’는 실체를 갖지 않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되고 이를 주창한 행위들은 단지 정치적 수사(political rethoric)에 그칠 수밖에 없다. ‘포용적 복지’가 진정한 사회보장체계의 패러다임적 전환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비전과 목표를 실현시키는 강력한 세부 정책과 프로그램이 나와야 하며, 이들이 법적인 제도화에 성공해야 한다. 현 정부는 사회부문에서는 포용을 경제부문에서는 혁신을 강조하고 있는데, 정착 혁신이 필요한 것은 바로 사회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회보장의 영역인 셈이다.

이권능 정책연구소 이음 선임연구위원
이권능 정책연구소 이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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